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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 저런거/이것저것

부위별 다양한 음식이름들

by 구석구석 2012.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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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벌어졌다는 우스운 일화가 인구에 회자된다. 이등병이 부동 자세로 있는데 고참이 지시를 내렸다. 식당에 가서 ‘정구지’를 가져오라는 것이다. 까마득한 고참한테 질문을 할 수도 없고 “예! 알겠습니다!”라는 큰 대답 소리와 함께 후다닥 달려갔는데, 이놈의 정구지라는 게 도대체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거였다. 한참을 방황하다가 못 찾고 돌아와서 “정구지가 없습니다!”라고 했더니 고참이 눈을 부라리면서 이등병 귀를 잡고는 주방으로 끌고 갔다. 그러더니 부추를 가리키면서 “니 눈엔 이게 안 보이냐?”하는 호통 소리와 함께 얼차려를 날린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정구지는 부추를 가리키는 충청도 말이다. 전라도에서는 솔, 경상도에서는 정구지, 제주도에서는 새우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이름 때문에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음식들이 있다. 부추 외에도 고수나물 같은 경우는 중국에서는 향채(香菜·샹차이)라고 부르며 코리앤더, 실란트로, 차이니스 파슬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또 ‘갈매기살’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식당 앞을 지나가면서 수군거리곤 했다. ‘아니, 갈매기 고기를 먹는단 말이야?’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도대체 왜 고깃집에서 갈매기 고기를 판단 말인가. 이 또한 갈매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돼지의 간 근처에 있는 부위로 근육질이 많은 힘살이다. 이는 돼지의 횡경막인데 뱃속을 가로 막고 있어서 ‘가로막’이라고도 한다. 이 부위는 얇은 껍질로 덮여 있어서 질길 수밖에 없는데 껍질을 손질하고 고기만 먹으니까 훨씬 담백하고 쫄깃한 맛을 즐길 수가 있는 것이다. 소에서는 여기와 같은 부위를 안창살이라고 부른다.

가로막에 있는 살이라서 ‘가로막이살’ ‘가로매기살’ 등으로 불리다가  갈매기살이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고깃집에서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누가 작명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모든 사람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전국의 돼지고기 식당에서 대히트를 했으니 대단한 아이디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양 구이도 마찬가지다. 양 곱창이라고 하면 양(羊) 고기와 쉽게 구분이 가능했을 텐데, 무언가 호기심을 갖게 하려는 심사였을까. 초기에는 더더욱 양이라는 글자만 적어 놓은 경우가 많다. 또 곱창이 미끈미끈한 안과 지방이 낀 밖이 뒤집어진 것이라고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되새김질을 하는 소는 네 개의 위장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첫 번째 위를 양이라고 부른다. 살이 두툼해서 맛이 좋고 부드러운 부위이다. 너무 익히지 않고 적당히 구워서 먹을 때 씹는 맛이나 육질이 더 좋다. 양 외에도 소는 위장이 많은 만큼 다양한 맛을 제공한다. 벌집(두 번째 위)·천엽(세 번째 위)·홍창(네 번째 위)까지 위의 부위별로 여러 가지 맛이 나오는 것이다. 홍창은 네 번째 위인데 막창이라고도 부른다. 구우면 고소한 맛을 느낄 수가 있다.

세계적으로도 내장을 즐기는 사람일수록 미식가라고 한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에도 내장 요리가 많다. 그러나 양에서 홍창까지 구분해 가면서 먹는 민족은 우리밖에 없는 것 같다. 그만큼 전통적으로 쇠고기에 관한 한 세분화해서 파악했기 때문이다.

한편 가자미 식해(食     )는 함경도 음식이다. 가자미 식혜라고도 쓰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식사를 하고 나서 마시는 식혜(食醯)와 헷갈리는 수가 있다. 음식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 보면 젓갈류나 식해의 경우는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 왔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특이하게 식해는 전혀 다른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데 서해안과 평야 지대를 통해 내려온 것은 식혜, 동해안을 통해 남하하면서 발달한 것은 식해라는 이론이다. 본 줄기는 같으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해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식해가 젓갈과 다른 점은 곡류가 함께 들어간다는 것이며 소금도 적게 들어간다. 그래서 젓갈처럼 장기간 보관하기는 어렵고 알맞게 숙성시켜서 먹어야 한다. 북어와 도루묵으로 식해를 만드는데 함경도 지방에서 남으로 내려온 ‘아바이’들이 즐기는 음식이다.

밤젓이라면 많은 이들이 의아해 한다. 밤으로 무얼 만들었다는 얘길까. 여기서 밤은 전어 내장을 뜻한다. 흔히 돔배젓이라고 부르지만 밤젓이라고 불러도 전어 속젓을 뜻하는 것이다. 가을이 오면 많은 이들이 전어를 찾는다. 이때는 기름기가 잘 올라 있어서 육질이 좋고 부드러워 먹기가 좋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가을에 전어를 못 먹으면 한겨울에도 가슴 시리다’라는 표현까지 있을까. 전어를 먹을 때는 달다는 표현을 쓰지만 내장의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쌉싸름한 맛이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밥 위에 쌉쌀하고 짭쪼름한 전어 밤젓 한 조각을 올려놓으면, 밥과 젓갈은 맛의 상승효과를 일으킨다. 이때는 밥까지 달다고 표현해도 어울릴 것이다. 요즘은 해수 온도가 바뀌어서 전어가 서해안으로 올라오고 서울에서도 전어를 쉽게 먹을 수 있지만 가을철에 보성, 광양 등지까지 내려가서 먹던 전어 맛을 어찌 잊을 것인가.

중국 음식 중에는 완전히 한국화된 것들이 많다. 심지어는 유럽 대도시에 있는 중국집에 가도 화교 상인들이 “짜장면, 보끔밥 이써요”라고 어설픈 발음으로 호객 행위를 할 정도다. ‘짜장면(炸醬麵·작장면)’을 방송이나 신문에서는 자장면이라고 쓴다. 근원이 어찌 되기에 자장면이라는 단어가 표준어가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중국어 원 발음과도 거리가 멀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표현과도 다르게 경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중국에도 ‘짜장미엔’이 있지만 우리가 늘상 먹는 짜장과는 완연히 다르다. 행여 중국의 어느 도시에서 우리와 같은 짜장면을 기대하진 마시길.

만두(饅頭)와 교자(餃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두는 풍랑을 가라앉히기 위한 제물로 제갈양이 사람 머리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음식이다. 고려 가사 ‘쌍화점’(雙花店)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 전래된 역사도 오래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만두와 달리 원래 만두는 속을 채우지 않은 밀가루 빵과 비슷하다. 오히려 교자가 우리네 만두처럼 속을 채운 것을 말한다. 교자는 중국 최대의 명절인 춘절에 행운을 기원하면서 먹는 음식이다. 만두 한 접시를 시켜놓더라도 서로의 행운을 빌어 주면서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함흥냉면도 엄밀히 보면 이론의 여지가 많은 음식이다. 평양 사람들은 ‘평양냉면’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냉면이 있을 뿐이지 무슨 앞에다가 도시 이름을 붙인단 말인가. 그래서 더더욱 함흥냉면이라는 표현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아니, 그거이 비벼서 먹는 것이지. 그게 무슨 냉면이라 말이야?” 국물이 없이 양념장과 고명을 얹어서 비벼 먹으니 비빔면의 한 형태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함흥냉면이라는 표현이 우리 곁에 자리를 잡았다. 차가운 국수라는 뜻으로만 쓰는 거라면 그다지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주간조선 고형욱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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