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오름
오름을 떠나 제주를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제주인들은 오름 주변에 마을을 세웠으며, 오름에서 살다가 오름으로 돌아갔다. 제주인들의 영원한 고향인 오름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올망졸망 368곳이나 있는데 제주도 어디를 가서도 확인된다.
오름이란?
오름에 대하여 세인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할 무렵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의 오름’(1997)에서 오름을,
“분화구를 갖고 있고, 내용물이 화산 쇄설물(火山瑣屑物)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산구(火山丘)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이 보고서에서는, 한라산 정상에서 볼 때 표고의 연속과 항공사진 판독에 의해 용암류의 끝 부분으로 인식되는 봉우리(용암)들은 오름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서귀포시의 범섬․문섬․섶섬과 한경면의 차귀도 등 무인도를 제외시켜 제주 동부에 154곳(41.8%), 제주시(행정동)에 59곳(16.0%), 서귀포시(행정동)에 37곳(10.1%), 제주 서부에 118곳(32.1%)이 분포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위의 같은 책에서 오름의 일반적 특징을, ․스코리아(송이, scoria)구로 이루어진 분석구 : 335곳(91.0%)
․수중 화산구(응회구․응회환 및 마-르) : 24곳(6.5%) ․용암 원정구(lava dome) : 9곳(2.5%)으로 대별하였다.
그리고 성인적 분류에서,
화구(굼부리) 형태는 말굽형 174곳(47.3%), 원추형 102곳(27.7%), 원형 53곳(14.4%), 복합형 39곳(10.6%)으로 각각 구분 지었고, 표고별 분포는 해발 200~600m 사이와 해발 200m의 저지대에 전체 오름 중 292곳(79.4%)이 자리하고 있으며, 가장 높은 오름은 백록담 북서쪽의 장구목(1,813m)이다.
백록담을 중심으로 한 국립공원 내에는 모두 48곳(13.0%)이 있고, 읍․면별로는 애월읍에 50곳(13.6%)이, 단일 마을로는 송당리에 25곳(6.8%)이 가장 많이 분포되고 있다. 또한, 산정 화구호를 갖는 오름이 9곳, 샘이 있는 오름이 37곳, 봉수대가 설치되었던 오름이 25곳, 제터나 당(堂)이 있었던 오름은 23곳이라고 각각 밝혔다.
제주일보 2008.6 김승태
용눈이오름
오름이란 어원은?
지금까지 알려지는 ‘오름’이란 단어의 어원은 대체로 3가지이다.
① 오다(오르다)의 명사형 - 오․오롬․오름
② 몽고어 ‘산․산꼭대기’ 등을 뜻하는 ‘ula, ulain, oroi’의 전이
③ 퉁그스어 계통(몽고어, 만주어, 오로켄족)에서 파생된 ‘ala, alin, oro’ 등
‘오름’이란 단어가 문헌상에 기록된 것은 융천사가 지은 ‘혜성가’(594) 중 “三花矣岳音見賜烏尸聞古 - 세 화랑이 산 보신다(구경오심)는 말씀 듣고 - ”와 청음(淸音) 김상헌의 ‘南槎錄’(1601)의 ‘兀音’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로 볼 때 ‘오름’에 대한 어원 규명은 학술적인 측면에서 더 연구되어야 하겠지만 ‘오르다’란 국어의 주체성 측면이 우선되어야 할 것으로 보아진다.
한편, 제주에서는 오름 이외에 산(山), 악(岳), 봉(峯․峰), 그리고 산(山)의 고유어 뫼(메․미) 등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런 단어들은 다음과 같은 연유로 인해 쓰여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① 산(山) : 대정읍․안덕면․표선면 지역의 일부 오름들에서 발견된다. 이 지역은 제주도가 태종 16년(1416년)에 산남(山南) 지역 인구가 증가되고 처리 사무가 불어 정의(旌義)와 대정(大靜)의 2현(縣)을 신설할 당시 현청(縣廳)이 있었던 곳으로서 당시 관리들의 생활 터전이 되었었다. 따라서, 이들의 영향을 받아 학식 있음을 드러내다보니 ‘산’으로 표현된 게 아닌가 한다.
☞ 고근산 금산 산방산 영주산 단산 등
② 악(岳) : 악(岳)은 원래 산세가 매우 험해 쉽게 접근할 수가 없을 때 붙이는 이름이다. 제주의 오름들 중 악(岳)이 붙여진 오름들의 특성은 봉긋하게 솟아있음이 공통적이다. 주로 서귀포시(행정동), 남원읍 지역 일부 오름들에서 발견되나 특별한 의미는 없는 것 같다. 또한, 일제 시대 때 일본군이 주둔했던 오름들에 주로 쓰여짐을 볼 때 문헌 등에 오름 이름을 한자 표기화하면서 붙여진 것으로 보아진다.
☞ 동수악 수악 논고악 보리악 성판악 녹하지악 어승생악 부대악 등
③ 봉(峰) : 봉수는 봉(烽 : 횃불)과 수(燧 : 연기)로써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 시설이다. 제주도에서는 제주, 정의, 대정 등 3개의 성과 섬 주위 9개의 진을 중심으로 오름 정상에는 25개소의 봉수를, 해안 구릉에는 38개소의 연대(烟臺)를 설치하여 일종의 군사 시설로 이용했었다. 따라서, 봉수대가 설치되었던 오름들은 대부분 봉(峰) 또는 망(望)을 쓰고 있는데 나중에는 봉수대가 없었던 곳에도 봉(峰)을 원용시킨 경우도 있다.
☞ 원당봉 지미봉 서모봉 독자봉 자배봉 남산봉 예촌망 등
④ 뫼(메․미) : 산(山)의 고유어로서 오름과 같은 의미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 군뫼 괴살메 왕이메 바리메 큰물메 노꼬메 돌미 비치미 등
⑤ 능선의 의미로서 ‘머르․루(르)․마루’를, 언덕의 의미로 동산을, 잡목이 우거진 곳의 의미로 술을, 연못의 의미로 지(池), 모양새가 아름답다의 의미를 지닌 지(旨), 냇물의 의미로 내(川), 밭의 의미로 밧, 밑바닥의 의미로 창, 돌절구 모양의 우묵한 의미로 옥 등도 오름의 대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 괭이머르 만세동산 고냉이술 열안지 베릿내 망밧 가메창 가메옥 등
제주일보 2008.6 김승태
개오름
오름은 제주의 역사
오름에는, 제주의 역사와 전설이, 그리고 제주 생태계가 살아 숨 쉬고 있을 뿐 아니라 제주인들의 삶의 터전이다. 그러기에 오름은 제주의 주인이며 제주인의 삶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제주를 휘감아 도는 바람도 이 오름에서만은 잠깐 그 기세를 가라앉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제주인에게 있어 오름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비행기를 타고 제주상공에서 내려다보이는 제주는 실로 아름다운 한라산 백록담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부드러운 능선들이 거대한 파노라마를 형성하고 있다. 제주공항에 내리면 바로 눈앞에 한라산이 들어온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자그마한 산들이 봉긋하게 곳곳에 솟아있다.
한라산이 거느리고 있는 작은 병아리들처럼 한라산을 중심으로 360여 곳 이상이나 되는 자그마한 산들이 사방으로 펼쳐져 있다. 한라산의 새끼들인 셈이다. 이 산들을 제주인은 오름이라고 한다. 산이라고 해서 다 같은 산은 아니다. 제주의 오름은 그 태생부터가 육지의 산과는 현저히 다르다. 한라산은 화산활동을 하면서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그래서 제주 지반 곳곳에 많은 이류구들을 만들어 놓았다. 이와 같이 용암활동으로 인해 생긴 특징적인 지형이 오름이다.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한라산의 백록담을 쏙 빼 닮게 산정호수를 지니고 있는 오름이 있는 반면, 모양은 비슷하나 한쪽이 함몰되어 터져 있는 오름도 있고, 막 터질 듯 하다가 그냥 멈춰버린 오름도 있다. 어떤 것은 마치 종합백화점처럼 이 모양 저 모양을 함께 어울려 놓은 것도 있다. 이렇게 오름은 생성 과정에서 다양한 형상을 하고 있어서 꼭 집어서 뭐라고 단정할 수가 없다.
오름은 제주인들의 삶의 터였다. 오름에는 샘이 있어서 그 주변을 중심으로 마을이 발전하였다. 일종의 생명줄인 셈이다. 인간이 사회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데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물과 나무와 밭이다. 식수로서의 물은 더 없이 소중하다. 나무는 목재나 과일로서의 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제주인들은 오래 전부터 이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해 왔다. 곡식을 심고 거둘 수 있는 밭은 삶의 터전이다.
이렇게 오래 전부터 제주인들이 오름을 중심으로 삶을 영위해 올 수가 있었던 까닭은 삶에 필요한 이 모든 요소를 오름이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오름은 좋은 사냥터이기도 하고, 오름 안의 동굴은 혈거의 좋은 장소이기도 했다.
오름은 제주의 소와 말을 키우던 목장이었다. 테우리(목동)들은 이 오름 위에서 소와 말들의 동태를 살피며 삶을 일구어 왔다. 이렇게 오름은 제주인들의 삶의 현장이었다.
오름에는 전설이 있다. 제주는 전설의 고장이라 할 만하다. 이 전설의 대부분이 오름과 연관이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들의 삶의 흔적이라 할 수 있는 많은 전설들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 오름이다. 삶이 잉태되어 나오는 곳이 오름인 것처럼, 삶과 관련된 아픈 기억, 혹독한 시련, 기쁨의 환호가 메아리쳤던 곳이 오름이다.
따라서, 오름을 바라보노라면, ‘저 곳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하게 된다. 오름은 전설의 샘(泉)인 것이다. 오름은 망(亡) 동산이다. 제주인은 오름에서 태어나서 오름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오름 아래에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한 평생을 살다가 죽으면 마을사람들은 상여를 메고 와 바로 이 오름 능선 자락에 영면하도록 안장을 해준다.
그래서 마을이 있는 곳의 오름에는 어김없이 그 마을의 공동묘지가 들어서 있다. 이 묘들은 오름을 축소해 놓은 듯 그 모습이 오름과 매우 닮았다. 근자에 들어서는 이런 풍경이 관광테마로 바뀌고 있으니 아이러니컬한 느낌이 든다. 이와 같이 오름은 제주인에게는 죽어서도 돌아갈 영원한 고향인 셈이다.
제주일보 2008.6 김승태
오름은 제주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현장이다.
당오름
오름에는 제주인들의 아픈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다. 제주인들은 외지인들의 공격을 받을 때마다 오름에 숨기도 했다. 그래서 봉수대가 있었던 오름을 망(望)오름이라 부르는데 오름은 적의 침입을 미리 파악하는 곳이기도 하다. 몽고인들이 진주할 때도 오름으로 피신했고, 일본인들이 진주할 때도 그러했다.
현대사의 뼈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 또한 오름이다. 오름은 4․3의 현장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제주의 오름에는 역사성이 있다. 제주인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었던 곳이 오름인지라, 위기 때마다 이 오름 속에 들어와 몸을 숨기고 생존을 위해 몸을 떨어야만 했다.
어떤 때는 처참하게 이 오름에서 피를 흘려 죽어야 했고, 어떤 때는 다행히 목숨을 보존할 수가 있었다. 일본군은 오름에 진지동굴들을 파 놓고 그들의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제주의 역사는 곧 오름의 역사이고 아픔과 쓰라린 상흔이 묻어있는 곳이 오름이다.
오름은 자연생태계의 보고이다. 사람의 발길이 채 닫지 않은 원시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많은 종류의 동․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그러기에 오름은 학술적 가치가 높다. 지금은 개발에 밀려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보호조치가 시급한 실정이다.
오름은 가벼운 마음으로 오를 수 있는 곳이다. 한라산을 등반하는 것과는 달리 시간도 절약되려니와 오름마다 특징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 트레킹 코스로는 최적이라 할 만하다.
신선한 공기, 탁 트인 시야, 자연이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오름을 오르면 심신이 건강해진다. 건강한 삶을 단련할 수 있는 곳이 오름이기도 하다.
2007년 7월, 유네스코는 한라산 천연보호 구역과 성산일출봉 응회환, 그리고 거믄오름 용암동굴계(거믄오름,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를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였다. 제주의 경관과 화산지질적 가치가 세계 최고임을 입증한 쾌거, 그 중심에 제주 오름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일보 2008.6 김승태
동서부권과 제주시권의 유명 오름 7선
‘오름 나라’ 제주가 화려하게 변신하고 있다. 억새가 활짝 패면서 오름 동산은 여름의 강렬한 푸르름보다 오히려 더욱 찬란하면서도 고운 빛깔을 띤다. 게다가 구절초, 쑥부쟁이 등 돌 틈, 풀섶 곳곳에 피어난 가을꽃은 시심을 돋을 정도로 애처로우면서도 아름답다. 이렇게 변신한 오름들이 맑은 하늘 아래 가을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제주에는 기생화산이 무려 330개에 이른다. 제주도민들은 이 기생화산들을 부풀어 올랐다는 데서 유래한 말로 추측되는 ‘오름’으로 불러왔다. 그 많은 오름은 특히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많이 분포해 있다. 따라서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오름을 오를 목적이라면 한 지역의 오름을 선별해 탐승에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오름을 소개한다.
한라산 산자락 북동쪽으로 뻗어내린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한 절물오름(697m)은 숲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오름이다. 숲속에 자연휴양림이 조성된 지 이미 오래고, 올 들어 울창한 숲속에 8km의 산책로가 새롭게 조성돼 토박이 제주도민들은 물론 외지 탐방객들에게도 사랑받고 있다.
오히려 1997년 문을 연 절물자연휴양림으로 알려져 있는 절물오름은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큰 봉우리를 큰대나오름, 작은 봉우리를 족은대나오름(657m)이라 한다.
‘절물’은 절 옆에 물이 솟구치는 샘이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관리소에서 곧장 뻗은 숲 탐방로를 따르다 약수암(藥水庵)이 마주보이는 지점에서 오름 길로 들어서기 전 왼쪽으로 꺾어져 100m쯤 가면 샘구멍에서 사철 물이 콸콸 솟아나오는 절물 약수터가 나타난다. 큰대나오름 기슭에 있는 절물은 예로부터 신경통과 부인병 등에 효험이 높다 하여 특히 물맞이 행사가 있는 백중날(음력 7월 보름이지만 제주에선 하루 앞당긴 열 나흗날을 일컫는다)이면 많은 여인네들이 찾는다 한다.
▲ 삼나무 숲이 우거진 절물오름 기슭에는 휴양림과 산책로가 여러 가닥 나 있다.
절물오름 탐승은 장생의 숲길(8.2km)과 생이소리질(777m)을 잇는 숲 산책과 더불어 하는 게 바람직하다.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테마 산책로 삼울길’ 팻말이 보인다. 삼울길은 삼나무가 울창한 길을 뜻하듯이 숲길을 들어서자마자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자란 삼나무 숲이 인상적이다. 숲 곳곳에 평상이 마련돼 있어 어디서든 쉬어 갈 수 있다.
여러 형상의 장승을 세워놓은 곳에서는 마음껏 웃으라 표시돼 있고, 산림휴양관을 스쳐 지나가면 박수치기 존(zone)이 나타난 다음 장생의 숲길 안내판이 보인다. 데크 길은 예서 끝나고 장생의 숲길로 들어서면 흙과 화산석이 적당히 섞인 널찍한 산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져 숲길을 따라 20분쯤 걸으면 사거리 갈림목(반환점 4.2km·비자림로 1.2km). 직진하면 계속 장생의 숲길을 따르고, 오른쪽으로 꺾으면 비자림로를 거쳐 후문으로 빠진다.
오름으로 가려면 왼쪽(관리소 1.2km) 으로 이어지는 널찍한 삼나무 숲길을 걷다가 첫 번째 갈림목에서 오른쪽 데크길을 따라야 한다. 나무계단길과 폐타이어를 깔아놓은 산길을 따라 15분쯤 오르면 분화구 위에 올라서고, 오른쪽 분화구 길을 따라 200m쯤 더 나아가면 숲이 벗겨지면서 조망대가 나타난다.
숲 속에 갇혀 있다 빠져나온 탓인지 조망은 한층 장쾌하게 다가온다. 바늘오름 등 한라산 기슭의 오름들은 줄지어 솟아 있고, 그 왼쪽 중산간 지역은 올망졸망한 오름을 얹고 있으면서도 평원 같은 풍광을 보여준다. 그 뒤로 성산일출봉에 우도는 물론, 등뒤로는 제주시에서 한림 일원까지도 눈에 드는 곳이 절물오름 조망대다.
하산 길에는 절물 샘에 들러 맑고 시원한 물을 마시고, 새들의 지저귐이 아름답고 정겨워 ‘생이소리질’이란 이름의 숲길을 따르도록 한다. 생이는 새, 질은 길을 가리키는 제주도 방언으로 소나무와 삼나무 숲과 산길 보호를 위해 휴양림을 빠져나갈 때까지 데크가 깔린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쾌적한 분위기의 숲 산책을 경험할 수 있는 숲길이다. 휴양림 시설물은 생이소리질을 빠져나가기 전 왼쪽으로 꺾어져 반기문 산책로를 따라 300m쯤 오르면 나타난다.
시설물 이용료 숲속의 집 4인실(19.8㎡·4실, 성수기 5만 원·비수기 3만 원), 5인실(26.4㎡·1실, 5만5,000원·3만2,000원), 6인실(33㎡·6실, 7만 원·4만 원), 8인실(49.5㎡·4실, 9만8,000원·6만 원), 11인실(66㎡·2실, 11만 원·7만 원). 산림휴양문화관 6인실(33㎡·5실, 7만 원·4만 원), 8인실(50㎡·5실, 9만8,000원·6만 원) 숲속수련장(20인용, 12만 원·8만 원). 입장료 1,000원, 주차료 2,000원.
시설물 예약은 홈페이지(jeolmul. jejusi.go.kr)를 통해 받으며, 취소분은 전화(064-721-7421)로도 예약할 수 있다. 7~8월 피서철과 금토요일과 공휴일 전일에는 성수기 요금 적용. 숲속의 집 및 숲속수련장까지는 차량 진입이 안 되며 도보로 300m 이동하여야 한다. 짐이 많은 이용객을 위해 손수레가 준비되어 있다. 월간산 한석필차장
저지오름 올레 13구간의 마무리 코스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에 위치한 저지오름(楮旨·239.3m)은 조망보다는 숲이 좋은 오름이다. 저지리 마을에서 100m 높이로 솟아오른 이 오름은 2007년 제8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인 생명상을 받았을 만큼 숲이 아름답고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탐승로 또한 숲 우거진 오름 둘레를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나 있다.
옛날 닥루라 불렸다는 저지오름의 ‘저(楮)’는 닥나무를 지칭하는 한자어로 역시 닥나무가 많았다는 데에서 이름이 유래했으리라 추측되고 있다. 당(堂)이 있어 혹은 산의 뜻을 지닌 ‘닫’이 와전되어 ‘닥’으로 변했다는 얘기 외에도 오름 모양이 새의 둥주리 같이 생기거나 분화구가 새집처럼 둥그렇게 파여 있어 새오름으로 불린다는 얘기도 있다. 이렇게 저지오름은 나무가 많았다고 하지만 실상 지금 숲은 30~40년 전 심은 삼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 저지오름 분화구에서 바라본 고산 일원의 들녘. 수월봉 부근의 차귀도도 눈에 들어온다.
저지오름은 요즘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올레 제13구간의 마무리 지점에 솟아 있다.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바닷가의 용수포구에서 출발해 충혼묘지 사거리~용수저수지 입구~특전사 숲길 입구~고목나무길~고사리숲길~낙천리 아홉굿마을~낙천잣길~용선달리~뒷동산아리랑길로 이어지는 올레 13구간(15.3km)을 마무리짓는 지점에 솟아오른 오름이다.
탐승은 역시 올레 13코스를 따르는 게 바람직하다. 남편을 그리다 지친 아내가 포구의 나무에 목을 매달자 신기하게도 조난당한 남편의 시신이 바로 나무 아래 바다에서 떠올랐다는 애틋한 얘기가 전하는 절부암(節婦岩) 아래 용수포구를 지나 3km 길이의 중산간 숲길, 천 개의 의자가 설치된 쉼팡마을 등을 거쳐 저지오름으로 이어지는 멋진 올레 길이다.
저지오름만 탐승할 계획이면 저지리복지회관에 차를 세워놓고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서다 첫 번째 마을길로 들어서도록 한다. 입구에 ‘마레게스트하우스’ 팻말과 올레 리본이 매달려 있다. 30m쯤 들어서면 T자 골목이 나오고, 왼쪽 길로 100m쯤 가면 ‘오름 가는 길 정상 1,350m’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산기슭으로 난 길을 따르면 오름 숲으로 들어선다.
화장실과 운동시설지구를 지나 오르막길을 따르면 곧 허릿길 갈림목(좌측 오름숲길 1,100m·우측 오름숲길 1,220m). 갈림목에서 시계방향으로 삼나무와 산뽕나무, 초피나무, 구지뽕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따라 20분쯤 걸으면 ‘정상 390m, 오름 정상 가는 길’ 팻말이 나오고, 여기서 오르막길을 따라 5분쯤 가면 조망대가 세워진 오름 정상에 올라선다.
분화구마저도 숲이 울창한 저지오름 조망대에 서면 오름 대왕 한라산 부악이 서벽의 전모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그 밑으로 크고 작은 오름들이 앙증맞은 모습으로 반겨준다. 또한 뒤돌아서면 왼쪽으로 삼방산, 단산, 송악산, 당산봉(당오름) 같은 오름 외에도 차귀도와 비양도와 같이 그림처럼 예쁜 섬들도 눈에 들어온다.
하산은 다시 삼거리로 내려선 다음 역시 시계방향으로 돌도록 한다. 마을회관에서 쉬엄쉬엄 오름을 한 바퀴 돌고 내려서도 한 시간 반이면 넉넉하다. 월간산 한석필차장
송악산 모슬포 들녘 남동단에 솟아오른 그림 같은 동산
모슬포 들녘 남동단에 그림처럼 올라앉은 송악산(松岳山·104m)은 성산일출봉·산방산과 더불어 제주를 대표하는 바닷가 명소로, 소나무가 울창해서 지금의 이름을 얻었으나 뱀이 하도 많아 불을 지른 뒤로 오히려 목장으로 적합할 정도로 초원지대로 변했다. 지금 산기슭에서 형성된 숲은 이후 심은 소나무들이라 한다.
송악산은 물결(절)이 운다는 의미의 ‘절울이오름’이란 제주 이름도 가지고 있다. 태평양 먼바다에서 밀려온 파도가 송악산 아래 해안절벽에 부딪치면서 우레와 같은 울음소리를 낸다는 데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송악산은 파도소리만 드센 게 아니다. 바람도 세다. 바람의 오름이라 불러도 될 정도다.
올레 10코스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송악산은 이중화산이다. 처음으로 터지면서 형성된 제1분화구 안에서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나면서 제2분화구가 생겨났다. 제2분화구를 감싼 듯한 제1분화구는 띠를 두른 듯 파여 있어 부드럽게 느껴지지만 69m 깊이의 제2분화구는 누구든 가슴 섬뜩할 만큼 깊고 가파르다.
▲ 알뜨르 부근의 해안에서 바라본 송악산.
자연 풍광이 빼어나 수많은 탐승객들을 불러들이는 송악산은 일제가 2차대전 말 최후의 해안거점으로 삼았던 아픈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다. 해안절벽 동쪽에는 일본군이 파놓은 굴이 20개가 넘고, 북록의 알오름에는 고사포대와 포진지가 4군데나 있다. 산정에 서면 북서쪽으로 반듯하게 바라보이는 알뜨르 벌에는 격납고 잔해가 지금도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그래도 송악산은 아름답다. 바닷가에 동산처럼 솟아오른 모습만으로도 아름답고, 분화구 위에 서서 바라보는 한라산과 그 기슭의 수많은 오름들, 그리고 바다에 툭 튀어나온 형제섬과 그 뒤로 서귀포 앞바다의 범섬과 문섬이 바라보여 반갑고, 남으로 가파도에 이어 한반도 최남단의 섬 마라도까지 바라보여 마음이 넉넉해진다.
송악산 탐승 역시 오름 10코스를 따르며 여유롭게 걷는다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화순항에서 괴이한 형태로 솟아오른 산방산(395m)을 바라보며 화순해수욕장을 거쳐 용머리해안에 닿으면 1653년 8월 제주 앞바다에서 난파한 하멜을 기리는 범선 모양의 하멜산성전시관이 눈에 띄고, 사계포구와 사계화석발견지에 이어 마라도 유람선 선착장을 지나면 송악산 입구에 닿는다.
주차장에 닿기 전 공터가 보이면 오름 리본을 찾도록 한다. 리본이 매달린 나무 옆길로 들어서면 부드러운 산릉이 갑자기 일어서면서 제2분화구 위에 올라선다. 오름 길은 시계방향 혹은 시계반대 방향 어느 쪽으로 돌아도 좋다. 어느 쪽으로 돌든 파란 잔디 깔린 언덕이 반기고 그 너머로 그늘져 더욱 깊고 신비스런 분화구와 그 뒤로 넓디넓고 푸르디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그 바다에 가파도와 마라도가 뗏목처럼 두둥실 떠 있다.
▲ 송악산은 해발 104m 불과한 높이지만 거대한 산릉을 오르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순례자의 모습은 도는 방향에 따라 달리 보인다. 왼쪽으로 도는 이들은 음습한 분화구나 깊은 바다로 빠져드는 듯하고, 오른쪽으로 도는 사람은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듯하다. 이렇듯 아름다운 오름이지만 ‘송이’라 부르는 화산석이 탐승객의 발길에 깨져나가는 게 마음에 걸리게 하는 오름 탐승길이기도 하다.
올레 길을 계속 따르고 싶으면 ‘松岳山’ 정상석이 세워진 정상 너머 소나무 숲 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르도록 하고, 오름을 한 바퀴 도는 탐승이라면 동쪽 억새밭 사잇길로 내려선 다음 주차장을 지나 조망대가 설치된 해안절벽 위에 올라 바다를 실컷 바라보도록 한다. 약 1시간 소요. 월간산 한석필차장
금악오름 물찬 분화구와 어우러진 노을 풍광 일품
▲ 노을 질 무렵이면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금오름 분화구.
한림읍 금악리에 위치한 금악(今岳·428m)은 제주의 여러 오름 중에서도 노을 맞이 명소로 이름난 곳이다. 오후 내내 날을 밝히며 떠다니던 해가 서해로 넘어갈 즈음이면 한라산 정상 부악은 부끄러운 듯 벌겋게 달아오르고 서해에 해가 빠져드는 순간 오히려 용광로처럼 달아오르는 바다 풍광을 마주할 수 있다.
보는 방향에 따라 원뿔형이나 사다리꼴 형태의 외형을 갖춘 금악은 제주에서도 드물게 분화구에 물이 차 있는 오름이다. 한림읍지에 “금악 상봉에는 넓이 약 3만 평에 이르는 대분화구에 약 5천 평의 내지가 있으니 이를 금악담(今岳潭)이라 한다. 천고에 청징(淸澄·맑고 깨끗함)하여 가뭄이 계속되어도 수심이 내리지 않으니……백록담 버금가는 분화구의 못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랜 세월 동안 물이 마르지 않았던 분화구인 것이다.
예로부터 신성시 여겨 신이라는 뜻인 ‘’과 의미가 상통하는 ‘금’ 자를 써 금을악(今乙岳), 금물악(琴勿岳), 금악(琴岳)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온 금악 탐승은 단순하다. 분화구 능선까지는 콘크리트길이 닦여 있어 차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어 차를 분화구 둘레의 콘크리트길 가에 세워놓고 분화구 안으로 들어가 금악담 물가에서 분화구를 둘러보든지 혹은 분화구 둘레 1.2km를 한 바퀴 도는 식으로 탐승을 한다.
▲ 금오름은 저녁 노을에 물들면 한층 서정적인 분위기로 변한다.
동쪽으로 가면 대왕오름 한라산과 그 기슭의 오름 천국을 조망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고, 서쪽으로 가면 비양도 일원의 바다 풍광과 더불어 바다로 빠져드는 환상적인 낙조 풍광을 바라볼 수 있다. 분화구 안 물가에 앉아 황금빛 노을로 반짝이는 분화구 둘레의 억새밭을 바라보는 멋도 놓치지 않기를.
월간산 한석필차장
다랑쉬오름 빼어난 균제미 자랑하는 구좌읍의 여왕오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와 송당리에 걸쳐 있는 다랑쉬(月郞峰·382.4m)오름은 균제미(均齊美·균형이 잘 잡히고 잘 다듬어진 아름다움)가 빼어나 구좌읍을 대표하는 여왕오름으로 불린다. 최소 지름 1km에 비고(比高·평지에서 치솟은 산 자체의 높이)가 200m에 이르는 큰 덩치임에도 어느 쪽에서 바라보든 가파르면서도 매끈한 원추형 외모를 보이고, 제주말로 ‘굼부리’라 불리는 분화구 또한 한쪽(남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서도 반듯한 원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다랑쉬는 제주 전설의 거신(巨神) 설문대할망과 얽힌 전설이 전해지는 오름이다. 설문대할망이 치마에 흙을 담아 나르면서 오름을 하나 하나 만들던 중 다랑쉬가 유독 도드라져 주먹으로 내려치는 바람에 가운데가 움푹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분화구 깊이는 백록담과 같은 115m에 이르고, 바닥 지름은 30m나 된다.
다랑쉬라는 지명은 굼부리가 달처럼 둥글게 보여 ‘랑쉬’라 불렸다는 설과 오름 주변에 있던 다랑쉬 마을(月郞洞)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는데, 월랑수악(月朗秀岳) 혹은 월랑수(月朗岫)라는 이름도 지녔던 것으로 보아 달과 인연이 깊은 듯싶다. 때문인지 오름 자락이 뻗어내린 송당리마을 주민들은 “다랑쉬에서 떠오르는 달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자랑한다 하고, 추석 보름이면 구좌읍 주민들뿐 아니라 제주 곳곳에서 달구경하러 다랑쉬에 오른다고 제주의 오름 나그네들은 말한다.
다랑쉬오름으로 다가서는 길은 가을의 전형을 그린 풍경화 속으로 빠져드는 분위기다. 들녘을 빼곡히 덮은 억새는 흰빛 물결로 일렁이고, 그 뒤편에 다랑쉬오름이 거대한 장벽처럼 솟아 있다. 탐승로는 주차장에서 분화구 둘레에 이르기까지 가파른 길을 따라 폐타이어 패드를 깔아놓았으나 몇 해 전 간간이 좌우로 길을 틀어놓아 예전에 비해 힘을 덜 들이면서 오를 수 있다.
▲ 반듯한 원형의 분화구 뒤로 펼쳐지는 들녘 곳곳도 오름이 봉긋 봉긋 솟아올라 더욱 편안하게 느껴지는 곳이 제주다.
널찍한 주차장에서 ‘다랑쉬오름’ 표석이 세워진 산길을 따르다가 삼나무와 편백나무 우거진 숲을 빠져나가면 왼쪽으로 손자오름(230m)이 봉긋 솟아 반기고, 등뒤로는 도너츠형의 분화구를 이룬 아끈다랑쉬(小月郞峰·198m)가 빤히 내려다보인다. ‘아끈’은 둘째라는 의미의 제주 말로 ‘새끼다랑쉬’라는 뜻이다. 결국 다랑쉬는 그 기슭에 새끼와 손자까지 거느리고 있는 품 넓은 오름인 셈이다. 손자오름 뒤편에서 거대한 프로펠러를 빙빙 돌리는 풍차가 더욱 정겹게 와닿는다.
파란 하늘 아래서 보랏빛 쑥부쟁이와 도깨비풀 꽃이 화사한 빛깔로 뽐내는 산길을 따라 분화구에 올라서면 억새가 흥겹게 몸을 흔들며 반겨주고, 그 너머로 거대한 분화구가 가슴 섬뜩케 하는가 하면 분화구 뒤쪽 멀리 솟아오른 대왕오름이 가슴 벅차게 한다.
분화구 순례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야 제격이다. 가파른 초원 능선을 따라 오름 정상에 서면 비자림숲을 곁에 끼고 있는 돛오름(243m)과 그 뒤로 둔지오름(287m)에 이어 김녕과 함덕 앞바다까지 가까이 바라보인다. 제주의 3분의 1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분화구 남서단에 놓인 널찍한 데크 또한 가을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조망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조선시대 때 성산 고성 사람으로서 효자로 이름난 홍달한(洪達漢)이 숙종이 승하하자 올라와 북녘 하늘을 바라보면 슬피 울었다는 오름 정상에는 당시 흔적은 찾을 길 없고 산불감시초소가 덩그라니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일대는 패러글라이더들에게 활공장으로 이름나 있다.
다랑쉬는 오름나그네들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산책로로도 인기가 높은 곳이다.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어둑해질 저녁 무렵까지도 오름을 도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오름 탐승은 1시간 반이면 넉넉하게 즐길 수 있다. 월간산 한석필차장
모구리오름 야영장 조성된 테마 동산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에 위치한 모구리오름(母狗岳·232m)은 제주의 수많은 오름 중에서도 독특하고도 재미있는 이름을 지닌 오름이다. 어미개가 모로 누운 형상이라는 모구리오름 분화구 안의 알오름은 어미개에게 젖을 달라 애원하다 굳어버린 새끼개의 모습이라 하고, 그래서 ‘개동산’ 혹은 ‘젯그린동산’이란 이름도 지니고 있다 한다. ‘젯그린’은 젖을 그리워한다는 뜻의 제주도 말이다.
모구리오름 탐승은 야영장을 가로지르면서 시작한다. 꺽다리 풍차가 빙빙 돌며 눈길을 끄는 산책로를 따르노라면 야영장에 이어 극기훈련장이 나타나고, 억새가 우거진 오름 길로 들어선다. 폐타이어 매트 길을 따라 200m쯤 가면 철문이 앞을 가로막지만 가볍게 밀면 열린다. 오름 안에서 방목하는 말이 야영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설치한 문이다.
능선 길로 접어들면 풍차는 밀려난다. 산마루처럼 넓은 능선에는 쉬었다 가라고 널찍한 평상도 놓여 있다. 그러다 소나무 숲을 벗어나면 앞으로는 성산 앞바다가, 왼쪽으로는 오름 많기로 이름난 송당벌이 드넓게 펼쳐진다. 평지 같은 능선길에 이어 가벼운 오르막을 200m쯤 올려치면 정상. 바람 많기로 이름난 제주에서도 바람이 많은 모구리오름 정상에 서면 이제 성산일출봉과 우도까지도 빤히 바라보인다.
하산로는 분화구 안의 ‘새끼개’라는 알오름을 끼고 이어진다. 정상을 내려서는 순간 거짓말처럼 바람이 잔잔해진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소나무 숲길은 곧 빼곡한 삼나무숲으로 이어지고, 숲이 끝날 즈음 왼쪽으로 알오름이 눈에 들어온다. 숲을 빠져나온 다음 능선을 돌아서면 다시 방목용 말의 통행을 제한하는 철문 앞으로 내려선다. 모구리오름 탐승은 한 시간이면 넉넉하다.
관광지로 이름난 성읍민속촌을 가까이 끼고 있는 모구리오름에는 제주에서 드물게 야영장이 조성돼 있다. 서귀포시가 2003년 개장 이후 관리하고 있는 모구리야영장에는 취사장과 식수대를 갖춘 야영장(정원 580명) 외에 대피소, 놀이마당, 극기훈련장, 서바이벌 게임장, 인라인스케이트장 등의 시설물이 들어서 있다. 주차장 옆 사무소를 찾아 신청서를 쓰면 당일 사용이 가능하며, 비수기에는 차를 텐트 옆에 대놓는 오토캠핑도 허용한다(전기시설 설비). 1박당 이용료 어른 1,200원, 청소년 1,000원, 9세 미만 800원. 문의 064-760-3408. 월간산 한석필차장
높은오름 구좌읍 최고의 오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벌판에 솟아오른 높은오름(高岳·405.3m)은 구좌읍에서 가장 키가 큰 오름이다. 어느 쪽에서 바라보든 주변의 오름에 비해 높아 오래전부터 ‘높은오름’이라 불렸다는 이 오름은 세 개의 작은 봉우리가 이어지면서 분화구를 이루고 있다.
조망은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다. 가까이 구좌읍 2위 고봉인 다랑쉬(382.4m)에서부터 돛오름(287m), 당오름(277m), 아부오름(226m), 동거문오름(340m), 손자오름(255.8m)이 고만고만한 높이로 빙 둘러싸고 있고, 그 뒤로 서쪽 멀리 한라산에서 동쪽 성산일출봉에 이르기까지 제주 동부가 파노라마로 바라보일 만큼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진다. 가까이 다정히 손을 붙잡고 마실 나가는 어머니와 아들처럼 다정스럽게 보이는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 또한 인상적이다.
높은오름은 환한 대낮보다 이른 새벽 일출 맞이 오름 탐승지로 적격이다. 무엇보다 성산일출봉과 우도를 배경으로 떠오르는 일출이 장관이기 때문이다. 한라산을 뒤로 넘어가는 일몰 또한 아름다운 풍경화 같다고 제주의 오름 나그네들은 말한다.
답사는 오름 동사면에 들어선 구좌읍공설묘지에서 시작한다. 화산석으로 담을 두른 묘와 묘 사이로 난 길을 따르노라면 누구든 마음이 편할 순 없다. 하지만 묘지를 벗어나 쑥부쟁이 파르르 떨고, 억새가 가녀린 몸을 흔들어대는 산길 따라 분화구로 향하노라면 분위기는 시심을 돋게 할 만큼 서정적이다.
▲ 널찍한 분화구에 우거진 억새가 은물결 치듯 일렁이며 가을의 전형을 보여준다.
공동묘지를 출발해 가파른 능선을 거쳐 펑퍼짐한 능선에 올라서면 발아래 굼부리(분화구)가 입을 쫙 벌리고 있고, 왼쪽 멀리 거대한 오름이 솟구친다. 오름왕국의 대왕오름 한라산이다. 더욱 가슴에 와닿는 것은 주변의 오름 풍광이다. 특히 아침 햇살이 비출 즈음이면 높은오름을 빙 둘러싼 크고 작은 오름들이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하는 것이 마치 제후를 맞이하는 신하들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이 풍광은 분화구를 따라 돌면서 만끽하도록 한다. 제주를 한 바퀴 도는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아늑한 풀밭을 이룬 분화구를 가로지르며 분화구 둘레 밖으로 보이는 제주를 바라보는 즐거움 또한 크다. 오름 탐승에는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월간산 한석필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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