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리 지구의 들머리에 위치한 주산(831.3m)은 지리산 전망대로서 으뜸이다. 정상에 서면 천왕봉 삼신봉 영신봉 등 지리 준봉들을 한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지리산 국립공원 권역에 속하지 않아 사시사철 출입이 자유롭다.
산세로 보자면 주산은 품이 넓은 산이다. 남쪽은 하동군 청암면으로 청학동이 누워있고 북쪽은 산청군 시천면으로 반천계곡이 들어서 있다. 청학동과 반천계곡은 산 깊고 물 좋은 청정골짜기로 고운 최치원, 남명 조식 등 옛부터 덕 높은 인물들이 많이 찾던 곳이다.
산행구간은 ‘경남 산청군 시천면 외공마을~시천문화마을~새터~515m봉~주산(831.3m)·거북바위~752m봉~773m봉~790m봉~산죽밭 삼거리~반천계곡~임도~외공마을’로 이어진다. 소요시간은 6시간 안팎. 산길은 대체로 깨끗하고 뚜렷하다. 하지만 790m봉을 지나면 산죽밭에 가려 하산길 찾기가 다소 까다로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정류소왼쪽으로 ‘외공마을’ 표지석이 서있다. 정류소 앞에 있는 건널목을 건너면 내공리로 들어가는 아스팔트 포장길이 열린다. 내공교, 내공2교를 잇따라 건넌 뒤 마을 복지회관을 지나면 10여분 뒤 시천문화마을에 닿는다. 예쁜 목조건물들이 오밀조밀 들어서고 있는 이 마을을 가로질러 산아래까지 오르면 새터다. 오르막 도로가 오른쪽으로 휘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산길이 열린다.
임도에서는 오른쪽 오르막이 주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두번째 모롱이를 돌면 숲속으로 파고드는 산길이 나타난다. 산길은 잘 정돈된 5기의 무덤이 있는 가족묘지와 만난다. 묘지터를 가로질러 왼쪽 수풀 사이로 들어간다. 산허리를 휘돌면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능선에서 30여분이면 515m봉에 오를 수 있다. 경사 급한 치받이길과 편안한 능선을 번갈아 타야 한다. 산죽과 참나무가 우거진 산길을 20여분 더 지나면 주산 정상에 올라 선다.
주산 멧부리는 헬기장과 닿아 있다. 30여평의 평지 위에서 여유롭게 주위를 조망할 수 있다. 중산리 골짜기가 멀지 않은 만큼 천왕봉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천왕봉은 북서쪽에서 좌로 제석봉, 우로 중봉을 날개삼아 비상하듯 우뚝 솟아 있다. 주산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은 한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산청 양수댐에서 피어오른 물안개로 준봉들이 연회색 빛으로 젖어있다.
여기다 봄철 아지랭이와 저녁무렵 푸르스름한 이내가 산자락을 감싸안으면, 지리산의 준봉들은 운무 속에 둥둥 떠다니는 몽환에 빠진다. 이같은 멧부리에 신비로운 영물이 없을 리 없다. 준봉들을 조망하기에 좋은 자리를 내주던 바위군을 옆에서 바라보니 영락없는 거북 형상이다. 천왕봉에서부터 기어나와 남해바다로 향하듯 거북바위는 남쪽을 향해 머리를 오롯이 드러내고 있다.
주산 정상에서 하산길은 세 갈래로 갈라진다. 오른쪽 내리막길은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752m봉을 지나면 능선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굽이친다. 조릿대 군락이 곳곳에 보이기 시작하더니 773m봉 인근에선 녹색무리들이 산마루를 덮어버린다.
/ 레져토피아 박병률기자
고운동계곡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지리산을 소요하다 머물렀을 정도로 계곡이 빼어나다. 고운동이란 지명도 최치원의 호에서 따왔다. 지리산록에는 옥천대, 문창대, 세이암, 환학대 등고운과 관련된 지명에 친필이라고 알려진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쌍계석문(雙磎石門), 광제암문(廣濟癌門)등의 글씨가 남아 있지만 그의 호를 딴 지명은 고운동이 유일하다. 그만큼 고운동의 경관이 뛰어나다는 뜻일 것이다.
고운이 지리산의 산신령이 되었다는 전설 때문인지, 그곳에 들어가면 전쟁도 없고, 먹을것 이 풍부하며, 상놈과 양반의 나눔이 없이 장수한다는 ‘청학동’이란 이상향을 찾는 사람들은 고운동을 이상세계 속의 ‘청학동’으로 여겼다. 이는 반대로 지리산자락에 있는 경상도와 전라도가 그만큼 전란에 많이 휩싸였음과 지배층의 수탈이 심했음을 말해 준다고 하겠다.
고운동 계곡은 덕산에서 중산리 방면으로 가다 외공리의 정각사 안내 표지판을 조금 지나서 지관광농원 안내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면 된다. 중산리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건너 반천마을로 들어서기 전에는 작은 골짜기 안에 널찍한 들과 마을이 있을까 싶다. 이것이 고운동계곡의 특징으로 배바위를 지나 고운동에 오르는 길 또한 초입의 좁아보이는 계곡에 비해 해발 800여m 상에 있는 분지에 올라서면 촌락이 있었던 곳 답게 넓다.
고운동 계곡의 참맛은 피리골에서 내려오는 계류와 고운동계곡의 본류가 만나는 배바위에서 부터 느낄 수 있다. 계곡 군데군데에는 야영터도 조성 돼 있을 정도로 여름이면 피서객들로 붐빈다. 그러나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면 계곡물이 갑자기 넘치므로 한나절의 피서가 아닌 야영을 하려면 조심해야 한다. 또한, 계곡에는 배바위를 비롯한 너럭바위가 많으므로 연인 끼리 가을 단풍놀이를 간다면 바위에 앉아 계곡에 가득한 단풍과 계류에 떠내려가는 단풍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한국관광공사
중산리(중산관광단지 내)에 위치한 지리산 빨치산토벌 전시관
민족의 명산인 지리산은 6·25전쟁을 전후로 치열했던 빨치산과 군·경 토벌대 간의 피로 얼룩진, 민족상잔의 아픔이 서려 있는 우리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역사 현장이기도 하다. 1949년부터 5년 동안 1만717회에 걸쳐 계속된 지리산 교전에서 2만여 명의 아까운 생명들이 처절하게 목숨을 잃었다.
지리산과 빨치산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 1층에는 ‘해방과 빨치산’ ‘전쟁과 빨치산’을 주제로 빨치산의 정체와 해방 그 이후, 남북 분단, 여순 10·19사건, 반란군 사건, 토벌대의 추적 등 해방 이후부터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이 땅에 비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배경과 빨치산의 태동, 지리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빨치산 사건 등 당시 빨치산의 실체와 사회상을 이해하는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전시관 2층에는 빨치산의 실체와 역사의 기초가 되는 빨치산의 생활을 알아보고 지리산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통해 지리산이 간직한 역사와 자연 경관, 산청의 문화관광자원을 알아보는 공간 등 빨치산에 대한 역사적 사실, 유품, 사진자료, 문학작품, 영상물 등이 설치돼 있다.
‘전투의 현장 속으로’라는 터널을 지나면 외부전시관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에는 실제 빨치산이 산속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알 수 있는 주거지 모형과 주요 아지트 등이 재현돼 있다.
초가집으로 꾸며진 ‘민가 아지트’는 내원골의 민가 구들장을 교묘히 이용했다. 토벌대(군·경)가 검문 검색을 하면 아궁이의 솥단지를 들어내고 방고래를 통해 구들장 밑으로 숨은 뒤 아궁이는 다른 곳에서 태운 재로 소복이 덮고 솥은 뜨거운 물을 채워 토벌대의 눈을 속였다. 구들장 아래 몸을 숨긴 빨치산의 모습을 재현한 마네킹이 언뜻 보기에 섬뜩할 정도다.
바로 아래에는 빨치산들이 산속에서 가장 손쉽게 만들어 생활했던 ‘초막 아지트’가 만들어져 있다. 장정 4~5명은 거뜬히 들어갈 정도의 원두막(네모꼴)형과 움집(원뿔꼴)형이 대표적인데 나무, 풀, 억새, 산죽 등으로 즉석에서 집을 지었다고 한다.
또한 ‘암반굴 아지트’는 8부 능선에 자연적으로 조성된 암반굴을 이용한 것으로 높이 1.5m, 깊이 4m, 폭 3m 정도로 20여 명이 함께 생활할 수 있었으며 동굴 안쪽에 물이 나고 바깥쪽은 지대가 높아 경계와 은신이 용이했다고 한다. 암반굴 아지트 입구에서 상처 입은 빨치산을 치료하는 모습과 따발총을 들고 경계근무를 서는 빨치산의 모습을 재현한 마네킹을 보니 민족의 아픔이 새삼 느껴진다.
또한 야외 전시장의 전시물 중에는 동족끼리 서로 총칼을 들고 싸우다 눈과 머리에 부상을 입어 붕대를 두른 한 병사의 지친 모습과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총칼 아래 시름에 잠긴 모습이 있어 당시의 참혹했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 경남신문 이준희기자
중산리 -법계사-천왕봉-제석봉-장터목대피소-칼바위-중산리 회귀코스
거리는 약13km / 계곡에 앉아 휴식시간 포함해서 약7시간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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