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꽃과 함께하는 봄의 능선 '웅산'
진해 군항제가 막 끝난 4월 둘째 주 월요일. 진달래꽃이 핀다는 소식을 접하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고속도로 주변의 야산에는 이미 진달래가 만개한 상태. 하지만 멀리 보이는 높은 산에는 아직도 희끗한 겨울의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봄과 겨울이 공존하는 잔인한 달, 4월이다.
이번에 찾은 진달래 코스는 창원과 진해시의 경계를 이룬 웅산(熊山·703m) 능선. 이 산은 창원과 진해 시민들에게는 친근한 ‘꽃산’이지만, 다른 지역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코스는 이 산 서쪽의 안민고개에서 시작해 정상에 오른 뒤 남쪽의 천자봉(天子峰·503m)을 거쳐 대발령으로 이어진다. 이 구간은 진해시가 산불예방기간에도 산행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웅산은 지리산 영신봉(1,651.9m)에서 김해 동신어산(459.6m)까지 이어진 낙남정맥에서 갈려나온 곁가지 상에 자리하고 있다. 좀더 정확히 짚어 보면, 낙남정맥 상인 창원시 동쪽의 용지봉(龍池峰·723m)에서 남쪽으로 갈린 지능선이 불모산(802m)을 경유해 웅산으로 연결된다. 이 능선은 계속해 남쪽의 천자봉을 거쳐 진해만으로 잦아든다.
웅산은 능선길 어디서나 진해 앞바다의 조망이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이다. 게다가 봄이면 산길 주변에 도열하듯 늘어선 진달래꽃을 마음껏 볼 수도 있다. 단 그 시기를 잘 맞추는 것이 문젠데, 지역 사람들은 군항제 때, 혹은 이후 1주일 정도가 꽃을 보기 좋은 시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산길의 고도차가 400m 이상 되니, 장소에 따라 개화 시기가 다르다는 점은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안민고개 구도로는 벚꽃 드라이브 코스
산행기점인 안민고개는 창원과 진해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 고갯마루다. 이곳은 안민터널이 완공되기 이전에는 두 도시를 이어주는 주요 통행로였다. 하지만, 터널이 뚫린 요즘에는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벚꽃이 한창인 봄철에는 차량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행락객들로 몸살을 앓는 곳이다.
안민고개 정상에 위치한 자그마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고갯마루에 설치된 안민생태교를 돌아본 뒤 산행에 들어갔다. 창원쪽을 기준으로 보면 왼쪽 능선이 웅산 방향이다. 오른쪽은 장복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인데, 5월15일까지는 산불예방을 위해 출입이 통제된다.
발 아래로 고갯마루가 멀어지기 시작하며 순백의 벚꽃이 우리를 반겼다. 아래쪽에는 꽃이 지고 있지만 산 위는 이제 시작이었다. 덩달아 만개한 진달래까지 화려한 빛을 발했다. 자연의 색이 이토록 현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완만한 임도를 오르는 산악자전거도 보였다. 평일임에도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웅산은 서울의 북한산이나 관악산처럼 이곳 도시인들의 근린공원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가깝고 높지도 않으면서도 멋진 조망까지 덤으로 주니, 이만한 조건을 갖추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등산로는 방화선 위로 조성되어 있어 동서남북 어느 곳을 둘러봐도 시원스럽기 그지없다. 북으로는 공업도시 창원의 쭉쭉 뻗은 도로망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남쪽 발아래 진해 앞 바다에 뜬 커다란 배들이 장난감처럼 앙증맞다. 진해시를 감싸고 둘러선 웅산의 주능선도 한눈에 들어온다. 수려한 산세는 아니지만 은은하면서도 안정된 풍광이 멋스럽다.
안민고개에서 1시간쯤 완만한 능선을 지나 커다란 전망대 바위를 우회하니 경사가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눈앞에 구불구불한 긴 계단길이 나타났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오르니, 정면의 웅산과 그 왼쪽 뒤로 솟은 불모산의 통신시설물이 차츰 가까워졌다.
고도가 높아지니 진달래의 붉은 빛이 차츰 줄어들었다. 자세히 보니 진달래는 적지 않았지만 아직 꽃이 피지 않은 것이 태반이었다. 정말 산이란 곳은 알 수 없는 곳이다. 안민고개와 불과 300m밖에 고도차가 나지 않는 곳인데도 이렇게 다르니 말이다.
불모산으로 연결된 산길과 만나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웅산 정상을 지나쳤다. 이어 웅산가교라는 자그마한 구름다리를 건너니, 멀리 둥그스름한 봉우리 위에 밥주발을 엎어 놓은 듯 독특한 형상의 암봉이 보였다. 시루봉 또는 곰메바위라고 불리는 바위였다. 높이10m, 둘레 50m 크기의 이 바위는 우뚝하게 솟아오른 모습이 신비스럽게 보일 정도였다.
진해시에서 세운 안내판에 따르면, 이 고장의 진산인 곰메는 신라 시대에는 국태민안을 비는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고, 근대에 들어 명성왕후가 세자의 무병장수를 비는 백일산제를 드렸던 명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랜 옛날부터 곰메바위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물이었던 것이다.
아마 곰메바위가 설악산 어느 능선 위에 있었다면 이름도 없는 평범한 바위봉우리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해를 굽어보는 이곳 웅산 능선에 자리 잡은 덕분에 신령스런 바위로 남게 됐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자연물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이 바위가 증명한 셈이다.
피부에 닿는 바람은 차가워도 봄볕은 따가웠다. 사진기자 김승완씨는 벌써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능선에는 나무가 거의 없어 그늘을 찾기 힘들었다. 일단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기로 했다.
천길 절벽 위에 선 느낌의 천자봉
시루봉에서 지그재그 형태의 독특한 계단을 타고 내려서며 종착지인 천자봉으로 향했다. 계단이 끝나는 곳의 안부에 쉬어가기 좋은 정자가 하나 서 있었다. 주변에 간단한 운동기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근처 주민들의 산책코스로 이용되는 듯싶다. 이곳에서 서쪽의 자은본동 삼성아파트로 하산할 수 있다.
안부를 지나 비스듬히 이어진 오르막길 주변에도 진달래가 운집해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와 달리 제법 울창한 소나무숲 사이로 등산로가 나 있다. 날이 흐려지기 시작해 마음이 바빠졌다. 482.5m봉 부근의 송전철탑을 지나 무인 산불감시탑이 서 있는 천자봉까지 한달음에 내달렸다.
천자봉 정상은 전망대 그 자체였다. 정면으로 보이는 진해 행암동 일대의 벚꽃 군락이 발아래 떠가는 구름 같고, 진해만 너머로 희뿌옇게 보이는 거제도는 너무도 아득했다. 천길 절벽 위에 서 있어 위태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장소였다.
그러나 이런 감상도 잠시뿐. 산불감시탑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끄러운 안내방송 탓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방송은 우리가 천자봉 산림욕장에 내려설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됐다. “이제 산에서도 감시당하는 세월이 됐다”는 선배의 투덜거림에 공감이 갔다. 이러다가 온 세상이 감시당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편리한 것이 꼭 좋은 일은 아닌 모양이다.
/ 월간산 김기환 기자
진해시 태백동~창원시 안민동을 이어주는 안민고개
4월이 되면 경남 남해안 일원은 온통 꽃잔치가 벌어진다. 그중에서도 진해의 벚꽃은 겨우내 움츠렸던 사람들의 마음을 한껏 들뜨게 한다. 3월이 지나 4월에 들어서면 봄의 전령사인 매화는 모두 지고, 화사한 벚나무 가로수 길과 언덕 아래 숲길사이로 화사한 벚꽃축제가 시작된다. 벚꽃이 만개하는 3월 말부터 열흘 동안 해군도시 진해에서는 군항제가 펼쳐진다. 축제 기간 중에는 인근 도시 뿐 아니라 전국 도처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군항의 벚꽃잔치를 한껏 즐긴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에 특히 주말이면 차를 댈 곳이 없을 정도로 붐비기도 한다. 그래도 세계에서 벚나무가 가장 많다는 진해의 벚꽃축제는 한번 찾아볼 만하다.
남해고속도로 서마산 또는 동마산 나들목을 나와 진해방면 이정표를 보고 길을 계속 가다 보면 마산 시내를 지나 창원시 양곡로로 접어들고, 이내 왕복 6차선 도로변 양쪽으로 늘어선 하얀 벚꽃길에 들어선다. 벚꽃도시 진해로 들어서는 관문답게 도로 양편에 늘어선 벚나무는 마치 환영인사를 나온듯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려 방문객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양곡로를 따라 약 3km 쯤 나아가면 좌측에 산으로 오르는 아스팔트도로가 나타난다. 물론 양곡로 벚꽃길을 계속 따라가면 장복터널을 지나 진해시로 들어설 수도 있지만, 기왕에 벚꽃도시 진해를 구경하러 온 것이라면 산길을 따라 벚꽃터널을 감상하면서 진해시내로 들어가길 권한다.
장복산 오른쪽 산자락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이 도로는 왕복 2차선의 좁은 아스팔트길이라, 도로변에 주차할 공간은 거의 없다. 하지만 길 양편에 벚나무가 빽빽하게 심겨져 있어 4월 초가 되면 아주 환상적인 벚꽃세상을 연출한다. 곧 마진터널을 지나 내리막길이 이어지고 도로가 크게 휘어지는 곳에 이르면 바로 장복산공원에 들어선다. 이 공원에는 작으나마 주차 공간도 마련되어 있으며, 그다지 붐비지 않는다면 공원내에 조성된 벚나무 숲길을 거닐며 잠시 산보를 즐기는 것도 괜찮다.
장복산공원이 군항제 기간 중 많은 인파로 붐비는 반면, 안민고갯길은 비교적 덜 붐비고 호젓한 벚꽃길이다. 이 길은 진해시 태백동에서부터 창원시 안민동에 이르는 약 9km의 고갯길인데, 그 중 진해시 쪽의 약 6km구간이 환상적인 벚꽃터널이다. 더구나 고갯길 군데군데에서 보이는 진해만 풍경과 동쪽으로는 진해의 명산인 웅산(703m), 시루봉(630m), 천자봉(502m) 등의 장대한 산줄기가 한눈에 장쾌하게 들어온다.
안민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지만, 이 고갯길의 정취를 제대로 맛보려면 걸어보기를 권한다. 도로변에는 드라마 '로망스'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데크로드가 있는데 산책하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목재로 바닥과 난간을 만들어 운치를 더해준다. 또한 고갯길 곳곳에는 약 100m 간격으로 진해만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벤치와 휴게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안민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안민고개 정상 (303m)에 다다른다. 이 곳에도 제법 널찍한 주차공간과 간이휴게매점이 들어서 있다.
한편 고갯마루 위에는 "안민생태교" 라는 조그마한 다리가 가설되어 있는데, 진해와 창원을 잇는 안민관광도로를 개설하면서 도로에 의해 잘려진 장복산과 웅산 사이의 생태계를 배려하여 야생동물의 이동통로로 만들어 놓은 다리이다. 그러나 안민생태교를 건너 장복산으로 가는 등산로는 봄철 산불방지 기간 중에는 폐쇄된다. (11.1 ~ 이듬해 5월중순까지) 시간 여유가 있다면 안민고개에서 동쪽 능선을 따라 진해 명산들의 이름을 짚어가면서 산행을 즐길 수도 있다.
안민고개에서 시루봉, 천자봉을 거쳐 삼림욕장이 있는 대발령 천자암까지 종주하는 코스는 대략 5∼6시간 정도로 다소 오래 걸리지만, 산불방지기간에도 산행할 수 있다. 더욱이 등산로도 그리 험하지 않아 소풍을 겸한 가족산행코스로 좋다. 특히 산행 내내 진해 앞바다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산행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시루봉이나 천자봉까지는 아니더라도 안민고개 동부능선 초입의 약 1.5km 구간은 꼭 한번 걸어볼 일이다. 능선 위로 널찍한 산길이 나 있는데 나무가 별로 없어 마치 초원길을 연상케 한다. 능선 남쪽은 진해 시가지와 소죽도, 대죽도를 위시한 진해만 바다 풍경, 북쪽은 국내 굴지의 산업단지인 창원공단이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도보로 약 15분 정도 가면 이내 펑퍼짐한 풀밭이 나오고 사방팔방으로 막힘없는 조망이 펼쳐진다. 정면으로 곧장 시야에 들어오는 불모산(802m)은 정상에 국가 시설물이 들어서 있어 조금 눈살이 찌푸려지기는 하나 그래도 진해와 창원, 김해 세 지역의 경계에 우뚝 선 이 지역 최고봉으로서 시원한 기상을 펼쳐 보이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웅산과 시루봉의 험상궂은 바위 봉우리들이 보이는데 모두가 육안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실제 거리가 꽤 멀다. 여기서부터 널찍한 산책길은 끝나고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등산을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라면 이곳에서 발걸음을 돌리는 것이 좋다. 올라온 길을 되돌아 내려가면서 바라보는 안민도로 고갯길위로 듬직하게 솟아있는 장복산(582m)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군항제 기간 중에는 이곳 안민고개도 제법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특히 주말에는 시루봉을 산행하려는 부산, 마산, 창원 일원의 등산객들로 붐빈다. 하지만 꼭 군항제기간이 아니더라도 안민고개는 한번 들러볼 만하다. 벚꽃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따사로운 봄 햇살을 받으며 봄향기 가득한 산책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안민도로 말고도 진해시 석동이나 경화동 진해상고 뒤편에서 도보로 40분 정도면 안민고개에 오를 수 있다.
웅천동사무소앞 맛도락식당
이집식당의 김치찌개가 먹을 만하다. 남편은 돌고래호선장이고 안식구가 직접 운영을 하는 곳으로 묵은지에 돼지생고기를 넣는데 옛날 집에서 먹는 맛이다. 넉넉한 인심이 있고 밥은 무한리필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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