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방곡곡/충청북도

영동 양산면-505번지방도-마리산

by 구석구석 2008. 10. 13.
728x90

 경부고속도로 옥천 나들목을 빠져나가 4번 국도를 이용해 이원으로 간다. 이원에서 501번 지방도를 이용 호탄교 삼거리에서 좌회전 하여 68번 도로를 따라 양산면 소재지에 이른다. 양산 송호리국민관광지에서 선불교 국조전을 거쳐 심천면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엘로힘연수원(043-744-1925)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해서 들어가면 연수원 주차장에 닿는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금산 나들목에서 빠져 동쪽으로 68번 지방도를 타고 영동쪽으로 금강을 따르면 양산면 소재지다. 송호리국민관광지에서 금강을 건너 심천면 방향으로 가다보면 엘로힘연수원 이정표가 나온다.

 

 

마리산은 참으로 묘한 산이다. 사방 어디서 보아도 평범한 산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리산 줄기가 양팔을 동글게 벌려 감싸고 있는 중심이 골짜기에서 보면 깎아지른 바위벼랑과 기암괴봉으로 이루어진 금강산이다.


또 산행을 해보면 숲속 곳곳에 기암괴봉이 숨어있고, 천태산쪽으로 천길 바위벼랑이 있으며, 널찍한 마당바위도 있다. 숲도 좋고 성터도 있다. 그래서 마리산은 아름답고 산행은 아기자기하며 재미있다. 또 중심이쪽 바위벼랑에 여름에는 폭포, 겨울에는 하얀 빙폭이 두어 가닥 걸쳐져 그림 같다.


마리산에는 매우 기이한 봉우리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마리산을 북쪽에서 볼 때 동편에 깎아지른 절벽을 이루고 있는 사자머리봉이 그 하나로, 마리산의 상징이다.


다른 하나는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고 마리산 바로 아래 중심이 골짜기에서 볼 수 있는 향로봉이다. 향로봉은 마리산이 양팔을 벌리고 있는 그 한가운데로 줄기가 나아가 머리를 추켜들고 있다. 마리산이 동쪽을 향해 올려놓은 향로처럼, 또는 치켜든 거북의 머리처럼 보인다. 골짜기쪽은 물론 좌우가 절벽으로 되어 있고, 치켜올린 머리에는 소나무가 우거져 있어 마치 향이 피어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1 눈덮인 바위길이 미끄럽다. 2 바위비탈에서 향로봉을 바라보고 있다. 3 바윗길을 붙잡고 힘겹게 오르고 있다.

 

강화도의 마리산도 영동의 마리산처럼 마니산으로 잘못 불리고 있다. 이러한 예는 많다. 고리산이 환산(環山)으로, 갓걸이산이 괘관산(掛冠山)으로, 밤재가 율치(栗峙)로 한자화 된 것이다. 그러나 산자락의 민초들은 꾸준히 순수 우리말인 마리산, 고리산, 갓걸이산, 밤재라 불러왔다. 이제 우리는 이 순수하고 고운 우리 말 이름들을 찾아야 한다.


고려 말엽 홍건적의 침입으로 공민왕이 피란했을 때 여기 마리산에 왔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마리산은 물론 길 건너 천태산의 영국사, 마리산 아래의 누교리, 마리산 동쪽의 어류산 등에 공민왕과 관련되는 이야기들이 전해져 오고 있다. 공민왕이 마리산에 머물렀을 때 성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석성의 흔적이 뚜렷하고 성문을 달았던 성문의 돌쩌귀 자국도 있다.


중심이 마을은 제법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골짜기 막바지에 있다. 이 중심이 마을에 들어가는 길은 오직 하나가 금강가에서 골짜기 개울을 따라 들어간다. 이 골짜기는 좁고 꼬불꼬불하며 길어서 찾아들기 어려웠다. 난을 피하는 데 아주 좋은 곳이다. 


공민왕이 중심이 골짜기에 머물고 있을 때 공민왕과 왕후인 노국공주가 서쪽 천태산 자락에 있는 영국사에 불공을 올리려 다녔다 한다. 절 이름 영국사(寧國寺)는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이 때 노국공주가 영국사로 들어가는 들머리의 개울(호탄천)을 건널 때 신하들이 깔아준 널빤지를 밟고 건넜다 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널빤지 다리’라는 뜻의 누교리(樓橋里)가 된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공민왕과 공주가 호탄천 위에 쇠가죽으로 만든 밧줄과 연을 띄워 그것을 타고 영국사에 오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리산 동쪽의 어류산(御留山)은 공민왕이 마리산으로 들어가기 전에 머물렀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향로봉 아래  요지에 자리 잡고 있는 엘로힘(히브리 말로 ‘하나님 들’이라는 뜻) 연수원의 규모가 커서 원래 골짜기의 주인인 중심이 마을은 곁방살이처럼 되어있다. 이 마을 위쪽 기도원 가까이에 군내버스 종점이 되기도 하는 널찍한 주차장이 있다. 이 주차장이 산행들머리다.


등성이에 서면 오른편 중심이 골짜기 뒤의 깎아지른 바위벼랑과 기암괴봉들이 잘 보인다. 길은 등성이를 따라가며 큰 소나무와 어우러진 우람한 바위를 밧줄을 타고 오르고, 벼랑 아래를 지나기도 한다.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면 양산팔경이 흩어져 있는 금강이 내려다보이고, 덕유산 황악산 민주지산 백화산 등이 조망된다.

길은 ‘마니산’ 표석이 있는 마리산 고스락으로 이어진다. 고스락은 나무 때문에 조망은 좋지 않다. 여기서 남쪽으로 뻗은 큰 등성이를 내내 타고가면 금강변에 이르고, 도중에 오른편(서쪽 천태산쪽)으로 갈라져 나간 등성이를 타면 천태산 영국사 들머리가 되는 누교리로 하산할 수 있다.

우리는 산성이 있는 주능선을 타기 위해 북쪽으로 내려박히는 길에 들어섰다. 가파른 길을 내려서면 천태산쪽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있고, 삐죽삐죽 날카로운 바위들이 솟아 있는 등성이가 나타난다. 이 바위등성이가 저절로 적을 막는 성이 되었었다. 바위 사이를 돌을 쌓아 막아 놓은 곳과 성문을 달은 돌쩌귀 구멍도 남아 있지만, 이 날은 눈이 쌓여있어 이런 것들을 볼 수 없었다.    

우리의 처음 산행계획은 향로봉을 거치는 것이었으나 눈 때문에 길이 보이지 않고, 시간도 어정쩡해서 그대로 등성이를 타고 가다 중심이재(평계리~중심이)쪽으로 나아갔다. 도중에 평계리에서 올라온 대전의 한성섭씨 일행 셋을 만나 널찍한 바위비탈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점심 뒤에 향로봉이 잘 건너다보이는 벼랑 위에서 향로봉의 위용을 감상하고 잘록이인 중심이재로 나아갔다.


중심이재는 평계리, 중심이골, 고스락, 그리고 사자머리봉으로 갈 수 있는 네거리다. 우리는 사자머리봉으로 올랐으나 흐리고 눈이 쌓여있어서 제대로 머물 수 없었다. 한성섭씨 일행과 헤어진 뒤 바로 하산을 시작했다. 잘록이까지 가파른 비탈이다. 이 잘록이도 중심이에서 마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다. 오른편 골짜기로 내려서면 산자락에서 임도가 시작되고, 바로 연수원에 이르게 된다. 연수원을 지나면 산행을 시작했던 주차장이다. 산행시간은 3시간30분이었다.


산행길잡이

○중심이마을길  중심이 마을주차장~마을 뒤 등성이(고스락에서 동쪽으로 뻗은 줄기)~고스락-주능선 바윗길(산성길)~(향로봉)~주능선~바위비탈~중심이재~사자머리봉~마곡리 고개~엘로힘연수원~주차장, 또는 그 역순 <약 3시간30분 소요>


○평계리길  평계리(옥천군 이원면)~중심이재~주능선(성터)~고스락 <약 2시간 소요>


○누교리길  누교리~서릉~고스락 <약 2시간 소요> *이 길은 산행을 위해 다니는 길이 아니어서 길이 분명하지 않다.
평계리 길을 이용하여 고스락에 오른 다음 누교리로 내려서거나 중심이로 내려갈 수 있다. 그러나 중심이길이 회귀코스이고 경관도 좋아서 이 길을 권하고 싶다.


중심이길로 산행하려면 양산(영동군 양산면)으로 찾아가야 한다. 양산에서 바로 앞 송호관광지로 가면 금강을 건너 봉곡리로 가는 봉곡교가 있다. 19번 군도로 봉곡리를 지나면 금강변이 되고, 여기서 10번 군도로 금강을 따라가면 중심이로 들어가는 13번 군도가 갈라져 들어간다.


거꾸로 4번 국도변에 있는 심천(영동군 고당리 심천유원지)에서 금강을 따라 10번 군도로 양산쪽으로 와도 된다. 양산은 영동에서 19번 국도, 금산에서는 68번 지방도, 옥천에서는 501번 지방도를 이용해 갈 수 있다.
월간산 461호 2005. 3 김홍주 소산산행문화연구소 소장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