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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사와 서암정사
한국선불교 최고의 종가를 자부하는 벽송사는 천혜의 자연환경 때문에 예로부터 수행처로 손꼽히던 사찰이다. 벽송사는 지리산 칠선계곡의 초입인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의 산 중턱에 있다.
추성리에서 표지판을 보고 왼쪽길로 들어선 후 다시 벽송산문 글자와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 표석에서 왼쪽의 산길 도로를 따라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 바로 위에서 왼쪽은 서암정사, 오른쪽은 벽송사로 가는 갈림길을 만난다. 벽송사나 서암정사나 이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이곳은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이 야전병원으로 이용했을 만큼 앞뒤가 지리산에 가로막힌 깊은 산속이다. 그래서 속세와 떨어진 사찰터로 제격이다.
안내판에 의하면 벽송사는 1520년에 벽송지엄선사가 창건한 후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수행하여 도를 깨달은 유서 깊은 사찰로 한때 큰 가람을 이루었으나 처참한 비극의 역사였던 6.25전쟁 때 모두 불탔다.
사찰에 들어서면 사천왕 대신 벽송사 목장승(경남민속자료 제2호)이 맞이한다. 잡귀의 출입을 금하고 불법을 지키던 2개의 목장승은 몸통의 절반이 땅 속에 묻혀 2m 정도만 드러나 있다. 그나마 금호장군(禁護將軍)이라는 글귀가 써있는 왼쪽의 장승은 윗부분이 불에 타 파손이 심하다. 오른쪽 장승의 몸통에는 불법을 지키는 신을 뜻하는 호법대신(護法大神)을 새겨 놓았다.
벽송사의 법당인 보광전 뒤편으로 두 그루의 소나무가 사이좋게 서있다. 수도자와 절세미인의 만남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도인송(왼쪽)과 미인송(오른쪽)인데 도인송에게 빌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미인송에게 빌면 미인이 된다고 전해진다.
도인송과 미인송의 진가를 알려면 뒤편의 삼층석탑에 들려야 한다. 두 그루의 소나무와 어우러지는 원통전과 산신각, 새로 지은 범종루를 지나 삼층석탑으로 간다. 꼿꼿하게 서있는 도인송과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구부러진 미인송은 벽송사 삼층석탑(보물 제474호)이 있는 이곳 옛 법당터에서 바라봐야 더 잘 어울린다.
벽송사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서암정사는 여러 종류의 돌조각상들로 볼거리를 만들어 놨다.
산 깊고 물 맑으니, 이곳에 드는 이의 마음이 절로 청정해진다. 서암정사는 지리산 산맥 위에 앉아 천왕봉을 멀리 바라보고, 한국의 3대계곡으로 유명한 칠선계곡을 마주하는 천혜의 절경에 자리하고 있다.
추성리 갈림길에서 널찍한 도로를 따라 400m 가량 표지판을 쫓아가 면 '백천강하만계류, 동귀대해일미수'(수많은 강물 만 갈래 시내 흘러, 바다에 돌아가니 한 물맛이로다)란 돌기둥이 참배객을 맞는다. 바로 서암정사의 입구다.
서암정사는 '지리산에 펼쳐진 화엄의 세계'란 별칭이 말해주듯, 온 도량이 불교의 화엄세계 를 상징하는 갖가지 장엄한 마애불로 채워져 있다. 서암정사의 중심은 불경속 극락세계의 장 엄함을 바윗굴 속에 재연해놓은 극락전 석굴법당이다. 이곳에는 아미타불을 위시해 8보살, 10대제자, 신장단 등이 장엄하면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조각돼 있다. 이와 더불어 천연거암 에 새겨진 사천왕상과 비로전, 독수성, 주산신, 배송대, 용왕단 등은 불경에 담긴 갖가지 형 상을 보여준다. 도량 곳곳의 석조 현판과 주련, 비석에 새겨진 글귀들은 광대한 부처님의 진리를 암시하고 있다.
서암정사는 원응(元應)스님이 1960년대 중반부터 터를 이루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원응 스님은 한국전쟁을 전후해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졌던 이곳에서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인 류평화를 기원하기 위한 발원으로 불사를 시작했다.
서암정사에는 또 원응스님이 15년간 서 사해 완성한 약 60만 자로 이뤄진 금니화염경(金泥華嚴經)을 비롯해 다수의 사경 작품이 소장돼 있다. 원응스님의 사경은 한국불교에서 단절됐던 사경수행(寫經修行) 전통을 회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수려한 자연경관 속에서 다양한 불교 석조각과 한 스님의 사경수행 과정을 잔잔히 음미할 수 있는 곳이 서암정사다.
추성리 광점동 광아리마을 016-9669-3427
추성교지나 왼편으로 벽송사가는 길이고 반대편 지리산 쪽에 위치. 맑고 깊은 심산유곡 속에 위치한 광아리 마을은 집채만한 바위들이 계곡마다 빼곡히 들어 차 있고 웅장한 지리산 산봉우리들이 마을을 병풍처럼 휘돌고 있어 마치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광아리 마을 팜스테이에는 총 9농가가 참여하고 있고 집들이 모두 계곡을 끼고 있어 집안에서도 시원한 계곡물 소리가 넘쳐난다.
오염되지 않은 오지의 산간 마을에서 오미자와 머루도 따보고 토종 벌꿀을 채취하며 마을 곳곳에 자라고 있는 산나물을 따보고 이름 모를 야생화를 접하다보면 그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의 자연생태 체험이 된다. 깊고 맑은 칠선 계곡 웅덩이에서 멱을 감고 피래미와 가재를 잡다보면 어른들도 어느새 동심의 세계로 되돌아 간 듯한 기분이 든다.
그밖에도 마을 인근 추성동부터 선녀탕까지 오르는 길은 지리산의 깊은 맛을 느끼게 해준다. 한시간 반이면 오를 수 있는 선녀탕은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며 폭포수 아래로 드리운 널찍한 웅덩이는 산행후의 더위를 싹 가시게 해줄만큼 시원함을 느끼게 해준다.
* 봄 - 고로쇠 수액 채취, 산나물, 등산
* 여름 - 계곡등반, 물놀이, 석이버섯 채취
* 가을 - 머루, 다래, 호도, 표고버섯 채취 및 도토리 줍기
* 겨울 - 겨울등반, 설경
* 연중 - 칠선계곡등반, 캠프파이어, 사랑방나누기, 사찰탐방(서암정사, 벽송사)
대한민국 3대계곡의 하나인 지리산 칠선계곡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지역 주민들이 ‘휴식년제’ 연장을 둘러싸고 심한 갈등을 빚었던 지리산 칠선계곡(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길이 9.7km)에 탐방예약제가 도입된다. 전국 국립공원에서 처음으로 시행하는 ‘탐방예약, 가이드제’는 보전과 이용을 동시에 충족시키면서 지역주민이 공원 관리에 직접 참여해 소득을 올리는 새로운 모델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국립공원 사무소는 27일 “5, 6월과 9, 10월 주 2회 이 제도를 운영한다”며 “매주 월, 목요일은 추성주차장에서 천왕봉으로 올라가고 화, 금요일은 천왕봉에서 주차장으로 내려간다”고 밝혔다.
출발은 올라가기와 내려가기 모두 오전 6시 40분. 내려가기에 참가하려면 하루 전날 반드시 장터목대피소나 로타리대피소에서 잠을 자야 한다.
1회 참여 인원은 40명, 참가 신청은 탐방 15일 전부터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www.knps.or.kr)에서 받는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과 지역주민 등으로 구성된 현지 가이드인 ‘지리산국립공원 안전지킴이’가 동행한다. 이들은 탐방객 안내와 불법행위 단속, 자원관리 등을 맡는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자연휴식년제를 시행한 칠선계곡 가운데 비선담∼천왕봉 구간(5.9km)을 2027년까지 출입이 통제되는 ‘특별보호구’로 1월 지정했으나 지역 주민들은 “등산객이 없어 생계에 어려움이 크다”며 반발해 마찰을 빚었다. 당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탐방예약제와 대체 탐방로 개설이었다.
지리산국립공원 신창호 탐방시설팀장은 “칠선계곡은 탐방 거리가 길고 급경사가 많아 안전관리가 중요하다”며 “가이드 비용은 없지만 참가자는 여행자보험에 가입하고 산행 준비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055-972-7771∼2
/ 자료-동아닷컴 2008.4 강정훈기자
7월의 칠선계곡은 더욱 깊었고 화려했다. 신비감과 은밀함이 공존했다. 7폭(瀑) 33소·담(沼潭)으로 일컬어지는 칠선골은 골 어디 하나 절경이 아닌 곳이 없었다. 장마철을 맞아 물줄기가 굵어지고 숲이 더욱 울창해지면서 선녀탕에서 마폭에 이르기는 골짜기는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하면서도 신비로울 만큼 은밀한 풍광을 뽐냈다.
칠선골 산행 안내에 나선 허승철(지리산 함양분소) 팀장은 설악산 천불동, 한라산 탐라계곡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꼽히는 칠선골의 아름다움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선녀탕으로 향하는 사이 산길에 비닐장판 조각이 보이자 허 팀장은 “두지동에 다섯 가구가 살고 있는데 예전에는 이 일대에도 민가가 있었다”며 “저기 바위에 움푹 파인 곳은 돌절구로 사용하던 것”이라 일러준다.
출렁다리를 건너선 다음 숲길을 따라 30분쯤 오르자 선녀탕이 나타난다. 숲그늘이 드리운 소 안의 물은 유난히 맑고 푸르다. 주변 바위에 푸른 이끼가 덮여 있어 옛날 고옥을 보는 기분이다. 선녀탕 위로 올라서자 이번에는 옥녀탕. 선녀들이 경쟁하듯 맵시를 자랑하는 듯하다. 소 바로 옆을 끼고 지나서인지 더욱 아름답다. 옥녀탕은 탕도 탕이지만 그 위로 이어지는 와폭이 더욱 근사하다. 위에서 흘러내린 물을 더욱 아름답고 곱게 꾸며 옥녀탕으로 흘리고 있었다.
고즈넉한 숲길을 따르는 사이 온몸이 땀에 젖어든다. 바람 한 점 없이 무더운 날이다. 그래도 맑은 물 흘러내리는 골짜기를 걷는다는 것은 너무도 즐거운 일이다. 옛길을 따라 지면에서 띄워 설치한 데크를 지나자 비선담(飛仙潭·해발 710m·추성동 3.9km)이다. 선녀탕에서 목욕한 선녀들이 하늘로 오르는 곳이다.
비선담 출렁다리를 지나 호젓한 숲길을 빠져나가자 비경이 계속 이어진다. 역시 와폭과 소의 연속이다. 어지간한 산이라면 그럴 듯한 이름을 얻었을 텐데 워낙 빼어난 풍광의 폭포와 소가 많다 보니 무명으로 남아 있는 것일 게다. 하기야 7폭에 33소·담 모두에게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옥석이 뒤섞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선담에서 500m쯤 올라갔을까, 관리소 직원 3명이 데크통제대에 모여 있고, 위쪽 산길과 이어진 출입문에는 열쇠가 채워져 있다. 비선담 통제소다. 허 팀장은 “여기서부터 천왕봉까지 5.4km 구간은 특별보호구역으로 올해부터 봄가을 두 달씩 예약 가이드제에 의해 개방한다”며, “7, 8월 여름철에는 통제했다가 9, 10월 두 달 동안 다시 예약 가이드제를 실시한다”고 알려준다.
통제소를 지나자 숲이 더욱 우거지고 산길은 한층 좁아진다. 산죽 군락은 얼굴을 툭툭 때려댈 만큼 우거져 있다. 모처럼 만난 징검다리가 반갑기도 하지만 미끄러져 계류에 빠져들까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럽다.
이영석씨는 미리 짐작했던지 말을 꺼내기 무섭게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돌마다 이끼가 자라고 있고, 이끼마다 물을 듬뿍 머금어 밟기 무섭게 미끄러진다. 청춘 남녀가 비를 피해 들어섰다가 깊은 사랑에 빠졌다는 풋풋한 얘기가 전하는 청춘홀 기암을 지나자 어둠침침해진다. 숲이 더욱 울창해진 것이다. 그런데도 나뭇잎 사이로 포말이 쏟아져내리는 골짜기를 바라보노라면 대자연에 동화되어 블랙홀로 빠져들어 가는 기분이다.
말없이 걷던 석상명씨가 물을 마시려고 지계곡에 들어섰다 풍덩 빠져들었는데도 김승완 기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을 계류에 담근 채 꿀꺽꿀꺽 마셔댄다. 지계곡을 가로질러 100m쯤 나아가던 허 팀장이 산길을 벗어나 물가로 내려선다. 칠선폭포를 보기 위해서였다. 높이는 5m 안팎에 불과하지만 제법 넓은 암반을 타고 물줄기가 거세게 쏟아져 웅장하기 그지없다. 허 팀장은 이틀 전 내린 비의 양이 많아 폭포가 더욱 힘차게 느껴진다고 한다. 마침 오전 내내 찌푸려 있던 하늘이 열리면서 햇살이 내리쬐자 포말이 옥구슬이 쏟아져 내리는 듯 반짝인다. 이 모습에 천상의 선녀가 지상으로 내려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계곡에 이어 주계곡을 가로지른 다음 허 팀장이 안내한 왼쪽 지계곡으로 들어서자 칠선골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륙폭포가 우뚝 솟구친다. 15m 높이의 대륙폭포는 물이 아닌 하늘의 빛을 쏟아붓고 있었다. 물줄기가 거센 덕분인지 골바람이 더욱 시원스레 불어대고, 물보라가 얼굴에 와닿으니 한여름 더위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대륙폭포를 지나면서 산길은 더욱 좁아지고 가팔라진다. 바위벼랑마다 이끼가 두텁게 덮여 있고, 이끼에 맺힌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게 태곳적 자연을 보는 듯 흥분되게 한다. 숲이 짙어지자 숲 사이로 바라보이는 물줄기는 더욱 신비롭다. 포말은 정지상태의 화면을 보는 듯하고 옥빛 소와 담에 담긴 물도 억겁 세월을 지나면서 굳어버린 보석처럼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시공이 멈춘 것이다.
두 개의 와폭과 수직폭이 한 줄기로 이어지는 삼단폭포 아래에서 빵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에 다시 천왕봉으로 향한다. 바윗덩이가 골을 메우고 물줄기도 급격히 약해지지만 숲은 오히려 더욱 울창해진다. 이끼 옷 입은 나무와 고사리류 식물 등이 눈에 자주 띄고 숲이 더욱 우거지는 게 원시림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다 골짜기가 한층 좁아지더니 협곡 속에 신비감 넘치는 소와 와폭이 나타나 마음을 더욱 들뜨게 한다.
“여기서부터 마폭 위쪽 일대가 예전에 사람들이 길을 잃곤 했던 구간입니다. 계곡에서 미끄러져 다치거나 길을 벗어나 숲속으로 들어섰다가 사고를 당한 사람도 있었고요. 특히 안개가 끼거나 비가 내리는 날에 사고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노시철씨(남원시지역자율방재단장)는 이 일대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하고 땅속에 묻혀 있다 겉모습을 드러낸 쓰레기는 예전에 장사하던 사람들이 버린 것이라고 알려준다.
잠시 후,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맨 뒤에서 좇아오던 황원선씨는 도중에 길을 잃고 헤매다 겨우 산길을 찾아 올라오고, 이영석씨는 이끼 덮인 바위를 밟는 순간 미끄러지면서 엉덩방아를 찧고 그 충격으로 한동안 꼼짝하지 못하다 한참 뒤에서야 모습을 나타낸 것. 그래도 더욱 큰 일을 당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마폭 앞에 다가서자 모니터링 중인 관리소 직원들과 학계 전문가, 지역주민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관리소는 전문가들과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조사단을 통해 1년에 네 차례씩 칠선골을 답사, 생태 변화를 파악하고 있다. 올해는 예약 가이드제 실시 이전에 한 차례, 그리고 실시 후인 지금 두 번째 모니터링 중인 것이다.
마폭을 지나자 산길에 박혀 있는 바위 크랙에서 자라는 구상나무 치수(稚樹·어린나무)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15년 전 찾았을 때에 비해 분명 자연이 많이 되살아난 모습이다. 낙엽과 토사층도 두터워져 있고, 사태로 엉망이 되었던 지역도 숲이 우거져 옛 상흔은 사라진 상태다.
노시철씨는 숲속에서 껑충 자란 꿩의다리를 바라보며 “예전에는 군락을 형성한 곳이 있었는데, 지금은 정말 귀한 식물”이라며 반가워한다. 고개를 드는 순간 머리가 핑 돈다. 고소증세인가. 해발 1,400m대 위에서 자생하는 구상나무가 눈에 들어오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부가 바라보인다. 구상나무는 마침 새잎이 자라나면서 한층 환한 모습이다.
마지막 철계단이 장딴지를 뻐근하게 해 입에서 아이구 아이구 소리가 나오는데도 쏟아지는 햇살이 반가워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칠선골 등로를 빠져나와 곧바로 올라선 천왕봉은 역시 해발 1,915m 높이의 남한 내륙 최고봉답게 무더위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올라서 있다. 계곡은 하루종일 우중충한 날씨였건만 산릉에 올라서자 파란 하늘 아래 뭉게구름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멋진 풍광을 펼쳐낸다. 하지만 풍광에 취해 마냥 정상에 머물 수 없다. 오늘 묵을 세석대피소까지는 아직 3시간 가까이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리산은 골짜기를 거슬러 오르는 즐거움도 좋지만 역시 주능선을 따르는 맛이 압권이다. 구름 안개 오락가락하며 선경을 연출하고 새소리와 함께 바람소리가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하지만 엉덩방아를 찧는 등 고난을 겪은 이영석씨는 “무슨 계곡이 이렇게 기냐?”, “벌써 8시간 넘게 걸었는데 또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느냐?”며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툴툴댄다.
통천문을 내려서고 제석봉(1,806m)을 넘어 장터목대피소로 내려서자 등산객들이 저녁식사를 하느라 어수선하다. 고기 굽는 냄새, 찌개 냄새에 잔뜩 허기진 일행에게 입맛을 다시게 하지만 얼마 쉬지도 못한 채 세석대피소로 향한다.
/ 월간산 466호 글 한필석 차장대우 | 사진 이경호 기자
○장터목대피소 이용 예정일 보름 전부터 인터넷으로만 예약을 받는다.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 http://www.knps.or.kr. 대피소 남쪽 50m 아래에 샘터가 있으며, 겨울 이외엔 수량이 넉넉한 편이다. 대개 새벽 4시경 일어나 일출을 보러 가므로 저녁 8시에 소등한다. 초코파이(500원), 복숭아캔(3,000원) 등을 시중보다 조금 더 받고 판매한다. 모포 대여료 장당 1,000원. 대피소 바깥에 흡연구역이 따로 마련돼 있다.
○백무동 종점 주차장 근처에 옛고을가든 963-4037, 느티나무집 962-5345, 반달곰펜션 962-5252 등 음식점을 겸한 펜션형 민박집들이 10여 개소 있다. 지리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백무동 탐방안내센터 055-962-5354.
○추성동 추성리에 민박집이 10여 호 있다. 그중 식당을 겸한 업소는 칠선휴게소(055-962-5494), 추성산장(962-2422), 칠선산장식당(962-5630), 동시봉씨집(963-8318), 그리고 황토를 쓴 말끔한 집인 초암황토방(964-2085) 등이 있다.
추성동에는 지리산 자연산 나물을 주로 쓰는 칠선산장(055-962-5630)의 나물정식이 인기가 높아 멀리 함양읍내에서도 찾아든다. 추성동 제일 윗집인 허상옥씨의 칠선휴게소(962-5494)의 산채정식도 지리산에서 직접 채취, 삶아서 말려 갈무리한 산나물만 푸짐하게 쓰는 별미로 인기가 높다. 취재 갔을 때인 4월6일 마침 허상옥씨네에선 함지박 가득 희귀한 석이버섯을 다듬고 있었다. 추성리 일대의 예전 전답들이 이젠 모두 자연산 나물밭으로 변해 나물이 매우 풍부하다고 한다. 허씨네는 설탕을 먹인다는 둥의 시비를 피하기 위해 12월 최종 채취량은 각자 운에 맡기는 방식인 계약식 토종꿀 주문도 받는다(3되 정도에 2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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