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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서울 한강

서울 시흥동 닭바베큐골목 호압사 목골산

by 구석구석 2008.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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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동 길목 바비큐 통닭
닭 숯불 바비큐가 10여 년 전 크게 유행하다 요즘은 거의 찾을 수가 없다. 조리하는데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닭을 숯불에 애벌구이한 후 이를 다시 잘라서 두 번씩 양념을 발라 구워야 한다. 이때 나오는 연기가 장난이 아니다. 양념이 숯불에 타면서 내는 냄새가 고소하지만 요리하는 입장에서는 고통이다.

금천구 시흥동 시흥사거리 파출소 골목에는 한때 닭 숯불 바비큐 집들이 열 곳 남짓 있었다. 80년대 중반 쯤부터 한두 집 생기기 시작해 90년대 초반 '닭 바비큐 골목'이라 불릴 만큼 유명했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두어 집 남았다. '길목 바비큐 통닭'이 30년 가까운 역사를 지녀 이 골목의 '법통'을 잇고 있다.

양념은 열다섯 가지의 재료를 넣어 만든다. 달지 않고 적당히 매운 맛이 입맛을 계속 당긴다. 뒤돌아서면 또 먹고 싶어지는, 중독성이 있다. 1인분(반 마리) 6000원, 1마리 1만2000원. (02)803-5833

 

서울 금천구 호암로 278  호압사 02-803-4773

산복터널 못미처 길가에 즐비하게 서 있는 5412번과 5529번 등의 시내버스가 눈에 들어온다. 호압사 입구는 이 버스들로 인해 잘 보이지 않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오른쪽으로 난 산길에 “호암산문”이라는 문이 있다. 이 문은 호압사의 일주문이다. 호암산문을 통과하여 300m 정도 오르면 호압사에 닿는다.

조선 개국과 더불어 한양에 궁궐이 건립될 때 풍수적으로 가장 위협이 된 것은 관악산의 불(火) 기운과 삼성산(호암산)의 호랑이 기운이었다. 그래서 왕조에서는 이를 제압하기 위해 숭례문(남대문)에는 편액의 숭(崇)자 위의 뫼산(山)자를 불꽃이 타오르는 불화(火)의 형상으로 표현을 했다.

또한 삼성산의 호랑이 기운을 누르기 위해 호랑이 꼬리부분에 해당하는 자리에 절을 창건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호압사이다. 이렇게 궁궐(경복궁)을 위협하는 호랑이 기운을 누르기 위해 창건되었다는 호압사는 18세기 전국 사찰의 소재와 현황, 유래 등을 기록한《가람고》나 《범우고》에도 호랑이의 기운을 누르기 위한 비보(裨補) 개념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서 호압사가 불교 수행의 도량(道場)이면서도 풍수적으로는 호랑이의 기운을 누르기 위한 상징성 또한 지니고 있는 것이다.

 호압사가 창건된 데에는 두 가지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먼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금천조에는 지금의 시흥군의 현감을 지냈다고 하는 윤자(尹滋)의 이야기가 전한다.

이 기록에 의하면 “금천의 동쪽에 있는 산의 우뚝한 형세가 범이 걸어가는 것과 같고, 그런 중에 험하고 위태한 바위가 있는 까닭에 범바위(虎巖)라 부른다. 술사가 이를 보고 바위 북쪽에다 절을 세워 호갑(虎岬)이라 하였다.....”라 하고 있다.

또 다른 전설로는 1394년(태조 3)을 전후해 조선의 도읍을 서울로 정하고 궁궐을 짓는 과정에서 일어난 이야기이다. 즉 태조가 서울에 궁궐을 세울 때 전국의 장인을 모아 진행했는데, 여러 차례에 걸쳐 밤만 되면 무너져버려 노심초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어둠 속에서 괴물이 나타났는데 반은 호랑이고, 반은 형체조차 알 수 없는 이상한 동물이었다. 이 괴물은 눈으로 불길을 내뿜으며 건물을 들이받으려고 하였다. 이때 태조가 괴물에게 화살을 쏘라고 하였고, 화살은 빗발처럼 쏟아졌으나 괴물은 아랑곳없이 궁궐을 무너뜨리고 사라졌다.

태조가 침통한 마음으로 침실에 들었을 때 한 노인이 나타나 "한양은 비할 데 없이 좋은 도읍지로다"라며 멀리 보이는 한강 남쪽의 한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태조는 노인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호랑이 머리를 한 산봉우리가 한양을 굽어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인에게 호랑이 모습을 한 산봉우리의 기운을 누를 방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노인은 "호랑이란 꼬리를 밟히면 꼼짝 못하는 짐승이니 저처럼 호랑이 형상을 한 산봉우리의 꼬리부분에 절을 지으면 만사가 순조로울 것입니다."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 다음날부터 이곳에 절을 짓고 호압사(虎壓寺)라고 명하였다고 한다.

위의 두 설화는 공통적으로 풍수지리설과 비보사찰설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산의 모양을 호랑이로 본 것이며, 이를 누르기 위해 절을 창건했다는 이야기이다. 위의 두 전설에서 호압사의 창건 시기는 태조 때로 나타나지만 『봉은본말지(奉恩本末誌)』에는 1407년(태종 7) 왕명으로 절을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1394년(태조 3)에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이라는 관청을 두고 궁궐을 짓는 공사를 시작했고, 이듬해에 궁궐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호압사는『봉은본말지(奉恩本末誌)』의 기록보다는 태조 2년이나 3년 무렵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호압사의 역사는 이후 알려지지 않고 있다. 18세기에 전국 사찰의 위치와 연혁 등을 기록한 범우고(梵宇攷)나 가람고(伽藍攷)에도 호암사(虎巖寺) 또는 호갑사(虎岬寺)라 하여 간략하게 나올 뿐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그러다가 호압사는 1841년(헌종 7)에 이르러 중창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해 의민(義旻) 스님 쓴 「경기좌도시흥삼성산호압사법당현판문(京畿左道始興三聖山虎壓寺法堂懸板文)」에 의하면 이 해에 당우가 퇴락한 것을 당시 상궁 남씨(南氏)와 유씨(兪氏)의 도움을 받아 법당을 고쳐지었다는 것이다. 1921년에는 당시 주지였던 안만월(安滿月) 스님이 약사전 6칸을 다시 지었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러 퇴락한 사찰은 1994년 7월 주지로 부임한 원욱(元旭) 스님에 의해 중창되기에 이르렀다. 스님은 그간 망실되었던 사찰 소유의 토지를 되찾고, 1995년 약사전을 증축하고, 삼성각을 신축하였다.

또한 1996년에는 전기가 들어오게 하였으며, 2000년에는 일주문을 건립하였다. 이렇듯 1994년 이후 10여년에 걸친 원욱 스님의 중창불사로 인해 호압사는 면모를 일신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관람포인트
1.약사전에는 서울시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어 있는 석조약사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2. 호압사 뜰에는 사찰의 역사와 함께 한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서 있습니다. 3. 호압사 주변은 가볍게 산행하기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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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금천구 시흥동 산 93-2  위치한 호암산은 호암산성과 한우물, 석구상, 호압사, 불영사등 많은 사적과 유서깊은 전통사찰이 위치하고 있으며 가파르지 않은 등산로와 도심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어 금천구민들뿐만아니라 광명시, 안양시민들의 산행으로 많이 찾는 곳이다. 

시흥동 산73번지 호암산 기슭에 위치한 3만여평의 지역을 시흥계곡이라고 한다. 이곳은 현지 주민 외에도 타 지역의 주민들도 많이 이용하는 곳으로, 공기가 맑고 숲이 어우러져 있으며, 인근에 사적으로 지정된 한우물 및 주변산성지 등을 비롯,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이다. 

주변에는 약수터 20여 곳과 각종 체육시설 및 휴게시설 등이 설치되어 주민의 건강 증진과 휴식처로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또, 등산로가 삼성산, 관악산으로 이어지며 호암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서울시내 풍광과 서울의 서남쪽의 전경은 그지없이 아름다워 가는 발길을 멈추게 한다. 서울 내·외곽에서는 방어용으로 쌓은 많은 산성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 북한산성, 아차산성, 남한산성 등은 제대로 정비되어 많이 알려진 편이지만 이곳 호암산성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대부분이 허물어졌으며 그로 인해 아직 발굴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호랑이를 닮은 산세 때문에 호암산이라 불리는 산기슭에 위치한 호암산성의 산성터 형태는 북동-남서 방향으로 길쭉한 마름모꼴인데 표고 325m능선을 따라 축조한 전형적인 퇴뫼식 산성이다.

높이 390m인 금주산은 관악산 전체의 서쪽에 위치하며 산세가 호랑이 형상을 닮았다 하여 일명 호암산(虎巖山)이라고도 한다. 성벽의 총 길이는 1,250m 가량 자연지형을 잘 이용하여 축성하였다. 하지만 오래 방치된 탓에 지금은 약 300m 가량의 석성만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을 뿐이다.

호암산성의 축성 목적과 시기를 알려주는 직접적인 문헌자료는 현재 없지만 산성발굴 조사과정에서 출토된 유물, 유적과 산성이 위치한 입지조건, 지형을 근거로 하여 관련문헌 자료와 비교한 결과 축성시기는 통일신라시대 문무왕 12년경으로 추측되며, 신라가 나당전쟁 시 한강을 넘어 수원으로 넘어가는 육로와 남양만으로 침입하는 해로를 효과적으로 방어, 공격하기 위하여 세웠던 요새로 추정하고 있다. 

석구상

관악산 생태공원과 금천체육공원을 끼고 있는 목골산은 163.4m로 능선과 산책로 같은 등산로가 있어 지역주민들에게 사랑받고있는 동네 뒷산입니다

곳곳에 우수한 조망을 자랑하고 있으며 금천구 독산동과 관악구 난곡길 가운데 호압사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라운드로 이어져있어 간단한 산행을 위한 반나절 코스입니다

▲ 1코스 호압사⇒삼성동갈림길⇒시흥4동갈림길⇒삼익아파트갈림길⇒독산고교갈림길⇒목골산⇒관악산생태공원⇒건영아파트갈림길⇒난곡동 주민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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