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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도

의정부 3번국도-서계박세당 원도봉유원지 원효사

by 구석구석 2008.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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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계 박세당 사랑채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1629∼1703)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기거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집필을 하였던 곳이다.


서계(西溪)선생은 1629년(인조 7년)에 이조참판을 역임한 박정(朴炡)과 양주 윤씨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31세인 1660년(현종 1)에 증광문과에 장원을 시작으로 예조좌랑, 정언, 병조정랑, 지평, 홍문관교리겸 경연시독관, 함경북도병마평사 등 내외 관직을 두루 거치게 된다.

 

1668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를 다녀온 후 당쟁에 혐오를 느껴 40세에 관료생활을 포기하고 지금의 의정부시 장암동(당시는 양주 석천동)에 칩거하면서 본인이 직접 농사를 지으며 학문연구와 저술, 그리고 제자 양성에 매진하게 된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농사에 관하여 쓴 「색경(穡經)」이 있는데 이 책은 선생 본인이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체험한 것을 글로서 남긴 책으로서 귀중한 사료로 인정된다. 또한 고전연구에 관한 저술로서 「사변록(思辯錄)」등이 있다.

 
현재의 서계선생 사랑채는 당시 선생이 기거하며 저술활동을 하였던 곳으로 원래는 안채와 안사랑, 바깥사랑, 그리고 행랑채로 이루어진 조선후기 사대부가의 배치로서 집 앞 어귀에 있는 고목인 은행나무와 그 옆의 계류를 따라 세워진 정자, 학당터 및 그 뒤의 영당과 묘택 등의 일곽이 조선후기 사대부 건축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어 학술적 가치뿐 아니라 교육적, 문화적 가치 또한 매우 높다.


아쉽게도 6.25전란 당시 대부분 소실되고 지금은 바깥 사랑채만이원형을 유지하여 남아 있고 나머지 건물은 부분적으로 현대식의 건물이 세워져 후손들이 살림을 하고 있어 전체적인 가옥의 구조를 파악할 수 없다. 한편, 99년 8월에 경기도 전통종가로 지정됐고, 2000. 4.17일에 사랑채가 도문화재자료 제93호로 지정됐다.

 

원도봉유원지 북한산국립공원 031-873-2791

 

 의정부라는 지명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에서 유래한다. 방원이 왕자의 난을 거쳐 태종에 즉위하자 이에 상심한 이성계는 한양을 등지고 고향 함흥으로 돌아가버린다. 결국 이성계는 돌아오지만 한양이 아닌 양주 땅에 머문다. 이에 방원이 궁중법도에 따라 이곳까지 와서 아침 문안을 올리고 의정부관리들도 이곳으로 보내 정무를 보게 했다. 이때부터 의정부란 지명이 생겨났다.

 

의정부시 동쪽에 수락산유원지가 있다면 서쪽에는 원도봉유원지가 있다. 원도봉 유원지는 도봉산 기슭의 장수원 일대 계곡을 말한다. 유원지 내 시설로는 풀장, 어린이 놀이터, 산장, 야영장, 식당, 매점 등이 있어 이용객의 편의를 돌보고 있으며, 계곡에는 대원사, 쌍룡사, 망월사 등의 이름난 절이 있다. 주변에 기암이 많고 특히 망월사를 병풍처럼 둘러싼 바위들이 절경을 이룬다.

 

 

 

 

호원동 119번지  경기도 전통사찰 제77호 원효사 031-873-6083

망월사역에서 신흥대학 쪽으로 들어서면 음식점들이 즐비해 있는데, 이곳에서 도봉산으로 오르는 진입로가 있다. 이 진입로를 따라 올라가면 원도봉매표소가 있고, 매표소를 지면 주차장이 나온다. 원효사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여기에서 차를 세우고 걸어서 올라가야 하며, 시간은 약 30정도가 소요된다.

 

도봉산 기슭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뛰어나 자연환경으로 말미암아 도봉산 기슭에는 무수히 많은 사찰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중에서 망월사, 회룡사 등과 함께 원효사는 도봉산의 대표적인 사찰로 손꼽히고 있다.
 
원효사가 위치한 곳은 맑은 계곡과 함께 도봉산의 여러 암봉들이 마치 병풍처럼 감싸 안고 있는 그야말로 명당 중의 명당이다. 구전에 의하면 이곳은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스님이 수도한 곳으로, 지금의 나한전이 바로 스님이 기도했던 토굴이라 전한다. 또한 이곳은 원효스님 이후에도 많은 선승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진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이를 증명하듯 불기를 비롯해 깨진 그릇, 수저, 기왓장 등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물들이 다수 출토된 바 있다. 
 
이중 주목되는 유물은 ‘숭령보중’이라 새겨진 동전으로 ‘숭령’이라는 연호는 송나라 휘종 때인 1102년에서 1106년 사이의 5년간 사용된 것으로 이 때 만들어진 화폐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현재 남아 있는 문헌자료에서는 이곳에 절이 있었다는 기록은 찾아지지 않는다. 현재의 원효사가 재창된 것은 1954년의 일이다. 비구니 우일스님이 이곳의 석굴을 발견하고 수도하면서 절을 세우게 되는데, 원효스님이 안거하며 기도하던 곳이라 하여 절 이름을 원효사라 하고, 이를 기리기 위해 경내에는 원효스님의 동상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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