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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도

안성 일죽면-죽림리 죽산성지 팔봉산

by 구석구석 2010.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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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성지(이진터성지)  031-676-6701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서울에서 중부 고속 국도 남쪽을 향해 달리다가 일죽 인터체인지에서 돌아 들어가면 죽산성당이 나온다. 성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교우들이 살육됐던 처형지와 교우들을 끌어다 심문과 고문을 하던 관아 터가 자리하고 있다.

 

충청·전라·경상도로 갈라지는 주요 길목인 죽산에는 그러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조선 시대부터 일찍이 도호부가 설치되어 있었고 인근의 교우들이 붙잡혀 오면 지금은 죽산면사무소가 되어 버린 이곳에서 참담한 고문 끝에 처형 되곤 했다.

 

여기에서 치명한 순교자들은 「치명 일기」와 「증언록」에 그 이름이 밝혀진 이만해도 25명에 이른다. 하지만 척화비를 세우고 오가 작통(五家作統)으로 사학 죄인을 색출, 무차별적으로 교우들을 끌어다가 처형하던 당시의 몸서리쳐지는 박해의 서슬을 생각해 볼 때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무명의 순교자들이 목숨을 잃었는지는 셀 수조차 없다.

 

죽산 관아에서 심문을 받고 끌려가 순교한 처형 장소가 잊은 터이다. 지금은 굴착기로 깎아 냈고 목장의 한 귀퉁이로 변해 버렸지만 목장이 되기 전에는 노송이 우거지고 길에서 사람이 보이지 않는 후미진 골짜기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이진(夷陳) 터이다. 고려 때 몽고군이 쳐들어와 죽주산성(竹州山城)을 공략하기 위해 진을 쳤던 자리이다. 그래서 오랑캐가 진을 친 곳이라 하여 이런 이름으로 불려 왔던 것이다.
하지만 병인박해를 지나면서 이진 터는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하여 잊은 터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도 친지도 한번 끌려가면 영영 볼 수 없는 곳, 그 참담한 비극이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이다. 

 

 

 죽산성지(이진터성지) 뒷산인 팔봉산에 엄지 손가락으로도 흔들리는 흔들바위가 있다.
하단부 높이가 2.1m,둘레가 10.4m나 되는 거대한 흔들바위는 웅장한 생김새며 바위 위에 들어 앉은 모습이 설악산 계조암에 있는 것보다 낫다는게 주민의 자랑이다. 일제의 강점시 일본 사람들이 이 바위를 떼어 내려고 반정도 뒤집었으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으며, 팀스프리트 훈련시 미군 9명이 이 바위를 넘기려고 시도 하였으나 실패 하였다고한다. 또한 바위가 살짝 얹혀 있어 바위 밑으로 양쪽에서 두사람이 실을 통과 시킬수도 있다고 한다.

 
들바위가 있는 팔봉산은 옛부터 8개소의 명당이 있는데 사냥꾼에게 쫓기던 노루를 살려 주었더니 노루가 고맙다면서 두바위 사이의 땅을 파고 떠나지 않아 그 곳에 묘를 썼더니 후손이 번성 하였다고 전하며 이곳이 노루가 잡아준 명당이라고 전한다.

흔들바위로 넘어 바위 앞에 무덤이 있는데,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이 바위에 아기를 낳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성을 들이면 아기를 가질 수 있다고 전해지며 수십년 전만 해도 8월 한가위 날 많은 사람들이 놀러 오는 명소였으나 현재는 찾는 이가 줄고, 여러 사람의 기억에서 점차 잊혀져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팔봉산 뒤로 삽태기형의 종배(종비) 마을이 있는데 사십여 가구에 백여명이 살고 있으며 그 반이 전의 이씨이다. 노인들이 많지만 조용하고 깨끗한 곳라 그런지 70이 넘은 어른도 10년은 젊어 보인다. 마을에는 포도, 고추, 쌀 등 특산물이 많이 생산되고 있어 리장에게 문의하면 구입 할 수 있다.

- 중부고속도로 일죽 인터체인지 → 안성쪽으로 (1㎞) → 광장휴게소 바로 옆에 죽산 성지 → 성원 목장이 끝나는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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