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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제주시

서귀포 동광리 해피타운 원물오름 당오름

by 구석구석 2008.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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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에서 서부산업도로를 타고 모슬포 방면으로 가다보면 안덕면 동광마을로 빠지는 도로가 나온다. 이곳을 통해 동광검문소쪽으로 가다보면 길 왼쪽에 해피타운공연장이 보인다. 서귀포나 그 이외의 지역에서는 서부산업도로를 타고 동광검문소를 찾은 후 북쪽으로 5백m 정도 올라가면 도로 오른쪽에 공연장이 있다.

 

서부관광도로(95번 도로)변 안덕면 동광리 동광검문소 인근에 정통중국기예 공연장, ‘해피타운’
해피타운(www.jejuhappytown.co.kr)은 중국에서도 인정받는 최고의 기예단원들이 펼치는 숨막히는 쇼가 최대의 볼거리이자 자랑이다.

 

중국에서의 서커스는 ‘잡기(雜技)’라 불리는 곡예이다. 잡기는 중국을 대표하는 오락 중의 하나로 여러가지 다양한 기예들을 집대성한 중국을 대표하는 전통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 최정상을 자랑하는 중국의 잡기, 즉 서커스는 2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해피타운에서 공연하는 서커스단원은 2개팀에 26명. 중국 최대·최고의 서커스마을로 알려진 허베이(河北)성 오교(吳橋)현에서 초빙해 서커스의 수준은 중국에서도 정상급임을 알 수 있다.

 

10-29살까지의 중국 최고 기예단 22명이 펼치는 정통중국기예공연장으로서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다양한 볼거리가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다.
숨막히는 묘기는 두명의 여성 서커스 단원이 펼치는 공중곡예부터 시작된다. 지상 7m의 공중에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고난도 묘기, 관객들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거나 격려의 박수을 보낸다. 천상 하늘을 날고 있는 천사의 모습이다. 
 

 

기예단 막내들이 선보이는 깜찍한 묘기 ‘사람돌리기’도 볼만하다. 한 치의 실수도 인정되지 않는 정확한 손놀림과 360도 회전이 스피디하게 진행돼 관객들은 손에 땀이 날 정도다.
외발자전거와 대나무쇼, 요가공연 역시 중국 정통기예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준다. 일말의 흔들림없이 유연한 동작, 무한한 표현이 가능한 인체를 통해 사람이 몸이 얼마나 신비로운가를 깨닫게 된다.   

 

공연의 대미는 박진감 넘치는 모터사이클이 장식한다. 가로·세로 6m, 높이 6m로 만들어진 지구본 안에 차례차례 들어간 네 대의 모터사이클.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오토바이가 서로 부딪힐 것 같아 관객들은 긴장감을 넘어 엄청난 흥분에 휩싸인다.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스텝과 전사들의 기량에 의해 절대 부딪히는 경우는 없으니 일단 안심하시라.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묘기 대행진은 1시간 가량 이어진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여기저기서 ‘벌써 1시간이 지났어?’ 라고 되묻는 수군거림이 들려온다. 그 정도로 공연에 흠뻑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 해피타운 공연이다. 모든 공연이 끝나면 출연진이 다함께 나와 관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데 이때 기념촬영이나 악수도 가능하다.

순수한 도민자본에 의해 설립, 운영되고 있는 해피타운은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 4시, 6시 등 4차례 공연하고 있다. 입장요금은 성인 1만5천원, 소인 8천원이고 도민은 50% 할인혜택을 주고 있다.
 

충혼의 넋을 기리며 - 원물오름

제주에는 시, 읍, 면별로 조성한 14곳의 충혼묘지가 있는데 그 중 애월읍(물메/수산봉)과 안덕면(원물오름)은 오름 등성이에 마련해 놓았다. 현충일 연휴에는 관광도 좋고 오름 산행도 좋지만 오가는 발걸음을 잠깐 멈추고 맑은 술 한잔, 한 송이의 꽃을 준비하지 못해도 충혼묘지를 찾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넋을 기리면서 대한민국의 과거 - 현재 - 미래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안덕면 충혼묘지는 1953년 화순리 <살래동산>에 설치했다가 1999년 3월에 원물오름으로 옮겨 묘역(7,875㎡)을 단장하고 충혼탑도 세웠다. 강방영 시인은 헌시에서, “… 전장의 소용돌이치는 시간과 / 숨 가쁜 적막 속에서 / 찰나를 밟아 / 영원으로 건너간 임들이기에 / 이제는 삶에서 싸움으로 / 멀찍이 떨어져 / 이 곳 원수악 기슭에 / 임들은 누워 …”라고 충혼을 위무(慰撫)하고 있다.

 

원물오름(안덕면 동광리 산 41, 표고 458.5m, 비고 98m)은 평화로(1135번)와 산록도로(1115번)가 만나는 광평교차로에서 동광초소 쪽 1.7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이 오름에서 조금 내려간 동광리 입구에 원(院 : 출장하는 관원들을 위해 각 要路나 인가가 드문 곳에 두었던 國營의 숙식 시설)이 있었음에 연유하여 이 곳의 샘물을 원물이라 했고 그 이름이 오름에까지 확대되었다고 한다. 또한, 대정원님이 제주목을 다녀오다 이 오름 입구에 있는 물을 마셔 갈증을 해소했다고 하여 원물, 원나라가 목장을 설치하여 그 물을 이용했다고 하여 원수(元水)라고도 명명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자그마한 언덕들이 정상을 향해 뻗어 올라 남, 북의 두 등성이를 이루고 이는 서쪽으로 말굽형(서쪽)의 펑퍼짐한 굼부리를 형성하고 있다. 등성이는 민틋하고 남, 북의 두 봉우리 사이에는 곱디고운 잔디가 자라나고 있다. 남서쪽의 봉우리 부근에는 큰 바위가 있는데 이를 <고고리암>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그 모양새가 고고리(꼭지의 고어)와 닮은 데 기인한 것으로 보아진다. 그리고 북쪽 봉우리에는 넓은 바위들이 연이어 박혀 있고 그 밑에는 꽤 넓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오름의 남~서 비탈에는 삼나무와 소나무가 일부 조림되어 있고 자연림도 자라나고 있다.

 

정상에서는 동광초소를 중심으로 한 사통팔달(四通八達)의 모습도 확연히 확인할 수 있다. 산방산 너머의 가파-마라도의 모습은 반공(半空)에 솟아 뜬 것처럼 보이고 북쪽으로는 당오름-정물오름-금오름이 연출하는 삼중주는 백미를 이룬다. 제주일보 2008.6 김승태

 

일본군 최정예부대 사령부 주둔지 '원물오름'

원물오름(院水岳) 정상부에 올라보라. 멀리 해안쪽으로 산방산이 우뚝 서 있고 월라봉·군산·단산·송악산·모슬봉 등 제주 서남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야를 한라산으로 옮기면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이 복곽진지를 구축했다는 돌오름을 비롯한 오름군이 파노라마처럼 다가선다. 원물오름 이웃에는 당오름·도너리오름이 반갑게 솟아 있다.

 

 

 ▲오름사면이 함몰되면서 꺼진 구덩이 내부의 지하갱도 입구로 탐사팀이 진입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갱도입구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지하갱도의 내부 모습. /사진=이승철기자

 

원물오름·당오름 일대는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 제111사단 사령부가 주둔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물오름에 올라보면 왜 일본군이 이 곳 일대를 제111사단 사령부 주둔지로 점을 찍고 요새화 했는지 짐작이 간다. 바로 제111사단 전체구역을 관측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것이다.

원물오름은 안덕면 동광검문소 북쪽 약 1km 지점의 서부관광도로변에 위치한다. 표고 459m의 오름으로 정상부는 서쪽으로 말굽형화구를 이룬다. 동광일대는 제주∼대정, 제주∼서귀포, 한림을 연결하는 교통요지다. 도로가 사통팔달로 뚫려 있다. 역사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원스레 뚫린 도로 위로 차량들이 쉴새없이 질주한다.

 

‘제58군배비개견도’ 등에 따르면 원물오름과 이웃한 당오름 일대는 일본군 제111사단 사령부 주둔지로 나타난다. 원물오름·당오름·도너리오름이 서로 원을 그리는 형태로 ‘주저항진지’로 표시돼 있다. 이 곳을 거점으로 일본군 최정예부대인 제111사단(사단장:이와사키 도미오 중장·市부대라 불림)은 제주에서의 일(日)본토결전을 준비했다.

 

 

 

▲갱도 내부벽에 조명기구를 놓기 위한 홈.

오름 서사면 3부능선에 있는 이 지하갱도는 중간부분이 내려 앉으면서 자연스레 입구가 됐다. 함몰부분은 폭이 2m40cm×2m30cm 크기에다 깊이가 2m60cm 내외로 구덩이가 형성됐다. 탐사팀은 이 함몰부분으로 줄사다리를 설치해서 조심스레 갱도 안쪽으로 진입했다. 갱도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열로 시야가 어두운데다 입구바닥은 송이층이 쌓여 좁고, 또 질퍽질퍽해서 진입하는데 애를 먹었다.

 이 지하갱도는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왼쪽으로 각도가 약한 나선형으로 통로가 이어져 있다. 실측결과 총 길이는 30m 규모로 파악됐다. 폭은 90cm∼1m 내외, 높이는 1m70cm∼2m 규모다. 이처럼 원물오름 일대는 일제강점기 뿐 아니라 19세기 말에는 방성칠 난의 무대로, 4·3때는 ‘무등이왓’ 등 잃어버린 마을과 큰넓궤·삼밭구석·조수궤 등에서 집단학살이 자행된 항쟁과 비극적 역사의 무대이기도 하다.

한라일보 특별취재팀=윤보석·이윤형·표성준·이승철 기자



제주의 오름 이야기- 당오름 표고 373m, 비고 118m

예부터 이 오름에는 당이 있어 지역주민들이 찾아와 축원을 드리던 곳이라 한다.
해서 이름도 당오름이라고 불린다. 당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지금까지도...

 도내 오름 중 지역만 달리할뿐 당오름이란 명칭으로 불리는 오름이 몇 개 있다.
구좌읍 송당리, 조천읍 와산리, 한경면 고산리 등 제주도 전지역을 빙 돌아 존재하기 때문에 찾아가고자 하는 오름이 어느 지역 오름인지 사전에 기본정보를 파악하지 않는다면 원하지 않는 영판 다른 오름을 오르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오를 오름은 남제주군 안덕면 동광리 오거리에서 북쪽으로 3.5km에 위치하고 있다. 좀더 쉽게 설명하자면 이 오름은 동광-금악간 중산간도로 원수악에서 북쪽에 1.5km에 위치한다. 동광검문소를 조금 지나면 오름 꼭대기에 철탑이 세워져 있는 금오름(입구팻말은 ‘검은오름’)이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오는데, 이 금오름을 지나치기 전 목장지대 안에 자리잡고 있다.
서두에 간략히 소개했듯 오름은 제주사람들이 예부터 성소시하고 축원을 드리는 민속신앙의 터로서 섬사람들의 마음 속 깊이 자리잡아 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곳 동광리의 당오름에는 당집이 존재하지 않고 이름만 남아 있을 뿐이다. 때문에 당오름이란 이름만 믿고 ‘당’을 찾아볼 생각을 먹었다면 참으로 미안하지만 미리 포기하시길...

 

마음을 비우면 뜻하지 않은 새로운 것으로 마음이 채워질 수 있다. 동력의 힘을 빌지 않고 하늘을 자유자재로 비행하는 패러글라더들의 자유비행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내 오름은 패러글라이더들의 천국으로 불리는데 이곳 당오름 역시 그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오름 주변 상공에 떠있는 원색의 패러글라이딩 기체들을 상상해 보라. 그 얼마나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인가.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기에 이 오름은 그만큼 가치가 있다.


이 오름 바로 옆으로 이어진 오름은 정물오름이다. 이 두 오름은 마치 서로 등을 맞댄 형상인데 정물오름은 북쪽마을인 금악리, 당오름은 남쪽마을과 동광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 두 오름 사이에 줄을 긋는 조림된 삼나무를 경계로 남군과 북군의 경계도 나뉜다.

 

돌오름/김강임


목장지대에 자리잡은 당오름엔 나무는 드문 대신 묘가 많다. 묘는 우마의 피해를 덜기 위해 하나같이 높은 돌담으로 둘러쌓여 있으며 아담한 분화구내에는 일제시대 진지동굴이 남아있다. 역시 우마가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철조망으로 둘레를 막아놓았다.


온 산이 풀밭이고 산행시간도 10여분 남짓이면 마칠 수 있어 아이들 역시 편하게 오르내릴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도로 건너에 자리한 골체오름(일명 돌오름)의 형상을 자세히 조망할수 있다. 그 자리에서 약간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웅장한 위엄을 자랑하는 산방산과 박쥐형태의 단산, 형제섬, 송악산 등 다양한 오름군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둘레가 800m인 말굽형 굼부리는 아이들과 손잡고 천천히 빙 둘러보아도 좋을 것 같다. 사방에서 바라본 제주 중산간의 모습이 무척 이국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멀리 당오름을 굽어보는 한라산의 모습에선 포근한 어머니품이 연상된다.

보보스제주 /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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