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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남도

예산 시량리 예덕상무사 윤봉길생가

by 구석구석 2024.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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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군 덕산면 덕산온천로 183-5  충의사 예덕상무사 중요민속자료 제30호(1976.05.21 지정)

'예덕상무사'라는 것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조직돼 전해 내려온 예산, 덕산 지방의 보부상을 관리하던 정부관서이다. 보부상은 보상과 부상을 총칭하는 명칭으로 보상은 비교적 값이 나가는 상품들을 보따리에 싸서 이거나 들고 다녔기 때문에 '봇짐장수'라 불렸으며 부상은 가내에서 수공된 값싼 일상용품을 지게에 짊어지고 다녀 '등짐장수'라고 하였는데 이 보상과 부상을 통칭하여 보부상이라고 한다.

173주년 공문제. 공문제는 보부상들이 올리던 제사 / 예산군청

보부상은 시장을 중심으로 행상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교환경제를 매개하던 전문적인 시장 상인이었다. 한일합방으로 일본관헌에 의하여 보부상은 축출되었으나 예산.덕산 지방에서는 '예덕상무사' 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보부상이 우리사회에 끼친 역할은 컸으나 이에 대한 평가와 학문적 연구는 미미한 편이었다.

내포 보부상촌에서 열리는 공문제

'예덕상무사'는 이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우리 역사, 사회, 민속, 상업 경제사 등에 연구 자료가 될만한 것을 보부상 유품 전시관에 보관하고 있다. 위치는 덕산 면사무소 내에 자리하고 있고 소장된 유품은 도장 7개, 청사초롱 철구 1쌍, 공문 16권 등이다.

 

ㅁ 윤봉길의사 생가와 기념관

동으로는 차령산맥, 서로는 가야산맥이 둘러싸고 있는 예산은 삽교천과 무한천이 만들어낸 예당평야를 중심으로 한 기름진 땅이자 충절의 고장이기도 하다. 특히 이곳 내포 땅에는 나고 묻힌 걸출한 사람들의 삶이 있다. 추사 김정희를 비롯하여 한말 주체성을 앞세워 쇄국의 보수성을 밀고 나갔던 흥선대원군이 이곳 가야산에서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씀으로써 아들과 손자를 왕위에 오르게 했다.

충의사

일제 강점기에 조선민중의 건재함을 과시했던 윤봉길도 빼놓을 수 없는 예산사람이다. 예로부터 큰일을 한 사람이 나면 가까운 산이나 땅의 정기를 받아서 그런 인물이 태어났다는 얘기들이 많고 우리의 오랜 풍속은 흔히들 집터를 풍수지리와 연결하여 생각하는 일이 많다.

윤봉길의사 기념관

용맹스런 기지가 엿보이는 윤의사의 영정

윤봉길은 1908년 6월 21,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농가에서 파평 윤 황 공(公)과 경주 김원상 여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봉길이라는 이름은 별명이었고 본래의 본명은 우의(禹儀)였으며, 뒤에 아호는 매헌(梅軒)이라 지었다. 그가 지은 자서약력에 따르면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품으로 싸워서 진 적이 없었다. 씨름에서 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하루종일 맞붙어서 이길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습성이 있어 살가지(삵쾡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열아홉 살에 야학을 설치, 스무살에 월진회를 조직하여 청소년들에게 애국심을 기르게 하고, 근면과 협동을 강조하던 중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이 어려워지자 23세 때인 1930년 3월 6일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 生不還) 이라는 글을 써놓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청도를 거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에 도착하였다.

한국을 건져내는 집이라는 뜻이 담긴 현판 '저한당'

다음 해 한인애국단에 가입한 윤봉길은 1932년 4월 29일 김구 선생으로부터 폭탄을 받아 중국 상하이 홍구 공원에서 열린 일본 천황의 생일인 천장절 기념식장에 야채상으로 가장 단상에 도시락으로 위장한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상해파견군사령관을 비롯한 일본 요인들을 폭사시키고 축제장을 쑥밭으로 만들었다.

당시 중국의 총통이었던 장개석은 "중국군 백만대군이 못 다한 일을 해냈다"며 용감한 젊은 청년을 칭송했다 한다. 폭탄을 던져 일본 침략자들을 죽인 윤의사는 현장에서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5월 25일 현지의 군법재판 단심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11월에 일본으로 이송되어 그해 12월 19일 25세를 일기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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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안의 윤의사 관련 문헌자료들

윤 의사의 고향인 시량리 사적지에는 생가와 네 살 때부터 중국 망명 전까지 살았던 한국을 건져내는 집이라는 저한당(狙韓堂)이 함께 있다. 생가는 두 물길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배 모양의 도중도에 있는데, 광현당(光顯堂)이라는 당호가 붙어있는 생가는 윤 의사가 태어나 4살 때까지 살던 집으로, 사방으로 냇물이 흐르고 있으므로 한가운데 섬이라는 뜻으로 집터는 도중도(島中島)라 이름 불려진다. 서로 지척에 있는 두 채가 모두 양지바르고 규모가 크기 않은 전형적인 농촌의 조촐한 초가집 형태이다.

이 자리는 윤봉길의 증조부인 윤재가 정착한 곳으로 풍수가 들은 이 터를 큰 인물이 날 자리라고 풀이한다. 가야산의 원효봉을 주산으로 삼아 마주한 자리로서 차령산맥으로부터 뻗어 내려온 용봉산의 한 지맥인 수암산의 끝자락이 평지로 내려와 조산을 돌아보는 형세인 회룡고조의 양택지에 앉은 집이라는 것이다.

예산군은 윤의사의 위업과 유적을 기리고자 1965년 고택후원에 기념탑을 건립하였고, 1968년에는 영정을 봉안한 사당 충의사가 창건되었다. 또한 1972년에는 윤 의사의 생가와 고택 및 충의사 전역이 사적 제229호로 지정되었으며, 예산군에서는 매년 4월 29일 매헌문화제를 열어 윤 의사를 추모하고 있다. 오가는 길목에 수덕사와 덕산온천도 있어 가족 나들이 코스로도 무난하다.

/ 출처 한지호 자동차여행가

[여행스케치=예산] 4월 29일부터 30일까지 양일간 윤봉길 평화축제가 예산 충의사 일원에서 개최된다. 윤봉길 평화축제는 매헌 윤봉길 의사의 상해의거, 농촌계몽운동 등 애국ㆍ애족정신을 선양 추모함과 동시에 시대정신 함양을 위한 축제로 구현하는 행사다.

제50회 윤봉길 평화축제가 4월 29~30일 양일간 예산 충의사 일원에서 개최된다. 사진 / 예산군청 출처 : 여행스케치(http://www.ktsketch.co.kr)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윤봉길 시대정신을 주제로 한 트로트 가수 장민호의 축하공연과 독립운동 소재의 미디어 샌드아트 드로잉 퍼포먼스 공연 등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지역문화 예술인이 펼치는 레트로 공연 ‘1932 윤봉길 RE:다시 일어나다’, 퓨전 국악, 클래식, 힙합 장르의 크로스오버 공연 ‘조선 드랍 더 비트’ 등 다양한 공연이 준비된다.

이외에도 모바일로 역사도 배우고 게임도 즐기는 미션형 모바일 게임 ‘스마트엔티어링 윤봉길 스물다섯 해의 회상’, 1930년대 독립군 훈련소를 모티프로 놀이기구 및 짚라인 등으로 구성한 ‘매헌 놀이터’ 등 체험 및 전시 프로그램들도 준비될 계획이다. 또한, ‘평화 윤봉길 초중고 시낭송 대회’, ‘전국 평화사랑 그리기 대회’ 등도 진행될 예정이다.



/ 출처 여행스케치 2023 노규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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