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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남도

해남 봉학리 김남주시인

by 구석구석 2008.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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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생가는 삼산면 봉학리 에 위치하고 있다. 삼산면 봉학리 에서 이땅의 전형적인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70년대 격변의 시기에 전남대 영문과에 입학 3선개헌 반대, 교련반대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70년대 유신독재체제와 맞서 칼날같은 시를 쏟아내고 민주주의로 향하던 80년대를 옥중에서 보내면서도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등의 옥중시집을 발표해 현실비판의 당당한 문학지평을 열어왔다. 그의 길지 않은 삶과 문학의 제적에는 70, 80년대 우리 정치사회사의 굴곡과 음영이 그대로 새겨져 민족문학의 큰별로 낮고 어둡게 살아가는 민중들의 앞길을 밝혀 주었다.

김시인은 48년의 지난 세월동안 반외세 반독재투쟁 절규하는 시와 자기의 시같은 삶으로 맞서왔다. 그러다 여긴 투옥 생활을 끝낸 88년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한국민족예술인 총연합 이사 등을 맡아 죽는 날까지 민족문화운동에 힘을 쏟았다.

나는 나의 시가 오가는 이들의 눈길이나 끌기 위해 최신유행의 의상걸치기에 급급해 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나는 나의 시가… 호사가의 장식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는 그의 시처럼 김남주의 시는 그가 함께 해야할 민중들의 삶속에서 등대처럼 반짝이는 현신타계의 힘이었던 것이다.

불의한 시대인 70년대에 유신독재체제와 맞서 그는 행동으로 뿐만아니라 칼날 같은 시를 쏟아냈으며 민주주의로 향하던 80년대를 옥중에서 보내면서도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등의 옥중시집을 발표해 현실비판의 문학지평을 열었다.

그의 짧은 삶과 문학속에는 70, 80년대 우리 정치.사회사의 굴곡과 음영이 그대로 새겨져 있어 민족문학의 큰 별로 낮고 어둡게 살아가는 민중들의 앞을 밝혀 주었다.

김남주시인은 48년의 세월동안 반외세 반독재 투쟁의 절규를 시와 삶으로 맞서왔다. 그는 투옥 생활을 끝낸 88년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한국민족예술인 총연합 이사 등을 맡아 죽는날까지 민족문화운동에 힘을 쏟았다. 

 

 
자료

해남군청 문화관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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