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대원사길 '아름다운 길 100選'에 선정
문덕면에 소재한 천년고찰 대원사 진입로가 건설교통부가 선정하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올랐다.
대원사 진입로는 길이 5.5km 양쪽으로 20년생 왕벚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면서 ’왕벚나무 터널’이라고 불릴 정도로 환상적인 경관을 연출하는 점이 높게 평가돼 ’아름다운 길’에 선정됐다.
수년 전 만 해도 그리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 곳은 티베트 박물관과 백민미술관이 들어서면서 관광객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해 요즘에는 벚꽃이 만개하는 4월이면 하루 수 천대 차량이 몰릴 정도로 벚꽃축제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보성군과 순천국도유지건설사무소는 대원사 진입로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것을 계기로 이곳으로 들어가는 국도 15호선의 도로 구조개선사업을 시행해 관광객들의 접근성을 높이기로 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은 학계와 여행 작가, 사회단체 등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심사위원회가 세 차례에 걸쳐 전국에 산재한 유명한 길들을 예술성과 미관성, 역사성, 기능성, 친근성 등 5개 주제별로 나눠 평가한 뒤 결정했다.
연합뉴스 2007.8
천봉산자락에 있는 대원사
대원사에는 지정된 변변한 문화재 하나 없다. 수려한 자연 경관을 뽐내는 산을 끼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귀를 솔깃하게 하는 설화나 전설이 담겨져 있거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 또한 아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세월의 더께 가득한 옛것보다도 화사하고 정갈한 새것이 더 많아 전혀 낯설지 않고, 우리나라의 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것은 적은 대신 여느 곳에서는 보기 힘든 볼거리가 많아 독특한 멋이 있다.
죽산에서 대원사에 이르는 10리벚꽃길/서부원
도심 속 공원이나 대저택의 정원처럼 잘 가꿔진 조경도 그렇거니와 절 안 곳곳에서 풍기는 범상치 않은 ‘범종교적’인 분위기는 이곳의 자랑거리다. 입구의 비탈진 공간에 세워진 ‘티베트 불교박물관’은 덤이자, 지금에 와서는 이 절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절을 찾아 가는 길부터 예사롭지 않다. 도로변에 빼곡하게 심어진 십리 길 벚나무는 절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야무지게 섰고, 산사를 찾는 이들의 정갈한 마음을 어지럽히는 음식점이나 카페는 거의 없다. 가로수를 벗 삼아 무심하게 산을 오르면 그 막다른 그곳에 요새처럼 절이있다.
늘 푸르고 잔잔한 주암호를 끼고 있는데다 광주광역시가 지척인 까닭에 주말이면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이 많다. 특히 벚꽃이 피는 봄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자동차로 몸살을 앓으며 톡톡히 ‘유명세’를 치르지만, 이 절이 지닌 참 멋을 느끼고 싶다면 땅에 낙엽이 뒹굴며 서걱거리는 늦가을이 적기다.
티베트 불교박물관과 아기돌부처, 일주문 못 미쳐 주차장과 나란한 자리에 '우리나라 안의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티베트 불교 박물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에는 달라이 라마 기념상과 강연, 영상물 등 티베트 불교 자료와 탕카(티베트 회화), 희귀 불경과 밀교 법구 등 뛰어난 예술품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한편, 지하에는 조장(티베트 장례) 사진 등이 걸려있는데 여느 곳에서는 접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서부원
어른 키 남짓한 조그만 일주문과 그 곁에 빙긋 웃으며 반기는 아기 돌부처를 지나야 비로소 절안이며 앙증맞은 일주문도 그렇지만 돌부처의 머리마다 씌워진 빨간 ‘모자’는 즐거운 파격이다. 머리에 쓰고는 있지만, 그것은 모자라기보다는 코바늘로 짠 동그란 ‘아크릴 수세미’로 세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그릇이 잘 닦여 최근 각 가정마다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는 ‘친환경’ 생활용품이다.
야단법석/서부원
나무그늘 아래 넓고 평평한 돌 탁자를 놓고 긴 벤치 네 개를 둘렀는데, 이름 하여 ‘야단법석(野壇法席)’. 본디 이것은 ‘법당 바깥에 자리를 깔아두고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의미이지만, 경황이 없고 시끌벅적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인다.
그러나 법력 높은 고승이 중생들을 앉혀놓고 설법을 베풀기에는 너무 비좁고, 그렇다고 장삼이사들이 시끌벅적하게 모이기에도 마땅치 않안 곳이다. 그저 무더운 여름에 차분히 앉아 더위를 식히거나, 늦가을 이맘때쯤 기대어 앉아 낙엽 떨어지는 소리 들으며 책 한 권 읽을 만한 그런 곳으로 굳이 의미로만 본다면 어색하지만 ‘애칭’ 삼아 부르기에는 정감어린 이름이다.
화장실 주변에 가꿔놓은 소담한 차밭과 연지(蓮池)도 재미있는 풍경 중 하나이다. 절 안의 너른 공간을 다 비워두고 왜 하필이면 화장실 옆에다 만들어 놓았을까? ‘불결한’ 이미지를 해소하려고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화장실의 우리 몸-곧, 인분(人糞)-도, 이슬 머금은 찻잎도, 탐스러운 연꽃도 본디 다 같은 것이라고 본 것은 아닐는지. 불결한 마음과 눈을 통해서 보니 그러할 뿐, 그저 우리 삶 속에서 인연이 돼 만나는 ‘것’들로 무덤덤하게 여기고 있는 듯하다.
사찰 연못에 백련, 수련 등 다양한 연꽃과 여러 수생식물이 자라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늦가을’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를 돌아, 흡사 위세 있는 어느 반가의 별서(別墅) 정원 같은 연못을 건너면 법당이 있는 안마당에 이른다. 고운 잔디가 깔린 안마당 둘레로 기와를 얹은 야트막한 담이 둘러쳐져 있어, 고을의 젊은 유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향교나 서원 같다.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담벼락 너머로 다 들여다보이는 요사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입구에 엎드려 앉아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누렁이 한 마리가 이곳이 관광객이 들어오면 안 되는 곳임을 알려주고 있을 뿐.
경건한 예불 공간인 법당(극락전) 바로 곁에 요사채를 둔 탓이라지만, 컹컹 짖는 개를 ‘불경하게도’ 법당 옆에 묶어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 짓게 만듭다. 법당 왼쪽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말끔한 부도 한 기와 창건자로 알려진 아도화상(阿道和尙)을 모신 영각(影閣)이 있고, 그곳에서부터 이 절의 백미인 ‘산책로’가 있다.
대숲을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서부원
짙푸른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탓인지 숲에 부딪는 바람 소리가 죽비소리마냥 괄괄하다. 발 아래 낙엽 부서지는 소리와 섞이면서 차분한 늦가을의 정취가 가득 담긴다. 손에 책 한 권 들고 바쁠 것 없이 천천히 걷고 싶은 그런 길로 길과 나란하게 수줍은 듯 실오라기마냥 물 흐르는 계곡이 있어 더욱 운치가 있다.
걷다 보면 책이 필요 없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주옥같은 성찰의 메시지가 담긴 팻말이 여유로운 걸음걸이에 맞도록 적당한 간격을 두고 나뭇가지에 걸려 있기 때문. 비록 한두 문장의 짧은 글귀일 뿐이지만, 여운은 머릿속에 깊이 각인돼 그 자리를 허투루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범종을 때리는 당목도 목어다, 무엇을 가르키는지 모르는 팻말/서부원
절이되 불경 구절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의 성서 구절도 있고, 힌두교 경전에서 따온 것도 있으며, 중국 속담이나 큰 스님들의 어록에서 발췌한 것도 있다. 출처는 달라도 하나 같이 ‘참 삶’과 ‘참 행복’을 설파하는 내용이다.
책에 밑줄 긋듯, 음미하며 읽어 가노라면 현재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하고 잔잔한 깨우침을 통해 새로운 다짐을 갖게 만든다. 절 울타리마냥 감싸 도는 그 길을 걷다보면 좋은 책 한 권을 골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고즈넉한 산사를 산책하면서 달력에 고작 종이 한 장 남은 한 해를 차분하게 정리하고 싶다면, 이곳을 찾아 성찰과 다짐을 화두 삼아 한나절을 함께 해 봄이 어떨지. 늦가을을 닮은 이곳은 바로 남도 땅 보성군 문덕면에 자리한 천봉산(天鳳山) 대원사(大原寺).
갔던 길 다시 밟지 않고, 큰 포물선을 그리듯 거닌 산책이 끝나는 곳은 다시 ‘야단법석’이다. 호주머니에서 메모장을 꺼내어 걸으며 보았던 낯선 풍경과 걸으며 읽었던 글귀를 생각나는 대로 적기 좋은 ‘명당자리’로 이제 보니 그러라고 굳이 이곳에 ‘자리를 깔아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료 - ⓒ 2007 OhmyNews 서부원
▲ 보성군립백민미술관과 서재필 기념공원도 명물
대원사 방문 전후에 보성군립백민미술관이나 서재필기념공원에 들러도 좋다. 보성군립백민미술관은 1993년에 국내 최초로 개관한 군립 미술관이다. 보성 출신 백민 조규일 화백과 국내 원로·중견 작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두루 전시한다. 서재필기념공원은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독립신문〉을 창간하는 등 조국 광복을 위해 열정을 다한 서재필 선생을 기리는 곳으로, 서울의 독립문을 재현한 모형도 있다. 단 유물과 각종 자료를 전시한 서재필기념관은 내부 공사가 끝나는 4월 이후에 관람이 가능하다.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인 벌교도 보성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조정래 작가의 문학 세계와 《태백산맥》 관련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태백산맥문학관, 소화의집, 현부자네집, 김범우의집, 벌교 홍교, 구 벌교금융조합, 구 보성여관, 중도방죽으로 이어지는 소설 속 명소를 따라 걷는 태백산맥문학기행길이 인기다.
벌교 포구를 가로지르는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벌교 홍교는 국내에 남은 홍교 중 가장 크고 아름다워 보물 304호로 지정됐다. 구 벌교금융조합(등록문화재 226호)은 일본 건축양식이 반영된 근대건축물이며, 현재 한국 화폐사 전시 공간으로 활용된다. 소설에서 남도여관으로 나오는 구 보성여관(등록문화재 132호)은 복원을 거쳐 카페와 자료실, 전시실, 소극장, 숙박동을 갖춘 복합 공간으로 태어났다. 근대건축물에서 보내는 하룻밤은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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