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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경주 7번국도 남산동 통일전 세한도 경북산림환경연구소 칠불암 능지탑지 신문왕릉

by 구석구석 2007.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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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서 秋史 향기를 맛보다. 시원한 해물뚝배기 '세한도(歲寒圖)'역사나 한국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겐 무척 생소하겠지만 조선 최고의 명필로 추앙받는 추사(秋史) 김정희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제주도 유배 중에 변함없이 자신을 생각하는 한 제자의 지극정성에 감동해 그려준 것이다. 스산한 겨울 분위기 속에 서 있는 소나무와 잣나무 몇 그루를 갈필로 그렸는데 선비의 지조와 고고함을 담은 명작으로 꼽힌다.

 

천년 고도(古都) 경주에서 '세한도(054-748-9794)'를 만났다. 곧게 뻗은 통일전 대로변에 역사책이나 추사기념관에서 보던 한 편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세한도였다. 아크릴판에 그려진 모작이긴 하지만 추사의 정신세계를 고스란히 담은 간판이라니.

 

주변이 온통 논인 평지에 가운데 개량 한옥 스타일의 나지막한 네 동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세한도의 소나무.잣나무와 흡사한 모습이다. 담도 없이 바로 뜰로 이어진다. 자그마한 소나무 동산이 가장 먼저 반긴다. 주변을 돌아보니 온통 화분 안에 담긴 자그마한 소나무와 단풍나무다. 분재 정원인 것이다. 분재 사이 사이로 포석정의 곡수유상(曲水流觴)을 연상케 하는 도랑도 흐른다. 나무 다리를 건너 벽 두 면이 통유리로 된 별채로 들어갔다.

 

방금 전에 거닐던 창 밖의 모습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미완성의 수묵화다''눈이 내렸다면 더 좋았을 텐데' 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여주인이 메뉴판을 들고 들어왔다. 메뉴판을 펼치기 전에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세한도를 잘 아느냐" "누가 이름을 지었느냐" "음식점은 맞느냐" 호들갑스러운 질문에 차분한 답이 돌아왔다.

 

모든 것이 추사를 흠모하는 남편의 구상에서 시작된 일이란다. 카페로 운영하는 옆 건물에선 추사의 다른 모작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뜰 풍경은 설경이 최고지만 야생화가 피는 봄.가을도 그에 못지않다는 자랑도 곁들였다.

 

음식은 해물 뚝배기.낙지볶음 등 한식도 하고, 햄버거 스테이크나 돈가스 같은 경양식도 낸다. 전문음식점의 세련된 맛은 아니지만 지방에서 우연히 만난 음식치곤 수준급이다. 해물 뚝배기와 같이 나온 과일샐러드는 상큼한 맛이 반갑고, 해물전이나 도토리묵은 고향의 맛이 넉넉해 정겹다. 쇠고기를 다져 만든 햄버거 스테이크는 아이들에게 정성스럽게 해 먹이는 젊은 엄마의 손맛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중앙일보 유지상 기자]

 

경주시 배반동 1030-1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소 054-778-3832

화랑교육원 지나 보리사 입구 / 동절기 09:00 ~ 17:00  하절기 09:00 ~ 18:00

 

경주 남산자락에 위치한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소에는 향토 희귀수목과 천연기념물, 야생화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으로 도민의 휴식공간과 자연학습의 명소가 되고 있다. 

 

숲과 나무가 아닌 인간이 숲과 나무를 배경으로 피사체가 돼 인생 사진을 뽑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명소다. 경북산림환경연구원의 숲은 모든 면에서 지금껏 소개한 숲 가운데 으뜸이다. 주차장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화보의 무대가 시작된다. 주차장을 나와 왼쪽으로 가면 만나는 다리 아래 외나무다리부터다. 개울을 따라 양옆으로 서 있는 나무들이 만든 숲은 개울 위 샹들리에와 같은 조명이 됐고, 그 아래 외나무다리가 화보 촬영의 정점을 찍었다. 

 

*소목전시포 / 63,020㎡으로 443종 14,524본 (주요 수종 - 주목, 구상나무, 가시나무, 생강나무,회화나무, 메타세쿼이아 등)이 있으며 소나무류, 호랑가시나무, 대나무류 등 상록수는 낙엽이 진후의 가을철과 이른 봄이 좋으며, 참나무류, 목련류 등 낙엽수는 새잎이 나오고 꽃이 피는 3월~9월이 좋다. 열매와 단풍이 아름다운 산수유나무, 까마귀밥여름나무, 단풍나무류 등은 10월이 가장 좋다.

* 산림전시실 / 165㎡ (50평)으로 산림과 관련된 표본 1,230종 2,616점 전시

* 온실 / 5동(684㎡)

* 야생동물 관찰원과 방향식물원에 구골목서, 때죽나무 등 목본류 46종 레몬타임, 애플민트 등 허브식물 14종이 있다.

* 약용, 유실수원은 모과나무, 살구나무, 감나무, 매실나무, 밤나무 등 열매의 이용가치가 높은 목본류 18종 200본 - 꼭두서니, 금불초, 배초향, 으아리 등 120종의 초본류가 있다. 

* 야생초화류 단지에는 120,000본이 식재되어 있고  옥잠화,할미꽃,비비추,섬초롱꽃,무릇,둥굴레,원추리,벌개미취,매발톱꽃,층꽃풀,뻐꾹나리 등이 있다.

* 무궁화동산에는 무궁화 등 37종 12,000본이 있으며 백두대간 무궁화동산, 경북 시ㆍ군 상징물 동산, 품종전시원, 다목적 잔디광장으로 되어 있다.

 

무궁화동산

* 분재소재 생산포지에는 분재소공원에 소나무 등 10종 500본이 있으며 무궁화 꽃을 중심으로 한 태극 문양과 분재 전시대와 경상북도 도조인 왜가리를 상징하는 조형물, 물레방아가 있고 화목원과 습지생태원이 있다.

 

 

칠불암 등산로가 시작되는 통일전주차장의 새벽은 희뿌연 가로등 불빛만이 간신히 어둠을 밀어낸다. 고깔모자에 마스크와 목도리까지 온 몸을 빈틈없이 동여매도 옷깃을 파고드는 동장군의 기세를 한풀 꺾을 도리는 없다. 귓전을 윙윙대는 사나운 바람소리에 질려 몸은 자꾸만 안으로 한껏 움츠러들 뿐이다. 

 

은은한 달빛 한 줄기가 빛을 드리운다. 주변에 달리 불빛이 없어 달빛은 더욱 맑고 밝다. 자주 오가는 길이건만 어두운 밤길이라 그런지 발끝에 부딪치는 나뭇가지나 돌부리에도 식은땀이 흐르고 등골이 오싹하다. 동 남산의 깊은 가슴 속, 봉화골(烽火谷)의 긴 겨울밤은 아직 아득히 멀고 고요히 잠들어 있다.

 

차가운 바위에 새겨진 일곱 부처님의 따뜻한 마음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 시간 정도 왔을까? 날은 벌써 저만치서 환하게 밝아온다. 지난 밤 어둠 속에 잠들었던 산과 나무들이 갖가지 고운 자태를 골골이 뽐내기 시작한다. 죽어가던 해가 다시금 생명을 얻고 되살아나는 동지가 조금 지난 초겨울 무렵이다.

 

언덕길을 내내 오르내렸더니 어느새 숨은 턱밑까지 차오른다. 산비탈에 켜켜이 쌓아올린 무심의 돌층계 사이로 하늘로 솟은 소나무들이 구불구불 끝도 없이 이어진다. 길의 끝 가파른 바위산의 허리에 동 남산 최고의 불적, 칠불암(七佛庵)이 웅대하다.

 

 

칠불암은 병풍바위에 삼존대불을 새기고, 그 앞에 면마다 여래상을 새긴 사방불(四方佛)을 두었으니 모두 일곱 분의 부처를 모시고 있는 셈이다/남병직

 

먼 산에 곱게 내려앉은 간밤의 잔설이 투명한 아침햇살에 더욱 반짝거린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암자를 찾는 발길은 뜸하지만, 야외에 마련된 법당 앞 작은 마당은 벌써 부지런한 손길로 말끔하게 단장되었다.

 

칠불암 유적 주위로 커다란 난간이 둘러쳐 있어 부처님의 온기를 가깝게 느낄 수 없다. 마당 한쪽에 웃자란 나무그늘에 기대어 사방불에 가려진 본존불의 미소를 한참 동안 바라본다. 눈 쌓인 마당을 쓸어내던 보살님의 엄한 꾸중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용기를 내어 부처님께 한 발짝 다가섰다.

 
 

병풍바위에 돋을새김 한 삼존대불은 중앙에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맺은 본존여래를 두고, 그 좌우로 연꽃과 정병을 든 보살상을 세웠다. 간혹 이 삼존대불을 아미타삼존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앞에 놓인 사방불과의 상호관계를 고려하면 석가여래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불보살의 굳게 다문 입술에서 풍기는 근엄함은 박제된 듯 경직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온 몸을 감싸 흐르는 유쾌한 옷 주름과 잘록한 허리를 내민 삼곡의 앙증맞은 보살상이 미완의 삼존대불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아담한 연꽃 모양의 탐스런 두광에서 중생을 향한 부처의 소박한 마음이 밝게 빛난다.

 

칠불암에서 잠시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해는 벌써 떠올라 먼 산자락을 붉게 물들인다. 서둘러 가파른 암벽능선을 타고 신선암으로 빠른 걸음을 옮겼다. 동이 터 솟아오른 햇살이 가장 먼저 고운 빛을 내어주신 땅, 서라벌의 수줍은 아침이 살며시 얼굴을 내민다.

 

  

신선암에서 멀리보이는 서라벌

동 남산 열여섯 골짜기의 옅은 개울물은 저마다 남천(南川)의 푸른 강물로 모여들었다. 차고 시린 겨울 강바닥 아래 신의 성전을 향해 달려가는 거룩한 산들의 질주가 마치 한 폭의 비단을 풀어헤쳐놓은 듯 시원하고 장엄하다.

 

예로부터 남산은 하늘 신과 인간의 염원이 맞닿은 소통의 성산(聖山)이었다. 불가의 신이 남산의 억센 바위에 고이 잠들고부터 서라벌의 옛 사람들은 오래도록 하늘 신을 잊은 듯했다. 그러나 그들의 간절한 바람은 끝도 없이 치솟은 바위산을 타고 지금껏 높다란 하늘로 내내 이어지고 있다.

 
 
 남산 봉화골의 신선암의 여명

태초의 바윗덩이에 투명한 아침햇살이 부딪치자 억센 돌산은 온기를 머금고 한차례 살아 꿈틀거린다. 맑은 금빛으로 빛나는 32상의 미묘한 금색상(金色相)이 거룩한 돌부처에 장엄되는 순간이다.

 

서라벌의 옛 사람들이 신에게 이르던 길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닫힌 적이 없는 적멸의 시간에 마음의 열쇠로 열리는 무문(無門)의 문(門) 너머에 있다. 그 내밀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자가 지난 천년의 세월 동안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자료 - 오마이뉴스 2008 남병직

 

배반동 621-1  능지탑지

경상북도기념물 제34호 / 1982년 8월 4일 지정

 

남산에 흐트러져 있던 탑의 재료를 새로 맞추어 놓은 것으로 예로부터 능지탑 또는 연화탑이라 불려왔다고 한다. 원래는 기단 사방에 12지신상을 새긴 돌을 세우고 그 위에 연꽃무늬가 있는 석재를 쌓아올린 5층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은 임종 후 10일 내에 왕궁 밖 뜰에서 검소하게 화장하라고 유언하였는데, 탑 주변에서 문무왕릉비 조각이 발견되고 사천왕사, 선덕여왕릉, 신문왕릉과 이웃한 것으로 보아 문무왕의 화장터로도 추정되고 있다.

 

배반동 453-1 신문왕릉 사적 제181호

사천왕사터를 지나 문무로를 조금 지나면 왼쪽으로 31대 신문왕의 능이 있다. 능 앞에는 주차장 시설이 번듯하며 잘 자란 소나무가 서 있는 묘역도 잔디로 잘 가꾸어져 있다.

 

신문왕(681-692년)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문무왕의 맏아들로 문무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재위 12년 동안 관제를 정비하고 왕권을 확립하였으며 학문을 장려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국학을 설치하였다. 당나라를 비롯한 외국과도 빈번히 교류하여 문화의 융성을 도모하는 등 신라 전성 시대의 기틀을 확립하였다.

 

능은 원형 봉토분으로서 길이는 29.3m이고 높이는 7.6m이다. 밑 둘레는 벽돌 모양으로 다듬은 돌을 5단으로 쌓고 그 위에 갑석을 덮었으며 이 석축을 지탱하기 위해 44개의 호석을 설치하였다. 이와 같은 구조의 호석은 통일신라 왕릉에 십이지신상을 새긴 호석이 나타나기전 단계의 것으로, 고신라 고분의 그것보다는 한층 발달된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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