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마을 기는 길
삼마골은 경상북도(김천시). 충청북도(영동군).전라북도(무주군) 등 3개 도가 만나는 화전봉(1176m)의 북쪽 자락에 있는 고개다. 화전봉은 산행객들 사이에 흔히 삼도봉(三道峰)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10월 10일에 3도 도민이 정상에서 삼도 화합제를 지낸 덕에 유명해졌다. 삼마골재 고갯마루는 화전봉으로부터 0.9㎞ 떨어져 있다. 고개 서편은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이며, 김천에서 고개를 넘어가면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가 된다.
해인리에 가자면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무주 나들목을 빠져나온 뒤 백두대간에 이르러 작은 석굴을 하나 통과한다. 이름하여 '나제통문'(羅濟通門)이다. 문자 그대로 옛적 신라와 백제가 통하던 문이다.
삼마골재가는길과 나제통문
굴의 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백제를 쓰러뜨린 직후 신라가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굴을 뚫었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일제시대 때 무주~김천간 신작로(현재의 3번 국도)를 내면서 굴이 처음 생겼다는 주장도 있다. 앞의 견해는 뒤받침이 될 만한 사료가 없고, 뒤의 주장에 관련해선 '일제시대 때 우리 아버지가 석굴 공사에 동원됐다'는 식의 증언을 들을 수 있다. '생기기는 고대에 생겼는데 시대가 바뀌면서 조금씩 굴이 커졌고, 일제시대에도 확장 공사를 했다'는 중간 입장도 나온다. 어쨌거나 굴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언제부터 나제통문이라 불리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三道가 하나 되는, 백두대간 품에 안긴 '해인마을'
충청북도 영동과 전라북도 무주, 경상북도 김천… 이렇게 삼도가 만나는 삼도봉(1,177m) 아래에 해인마을이 있다. 거대한 장승이 해인마을 입구를 지키고 서 있다. 언뜻 보면 콘크리트 따위로 만든 인공 구조물처럼 보이지만 통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다. 높이 12m, 둘레 5.5m로 세상에서 가장 큰 장승이다. 장승을 세운 주인공은 해인문화예술농원을운영하는 김용철 씨, 이 고장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과 이 땅을 지키고 가꾸어온 마을 사람들에게 무언가 바치고 싶은 마음에서 세웠다고 한다.
지리산 산마을을 연상케 하는 계단식 다랑이논이 산자락에 걸려있다. 김천 사람들은 해인마을을 깡촌으로 표현한다. 그만큼고단했을 지난날 김천 사람들은 해인마을 깡촌으로 표현한다. 그만큼 고단했을 지난날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변변한 농초가 없던 시절돌을 쌓아 담을 만들고, 그 안에 흙을 채워 논을 만들었다. 요즘 말하는 이른바 삶의 질과는 거리가 먼 삶의 방편이었다.
마을에서 300m 가량 떨어진 김용원씨의 해인산장을 찾았다. 40여 년전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배움의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났다가 지난 5년전 낙향해 직접 지은 흙집이다. 서울 장안평에서 자동차 부품업을 하던 그가 고향으로 돌아올 생각을 한 건 연어의 회귀 본능 같은 거였다. "연어가 알 낳으라고 만물을 찾오는 회귀본능 같은 거였지예." 연어처럼 그 또한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고향 땅으로 돌아온 것이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김용원씨는 해인마을의 기억을 더듬거리며 궁핍한 삶이었지만 속세를 등지고 이상향을 찾아든 이들이 많았다고 말한다. 많을 때는 200가구도 넘게 살았다고, "6·25 난리통에도 그리 피해가 크지 않을 것 보믄 좋은 땅 임에는 분명하다 아입니꺼."
예나 지금이나 산중 사람들의 공통점은 넓은 마을 씀씀이다. 협소한 골짜기에 몸을 낮추고 자신을 감추려는 듯이 보일 듯 말 듯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자연에서 배운 너그러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지러운 세상들에겐 자연에서 배운 너그러움이 있기 대문일 것이다.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이 �은 산중으로 몰려든 이들이 보는 산 아래 모습은 아귀다툼이었을 테니 더욱이 내려가고 싶은 마음 또한 없지 않았을까. 산비탈을 개간하고 부족한 농토는 회전을 해도 입에 풀칠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산 아래 세상을 등지고 살기에는 더없이 좋은 땅이었을 것이다.
가까이 들여다 본 해인마을은 열악해 보인다. 그러나 부지런한 주민들은 토질에 적합한 농작물 재배를 수없이 시도했다. 지금은 호두, 포도, 오미자 등 특용작물이 주수입원이다. 마을의 역사와 함께한 당산나무 뒤로 산자락 돌밭이 엉겨 붙어 있다. 마을은 더이상 오를 곳이 없어 보이는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모두 10여가구. 김천 시내에서 40여분 거리지만 오지의 면모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교통 때문이었다. 마을까지 버스가 들어오지 않아 생필품을 사려면 부항까지 족히 20리는 나가야 한다.
해인산삼랜드(054-436-0038 www.haeinland.co.kr )는 일찌기 뜻한 바 있어 해발 500M 고지 중심으로 천종산삼 씨앗과 모종을 심어 이제 수십만평의 거대한 산양산삼단지를 만들었으며 머지않은 장래에 일백만평의 동양 최대 산양산삼단지로 진화하여 먹거리 볼거리 놀거리 쉴거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우리네 가슴팍에 새겨질 휴식과 휴양 종합시설단지의 청사진이 차근차근 진행 중에 있다.
* 식당시설 - 흑염소, 흑돼지 요리(예약손님에 한해 기타음식 제공 (필히, 전화로 문의할 것)
* 편의시설 - 계곡(물놀이 및 취사가능), 야외조각공원, 사슴농장 등
해인산장에서 삼마골재
입산통제 초소 앞에서 오른편의 소로를 잡는다. 경운기가 지날 만한 소로. 삼마골재로 가는 길이다. 길옆으로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계곡물은 김천시내에서 부항천을 이루고 낙동강에 합쳐진다.
길옆으로는 흰 꽃들이 두루 피었다. 봄꽃이 노랗고 붉다면 초여름에 피는 꽃은 흰 것이 많은 법. 길 위로 가지를 드리운 산목련(함박꽃)의 봉오리는 탐스러우면서도 수수하다. 도시의 목련 꽃이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향해 핀다면 산목련의 꽃은 수줍은 듯 땅을 보고 핀다. 계곡 건너편에서 키가 훌쩍한 층층나무가 층층으로 펼친 가지 위에 하얀 꽃구름을 달았다. 낮은 키에 하얀 꽃 핀 찔레 줄기는 아직까진 연하고 들큼해 심심풀이 삼아 씹을 만하다.
길은 이내 오솔길로 바뀐다. 이따금 화전민이 살았던 산막의 흔적이 눈에 띈다. 아직 무너지지 않은 돌담 옆으로 화전민이 심어놓은 살구나무와 감나무 가지에 새 잎이 무성하게 달렸다. 돌담 옆에는 깨진 항아리가 뒹굴고 있다.
일제시대부터 이곳에 정착한 화전민들은 숯을 구워 팔아 살았다. 이후 한국전쟁 발발을 전후해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들이 산 속에 화전민 그룹에 합류했다. 그들은 생활력이 강했다. 참나무를 베어 일주일 만에 산막 한 채를 뚝딱 지었다.
백두대간에 자리 잡은 마을이 대개 그랬듯 한국전쟁 동안, 그리고 휴전 후로도 한참 동안 이곳은 '국방군'과 '빨치산' 사이에 놓인 완충지대였다. 낮, 밤으로 산을 점령한 군인이 바뀌던 시절이었다. 화전민들은 전쟁 동안 며칠씩 산 밑에서 피해 지내다가 산막으로 올라오고, 또 내려갔다가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삼마골 아래의 해인리만 해도 제사를 같은 날 지내는 집이 여러 집 된다.
휴전 뒤 숯은 더 이상 장사가 되지 않았다. 화전민들은 산비탈을 골라 감자와 옥수수를 심고 생계를 해결했다. 외부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는 소금 정도를 제외하곤 모든 것을 산 속에서 만들어냈다. 아니, 산에서 얻었다. 이후 1960년대 말기 김신조 사건 같은 일들이 잇달아 터지면서 화전민들은 정부 정책에 따라 하릴없이 산을 내려왔다. 그게 삼마골에 살던 화전민들의 역사다.
거리로는 1㎞, 쉬엄쉬엄 올라도 한 시간이면 고개 안부에 이르는 삼마골재. 그 주변은 원시림 같다. 발자취 끊어진 고개 옆으로는 칡나무 덩굴과 등나무 덩굴이 어지럽게 얽혀 있다. 백두대간은 이렇듯 사람들 간의 갈등을 말없이 보듬어 왔다. 더 오랜 세월이 흐르면 어지럽게 엉켜 있던 덩굴들도 삭아 없어질 것이다.
삼도봉 오르는 길은 해발 1,000m 지점까지 임도가 닦여있다. 임도가 끝나는 주차장부터 본격적인 등산로가 이어진다. 숲으로 접어들자 함박꽃 향기가 코를 찌른다. 30분이 채 안 돼 석기봉 갈림길. 북으로 석기봉과 민주지산, 남으로는 화주봉과 우두령, 김천의 황학산으로 뻗어내린 백두대간의 장쾌산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삼도봉 정산에는 삼도 화합을 염원하는 상징물인 '삼도화합탑'이 서 있다. 삼도봉에서 내려다보는 해인마을은 골짜기 한귀통이에 하얀 점으로 박혀 있다. 어머니 품안에 안긴 아기처럼, 수백 년 전 이상향을 꿈꾸며 둥지를 튼 조상들의 염원에 보답일도 하듯 편안하게 앉아 있다.
자료 - 위클리 프라이데이 editor 유철상 writer 최상석/ 성시윤 기자
추천 산행 코스
해인산장 → 삼마골→ 삼마골재 마루→ 삼도봉 → 안골 → 해인산장. 3시간30분 소요.
숙박 정보 해인마을에는 황토로 지은 산장이 몇 군데 있다. 모두가 삼도봉을 찾는 산꾼들을 위한 산장 형태로 운영되는데, 우르르 몰려다니는 떼거지 관광객이 아닌 여유로운 쉼을 원하는 여행자들을 반긴다. 해인마을에서 300m 가량 떨어진 삼도봉 등산로 입구의 해인산장(054-437-1991)과 숲실산방(054-437-8250) 모두 황토 벽돌로 지은 집. 비교적 규모가 큰 해인문화예술농원(054-436-8543)은 차와 식사도 가능하고, 많은 인원이 찾을 경우에 좋다.
찾아가는 길 경북고속도로 김천 IC를 벗어나 거창 방향 3번 국도를 탄다. 흑돼지구이촌이 있는 지례면소재지까지는 22km. 이곳에서 우회전하면 부항면가는길. 부항천을 따라 백두대간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부항 삼거리에서 다시 우회전하면 삼도봉 가는길. 표지판을 따라 콘크리트로 포장된 농로를 오르면 '해인문화예술농원'을 지나 도로가 끝나는 곳에 해인마을이 보인다.
서울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무주 나들목 나와 무주리조트 방향 30번 국도 따라 진행→ 나제통문 → 무풍면 소재지 → 현내삼거리에서 좌회전해 1089번 지방도로→삼도봉 터널 통과→ 해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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