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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북도

완주 799번지방도 갑오동학혁명 우석대박물관

by 구석구석 2022.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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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고속도로 삼례나들목에서 799번 지방도로를 따라 봉동쪽으로 가면 신금리가 나온다.

삼례는 갑오동학혁명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현장이다. 1892년 11월(음)에는 수천 명의 동학교도들이 교조신원운동을 펼쳤던 곳이다. 그리고 1894년 9월(음)에 10만여 명의 농민군이 '척왜양창의'의 깃발을 나부끼며 2차 봉기를 일으킨 곳이다.

완주군 문화체육시설지구 내에 조성된 역사광장은 2002년 12월 준공됐다. 입구에 들어서자, 농민전쟁의 전개과정을 설명과 판화 형식으로 새긴 4각 기둥의 부조물 5개가 손님을 맞는다. 광장 중앙엔 농기구인 쇠스랑을 형상화한 '대동의 장'이 있다. 쇠스랑을 든 팔 아래엔 돌이 쌓여 있다. 방문객들이 여기에다 직접 돌을 놓도록 함으로써 동학 정신의 확산과 계승을 노린다는 의도다. 그 옆에 농민군을 추모할 수 있도록 한 돔 형식으로 된 조형물인 '추념의 장'이 있다.

 역사광장을 돌아 나오면서 마지막으로 광장 우측에 있는 '동학농민군출진상'을 본다. 출진하는 농민군들을 부조와 조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한다.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 깨우는 '뭔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졸속이란 말의 뜻을 파고들면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반민주적 조치라는 뜻이 될는지 모르겠다. "대부분 조악하고 초라한 느낌을 주는 기념비니 탑들만 군데군데 널려 있네요"라고 불만을 토로하던 어느 독자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곳은 다른 곳보다는 나은 편이라고 위안을 삼아야 하나.   동학혁명의 지도자의 한 사람인 그가 죽음으로써 갑오동학혁명은 끝났다. 그렇다면 동학혁명은 실패한 혁명이었는가. 현실은 그들을 패배자로 낙인찍었을지라도 역사는 결코 그들을 패배자로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이차돈의 순교가 결국 신라에 불교 공인을 가져왔던 것처럼, 그가 이루고 싶었던 것 역시 시차를 두고 서서히 이루어졌다.

전봉준과 동학농민군은 우리 역사를 반봉건에서 개혁으로 건널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은 사람들이다. 동학혁명은 미완의 혁명이다. 동학혁명 이후에 일어난 4·19혁명이나 5·18 광주 민주항쟁도 모두 거기에 뿌리를 대고 있다. 불평등과 불합리가 있고 개혁할 것이 남아 있는 한 동학혁명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만일 전봉준이 다시 이 세상에 살아와서 내게 만일 전화를 걸어온다면 내게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 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지 말고 그 일을 이어가 달라고 말하지 않을까. 

/ 오마이뉴스 안병기

 

후정리 490 / 우석대 박물관 063 290 1097

본관 건물 21층에 전시실(291.9㎡), 자료정리실(48.82㎡), 사무실(17.85㎡X 2실)을 갖추고 있다. 우리 향토와 지방의 특색을 실린 농기구나 생활용품 등 민속자료를 중심으로 수집하여 이를 전시하는 민속박물관으로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미술 공예품이나 서화, 인류 문화에 관한 것도 수집할 예정이며, 각 지방의 유물과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를 통해 자료를 수집 정리하고 교수 학생의 연구활동도 돕고자 한다. 그리고 고고학이나 미술사 등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강연회도 개최하여 선인들의 유품과 문화적유산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자 한다.

삼례문화예술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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