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봉(雲峰)은 끝 모를 평전(平田)이다. 지리산 높은 능선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분지이자 해발 500m가 넘는 고지다. 이 높고 너른 땅을 적시며 람천(覽川)이 흐른다. 남쪽 지리산 골골의 물줄기와 북쪽 분지벽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만나 이룬 물길이다.
람천을 거슬러 마을들을 지난다. 아주 옛날 환웅은 인간세계로 내려와 첫 발을 디딘 나무 아래 신시(神市)라는 도시를 세웠다. 환웅이 내려왔다는 그 '신성한 나무'가 바로 '신단수'다.
그로부터 각 마을에는 신단수의 역할을 하는 당산목이 생겨났고 그것은 마을 숲의 형태로 이어졌다. 시간은 시대로 지나간다. 마을은 시대 위에 시대가 포개져 변화한다. 그러나 마을 숲은 버젓한 신비다. 빌 것이 많은 년 초다.


행정리 서어나무숲
200여년 전에 100여 그루 심어
겨울 북풍·여름철 범람 막아
영화 '춘향뎐'서 그네 타던 곳
행정(杏亭)마을은 람천의 상류인 공안천과 주촌천 사이에 자리한다. 마을은 1769년경 형성되었는데 당시 이곳 일대에 은행나무 숲이 아름다워 은행마을 또는 은행몰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천변의 탁 트인 마을이라 겨울이면 매서운 북풍이 몰아쳤고 여름이면 하천이 범람했다.

마을 사람들은 북풍과 범람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100여 그루의 개서어나무를 심었다. 약 200년 전의 일이다. 지금 행정리 서어나무 숲은 논의 호수 위에 섬처럼 떠 있는 모습이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큰 키와 수 만개의 가지들, 매끄러운 근육질의 줄기와 허연 수피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서어나무를 심은 뒤 마을에는 큰 병도 없었고 전쟁으로 죽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 숲이 마을을 보호해주고 있다고 믿는다.

숲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변화해가는 과정을 천이(遷移)라 한다. 이끼나 곰팡이류로 시작해서 곤충이나 풀들이 자라다가 키 작은 관목이 나타나고, 시간이 지나 햇볕을 받아야 잘 자라는 양수림(陽樹林)으로 바뀐다.
이곳에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음수(蔭樹)가 침입해 혼합림이 되었다가 최후에는 그 지방의 기후조건과 평형을 이룬 음수림이 된다. 이러한 음수림을 극상림이라 한다. 식물사회 천이의 마지막 단계에 발달하는 궁극의 숲, 극상림의 대표 수종이 서어나무다.
높은 산 깊은 숲의 극상림이 이 들판에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 비결은 사람 손길이다. 숲은 마을을 보호하고 마을은 숲을 보호하는 것이다. 행정리 서어나무 숲은 항상 15℃ 안팎의 온도를 유지한다. 숲은 주민들의 휴식처이자 지리산 둘레길을 찾는 탐방객들의 쉼터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에서 춘향이가 짙은 녹음 속에서 붉은 치마를 나부끼며 그네를 타던 곳이기도 하다. 행정리 서어나무 숲은 2000년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마을 숲 부문 대상을 차지했고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삼산마을 소나무 숲
마을 초입 기묘한 거목 위용
숲 앞으로 물길 돌려 맑은 물
산림청 유전자 보호림 지정

행정마을 맞은편 공안천 너머에 삼산마을이 자리한다. 고려 말에 양씨, 김씨, 이씨 등이 정착해 형성되었다는 마을이다. 마을 동쪽에는 운봉 향교의 안산인 삼태산이 있다. 크고 작은 봉우리가 세 개 있어 삼봉산이라고 불렸는데 여기서 마을 이름의 유래를 짐작해볼 수 있다.

마을 초입부터 기기묘묘한 소나무 거목들의 위용이 압도적이다. 안으로 들수록 소나무는 기이할 정도로 휘영청 휘어 박진감이 넘친다. 가지가 땅을 긴다. 거의 누운 소나무도 여럿이다. 용트림하는 모습이 숲의 맹수 같다. 지리산 바람에 휘어지고 물길 쫓아 휘어지고 햇살 찾아 휘어졌을까. 산림청에서도 신기했는지 유전자 보호림으로 지정했다.
수령은 150년 혹은 200년이라 하고 300년이 훌쩍 넘었다고도 한다. 소나무는 양수림이다. 천이과정의 중심에 있는데 척박한 곳에서도 꿋꿋하게 제 갈 길을 간다. 잎이 넓은 활엽수와 영역 싸움할 일이 없으니 제 세상에서 찬란하게 자유롭다.

삼산마을 소나무밭에는 당산나무 어른이 두 분 계신다. 북쪽의 아래당산은 할머니, 남쪽의 위 당산은 할아버지다. 1960년대까지는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액운을 물리치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당산나무는 지금도 정정하고 담담해 보인다.
오래전 삼산마을 사람들은 공안천의 물길을 돌려 마을 숲과 마을을 거쳐 흐르도록 했는데 아낙들은 그 물로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목욕 했다고 전한다. 지금도 솔숲 앞에서 마을 회관 옆 여섯 집의 담장 밑으로 맑은 물이 들고 난다. 동네 어귀에는 빨래터도 있다. 여전히 빨래하고 발 닦고 푸성귀 씻어내는 공간으로 보인다.

옛날 장정심 시인은 '추하고 퇴색한 것 모두 다/ 돌 우에 놓고 주물러/ 맑은 물에 흔들어 헤어서/ 추하고 더러운 것 흘려 띠워 버렸소'라고 노래했는데 하마 빨래터란 일상의 제의 공간이 아닐까.
신기리 새터마을 숲
풍수지리설 따라 옛 토성 복원
성 위에 다양한 수종 심어 울창
숲·축성표석 '국가자산' 지정

행정마을과 삼산마을에서 흘러온 람천 변에 신기리 새터마을이 자리한다. 지리산 영봉이 바라다보이고 운봉고원이 마을을 보호하는 듯한 명당자리다. 마을은 약 400년 전 임진왜란을 피하여 정착한 인동장씨들의 집성부락이다.

마을에는 선사시대와 삼국시대의 토성이 있었다고 한다. 운봉읍 북동쪽에 위치한 성산에서 한 갈래의 지류가 북동 방향으로 길게 뻗어내려 신기마을 외곽을 두른 형태로 풍수지리와 관련된 성이라고 한다.
그러다 조선 영조 24년인 1748년, 산줄기가 끊어져 지맥이 약하다는 지관의 말에 따라 마을사람들은 토성을 복원했다. 그리고 그 위에 느티나무를 심고 '보맥유림만대(補脈有林萬代)'라 새긴 축성표석을 세웠다.

1991년에는 집집이 쌀 한두 바가지씩 걷어 토성을 더 높이, 더 넓게, 더 길게 돋우었다. 지금 신기리 새터마을의 토성은 느티나무, 팽나무, 서어나무 등의 노거수를 비롯하여 쉬나무, 졸참나두, 밤나무, 아까시나무, 때죽나무, 보리수, 쥐똥나무, 병꽃나무, 화살나무, 찔레꽃, 가막살나무, 노박덩굴 등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진 울창한 숲이다.

느티나무들은 거목이 됐다. 큰 나무는 가슴둘레가 3m에 이른다. 둘레가 약 480㎝에 수령 260년이 넘는 노거수 느티나무는 신목이다. 마을 사람들은 정월초이튿날 밤부터 초사흗날 새벽까지 푸짐한 음식을 차려놓고 마을의 평안과 후손들의 번창을 기원하며 제사를 올린다. 신기마을 숲과 축성표석은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 영남일보 2025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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