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방곡곡/강원도

철원 와수리 와수시장

by 구석구석 2024. 7. 9.
728x90

와수오일장

 

 

[시골장터기행] 전국 어디서나 오일장 백배 즐기기 철원 와수오일장 - 여행스케치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

www.ktsketch.co.kr

[여행스케치=철원 전설기자] 만반의 준비를 하고 떠나는 여행지가 있다면, 반대로 지갑 하나 달랑 들고 찾아가는 여행지도 있는 법.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오일장이 바로 그런 즉흥 여행에 어울리는 곳이다. 규모가 작아도, 길을 몰라도 장터 구경을 더욱 재미있게 즐기는 방법을 아낌없이 전한다.

어영부영 하는 사이 벌써 정오다. 여행계획이 어그러지면서 동서울터미널을 헤매느라 아까운 시간만 잡아먹었다. 더 늦기 전에 어디로든 다녀오자 마음먹고 매표소 앞에 선다. 목적지는 강원도 철원 와수리. 과거 군대 간 친구 면회하러 두어 번 가본 경험이 있는 동네다.

당시 친구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3사단 백골부대와 15사단 38연대 장병들의 오아시스 로 외박과 외출에 바라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어 일명 ‘와수베가스’라 불리는 곳”이다. 마침 1, 6일 마다 들어서는 장날이라니 더 재볼 것도 없다. 가벼운 마음으로 일단 출발이다.

와수리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직진하면 그 앞이 바로 와수전통시장이다. 한눈에 장터의 끝과 끝이 다 보일만큼 규모는 작지만 장날이라 평소보다 더 많은 장꾼들이 나와 있다.

쉼 없이 왕왕 짖는 강아지 인형이나 못난이 인형 같은 추억의 장난감을 지나 없는 것 빼곤 다 있을 것 같은 만물상을 지나 장터 안으로 입장한다.

장터 안쪽은 꽃샘추위가 무안할 만큼 봄빛이 만연하다. 달래, 냉이, 약쑥, 원추리, 머위대 등등 연한 봄나물이 지천에 널렸다.

“장터는 봄이 빨리 와요. 봄만 빠른가, 어느 계절이든 제일 먼저 맞죠. 시골 사람들은 계절을 먼저 준비해야 하니까. 봄 오기 전에 종자 구하고 쥐덫도 사다 놓고, 여름 오기 전에 부채며 모시옷이며 들여놓고 하려면 파는 사람이 한발 더 빨리 들여다 놔야 하거든요.”

빨간 바구니에 소담스럽게 담긴 잡나물을 한 소쿠리 산다. 유채나물이며 취나물 등등 무쳐먹는 여러 종류의 나물이 뒤섞여 있다.

집에 돌아가면 살짝 데쳐서 된장에 무쳐 먹어야지. 아직 매서운 바람에 목이 움츠러들면서도 봄기운을 집으로 실어갈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팔 사람 살 사람이 함께 한나절을 보내는 장터에는 저렴한 값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주전부리가 있다. 와수오일장을 한바퀴 돌면서 선택한 오늘의 메뉴는 장터국수.

728x90

잘 말린 멸치와 어묵으로 우린 맑은 육수에 갓 삶은 국수를 양껏 말아준다. 여기에 양념장과 김 가루를 듬뿍 올리면 한 끼로 손색없는 장터국수가 완성된다. 그런데 언뜻 봐도 양이 장난이 아니다.

“아침에 나와 뼈 빠지게 고생하는데 사람들 상대로 밥장사 하려면 양이라도 배부르게 줘야지. 퍼지게 전에 김치랑 들어. 모자라면 순대도 먹고 팥죽도 먹고. 다 3000원이야.”

식기 전에 국물부터 들이킨다. 노르스름한 육수와 함께 국수면발이 줄줄이 딸려온다. 그 바람에 그릇에 입도 못 떼고 허겁지겁, 며칠 굶기라도 한 사람처럼 급하게 국수를 삼킨다.

제때 삶아 쫄깃한 국수가 퍼지기 전에 볼따구가 미어질 만큼 양껏 건져먹는다. 한참을 먹어도 양이 줄지를 않는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지경인데 사람 식욕이라는 게 침 끝이 없다.

눈앞에서 김이 펄펄 나는 순대를 보고 있자니 군침이 넘어간다. 결국 추가로 순대 한접시를 주문한다.

국수 한 젓가락에 몰캉몰캉한 허파, 퍽퍽하지만 고소한 간, 오독오독 씹는 맛 일품인 귀를 곁들여 차례로 후루룩. 마지막엔 쫄깃한 순대를 소금에 콕 찍어 먹는다. 장터국수와 순대의 궁합이 이토록 절묘할 줄이야. 나만의 주전부리 목록에 ‘순대국수’가 추가된다.

장터에 나올 때마다 한봉지 씩 챙겨가는 유가사탕, 눈깔사탕, 땅콩 캬라멜, 호박 젤리가 한바구니에 2000원. 값을 치르고 사탕을 기다리는 데 도란도란 할머니 두 분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듣는 사람까지 왠지 숨을 죽이게 되는 그런 나긋나긋한 목소리. 귀를 쫑긋 연다.

“영감이 순대 좀 사오라고 무릎이 후들거리는 나를 쫓아냈네. 그렇게 밖으로 쏘다니길 좋아하던 양반이 풍으로 쓰러지면서 자기 몸에 갇혔어. 혼자선 꼼짝을 못하니까 창살 없는 감옥이야. 나도 저 옆에 주저 앉을까봐 그러는가. 기를 쓰고 쫓아내서는 밖으로만 돌리네.”

아프리카의 작가 아마두 앙파데바는 이런 말을 했다. “노인 한 사람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 장터는 이런 의미에서 봤을 때 몇 십여 개의 살아있는 도서관이 모여 있는 중앙도서관이다.

장터에 가거든 그 도서관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어르신들의 말씀을 받아 적기만 해도 한편의 시가 된다. 무심코 툭 던진 한 마디에 가슴이 자르르 울리는 순간이 장터 바닥에 아무렇지도 않게 굴러다닌다.

소화도 시킬 켬 장터 주변을 크게 한바퀴 돌아보려는데 길가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곧이어 파란 하늘을 가로 질러 “뻥이요!” 고함소리가 난다. 아뿔싸. 오일장을 즐기는 마지막 방법을 잊었구나. 장터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몰려 있는 곳을 쫓아가는 것이렷다.

출처 : 여행스케치(http://www.ktsketch.co.kr)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