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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안보/육군

1보병사단 임진각 GOP DMZ 전진수색대대

by 구석구석 2024.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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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월 15일 창립한 국방경비대는 동년 6월에 조선경비대로 명칭을 바꾸고서 1947년 12월 1일에 3개 여단을 창설하였는데 그중 서울의 '제1여단'이 1949년 5월 12일 '제1사단'으로 승격된 것이 제1보병사단의 시작이다.

1978년에는 제3땅굴을 발견하기도 했다. 도라산 바로 밑에 있기에 도라산역 관광코스로 끼어있기도 한다. 또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당시 작업반으로 위장한 특전사가 진입할 때 판문점을 둘러싸고 수색대대, 중대 병사들이 전투태세를 취한 채 수풀 안에 매복해있었다.

사단예하에 11여단 12여단 15여단 포병여단이 있으며 임진강을 건너는 통일대교를 관리하고 있어서 각종 미디어에 출연 빈도가 아주 많은 부대다.

18일 오후 경기 파주시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내 남방한계선 철책 경의선 통문에서 육군1보병사단 쌍용여단 경의선경비중대 장병들이 DMZ 내부 시설물 점검을 마치고 복귀하는 작업인원들을 위해 통문을 열고 있다. 조용학 기자

개성을 거쳐 평양으로 향하는 길. 전쟁의 끝을 알리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곳. 경기도 파주시는 대한민국의 현대 역사에서 큰 의미를 지닌 지역이자 안보의 요충지다.

현재 파주 지역을 지키는 부대는 크게 두 곳. 육군1보병사단과 9보병사단이다. 특히 1사단은 1947년 12월 1일 서울 남산동에서 육군 최초로 창설된 부대로, 1971년 미 2사단으로부터 책임지역을 인수한 뒤 지금까지 50년 넘게 이곳을 지키고 있다.

1사단이 담당하고 있는 통일대교 일대를 돌아본 지난 17~19일. 이곳에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 여유를 느껴볼 수 있었다. 동시에 이런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물 밑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1사단 장병들의 노고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북 평화 통일의 관문을 지키고 있는 1사단 장병들의 얼굴에서 긍지와 자부심도 엿볼 수 있었다.

/ 국방일보 2023.4.25 글=맹수열/사진=조용학 기자

1사단 수색대대의 소형전술차량들이 통문 앞에 대기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미군 볼링장이 미디어 아트 센터로…최전방의 변신

이번 여정의 시작은 그동안과 달리 여유가 가득했다. 통일대교를 넘기 전 바로 앞에 조성된 임진각 국민관광지을 들렀기 때문이다.

임진각 국민관광지는 1972년 실향민들을 위해 1번 국도를 따라 민간인이 갈 수 있는 가장 끝지점에 세워졌다. 전망대와 편의시설로 구성된 임진각으로 시작된 이곳은 50여 년 동안 증축을 거듭하며 망배단,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 자유의 다리, 평화누리공원, 평화랜드, 평화 곤돌라 등 수많은 시설을 갖춘 전국구 관광지로 거듭났다. 경기도관광공사에 따르면 현재 휴일 하루 평균 1만 명 이상, 평일에도 3000명 가까이 방문하는 유명 관광지로 거듭났다.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인근 임진각 국민관광지에서 내려다 본 경의선 철교. 조용학 기자

먼저 2020년 개장한 뒤 새로운 명물로 거듭난 평화 곤돌라로 향했다. 평화 곤돌라는 임진각에서 임진강을 건너 민간인 출입통제선 지역인 군내면까지 850m 구간을 운행하는 케이블카다.

곤돌라가 위치한 3층 건물은 베이커리 카페, 편의점 등 관광객들을 위한 시설이 완비돼 있었다. 지역 특산물인 장단콩을 이용한 빵, 빙수는 물론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먹었다는 ‘교황빵’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평화 곤돌라를 운영하고 있는 파주시·경기관광공사는 이 지역을 지키고 있는 1사단 장병들을 위해 무료 탑승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사단 장병이라면 누구나 최대 4인 동반까지 무료로 곤돌라를 이용할 수 있다. 이런 연유로 평화 곤돌라는 사단 장병들이 면회 온 부모님을 모시고 즐기는 명물이 됐다고 한다.

임진각평화곤돌라에서 바라 본 경의선 철교. 조용학 기자

곤돌라를 타고 임진강을 건너자 오른쪽으로는 통일대교, 왼쪽으로는 경의선 철교가 보였다. 강변으로 접어들자 익숙한 철책과 초소가 눈에 띄었다. 과학화 장비인 감시 카메라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초소는 관광지이기는 하지만 실제 작전이 벌어지면 증가 초소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관광지의 한가함과 최전방의 긴장감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강 건너편에는 과거 캠프 그리브스라는 이름으로 임진강 일대에 주둔하던 미 2사단 장병들이 볼링장으로 사용하던 곳을 리모델링한 ‘갤러리 그리브스’가 있다. 갤러리 그리브스는 2007년 캠프 그리브스 부지가 우리 정부에 반환된 뒤 2016년 문화재생사업의 하나로 조성됐다.

미군들이 볼링을 치고 맥주도 마시던 이곳은 내·외부의 콘크리트 벽과 철골 구조는 과거 모습 그대로를 유지한 채 미디어 아트 센터로 재탄생했다. 지금은 국민들에게 전쟁의 교훈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장소로 변모했다. 김옥단 문화관광해설사는 “평소 2000명 가까이, 주말에는 3000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갤러리 그리브스 내부. 미군이 주둔했던 캠프 그리브스의 볼링장을 전시공간으로 재조성했다. 조용학 기자

“아무래도 연배가 있으신 분들이 많이 와요. 실향민이나, 전쟁을 기억하는 사람들이죠. 제 설명을 듣고 전시물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있어 마음이 찡하기도 합니다. 현장학습을 온 학생들도 많은데 이 곳에서 순국선열의 애국심과 의협심을 배워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전쟁의 실상을 알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네요.”

“평화의 소중함, 깨닫는 계기가 되길”

다시 곤돌라를 타고 관광지로 복귀한 뒤 이곳의 터줏대감인 임진각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 주변에는 명절마다 실향민들이 고향을 향해 제사를 지냈던 망배단과 자유의 다리, 경의선 장단역 증기 기관차 등이 위치해 있었다. 한 켠에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6·25 전사자 유가족 시료채취 홍보를 하는 모습도 이색적이었다.

임진각 앞에는 임진강 철로를 일부 보존해 공개하고 있었다. 문산읍과 장단면을 연결하는 복선 철교였던 임진강 철로는 전쟁 당시 폭격으로 교각만 남았지만 2000년 복구돼 상행선은 스카이 워크로 운영되고 있다.

바로 옆으로는 경의선 장단역에서 발견된 녹슨 증기기관차의 실물이 전시돼 있었다. 1000여 개의 총탄 자국, 휘어진 바퀴를 통해 당시의 긴박함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기관차는 개성에서 평양으로 향하던 중 중공군에게 피해를 입고 장단역으로 후진하다 완전히 파괴돼 방치됐다고 한다. 시간이 지난 채 DMZ 안에서 발견된 이 기관차는 2007~2008년 복원 작업을 거쳐 임진각에 자리를 잡았다. 기관차 앞에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진수 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군에서 정신교육을 받으며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배운 기억이 나네요. 40대가 되면서 안보에 관심이 생겼는데 이 곳에서 다시 한 번 지금의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길 바랍니다.”

임진각 국민관광지 안에 설치된 장단역 증기기관차 옆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지나가고 있다. 조용학 기자

임진각 뒤로는 임진강지구전적비, 미국군 참전기념비, 6·25전쟁잠전기념비, 트루먼 미 대통령 동상 등 다양한 추모 조형물이 설치돼 있었다. 엄숙한 마음으로 돌아보던 중 바로 옆에 조성된 놀이공원에서 흘러나오는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이질감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804 작전’으로 불리는 2015년 8월 4일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당시 작전에 참여했던 1사단 장병들의 전우애와 군인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조형물 ‘평화의 발’이었다. 동행한 1사단 공보장교 심훈재 중위는 유독 경건한 표정으로 기자에게 말했다.

“평화의 발은 사단 장병들이 804 작전을 계속 상기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이제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사단 장병들은 지금도 804 작전을 기억하고, 완전작전 의지를 불태우고 있죠. 이제 장병들을 만나 직접 확인해보시죠.”

임진각 국민관광지에 조성된 ‘평화의 발’. 2015년 북한의 DMZ 목함지뢰 도발로 빼앗긴 두 장병의 다리를 형상화 했다. 조용학 기자

거듭된 실제 상황, 장병들을 단련하다

심 중위를 따라 통일대교를 넘어 사단의 가장 동쪽에 자리한 백학대대 A소초로 향했다. 통문을 지났지만 여전히 지역 주민이 설치한 비닐 하우스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군과 민간 시설이 뒤섞인 모습은 다른 지역에서 느낄 수 없는 이질감을 줬다. 하지만 이런 느낌도 잠시. 도로를 따라 고도를 높일 수록 전방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리고 A소초에서도 가장 동쪽 끝에 있는 한 초소를 방문했다.

초소는 40~50m 높이의 절벽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 동안 돌아본 초소들에 비하면 그리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눈 앞으로 평야와 고지가 넓게 펼쳐 보이며 이 곳이 요충지임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17일 1사단 백학대대 관할의 남방한계선 철책 풍경. 조용학 기자

철책 너머로는 ‘생태계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는 DMZ의 습지가 군데군데 조성돼 있었다. 소초에서 경계 근무를 서던 전강민 일병은 “근무를 서며 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적막해 보이지만 중간 중간 멧돼지 같은 동물들이 이동하는 것이 다 보입니다. 혹시라도 철책을 훼손하지는 않을지 더욱 신경이 쓰이죠. 잘 보이는 만큼 언제 적이 나타날 지 모른다는 긴장도 하게 됩니다.”

군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무용담’ 하나 정도는 있다고 하는데 전 일병 역시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벌써 이야깃거리가 있다고 했다. 그는 3개월 전 경계 근무를 서다 실제 상황이 발생해 초동조치를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살면서 그 때처럼 가슴이 뛴 적이 없었습니다. 상황 발생 지점으로 달려가면서도 어떻게 대응할 지, 훈련하고 배운 것만 계속 되뇌였습니다. 다행히 자연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판명이 났고 그대로 상황은 종료됐습니다. 많이 놀랐지만 그래도 실수 없이 잘 조치해 자랑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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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근무하던 은종민 일병은 “특히 최근에는 실전 투입이 많아 더욱 임무 수행이 익숙해진 것 같다”고 말한 뒤 “다른 동기들에 비해 아마 숙련도는 손꼽히지 않을까 싶다”며 웃어 보였다. 늘 긴장 상태를 유지하면 피곤하지 않을까? 기자의 질문에 은 일병은 이렇게 답했다.

“물론 그렇기도 합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빈틈없는 경계작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이 GOP 완전작전의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1사단 백학대대의 한 초소에서 경계근무를 하던 장병이 쌍안경으로 전방을 관측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조금 서쪽으로 옮겨가 만난 또 다른 초소에서는 근무교대가 이뤄지고 있었다. 근무교대는 초소 입구에서 한 명이 경계를 선 채 쌍안경, 초동조치낭 등 장비를 확인하고, 특이 사항을 보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두 곳만 돌아봤지만 A소초 장병들에게서는 유난히 엄정한 군기가 느껴졌다. 소초장 김용민 중위는 “언제든 실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소초원들에게 주지 시키고 있다”며 “정신적 대비 태세 완비와 매일 반복되는 교육훈련으로 소초원들은 늘 단련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학대대 본부 앞에는 ‘사단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전진바위가 있다. 큰 바위를 쪼개 만들어진 편평한 단면에는 사단 마크와 경례 구호은 ‘전진’, 과거 사용한 것으로 것으로 추정되는 ‘천상천하 제1사단’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유명한 바위지만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 그 유래를 아는 사람은 현재 없다고 한다. 역사가 깊은 1사단에서도 더욱 유명한 ‘육탄여단’ 소속답게 백학대대는 6·25 전쟁 영웅인 김만술 소위와 육탄10용사의 후예를 자처하고 있다.

1사단 백학대대 본부 근처에 있는 전진비위 앞으로 현궁이 지나가고 있다. 조용학 기자

외국 관관객 다수…1사단 “안전, 또 안전”

다음날 첫 일정은 새로 개장한 도라전망대였다. 비 오는 화요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도라전망대는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이날부터 DMZ 평화관광 관람 인원을 확대하면서 생긴 효과로 추정됐다. 전망대 측은 그 동안 평일 기준 셔틀버스 10대, 단체관광버스 10대로 인원을 제한하던 것에서 단체관광버스를 20대로 늘렸다. 버스 1대에 45명이 탈 수 있음을 가정하면 하루에 450명이나 늘어난 것. 주말에는 셔틀버스 14대, 단체관광버스 30대까지 전망대를 방문할 수 있도록 했다.

도라전망대 전경. 조용학 기자

늘어난 방문객들은 전망대의 안전을 책임지는 1사단 장병들에게 부담이기도 하다. 혹여 나쁜 마음을 먹거나 의도치 않은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병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 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아무래도 분단 국가의 현실을 느끼고 싶어서겠죠. 많은 외국인들이 찾아온다는 것은 곧 우리가 군사 외교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방문객들의 안전을 위해, 한국의 국격 제고를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단 안보통제부사관 박선일 원사의 말이다.

시간이 지날 수록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다. 하루 1000명에 육박하는 관광객들은 이 곳을 자유롭게 거닐며 한반도 안보의 현실을 실감하는 듯 했다. 망원경으로 한가로이 북한을 바라보는 이들을 보며 평화의 소중함을 상기할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은 기자만의 것은 아닌 듯 했다. 자신을 마크라고 소개한 미국인 남자는 “파주를 첫 방문지로 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으로만 보던 풍경을 실제로 보니 경이롭다”면서 “대단히 아름다운 자연에 감탄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 특히 파주 방문은 놀라운 경험이다. DMZ의 자연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도라전망대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DMZ 일대를 바라보고 있다.. 조용학 기자

도라전망대 인근 3땅굴 역시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이 곳은 안보전시관과 땅굴체험 코스가 마련돼 있다. 안보전시관은 판문점과 파주를 중심으로 분단에서 지금에 이르는 역사적 사실을 유물과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었다.

제3땅굴을 찾은 관광객들이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용학 기자

땅굴체험 코스에서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줄을 선 재미교포 3세 에밀리 정 씨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정 씨는 “땅굴을 직접 들어가 볼 생각을 하니 매우 즐겁다”면서도 “하지만 또 하나의 조국인 한국의 분단은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여행 기간 내내 한국의 발전을 눈으로 확인해 기뻤다”며 “반드시 한국에 영원한 평화가 찾아오기 바란다”고 기원했다.

제3땅굴을 찾은 관광객들이 JSA 경비대대를 구현한 포토존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DMZ 안에서 근접전투를?…1사단 수색대대의 이색적인 훈련

1사단 수색대대의 훈련을 지켜보기 위해 수색종합훈련장으로 향했다. 훈련장에서는 DMZ 수색·매복작전 투입을 앞둔 장병들의 즉각조치 사격훈련이 한창이었다. 훈련은 개인·공용화기 사격과 근접전투사격, 상황조치 야외기동훈련(FTX)로 구성됐다. 특히 대대는 대항군을 운용하며 DMZ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모사해 상황조치 능력을 크게 끌어올리고 있었다.

“평시 땀 한 방울이 전시 피 한 방울을 아낄 수 있습니다. 더욱 실전적이고 효과적인 훈련을 연구하고, 이를 거듭함으로써 완전작전을 이뤄나가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직접 훈련장에서 장병들을 독려하던 오제용(중령) 대대장의 말이다.

오 대대장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먼저 이뤄진 개인·공용화기 사격에서 장병들은 K1 소총, K201 유탄발사기, K3 기관총 등 실제 작전에서 각자가 사용하는 화기로 정확한 사격 능력을 뽐냈다.

DMZ 수색·매복 작전 투입을 앞둔 수색대대 장병들이 수색종합훈련장에서 개인·공용화기 사격을 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가장 눈에 띈 것은 근접전투사격. 근접전투기술(CQB)는 도시지역 작전에서 많이 활용되는 것이 일반적. 하지만 대대는 DMZ의 환경에 맞춰 적이 침투하거나 적과 조우할 경우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격 기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우선 서서 쏴 자세로. 태권도 앞굽이 자세를 한다는 느낌으로 자세를 잡고 사격을 합니다. 이어 은폐물에 숨어서 탄창을 교체하고….”

대대 훈련지원부사관 손현준 상사는 안전을 위해 도입한 젤리총으로 세심한 시범을 선보였다. 손 상사의 물 흐르듯 이어지는 사격과 기동을 보는 장병들의 입에서는 감탄이 절로 나오고 있었다.

“항상 상황을 잘 인식해야 합니다. 왜 서서 쏴를 하고, 왜 기동사격을 하는지, 어디로 은폐해야 하는지를 계속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천천히 해도 됩니다. 하지만 행동을 하기 전 행동의 이유를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수색대대 장병들이 근접전투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손 상사의 시범대로 장병들이 공포탄을 사용한 훈련을 시작했다. 단조로운 자세가 아닌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사격을 이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탄 걸림 같은 돌발 상황에서도 장병들은 침착히 대응했다. 이를 지켜보던 손 상사 역시 “탄 걸림은 실제 작전 중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서 “탄 걸림이 문제가 아니라 이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한 사람이 훈련을 하는 동안 다른 장병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모두가 무사히 훈련을 마치자 그제야 장병들의 얼굴에 웃음이 감돌았다. 손 상사는 “신병들까지도 이제 막 배운 것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후배들을 대견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더 실전적으로…‘훈련에 진심’인 장병들

대대의 수색·매복 상황조치 FTX도 실전적이었다. 대대는 DMZ 작전 지역을 그대로 따온 지형·지물을 훈련장에 배치해 실제 작전과 같은 환경을 조성했다. 이날은 작전 지역 안에서 귀순자가 발생한 상황과 매복호에 설치된 적 급조폭발물(IED)로 인해 부상을 입은 상황을 가정, 부상자를 안전하게 후송하는 훈련이 진행됐다. 특히 1사단은 804 작전 당시 하재헌 예비역 중사와 김정원 중사가 부상을 입은 뒤 DMZ 수색·매복 작전 과정에서 적이 IED를 설치한 상황을 가정해 이를 점검하는 절차를 엄격히 진행하고 있다. 부상자가 발생하더라도 추가 피해 없이 안전하게 후송하는 훈련도 강도 높게 실시하고 있다.

훈련이 시작되자 장병들은 줄 지어 철문 앞으로 향했다. 선두에 선 것은 지뢰탐지기를 든 조장. 그는 안전을 확인하며 신중히 나아갔다. 철문 앞에서는 도리깨처럼 생긴 부비트랩 확인봉으로 다시 한 번 폭발물 점검을 했다.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 장병들은 팀장의 지시에 따라 소리 없이 전진해 나갔다. 한참을 걷던 중 드디어 소란이 생겼다.

1사단 수색대대 장병들이 상황조치 훈련 중 멈춰서서 전방을 경계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전방 적 발견!”, “전방 미상 인원 확인!”

장병들은 순식간에 산개해 사방을 경계했다. 팀장은 무전병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추가 병력 투입을 요청할 것을 지시했다. 모든 장병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임무를 망설임 없이 수행했다. 그 사이 미상 인원은 귀순 의사를 밝혔고, 선두의 두 명은 절차에 맞춰 포박을 실시했다.

“당신과 저의 안전을 위해 포박하겠습니다.”

장병들은 케이블 타이를 여러 개 이용해 귀순자를 단단히 포박했다. 훈련에 임하는 이들의 자세가 얼마나 진지한 지가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장병들은 귀순자를 포위한 채 안전한 지역까지 이동하며 첫 상황 조치 훈련를 마쳤다.

다음은 부상자를 후송하는 훈련. 대대는 더 실전적인 훈련을 위해 ‘블러드 팩’이라는 가짜 피를 훈련에 활용하고 있었다.

“진짜 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됩니다. 사용해 보니 장병들이 더 훈련에 몰입하기도 하고요.” 오 대대장의 설명이다.

수색대대가 실전적 훈련을 위해 활용하고 있는 가짜 피 ‘블러드 팩’으로 구현한 손 부상 모습. 조용학 기자

상황은 매복호 앞에 엎드려 부비트랩 확인봉으로 점검을 하던 조장이 폭발로 인해 팔에 부상을 입는 것으로 정해졌다.

훈련을 참관한 노강진(대위) 2중대장이 공포탄을 발사하자 매복호 앞 장병은 그대로 쓰러졌다. “미상 폭발!”이라는 외침에 이어 팀장은 팀원들의 상태를 확인했고, 부상자가 있음이 보고됐다.

1사단 수색대대 장병이 수색·매복 훈련에서 매복호의 폭발물 점검을 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부상자에게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던 장병에게 확인 지시가 내려왔다. 이 장병은 포복을 하며 다가갔다.

“조장! 괜찮아?”

부상자의 의식을 확인한 장병은 부상 정도를 팀장에게 보고한 뒤 곧바로 부상자 끌고 안전 지역으로 이동했다. 접근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포복으로 부상자를 데리고 나오는 모습은 마치 실제 상황을 보는 듯 했다.

부상자의 안전이 확보되자 팀장을 비롯한 다른 장병들은 역할을 나눠 경계와 응급조치, 상황 보고를 시행했다. 부상자가 의식을 되찾자 이들은 보호 대형을 갖춰가며 빠르게 복귀했다.

1사단 수색대대 장병들이 DMZ 수색·매복 훈련 중 부상자가 발생한 상황을 가정해 상황조치 훈련을 하고 있다. 대대는 ‘블러드 팩’이라는 가짜 피를 활용, 훈련의 실전성을 높였다. 조용학 기자

흥미로운 점은 훈련 상황 설정의 주역이 장병들이라는 것. 훈련임에도 마치 실제처럼 상황 보고를 하고, 조치를 이어가는 것에서 이들이 얼마나 훈련에 진심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오 대대장에 따르면 장병들은 매일 이런 상황조치 훈련을 3개 이상, 1시간 30분 넘게 실시하고 있다. 강평과 미흡한 부분에 대한 재숙달까지 진행하는 교육훈련 시스템이 갖춰졌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훈련을 마친 장병들이 헬멧을 벗자 그리 덥지 않은 날씨임에도 머리는 땀으로 흥건했다.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한 장병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를 격려하며 힘차게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1사단 수색대대 장병들이 DMZ 수색·매복 훈련을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조용학 기자

“GOP 완전작전의 비결은…”

수색대대를 뒤로 하고 경의선 도로를 통해 개성으로 향하는 관문 역할을 했던 통문을 찾았다. 경의선 도로는 과거 고(故)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이끌고 방북했던 것은 물론 이산가족 상봉, 경제 협력 등의 주요 통로가 됐던 길이다. 하지만 2020년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된 뒤로는 왕래가 없는 상황이다.

DMZ 내부 경계 작전을 마친 장병들이 1사단 도라대대가 관할하는 경의선 통문을 통해 복귀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통문 주변에는 통일부 경의선 도로·철도 남북 출입 사무소가 자리 잡고 있다. 통문과 그 너머 DMZ 구역은 쌍용여단 경의선경비중대가 책임지고 있다. 과거 출입이 활발했던 때와 달리 이제는 코레일, 한전 등이 시설물 점검을 하는 것이 주가 되면서 중대와 1사단 서해지구운영단은 경계 및 경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날도 장병들은 경의선 철도를 점검하기 위해 통문을 넘은 코레일 관계자들과 함께 작전을 수행했다.

현행 작전 부대이지만 사단이 강조하고 있는 훈련은 이 곳에서도 강도 높게 이뤄지고 있었다. 이수환(중위) 경의선경비중대 부중대장은 “작전을 완벽히 수행하기 위한 통행 모의훈련 등을 수시로 진행하며 실전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사단 장단대대가 관할하고 있는 임진강 강안 초소 옆에 세워진 1번 월경방지표지판. 조용학 기자

통문에서 다시 서쪽으로 이동해 사단의 최서측방 소초에 도착했다. 이 곳에서 ‘0001’이라고 쓰여진 철주와 ‘1번 월경방지표지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8월 22보병사단에서 본 마지막 철주가 떠오르며 그 동안의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서측방 소초는 임진강은 물론 북쪽 평지가 널리 내다보이는 요충지였다. 감시 카메라는 쉼 없이 돌아가고, 근무자들은 넓은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근무자 임태규 일병은 개활지를 중심으로 자신이 감시해야 하는 주요 지점과 적 예상 침투 경로를 정확히 설명했다.

그런데 철책 너머로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불모지 안에 세워진 표적이었다. 동행한 쌍용여단 공보정훈과장 최승호 대위는 “사단이 실시하고 있는 GOP 즉각조치 사격훈련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계 중 벌어질 수 있는 사격 상황을 가정해 가장 적절한 자리에 표적을 만들었습니다. GOP 즉각조치 사격훈련 외에도 광망 절단 등 각종 상황조치와 진지 점령 등 다양한 훈련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GOP 완전작전을 위해서는 훈련, 또 훈련이 기본이죠.”

1보병사단 도라대대 장병이 초소 근무를 하며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1사단을 동에서 서로 가로 지르며 유독 불모지 작전이 완벽히 이뤄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 대위는 “너른 평지가 많다 보니 적의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평소 불모지 작전을 확실하게 진행해 놔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끊임없는 작전과 훈련, 평화를 보장하다

다음날도 다시 통문을 방문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코레일 관계자들이 철도 점검을 하고 돌아왔다. 이들과 함께 작전에 임한 노진상(중령) 서해지구운영단장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1사단 서해지구군운영단 장병의 완장. 조용학 기자

“원래 DMZ 구역은 유엔군사령부가 관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군이 관리하는 지역이 딱 두 곳 있는데 동해지구와 이곳입니다. 원활한 관리를 위해 유엔사가 권한을 위임한 것이죠.”

외부 방문자가 많지는 않을 듯 한데 아무래도 임무가 줄지 않았을까? 노 단장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외부 방문자나 공사 관계자가 없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은 시설물 점검을 위해 운영단 장병들이 출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 단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인근에서 차단진지 점령 훈련을 마친 장병들이 육군의 대표 기동 플랫폼인 소형전술차량 ‘현마’를 타고 부대로 복귀하고 있었다. 현행 작전과는 별개로 훈련이 거듭된다던 최 대위의 이야기가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훈련, 또 훈련하는 1사단’의 면모를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경의선 통문 주변에서 DMZ 내부 경계작전에 투입된 1사단 장병들이 군용 트럭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국군의 퍼스트(FIRST), 번영의 밑거름 되다

흔히 표면적인 고요함 이면에 숨은 필사적인 움직임을 백조에 비교하곤 한다. 우아하게 호수 위에 떠 있는 백조는 사실 물 밑에서 끊임없이 물갈퀴를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파주와 파주를 지키는 1사단의 모습 역시 이런 백조와 유사했다. 전쟁의 상흔을 딛고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난 파주. 이곳을 찾는 수 많은 관광객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여유와 풍요는 매일 실제 작전과 훈련을 거듭하는 1사단 장병들의 노고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1사단 쌍용여단 경의선경비중대 장병들이 작전을 마친 뒤 통문 앞 검무소에서 도열해 있다. 장병들 뒤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격언인 ‘일부다경 족구천부(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조용학 기자

1사단은 스스로를 ‘국군의 퍼스트(FIRST)’로 부르고 있다. 이는 단순히 ‘1’이라는 숫자 때문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최초 창설 사단이라는 자부심, 6·25전쟁 당시 평양 입성의 선봉에 섰다는 명예, 산과 물을 넘나들며 다양한 경계 작전을 펼치고 있다는 책임감, 대한민국 안보의 최전선을 담당한다는 사명감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파주에서 느낀 지금의 번영은 이런 1사단의 긍지가 토대가 됐음을 자명한 사실이었다.

1사단 전진부대 수색대대 (tistory.com)

 

1사단 전진부대 수색대대

한국군 최초의 수색대 1사단 수색대대 / 장단면 노상리최초로 창설된 전투사단(송호성초대사단장)이며 평양에 1사단 15연대가 제일 먼저 입성하여 이승만으로부터 전진휘호를 받았으며 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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