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여행 금오산 대혜폭포

 

구미는 우리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공업도시다. 공업도시가 으레 그렇듯 이방인들에게는 딱딱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구미 시가지를 찬찬히 돌아다니다 보면 딱딱함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으로 먼저 다가온다. 왜 그럴까? 아마도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금오산이란 걸출한 명산 때문이 아닐까? 금오산이 내뿜는 기운이 공업도시의 이미지를 확 바꿔 놓고 있다. 

금오산으로 간다. 영남8경 또는 경북8경의 하나로 1970년 6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금오산(金烏山)이라는 이름은 ‘태양 속에 산다는 세 발 달린 황금빛 까마귀(금오)가 저녁 노을 속에 금빛 날개를 펼치며 비상하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 붙여진 것이라는데 어디에서도 금빛 까마귀를 볼 수 없으니 아쉽다면 아쉬운 일이다.

 

칠곡 숭오리 금오산 금오동천

구미 사람들에게 이 산은 쉼터이자 영혼의 안식처다. 금오산(해발 976m)은 만만치 않은 높이의 산이지만, 메타세쿼이아들이 늘어선 초입은 완만한 산책길이다.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 향기를 맡으며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도 많다. 아늑하고 호젓한데다 경치도 그만이어서 가을 정취를 만끽하고 낭만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발걸음이 무겁거나 시간에 쫓긴다면 공원 관리사무소에서 대혜폭포까지만 올라가도 좋다. 대혜폭포에서 금오산성 내성을 지나 정상까지는  1시간 20분 남짓 걸린다. 케이블카가 있는 산 들머리에서 정상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기암절벽을 두르고 들어앉은 해운사가 나타난다. 주변 경관이 빼어나 다리쉼을 하면서 산의 정기를 받기 좋은 곳이다.

금오산의 단애

해운사에서 아찔하게 이어진 바위 난간을 잡고 허위허위 오르면 커다란 굴이 나타난다. 야은 길재 선생이 수도처로 삼았다는 도선굴이다. 굴 난간에 몸을 기대고 밑을 바라보니 그야말로 장관이다. 황금색으로 물든 산숲이 가슴으로 와락 달려드는데 가슴이 탁 트인다.

도선굴을 보고 다시 돌아 나오면 대혜폭포로 가는 길이 나온다. 바위 절벽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30여m의 폭포수가 장관이다. 떨어지는 물소리가 산을 울린다고 해  ‘명금폭포’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름(대혜)에서 보듯 등산객들에게 큰 은혜를 베풀고 있다. 물이 떨어지면서 생긴 연못과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소금강이란 별칭도 있다.

금오산 대혜폭포

대혜폭포에서 길은 사뭇 가파르게 이어진다. 완만한 지형이 갑자기 급경사로 바뀌면서 발길을 주춤거리게 한다. 쇠줄로 이어놓은 난간이 있지만 워낙 가팔라서 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다. 오죽했으면 ‘할딱고개’란 별칭이 있을까만 산을 타는 재미도 쏠쏠해 힘들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금오산을 떠나기 전 들러볼 곳이 있다. 야은(冶隱) 길재(1353~1419) 선생의 충절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은 채미정(採薇亭)이다. 아무리 뜯어봐도 멋스러운 이 정자는 1768년(영조 43년)에 지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로 지붕을 떠받친 열여섯 개 기둥이 안정감을 준다. 정자 옆에는 경모각, 구인재 등 선생을 기리는 유적이 세워져 있다.

낙동강이 빚은 자연과 유적 

금오산에서 10분 거리에는 박정희생가(경북기념물86호)가 있다.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사랑채, 분향소, 관리사, 주차장 등으로 꾸며진 생가에는 박정희가 어린 시절 썼던 책상 등이 남아 있다. 

 

구미 상모동-박정희생가

생가를 둘러보고 구미국가산업단지가 있는 공단동을 지나 낙동강을 가로지은 구미대교를 건너면 조선시대의 문신 장현광(張顯光)이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던 동락서원이 있다. 장현광은 인조 때 학자로 이황 등과 함께 성리학의 기반을 닦아 놓은 분이다. 저서로 ‘여헌집(旅軒集)’과 ‘성리설(性理說)’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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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락서원에서 67번 국도를 타고 해평면 소재지로 간다. 낙동강 줄기를 끼고 있는 해평면은 구미에서도 경치가 가장 아름답다. 이곳은 철새 도래지이기도 하다. 낙동강물이 잠시 쉬어가는, 4만여 평에 달하는 넓은 습지가 펼쳐져 있다. 겨울이면 흑두루미, 재두루미 같은 희귀 철새를 비롯해 큰 기러기, 쇠기러기, 민물 도요새 등 철새들이 찾아든다. 대구 경북 관내에서 하나밖에 없는 철새도래지이지만 개발에 따른 주변 환경이 열악해 갈수록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해평습지공원

철새 도래지가 있는 해평면 소재지에서 빼놓지 말고 봐야 할 것이 있다. 쌍암고택(雙岩古宅)과 북애고택(北厓古宅)이 그것. 전자는 검재 최수지의 후손인 조선시대 실학자 최광익 선생이 지은 집으로 둘째 아들이 살던 곳이다. 집 앞에 큰 바위가 두 개 있어 쌍암고택이라고 한다. 쌍암고택과 마주보고 있는 북애고택은 훗날 형(둘째 아들)이 아우한테 지어준 집으로 북쪽 낮은 언덕 위에 있다고 해서 북애란 이름이 붙었다. 

조리사가 있는 태조산

낙동강 줄기를 따라가면 도리사를 알리는 입간판을 보게 된다. 맹산 태조봉이 품고 있는 도리사는 신라 19대 눌지왕 때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세운 절이다. 아도화상이 불교 전파를 위해 이곳에 왔다가 때 이른 겨울에 복숭아(桃)꽃과 배(李)꽃이 핀 것을 보고 도리사(桃李寺)란 이름을 얻었다. 

 

구미 해평면-송곡리 태조산 도리사

아도화상이 세운 도리사

도리사는 분위기가 독특한 절이다. 웅장한 멋은 덜하지만 누각 하나하나가 아름답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과 세존사리탑, 모전석탑 계열의 도리사석탑 등 눈길을 끄는 유물이 여럿 있다. 2층 높이의 설선당과 보은전도 볼만하고 주변 경치가 각별하다. 도리사를 품고 있는 냉산은 울창한 수림에다 산악레포츠공원까지 갖추고 있어 가족 산행지로 좋다. 

낙산고분군

도리사에서 10분쯤 가면 낙산리 고분군이 있다. 원삼국시대부터 통일삼국까지 목곽묘, 옹관묘, 수혈식 돌방무덤 등 다양한 형태의 무덤들을 볼 수 있다. 낙산리 고분군에서 동남쪽, 낙산1리의 마을 안 논 가운데에는 보물로 지정된 낙산리 삼층석탑이 서 있다. 8세기경 신라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는데 일부 망가지긴 했지만 비교적 온전한 모습이다. 

보물 469호 낙산리 3층석탑

고택들이 늘어선 일선리 문화재 마을에도 가본다. 돌담과 고택이 어우러진 마을은 80년대 안동땅 임동면 수곡, 박곡, 무실마을에 흩어져 살던 전주 류씨들이 임하댐 건설로 고향이 수몰되자 이곳으로 이주해왔다.

 

구미 낙산리 낙봉서원 북애고택 의구총 낙산리고분군

주민들이 이주하면서 문화재도 함께 옮겨왔는데 전주 류씨 류성의 아우, 류원이 분가해 지은 수남위종택을 비롯해 숙종 때 학자인 류승현 선생의 종택인 용와종택, 만령 류익휘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만령초당, 흥선대원군의 자취가 어린 근암고택 등 조선 중후기 양식의 가옥들이 가지런히 배치돼 있다. 

문화재마을의 수남위종택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 나들목에서 가까운 죽장사 5층 석탑은 귀로에 들르기 좋은 곳이다. 죽장사 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높이가 10m에 이르는 거대한 전탑(벽돌로 쌓아올린 탑)으로 낙산리 3층 석탑과 닮은 모습이다.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구미 나들목이나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 나들목으로 나온다. 금오산은 구미 나들목에서 시청 방면으로 가다 금오산 이정표를 따라간다. 박정희 대통령 생가는 사곡동사무소 인근(금오산에서 5분 거리)에 있다. 동락원은 구미대교를 건너자마자 왼쪽에 있으며 여기서 67번 국도를 타고 해평면 소재지로 가면 철새 도래지를 비롯해 쌍암고택, 도리사, 의구총, 일선리문화재마을 등지로 갈 수 있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 나들목으로 나와 죽장사 5층석탑을 둘러본 뒤 일선리문화재마을, 의구총, 도리사, 해평철새도래지 순으로 돌아보는 방법도 있다. 서울, 부산, 대구, 대전에서 구미행 고속버스 운행. 구미 시내에서 금오산 주차장까지 시내버스 이용, 10분 소요. 서울, 부산, 대구에서 KTX 열차(구미역) 운행. 구미관광안내소 054-480-6612

◆맛집

대기업 계열사들이 밀집해 있는 구미는 예부터 한정식이 발달했다. 이선이한정식(0507-1410-9051), 소담뜰한정식(054-457-8644), 금오재(054-462-4600) 등

/ 한국아파트신문 2020 김초록여행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