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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남도

장성 약수리 청류암 백암산

by 구석구석 2022.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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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장성군 백암산 고불총림 율원 청류암

 

청류암(061-392-9841)을 향해서 길을 간다. 삼거리에서 만난 이정표는 청류암까지의 길이 2.7km 남았다고 알려준다. 산죽이 빼곡히 들어찬 산길을 지나간다.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 곧장 모든 소리와 격리될 것 같은 으슥한 길이다.

나는 산죽이 있는 길을 좋아한다, 산죽이 있는 길은 마치 찰현 악기 같다. 찰현 악기란 현을 활로 마찰해서 소리를 내는 현악기들을 말한다. 바이올린이나 해금처럼 스칠 때마다 소리를 낸다. 그렇다면 내 몸이 일종의 활인가? 


산을 거의 다 내려온 지점에서 비로소 계곡을 만난다.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반갑다. 신발을 벗고 계곡에 잠시 발을 담근다. 계곡 옆에서 자라는 몇 그루의 우산나물이 텃세라도 부를 듯한 자세로 흘겨본다. 얼른 발을 닦고 나서 길을 서두른다. 문득 산길이 끊어지면서 큰 길이 나온다. 청류암 0.2km. 이정표 아래 이정표 아닌 이정표가 덤으로 붙어 있다.

'경내 출입금지.'

원래 내 계획은 이곳에 올 생각이 없었다. 운문암에서 백양사로 곧장 내려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산행 중에 만난 스님들이 내게 "꼭 청류암을 다녀가라"라고 권하는데 혹해서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다. 입(入) 했다가 곧장 출(出)당하더라도 일단은 가고 볼 일이다. 청류암 경내로 들어서자 한 스님이 풀을 깎고 있다. 합장하며 먼저 인사를 건네자 얼른 답례를 한다.

청류암은 고려 충정왕 2년(1350년) 각엄왕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중생의 마음을 청정한 물에 비유하여 깨끗한 마음으로 참선에 들라 하여 청류암이라 했다 한다. 청류암은 현재 고불총림 백양사의 율원이다. 율원이란 올바른 율법을 가르쳐 승려들의 기강을 세우는 율사(律師)를 양성하는 불교의 전문교육기관이다.

나그네의 눈에 바친 청류암은 아주 고요하고 정갈한 암자이다. 건물이라고 해야 관음전과 요사, 달랑 두 채뿐이다. 마당 가엔 족히 몇 십 년은 되었을 법한 배롱나무가 사천왕을 대신해 서 있다. 인물이 헌칠한 게 이런 산중에서 썩기엔 아까운 녀석이다.

 전남문화재자료 179호 관음전

전남 문화재 자료 제179호 관음전은 정면 7칸, 측면 한 칸으로 된 소박한 건물이다. 가로로 긴 집이라 사진 찍기에 아주 고약하다. 건물 앞뒤로 마루를 깔았으며 약간 불룩한 배흘림 기둥이다.

이 관음전에는 전쟁의 와중에서 안타깝게 분실되어 지금은 찾을 수가 없는 불상과 관련한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아마도 일제 말기 쯤이나 되었나 보다. 하루는 주지 스님이 꿈을 꾸었는데 수성리(장성호 수몰지역)에 가면 부처님이 계시니 그 부처님을 찾아서 관음전에 모시라는 것이다.

그 마을을 찾아가자 과연 불상이 있었다. 가난한 부모를 모시고 사는 젊은 처녀가 보리밭에서 김을 매다가 땅속에서 캤다는 것이다. 스님이 백미 3말을 주고 부처님을 모셔 가겠다 하니 흔쾌히 허락을 했다. 그 부처님을 모시는 전각을 따로 짓게 되니 그 전각이 바로 관음전이다. 그러나 6·25 때 국묵 스님이란 분이 암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담양으로 옮겨 놓았는데 영영 찾지 못했다 한다.

청류암은 비록 암자는 작지만 만암선사 등 많은 고승이 수도한 도량으로 유명하다. 1890년(고종 27년)에 작성된 '관음전중건기'가 남아 있어 암자의 역사를 짐작게 한다.

꽃잎은 흐르는 물을 따라가려 하지만

 이곳은 어디 한 곳 흐트러지고 방만한 구석이 없다. 절 마당엔 깨끗한 잔디가 깔렸고 마당가엔 동백나무, 굴거리나무 등의 나무들이 울타리를 이루며 빙 둘러 심어져 있다. 새삼 청류암(淸流庵)이라는 이름이 아무렇게나 지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 같다. 참나리꽃이 참 예쁘게도 피어났다. 아마도 자신의 줄기 속에 흐르는 청류를 마시고 피어나 저렇게 청초한가 보다.

마당이 비좁아 청류암 전경이 바인더 속으로 고스란히 들어오지 않는다. 할 수 없이 계곡까지 물러난다. 사진을 찍고 나서 가만히 계곡을 들여다 본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 계곡의 유량이 적은 것은 백암산이 온통 바위산이라서 물을 오래 품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청류암마당, 청류암옆을 흐르는 계곡/오마이뉴스

저 맑은 물에 흐린 마음을 흘려 보내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방적인 내 바램일 뿐이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다. 저 물은 그런 내 바람을 흔쾌히 받아들일까. 우리나라 대표적인 선승의 한 분이신 진제스님의 선시가 떠오른다.

낙화유의수유수(落花有意隨流水)
유수무정송낙화(流水無情送落花)

"떨어지는 꽃은 뜻이 있어서 흐르는 물을 따라가나/ 흐르는 물은 정이 없어 떨어진 꽃만 보냄이로다." 1995년 동화사 금당선원 하안거 결제 법어 중에서 

/ 자료 - 오마이뉴스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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