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도해가 품은 섬 '애도'
수백 년을 묵은 돌담과 울창한 원시림이 만든 아름다운 섬, 애도에서 즐거움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전남 고흥은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불릴 정도로 산세 수려하고 물세 미려한 고장이다. 그 중 봉래면에 위치한 애도(艾島)는 마을 뒤편 산언덕에서 나는 쑥이 일품이라 인근은 물론 섬 주민들조차 ‘쑥섬’으로 부른다. 지명인 애도의 애(艾)자는 당연히 쑥을 뜻한다. 또 평온한 호수처럼 보인다 하여 봉호(蓬湖)로도 불렀다.
울창한 난대림 당숲과 수백 년 묵은 마을 돌담길, 해풍 맞은 매화나무와 아름다운 꽃들이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힐링’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런 연유로 행정자치부와 한국관광공사는 ‘2016년 휴가철 찾아가고 싶은 33섬’으로 애도-쑥섬을 선정했었다.
고흥반도 최남단에 자리 잡은 ‘미지의 섬’ 애도, 쑥섬은 나로도연안여객터미널 건너편에서 손에 잡힐 듯 길쭉한 모양으로 있었다. 몸집이 작아서 자동차 두 대쯤 실을 수 있는 아담한 철부선 사양호가 긴 고동소리를 울리며 물살을 가르자 어느새 쑥섬에 닿았다.
쑥섬은 면적 0.326㎢(9만8천여 평), 해안선 길이는 3.2㎞, 남북으로 소가 길게 누워 있는 와우형이다. 둘레길 들머리는 ‘선착장에서 왼쪽에 보이는 갈매기카페 옆길’이라고 함께 내린 아주머니가 알려줬다. 자칫 오리로 오인하기 쉬운 새 모양 건물은 둘레길과 해상관광안내도, 식생안내도가 있어 길손 탐방을 도와준다.
작은 정자에 잠시 앉아 코스를 확인한 뒤 다소 가파른 시누대숲을 오르면 이내 참한 오솔길이 원시림으로 이끈다. 숲이 울창해서 한낮인데도 어둡다. 먼저 남해안 일부에서만 자란다는 백년 이상 된 육박나무, 일명 해병대나무가 길손을 맞이하고, 후박나무가 받침목에 의지한 채 비스듬히 누워 길을 막고 있다. 근처에 당할머니와 당할아버지를 모신 당집에 있다. 귀한 돌로 지어 보존 상태가 좋고,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 이장을 제주로 삼아 풍어와 가내 행복을 기원하는 당제를 올린다. 육중한 체구를 뽐내는 개서어나무 자태에 감탄하면서 숲길은 동백터널로 이어간다. 길 중턱에 2백 년 된 육박나무가 가로 누워있다. 지난 2003년 9월 태풍 매미가 쓰러뜨렸다는데, 다시 살아나 강인한 생명력을 보인다. 이미 당숲이 안정화를 넘어섰다는 증거다.
이어 팽나무와 구실잣밤나무, 신선이 먹었다는 야생 무화가인 천선과, 꾸지나무, 참나리 군락지, 느릅나무, 부부금슬을 좋게 하는 자귀나무 같은 귀한 나무들을 만난다. 순간 하늘이 열렸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바다 위 산마루는 능선 따라 아기자기한 산책길이 이어진다. 수국과 백합, 에키네시아, 양귀비 같은 수십 종 화초가 계절별로 선보이는 별정원과 광장으로 조성한 태양정원, 그리고 느릅나무 자연석부작 등이 있는 초승달 모양의 달정원이 정겹게 어우러진다.
예서 북쪽으로 가면 여자들이 명절이나 보름날 밤에 모여서 노래와 춤을 즐기던 여자산포바위가 있고, 여기서 북쪽으로 150m쯤 더 가면 쑥섬에서 가장 높은, 남자들이 놀던 뾰족한 남자산포바위가 있다. 섬에는 다양한 남녀 짝짓기 놀이 문화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남녀가 각각 여자산포바위와 남자산포바위에서 놀다가 중간 지점에서 만나 서로 애틋한 마음을 전했단다.
하산 길 중간 중간에는 간간이 무너진 집들도 있다. 처마까지 맞닿는 돌담은 마을 뒷산을 넘어 내리치는 바닷바람을 피하던 애환이 이제는 향수로 각인된 애도마을의 미로이다. 남들 몰래 이곳에서 연애를 했다 해서 ‘연애길’로도 통하는 골목은 선착장을 향하고, 길손은 미로를 지나 북쪽 성화등대로 길을 바꾼다.
오른쪽에 바다를 끼고 난 시멘트 길을 벗어나 접어든 산길 입구에 웃끄터리 쌍우물이 있다. 우물은 큰 애기들이 섬살이 애환을 나누던 소통장으로 가장 깨끗이 빨래한 큰애기는 3년 내 좋은 집으로 시집간다는 믿음이 내려왔다.
완만한 숲길을 300m쯤 가면 벼랑 끝에 성화 모양의 성화등대가 서있다. 등대 아래 갯바위는 낚시 포인트이자 해질녘 해넘이 명소. 여기서 왼쪽으로 바다와 접한 절벽 아래에 썰물 때 드러나고 밀물 때 반쯤 잠기는 ‘중빠진굴’이 있다. 한국전쟁 때는 이곳에 사람이 숨어 살았다는 말이 전한다.
섬 뒤를 병풍처럼 둘러싼 절벽에 깎아지른 위상으로 서있는 대감바위는 주변 경관을 더욱 운치 있게 한다. 감투 모양의 바위를 오르면 세상을 구하는 대장부가 되고, 오르다 말면 일찍 죽는다는 속설도 전한다. 대감바위 위에 있는 평평한 바위는 한겨울에도 삭풍이 불지 않아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두거나 거문고를 타며 놀았다는 신선대다.
발길을 되돌려 선착장에 도착하니 팔각정자에 앉아있던 한 할머니가 “햇볕이 뜨거우니 잠시 쉬어가라”며 손짓한다. 스무 살 나이에 지금 나로도 우주센터가 있는 마을에서 시집왔다는 할머니는 “처음 왔을 때는 80여 가구 살았는데, 남쪽 작은 섬 마을은 일찍 없어지고, 애도마을만 15가구 30명 정도 남았다”면서 “지금도 앞바다에 물 빠지면 바지락과 고둥, 굴이 지천이고, 돌미역이 많다”고 귀띔했다. “옛날에는 안강망 배를 두 척씩 띄울 정도로 부자섬이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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