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용연서원(경기도유형문화재 제70호)
막내딸 미술실기보러 데려다주고 기다리는 시간에 둘러본 용연서원은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러웠으며 사당의 내삼문은 잠겨있어 둘러보질 못하고 문틈에서 셔터를 누른다.
서원은 숙종 17년(1691)에 이사상 등 남인계 유생들을 중심으로 창건되어 한음 이덕형과 용주 조경을 제향하고 있다.
숙종 19년에 ‘용연’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임진왜란 당시 이덕형이 세운 공로가 인정되어 대원군의 서원철폐시 훼철되지 않았으나 6.25 등을 거치며 본당만 남고 모두 소실되었다. 1986년 지속적인 복원사업으로 창건 당시의 모습을 거의 회복하였다. 매년 봄 가을 두 차례 포천 유림의 주관으로 향사를 지내고 있다.
한음 이덕형(1561∼1631)과 용주 조경(1584∼1669)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한음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인 사신과 회담하여 그들의 잘못을 따졌으며, 중국 명나라로부터의 지원을 성공시켰다. 그 후 광해군 5년(1613)에 영창대군의 처형과 폐모론을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쫓겨나 양근에서 세상을 떠났다.
용주는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였으며, 제도를 새로이 하고 관리를 등용함에 공평하였다. 숙종 17년(1691)에 처음 세워졌으며 숙종 18년(1692)에 ‘용연(龍淵)’이라는 이름과 토지, 노비 등이 임금으로부터 하사되었다.
그 후 용연서원은 경기도 내의 성현에 대한 제사와 지방백성들의 교화를 담당해왔다.
처음 서원이 세워질 당시에는 사당·강당· 동재·서재 등이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없어지고 사당만 남아있다가 1986년에 강당을 복원했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앞면 1칸은 퇴칸으로 개방하여 제사기능에 들어맞도록 하였다. 양 끝칸의 양쪽 벽에는 두분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가운데 칸의 벽에는 두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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