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은 멀리 백제, 비류의 미추홀을 시작으로 한 인천 역사의 발원지이자, 인천 남부지역에서 가장 넓은 녹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환경·생태적 공간이다. 그러나 도시화에 따른 개발과 무분별한 시민들의 이용에 따른 훼손으로 문학산의 가치는 잊혀지고 있다.
학산 또는 남산이라고도 한다. 예전엔 배꼽산이란 이름으로 더 잘알려져 있었다. 산봉우리가 마치 사람이 배꼽을 내놓고 누워 있는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배꼽모양이 없어졌을 뿐 아니라 옛날 산 형태를 기억하는 이들도 줄어 문학산으로 통칭되고 있다.
문학산에는 신라 때의 유적인 문학산성, 고려시대의 문학사지(文鶴寺址), 조선 전기 건물인 문학 문묘(文廟)와 인천부청사(仁川府廳舍)의 일부가 남아 있다. 그 밖에 학산서원지 ·안관당지(安官堂址) 등이 있다.
안관당은 인천을 지키는 충절의 상징이다. 문학산 정상, 정확히 말하면 문학산성 동쪽 문에서 서북쪽으로 150m 떨어진 지점에 있었다. 안관당은 임진왜란 당시 문학산성을 지키다 순국한 인천부사 김민선(1542~1593)의 영혼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백성들이 지은 사당으로, 일제 강점기에 파괴된 뒤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다.
부평에서 태어난 김 부사는 1592년 인천도호부사로 부임해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여러 차례 물리쳐 인천을 승전지로 만든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김 부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백성들의 지원을 받아 문학산성을 중수(重修)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가 침입해 오는 왜군을 효과적으로 물리쳤다고 한다.
뛰어난 공을 세워 인천사람들의 추앙을 받던 김부사가 병으로 운명을 달리한 것은 왜란이 채 끝나기 전인 1593년 7월. 그런데 전쟁이 끝난 뒤 김부사의 혼령이 동네 노인과 새로 부임한 부사의 꿈에 자주 나타났고, 망자의 혼령을 달래기 위해 주민들이 기금을 모아 사당을 세웠다. 그것이 바로 안관당이다. 주민들은 이후 일 년에 두 번씩 안관당에서 당제를 지내곤 했는데 일제강점기(910~1920년)에 파괴돼 버리고 말았다.
터만 남은 안관당 자리에서 주민들이 만신을 모시고 매년 당제를 지내왔는데 문학산 정상에 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 이것마저 끊겼다.
도움말 / 연수문화원·김희주 인천역사교육연구소 대표
문학산성은 인천의 진산인 문학산 정상 부분에 축조된 석성으로 미추홀 고성, 남산성 등으로 불리고 있다. 문헌(동서강목, 여지도서)에 의하면 문학산은 미추왕(비류)의 도읍지로서 석성터가 있고 성내에는 비류정이라는 우물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축조 형식은 퇴뫼식(산정식:산정상에 쌓은 성)이면서 석성으로서 내 외성으로 구성되어 있고 성내에는 봉수대가 있었다.
성의 규모(둘레)는 토축의 내성이 100m,석축의외성이 200m로서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축조하였으며 특히 정상부분에는 약5m의 석축을 쌓았 다고 전하나 현재는 대부분의 성벽이 붕괴되었다.
미추왕능터에서 정상을 거쳐 사모지고개를 넘고 연경정, 노적봉을 내려가 인천시립사격장까지 동서로 난 능선 길이만 6㎞로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많은 시민이 찾는 산. 문학산성과 안관당, 봉화대, 인천도호부, 향교, 학산서원, 선사유적 등 많은 문화유산과 유적이 분포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문화유적은 21곳. 시 기념물 1호인 문학산성이 정상부에 있다. 퇴뫼식 산성으로 백제시대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규모가 작아 정찰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군부대 시설안에 있어 들어갈 수 없다.
정상부에 있는 ‘미사일 통제소’가 더 이상의 발길을 허용치 않아 우회할 수 밖에 없다. 문학산성은 민간이들의 출입이 불가능한 군사시설 안에 있다. 문학산성터에는 백제우물터와 안관당터, 봉수대 등의 흔적이 남아있다. 안관당은 임진왜란때 왜군을 물리친 인천부사 김민선을 모신 사당터다.
연경정에서 학익동쪽으로 내려오는 곳곳에는 청소년 수련시설이 있다. 무려 30여가지에 이르는 유격훈련식 레포츠 시설이 있는데, 1995년 설치했다. 극기훈련시설과 음수대, 야외무대, 정자 등이 있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이용이 적다. 오히려 산림 파괴란 결과만 불러왔다. 특히 물이 흘러야할, 보존 가치가 높았던 계곡부에 있어 그 훼손 정도가 심하다는 지적이다. 문학산 복원을 추진하고 있는 시민단체에서는 단계적인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사모지고개 정상에서 연경정 아래의 약수터로 이어지는 등산로 부근에서 2기의 석관묘가 확인됐다. 또 남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3기의 석관묘가 발견됐다. 이 일대가 청학동 석관묘군이다. 아직 학술조사가 끝나지 않아 어느 때 조성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연경정에서 노적봉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정비가 잘 돼 있다. 인천 남부 지역의 최대 녹지대인 문학산의 역사와 생태를 알려주는 안내문이 중간중간 적혀 있다. 역사와 환경을 생각하게 하는 문학산의 가치는 크다.
중국을 갈때 능허대에서 배를 타고 사신을 보냈는데 부평에서 삼호현을 지나 청학동을 거쳐 옥련동의 능허대로 갔다는 그 옛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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