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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북도

영동 상촌-물한리 삼도봉 석기봉 민주지산

by 구석구석 2014.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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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 道에 걸친 수려한 산세 설경 즐기는 부산·경남 산꾼들 북적

속리산에서 남쪽으로 달리던 백두대간은 황악산에서 남서쪽으로 비스듬히 산줄기의 방향을 튼다. 이 줄기는 이윽고 삼도봉(三道峰·1,178m)에 닿는데, 이 봉우리 꼭지에서 충청북도, 경상북도, 전라북도가 만난다. 삼도봉에서 대간의 큰 줄기는 다시 남쪽으로 흐르고, 북쪽으로 작은 지맥을 하나 낸다. 바로 충북 영동군을 통과하는 각호지맥이다. 민주지산(眠周之山·1,241.7m)은 이 지맥의 지붕 격인 산이다.

 

산 이름에 '민주'가 있다 보니, 어떤 이는 민주주의와 관련이 있는 산인 줄로 아는가 보다. 일부 산꾼 사이에서 민주지산에 다녀왔더니 '뭐, 민주주의산?'이라고 되물었다는 일화가 있는 걸 보면 그런 착각이 과장은 아니지 싶다. 1980년대 대학 산악회에서 '민주주의 정신과 기상을 기른다'며 이 산에 왔다가 민주주의는 구경도 못하고 갔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진다. 하지만 이 산은 민주주의와 털끝만큼도 관련이 없다.



산 이름을 살펴보자. 국토지리정보원의 2만 5천 분의 1 지도에는 '眠周'로 표기했다. 옥편을 찾아보니 '보다 민'이라는 풀이가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은 '옥돌 민(珉)' 자로 썼고,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산 이름 민(岷)' 자를 쓴다. 이처럼 '민' 자가 갈피를 못 잡는 것은 산 이름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예로부터 이 일대 주민들은 삼도봉에서 각호산까지 산세가 민두름(밋밋하다)해서 '민두름산'이라고 불렀는데, 일제 강점기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민주지산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여지도에는 이 산은 '백운산(白雲山)'으로 표시돼 있다. 이를 근거로 한때 산림청과 시민단체, 지명 전문가들이 왜색 산명을 버리고 백운산으로 바꾸자는 운동을 펼쳤지만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하고 불발에 그쳤다.



산 이름만큼이나 변화무쌍한 산이다. 봄엔 철쭉이 만발하고, 여름엔 원시림과 물한계곡이 일품이다. 가을에 단풍으로 불타더니, 겨울엔 온 산을 덮은 설경이 장관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본보 등산가이드에도 이 산이 자주 눈에 띄는데, 부산·경남 산꾼들한테 눈 산행지로 인기를 끈다는 뜻이겠다.

 

▲ 물한리 주차장에서 전국에서 올라온 버스들이 등산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산행코스는 크게 삼도봉과 석기봉(石奇峰·1,200m), 민주지산을 도는 원점회귀다. 산세가 충북 영동군, 전북 무주군, 경북 김천시 등 3개 도에 걸쳐 있다 보니 코스도 다양하다. 가장 수월한 들머리는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쪽이다. 물한리 주차장을 출발해 물한계곡, 미니미골을 지나 삼마골재까지 오르면 능선에 붙는다. 삼도봉, 석기봉을 지나 민주지산에 올랐다가 각호산을 못 간 능선에서 하산로를 연다. 1,000m의 연봉을 잇달아 밟고, 4월 초까지 능선에 온통 눈길이라 산행시간도 최소 5~6시간은 잡아야 한다. 삼도봉~민주지산~각호산 종주길은 7시간 이상 걸린다.



산&산' 취재팀이 민주지산을 찾은 날 물한리 주차장은 전국에서 몰린 산악회 버스로 붐볐다. 열에 대여섯 대꼴로 부산·경남에서 온 버스였다. 갖은 색의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인간 단풍'을 연출하며 등산을 시작했다.

 

▲ 등산로 옆에 황룡사가 있다. 별다른 특징 없는 사찰.

주차장을 떠나 물한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길을 연다. 민주지산대장군과 물한계곡여장군 장승이 보초처럼 서 있다. 상가를 지나 황룡사까지 10분이면 충분하다. 황룡사는 지은 지 10년이 조금 넘은 사찰이다. 아담한 절 옆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길은 어느새 눈길로 바뀌었다.

 

구름다리를 건너면 물한계곡을 옆에 두고 산길로 접어든다. 물한(勿閑)은 한자로는 '한가할 겨를이 없다'는 뜻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물이 많다'고 물한으로 부른다. 옥소폭포, 의용골폭포, 음주암폭포, 장군바위 등의 명소가 있다.



첫 번째 이정표에서 '민주지산'과 '민주지산(지름길)'으로 나뉜다. 줄을 지어오던 등산객들이 이곳에서 판세가 갈린다. 절반 정도는 민주지산으로 곧장 올라간다. 우리는 왼쪽으로 간다. 2분쯤 더 가면 다시 이정표다. 이번에는 삼도봉·석기봉 방향을 따른다. 물한계곡의 지류가 얼어붙어 빙판을 이루었다. 조심스럽게 빙판 위를 걷는다. 얼음이 얇은 데는 구멍이 뻥 뚫렸다. 배낭에서 아이젠을 꺼냈다.



오르막이지만 부담스럽지 않는 길이다. 발밑에서 사각거리는 소리가 산행에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가만히 들어보면 계곡에서 졸졸 흐르는 물소리도 감지된다.



펑퍼짐한 쉼터 한 곳을 만났다. 커피 한 잔으로 몸을 녹이고, 다시 오르막을 걷는다. 10분 정도 가면 삼마골재가 나온다. 숲에 가렸던 시야가 확 트인다. 남으로 달리는 백두대간의 고산준령이 푸른 산그리메를 그리며 물결을 친다. 삼마골재에서 1162봉까지 경사가 아까와 달리 가파르다. 12분 정도 걸린다. 덕유의 연봉과 수도지맥이 자꾸 눈에 밟힌다.

 

1162봉에서 5분 거리에 삼도봉이 있다. 충북 영동군 상촌면, 경북 김천시 부항면, 전북 무주군 설천면의 경계가 이 봉에서 만난다. 삼도봉을 중심으로 태백·소백·덕유·지리산이 갈라지니 사통팔달의 산줄기다. 이를 차지하려고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지난 1990년 10월 10일 3개 도의 대화합을 기원하는 탑을 세웠다. 3개 도를 바라보는 거북이 3마리 위에 검은 여의주를 받치는 용 3마리가 앉았다. 사람들은 3개 도의 방향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다. 짧은 시간에 3개 도를 다 밟는 셈이다.

 

삼도봉에서 능선 길을 따라 석기봉으로 움직인다. 길옆에 조릿대와 철쭉이 무성하다. 1186봉을 지나 10분 남짓 가면 이정표가 나오고, 여기서 다시 5분을 더 가면 휴게소다. 휴게소에서 3분 거리에 석기봉이 있다.

 

삼도봉이 널찍한 흙봉우리라면 석기봉은 말 그대로 암봉이다. 쌀겨를 닮아 '쌀개봉'으로도 부른다. 멧부리가 날카로워 골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것처럼 아찔하다. 전망은 일망무제다. 가야산, 덕유산, 속리산, 금오산, 황악산이 시원하게 들어온다. 날씨가 좋으면 계룡산과 지리산도 보인다고한다.

 

▲ 흙봉우리인 삼도봉을 넘어 눈길을 밟고 석기봉에 올랐다. 사방이 날카로운 바위투성이다. 영하의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소매를 입은 남자 등산객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사내의 왼쪽 어깨 너머로 멀리 민주지산이 보인다.


석기봉에서 1168봉까지 가는 길이 까다롭다. 군데군데 달린 밧줄을 붙잡아야 한다. 1168봉에서 20분이면 1176봉에 이른다. 1176봉에서 15분 정도면 하산로가 있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쪽새골 능선으로 떨어진다. 삼도봉으로 가지 않고 민주지산으로 곧장 오르는 등로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이 일대는 등산객이 항시 붐빈다.

 

이정표에서 민주지산까지 7분 정도면 오른다. 삼도봉, 석기봉에서 이미 맛본 조망에 더해 각호산 정수리까지 보인다. 동쪽으로 백두대간의 두터운 산주름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

 

각호산 방향 능선 길을 탄다. 7분 남짓 가면 대피소가 나온다. 건물이 생긴 사연이 안타깝다. 지난 1998년 4월 2일 민주지산 정상 부근에서 야영하던 특전사 대원들이 갑자기 내린 폭설과 추위에 탈진해 김광석 대위 등 6명이 숨졌다. 19세부터 28세까지 꽃다운 나이의 군인들이었다. 이 대피소는 사고 직후 세운 것이다. 이들의 추모비가 물한리에 있다.

 

▲ 이 지점에서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어 능선 사면으로 붙는다. 이 길을 놓치면 각호산까지 가야 한다.

대피소에서 6분가량 직진하면 1148봉을 만난다. 이 봉우리에서 5분 거리에 119 표지판이 있다. 이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가야 한다. 내리막 외길을 따라 35분가량 내려오면 물한계곡과 만나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 지점부터 올라올 때 밟았던 길과 겹친다. 이정표에서 주차장까지 15분 소요.



산행문의 : 부산일보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최찬락 산행대장 010-3740-9323.  전대식 기자

 



물한리 주차장과 물한계곡 어귀에 음식점이 십여 곳 있다. 대부분 닭볶음탕이나 부침개, 동동주를 판다. 이 중 '물한삼도봉식당(043-745-7767)'과 '파라다이스식당(010-3117-5516)'이 맛과 서비스가 좋다. 따끈한 어묵탕(1만원) 한 그릇을 시키고 즉석에서 구운 감자전(1만원)과 해물파전(1만원)에 동동주(8천원)를 곁들이면 눈 산행으로 지친 심신이 확 풀리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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