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을 닮아 산림욕하기 좋은 외씨버선길
경북 내륙에서 해돋이․달돋이를 가장먼저 볼 수 있는 영산(靈山) 일월산!
1,219m 산자락에는 '샘물내기', '왕바우골', '그루모기', '칡밭모기', '쿵킁모기', '대티골' ... 이 얼마나 정겨운 이름들이며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숱한 세월의 질곡속에 민초들의 아픔과 애환이 질펀히 묻어나는 지명들...
사방이 정겨운 이름들을 섣가래 삼아 용마루처럼 솟은 일자봉과 월자봉이 이룬 일월산! 그 자락에 아름다운 숲 길 '외씨버선길'이 있다.
외씨버선길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산자락을 잘라 청송에서 시작하여 영양, 봉화, 강원도 영월로 이어지는 옛 31번 국도를 닦아 일월산에서 나오는 광물을 채광해 봉화로 옮겼던 바로 수탈의 길로써 숱한 민초들이 징용으로 끌려가 흘린 진한 땀내음과 사지에 뼈마디가 녹아내리는 피곤했던 삶의 흔적이 듬뿍 묻어나는 길이다. 먼 훗날 이 길이 BY2C(봉화,영양,영월,청송군)사업의 일환으로 이른바 '외씨버선길' 로 거듭났다.
이 길은 해방 후 한동안 방치돼 오다가 60년대 들어 수백년간 청정 이슬을 머금어 진한 송진내음으로 농축된 솔향을 내품으며 하늘 높은줄 모르고 미끈하게 자란 육송을 제재하기 위해 끊임없이 잘라내는 산판이 활기를 띠면서 과거 산판길을 누볐던 '제무시'가 이 길을 쉴 새 없이 넘나들었다.
이른바 이 '외씨버선길'은 디지털 시대에 분초를 재촉하는 일상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청정의 고요속에서 자연과 생태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티골' 숲에 들어서면서부터 속세로 돌아오고 싶지 않은 '아날로그'가 유지되고 있는 자연 그대로를, 영양의 청정 지킴이 '일월산 반딧불이'가 오월 보름날을 기해 불을 밝히는데 뒤에서 불을 밝히는 여느 반딧불이와는 달리 머리(?)에 반딧불을 밝힌다.
이 길이 시작되는 봉화쪽으로 넘어가던 일원산의 “큰 고개”를 뜻하는 '대티골'은 정녕 생명의 땅이다. 푸짐하기로 유명한 일월산만의 진한 향을 머금은 산채에 해묵은 쌈장으로 차려내는 밥상과 구들장 민박을 굳이 얘기하지 않더라도 '외씨버선길'을 찾은 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하다. '외씨버선길'이 일월면 주실마을이 고향인 청록파 조지훈의 '승무'(僧舞)의 시어(詩語)에서 유래된 것처럼 이 시어들이 내뿜는 섬세한 시어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져 숨이 막힐 지경이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시인 조지훈 '승무'중에서)
'대티골'-'칡밭길'-'댓골길'로 이어지는 8.3km에 달하는 숲길 내내 신록의 풋내음을 깊숙이 들이키며 이름 모를 풀벌레들의 불협화음을 듣기도 하고, 낙엽길을 밟다가 갈비를 밟다가 간혹 돌부리에 걸려 엎어질듯 엇박자 걸음이 익숙해 질 무렵에...
길 가장자리에 빨간색과 연두색의 '희망 우체통' 두 개가 눈길을 사로잡는데 내가 나에게 자기의 소망을 적어 이 희망 우체통에 넣으면 정확히 365일 뒤에 본인에게 배달된다고 한다.
바쁘고 복잡한 일상의 틀! 바로 '0'과 '1'만이 존재할 뿐 한 치의 빈틈과 여백 없는 ‘디지털'의 일상을 벗어나 음력 오월의 보름 날 '일월산 반딧불이' 들이 '외씨버선길'에서 휘영청 내리는 달비를 흠뻑 맞으며 바람과 구름과 나무와 새들과 꽃들 그래서 이름모를 벌레들의 합창! 그 생명의 울림이 가득한 이 길을 ...
정녕 가난한 부자들의 코에는 진한 광솔 내음이 어매의 젖가슴 마냥 풋풋한 살내음 되고 반딧불이들은 시인이 읊었던 '외씨보선'의 길을 다녀온 한참 뒤까지 뇌리에 활동사진으로 돌아가는 걸 보면 순수와 청정 그리고 자연의 고요하고 풍성한 소리가 있는 ‘아날로그'의 품에 안겼다가 돌아온 확실한 흔적.
영양 인터넷뉴스에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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