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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인천광역시

인천 신흥동 수인시장 기름골목

by 구석구석 2024.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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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곡물시장(기름골목)

인천시 중구 신흥동 28-2번지 일대에 위치한 전국 유일의 곡물시장인 수인곡물시장은 40년이 넘는 전통을 갖고 있으며 현재 30여 곳의 점포들이 품질 좋은 다양한 곡물을 판매하고 있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입구 바로 옆에 모여 있는 10여 곳의 참기름 가게에서 풍겨나는 냄새였다.

곡물시장답게 들깨, 참깨 등 참기름 재료가 풍부해서인지 이곳에는 참기름집이 유난히 많다. 인천 수인곡물시장은 지난 1960년대 초 이곳을 오가던 수인선 기차역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당시 이곳에는 농협 공판장이 있었기 때문에 소래나 남동, 시흥 등지에서 생산된 곡물을 팔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러다 보니 농협 공판장 주위로 자연스럽게 시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초기 간판도 없이 노점형태로 운영되던 곡물시장은 점점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를 반영하듯 1980년대 중반에는 점포수가 80여 곳에 이를 만큼 크게 번창했다.

불황을 모르던 곡물시장도 시대의 변화는 거스르지 못했다. 곡물시장의 젖줄 역할을 하던 수인선이 폐쇄되고 농협 공판장이 떠나면서 규모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인천과 수원을 잇는 협궤철도 수인선은 지난 1995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중지했다. 1973년 7월 인천항만 확장 건설로 인해 5.1km가 단축돼 송도와 수원 구간(46.91km)만 운행하다 경제성이 악화돼 결국 폐쇄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사람들을 모아주던 구심점이었던 농협 공판장마저 이곳을 떠나자 시장을 찾는 이들은 빠르게 줄어 들었다. 과거 농협 공판장이 있던 자리에는 아파트가 지어졌고 상인들도 하나 둘 자리를 떠났다. 한때 80곳이 넘던 점포들은 많이 사라지고 이제 30여 곳만이 시장을 지키고 있다.

숭의역은 과거 협궤열차 시절 인천의 종착역이었다. 그땐 인천항역·수인역·남인천역으로 불렸는데, 지금의 숭의역과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곡물과 소금 등을 실어 나르는 수인선의 종점이 있던 곳이어서 옛 숭의역 근처엔 시장이 형성됐다.

이곳엔 한때 80개 점포가 성업했던 전국 최대 곡물시장도 있었다. 지금도 수인선 이름을 딴 수인곡물시장과 수인상회 등의 간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인천 내항과도 가깝다.

지금은 하루 평균 5천~7천 명이 이용하지만, 숭의1구역 재개발이 마무리되면 이용객이 늘 것으로 보인다.

서리태, 햇적두, 기피녹두, 현미 찹쌀 등 꽁꽁 얼어붙은 날씨에도 상인들은 굽은 손에 입김을 호호 불며 수십 가지 알곡을 보기 좋게 내놓는다. 수인상회, 수인참기름, 신천미점, 충남상회, 개풍상회, 연백상회, 개성참기름 등.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낡은 간판엔 수인선 협궤열차의 종착역이었던 수인역의 흔적이 남아 있다.

ㅇ "우리 어릴 땐 사람이 바글바글했지. 바로 옆 아파트(한별프라이빌) 자리가 원래 시장 자리야. 기차가 소리 빽빽 지르며 들어오면 쌀이며 과일, 채소, 생필품 사고파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어. 특히 쌀, 잡곡은 전국적으로 알아줬어. 울릉도, 제주도에서도 사러 올 정도였으니까."

대성쌀상회 이순자(60) 사장은 왁자지껄하던 시장통에서 나고 자랐다. 기적 소리 아련한 그 자리에서 장사하며 2남 1녀를 억척스레 키웠다.

"우리 애들은 석탄 기차 다닐 때 태어났어. 연탄을 하도 실어 날라서 비 오고 나면 새카만 흙탕물이 흘렀어. 애들 키우랴 장사하랴 고단했지. 열심히 살다 보니까 살아졌어."

마침 단골손님이 햅쌀을 사러 왔다. 저울보다 훨씬 후한 어머니의 인심에 봉지가 무끈하다. 세월의 부침 속에서 발길은 줄었지만 70년 역사의 깊은 정과 넉넉함은 예전 그대로다.

"커피처럼 참기름도 가게마다 풍미가 달라요"

기계가 쉼 없이 돌아갈수록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오후, 금방 짠 기름을 바로 병에 담아주는 모습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안 태우고 오늘 짠 기름만 팝니다."

전부일(54) 부일고추 사장이 가게 벽에 직접 쓴 손님과의 약속이다. 기름이 덜 나와도 껍질이 얇아 연기는 적게 나고 고소함은 일품인 'A급 참깨'를 저온에 볶아 기름을 짠다.

"깨를 타지 않게 볶아야 몸에도 이롭고, 뒷맛까지 깔끔해요. 커피처럼 참기름도 가게마다 풍미가 달라요."

"한 가지 철칙은 남보다 일찍 열고 늦게 닫는 것"

밤새 눈이 펑펑 내려 뼛속까지 시린 날씨에도 대흥상회 김군리(60) 사장은 고춧가루를 빻느라 여념이 없었다. 곱게 갈아진 가루들을 주문받은 대로 착착 나눠 담는 그의 어깨에서 새벽 안개 같은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아침 6시에 출근하는 김군리 사장. 수십 년 변함없는 맛집 뒤에는 긴 세월 한결같은 곡물시장 상인들이 있다 / 굿모닝인천

"오늘은 120kg. 추워서 그런지 주문이 별로 없네."

불경기 탓에 주문량은 좀 줄었어도 거래처 수는 여전하다. 그가 발품 팔아 전국에서 공수해 온 고춧가루는 인근 70~80군데 식당의 얼큰한 식탁에 올라 뭇사람의 허기진 속을 뜨끈하게 달래준다.

수십 년 변함없는 맛집 뒤에는 긴 세월 한결같은 곡물시장 상인들이 있다. 오래도록 신용을 지킨 비결을 물으니 한 가지 철칙이 있단다.

"우리 1대 사장이 알려준 게 한 가지 있어요. '남보다 일찍 열고 늦게 닫아라.' 부지런하면 다 먹고살아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오전 6시면 부스럭거리며 시장 골목을 깨우는 그의 뒤로, 노란 전구가 따뜻한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아버지한텐 이 가게가 인생이고 세상 전부예요"

수인사거리 삼익아파트 상가에 자리 잡은 수인농산·수인상회는 수인곡물시장의 역사를 한몸에 품고 있다. 평안북도 용천이 고향인 창업주 안계득(88) 사장은 한국전쟁 후 수인역 인근에서 좌판을 깔고 곡물 장사를 시작했다. 1960년대 말부터 정부 시책으로 혼분식을 장려하면서 매출액이 늘어났다. 조그만 점포를 얻어 '수인상회'라는 간판을 올리고, 장봉도 출신 아내를 만나 가정도 꾸렸다.

1970년대 말 시장 앞에 도로가 놓이고, 길 건너로 삼익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지금의 상가로 가게를 옮겼다. 안 사장은 당시 강화도의 시골 방앗간에서 좋은 쌀을 가져다 팔았다. 1993년 그의 아들 안승일(55) 사장이 가게를 이어받아 미곡과 참기름, 견과류, 슈퍼 푸드를 취급하고 있다.

"아버지는 일밖에 몰랐죠. 그저 장사만 하셨어요. 이윤이 안 남아도 재고는 안 남긴단 생각으로 싸게 파셨어요. 거래처는 장사해서 건물주 되고 그랬는데, 아버지한텐 이 가게가 인생이고 세상 전부예요."

오늘 150평 정도의 가게 안에는 수백 종의 알곡이 가득하다.

"정월보름, 명절 밑 일주일 전에 손님이 많이 오셨어요. 15년 전만 해도 가게 앞 도로에 20m씩 줄을 섰어요. 그땐 최고 귀한 게 참깨였어요. 명절에 참기름 선물도 많이 했고."

이젠 모두 흘러간 옛이야기이다. 10명이던 직원은 서너 명이 됐다. 속절없이 변한 세상이 아쉽진 않을까.

"모든 것이 다 변하는걸요. 그래도 가업을 이어받았으니 명맥을 이어 나가야죠."

70년 곡물시장의 역사가 살아 숨 쉬며 대를 이은 노포는 오늘도 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맞이한다.

/ 오마이뉴스 2023.1   글 최은정 사진 유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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