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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인천광역시

인천 송학동 홍예문 자유공원 제물포구락부

by 구석구석 2024.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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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신포로39번길 74 / 송학동 옛 시장관사 '인천시민愛집'

 

인천시 등록문화재 1호로 선정된 송학동 옛 시장관사는 1901년 지어진 일본인 사업가의 별장터로 당시 정원과 대문이 남아 있다. 해방 이후 서구식 레스토랑과 사교클럽으로 쓰이다 1965년 인천시가 매입해 현재의 건물을 신축했다. 1966년 김해두 인천시장부터 민선 초대 최기선 시장까지 인천시장 17명이 관사로 썼다.

 

인천시 문화재위원회는 근대 개항기 고급 일본식 가옥, 서구식 레스토랑과 사교클럽, 시장관사로 이어지는 역사성과 장소성을 갖췄고, 개량한 전통 건축 양식과 일본 건축 양식이 혼재한 근대 주택의 형태로 보존 가치가 높다고 판단했다.

 

송학동시장관사 / 박경호기자

송학동 옛 시장관사를 시민에게 개방한다.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옛 시장관사는 '인천시민愛집'이라는 새 이름도 얻었다. 이 건축물이 등록문화재 1호가 된 배경이다. 시민 개방 후 인천시장 옛 관사 본관은 전시실·영상실·북쉼터 등 시민 휴게 공간으로, 관리동은 전망대·공유주방, 야외 정원은 작은 결혼식장·음악회장 등 복합역사문화공간으로 운영된다.

 

시민애집 마당에서 공연

 

무지개처럼 생긴 문이라는 뜻의 홍예문(虹霓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9호 2002.12.23 지정)

 

인천시내 남북간 교통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철도 건설을 담당하고 있던 일본 공병대가 1906년 착공하여 1908년에 준공하였으며 처음에는 혈문(穴門)이라고 불렀다.

 

각국 지계(各國 地界) 형성 당시 조선 정부의 계획에 반대한 일본인들은 조선과 만주 침략 계획과 인천으로 몰려든 일본인들로 인하여 거주공간 확장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지계의 확장을 꾀하게 되었다. 당시 교통사정이 매우 열악했으므로 일본 지계나 항구에서 만석동으로 가려면 서북 해안선을 따라 가야 했으므로 일본인들은 비교적 단구간인 현 송학동 마루턱을 깎아 만석동으로 통하는 길을 만듦과 동시에 화강석 홍예문을 쌓아 각국 지계와 측후소 쪽으로 진출을 꾀하였다.

각국 지계(各國 地界) 형성 당시 조선 정부의 계획에 반대한 일본인들은 조선과 만주 침략 계획과 인천으로 몰려든 일본인들로 인하여 거주공간 확장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지계의 확장을 꾀하게 되었다. 당시 교통사정이 매우 열악했으므로 일본 지계나 항구에서 만석동으로 가려면 서북 해안선을 따라 가야 했으므로 일본인들은 비교적 단구간인 현 송학동 마루턱을 깎아 만석동으로 통하는 길을 만듦과 동시에 화강석 홍예문을 쌓아 각국 지계와 측후소 쪽으로 진출을 꾀하였다. 

2013 봄. 인일여고쪽에서 바라본 홍에문

축조양식은 화강석과 벽돌을 혼용(混用)한 아아치 구조로서 그 당시 일본의 토목공법 및 재료에 대한 사료로서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자료 - 인천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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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학동1가 11번지 자유공원 032-760-7597

자유공원은 인천항 개항 5년만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 지대가 높은데다 터가 넓고 숲이 울창해 산책하기 알맞다. 

정상엔 한미수교 백주년기념탑이 있다. 1882년 4월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조인된 한미수호 통상조약체결을 기념하기 위해 100주년이 되는 1982년에 세운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장군의 전공을 기리는 맥아더장군 동상도 그 옆에 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7주년이 되는 1957년 9월 15일에 완공됐다. 자유공원 정상에서는 멀리 인천 앞바다까지도 훤히 내려다보인다. 자유공원 안에는 소규모 동물원과 팔각정, 연오정, 의자 등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맥아더 동상이 있어 자녀와 함께 온다면 교육적으로도 좋다.

 

매년 4월이면 자유공원으로 오르는 길은 벚꽃으로 만발한다. 이를 기념해 벚꽃축제가 이곳에서 열린다. 공원 정상에서 인천항과 월미도를 바라보는 맛도 그만이다. 늦은 밤 이곳에서 바라보는 인천항의 밤 경치는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도 유명하다. 인근에 중국인촌, 신포동시장, 인천백화점, 올림포스관광호텔 등이 있다. 약간 멀리는 연안부두, 월미도가 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내려오는 길에 홍예문을 보고 오는 것도 좋다. 일본인들이 자국의 조계와 축현역(현 동인천 역)을 연결시키려고 응암산 줄기를 뚫어 1905년 착공했다. 1908년 준공했는데 고개문의 형태가 무지개와 같아 홍예문이라고 불렀다.

제물포구락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7호(1993.7.6 지정)

인천에 거주하던 미국·독일·러시아·일본인들이 사교장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건축한 회관으로 1901년 6월 22일 낙성되었다. 벽돌로 된 2층 건물로서 지붕을 양철로 덮었으며 내부에는 사교실·도서실·당구대 등과 밖에는 테니스 코트도 있었다. 1913년 각국의 조계(租界)들이 철폐됨에 따라 이 건물은 일본 재향군인회관· 부인회관으로 이용되었으며, 해방 후에는 미군이 사용하였고 1953년부터 1990 까지는 인천시립박물관으로 이용되다가 현재는 인천문화원이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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