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포에서 감포까지 약 100㎞(약 250리)를 달리는 아름다운 해안도로 드라이브
포항 바다는, 다른 동해안의 바다와 풍경이 사뭇 다르다. 바람이 세고 파도가 거칠 때가 많다. 그런 날이면, 바다는 온통 뜨겁게 끓어 넘치고 해안은 힘찬 파도의 거친 갈기가 남긴 포말로 가득하다. 속초며 강릉 일대의 바다가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이라면, 포항의 바다는 근육질의 서사적 분위기에 가깝다.
포항 바다를 끼고 달리는 드라이브 코스는 두 개가 있다. 하나는 포항 북쪽에, 또 하나는 포항 남쪽에. 북쪽의 드라이브 코스는 월포해수욕장에서 칠포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이고, 남쪽의 드라이브 코스는 임곡항에서 호미곶과 구룡포를 지나서 장기면 양포항까지 이어진다. 포항의 해안도로 풍경은, 일찌감치 관광지로 다듬어진 속초나 강릉과는 다르다. 강원도 해안도로는 바다와 마을 틈을 비집고 길이 이어지지만, 포항에서는 길이 마을 뒤쪽으로 나 있는 게 보통이다. 바다와 마을 사이에도 길이 있긴 한데, 그건 이동을 위한 도로라기보다는 생활도로나 골목길에 가깝다. 포항 해안을 드라이브하는 매력은 바로 이런 길을 찾아가는 데 있다.
경북 경주시 ①감포(甘浦)
작은 손수건인 줄 알았다. 경북 경주시 감포읍 감포(甘浦·포구 모양이 '甘'처럼 생긴 항구라고 붙인 이름) 해안가 낡은 빨랫줄에 빼곡히 걸린 흰 '물체'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흔들렸다. '현빈이네 건어물' 김정숙(53)씨가 부지런한 몸짓으로 신나게 빨랫줄에 널고 걷는 물건은 배는 희고 등은 꺼먼 생선들이다. "참가자미랑 미주구리(가자밋과 생선)예요. 제사 때 쓸 거 사가세요. 이제 구우해(귀해)집니다아!"
도매 업체에선 늦여름에 생선을 잘 말리지 않는다. 냄새와 파리가 꼬여 생선을 못 팔게 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요즘 생선을 내다 거는 김씨 같은 이들은 여행객들을 상대로 소규모 장사를 하는 이들이다. 그날그날 팔 만큼만 생선을 말린다.
하루 동안 말린 가자미의 배 껍질은 겨울철 손바닥처럼 꾸득꾸득하고 건조했다. 냉동했다 녹인 생선은 겉에 물기가 축축하게 묻어난단다. 가자미는 대략 손바닥 크기를 기준으로 '작은 가자미'와 '큰 가자미'로 나뉜다. 가자미 사촌뻘 되지만 덜 잡히기 때문에 값이 더 나가는 미주구리는 작은 편이다.
김씨가 가르쳐준 말린 가자미 조리법은 이렇다. 칼국수에 간할 때 넣어 먹는 간장 양념에 고춧가루와 물엿과 물을 넣어 조림장을 만든다. 가자미를 작은 것은 3등분, 큰 것은 4등분 정도로 썰어서 가자미 한 겹 조림장 한 겹 차례로 올려 자글자글 조려 먹는다. 설탕은 가자미 표면을 '꿉게'(굳게) 하니까 금물이다.
생선을 유난히 좋아한다면 경북 지역 사람들이 즐겨 먹는 가자미 미역국에도 도전해볼 만하다. 두 입 크기 정도로 큼직하게 썬 가자미를 미역국에 풍덩풍덩 넣어 끓여 먹는 식이다. 미주구리는 가자미와 같은 방법으로 요리해도 되고 소금 살살 쳐서 구워 먹어도 맛있다.
소쿠리에 담아 파는 가자미 가격은 큰 것이 10마리에 '하나 얹어서 2만원', 작은 녀석은 10~12마리에 '두 개 얹어서 1만원'이다. 미주구리는 큰 것이 8~9마리에 2만원, 작은 것이 8마리 정도에 1만원. 현빈이네 건어물 위치는 감포 수협 맞은편, 010-8770-6662
감포에서 걸어서 10분 정도면 닿는 감포 시장에선 바싹 말려 거의 쥐포 수준인 가자미와 미주구리를 파는 노점 10여 군데가 몰려 있다. '감포 시장 큰아지매'라고 자신을 소개한 할머니에게 바싹 말린 미주구리 새끼 한 봉지(5000원)를 샀다. 무작정 사긴 했는데, 어떻게 먹어야 할지 막막하다. '아지매'는 커다란 가위를 번쩍 들었다.
"이걸 요래! 요래! 요래! (몸통을 작게)잘라서, 씻지 말고 고추장 양념 버무려서 볶아 먹으면 아주 맛있다. 처음 할 때는 양념 잘 못 맞추니까 요만큼만 쥐어서 해 봐라. 큰놈은 요래! 요래! 요래! (머리·꼬리·지느러미를) 잘라내고 기란(계란) 묻히고 밀가루 발라서 부침 해묵는다. 이것도 맛있다."
서울에 돌아온 후 '아지매'를 따라 가위를 꺼냈다. 양념장을 만들어 '요래 요래 요래' 자른 생선에 무친 다음 기름에 볶아 먹었다. 쥐포보단 덜 달고 대구포보단 부드러운 바닷바람의 맛… 감포에서 서울까지 잘도 따라와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먹을거리
감포항 부근엔 횟집이 몰려 있다. 제철 회를 주로 파는데 메뉴와 가격은 비슷비슷하다. '현빈이네 건어물' 김정숙씨는 "매운탕이 맛있다"며 북해도횟집(054-744-3665)을 추천했다. 서울서 잘 팔지 않는 가자미회(한 접시 3만원)는 쫄깃하고 고소했다. 주인아주머니가 한 줌 곁들여준 빨간 살의 '아지'(전갱이)는 쫄깃함과 고소함이 한 수 위다.
주변 가볼 만한 곳
감포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10분 정도 가면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의 수중릉(水中陵)인 문무대왕릉이 있다. '감포'의 또 다른 어원이라고 추정되는, 통일시대 초기 석탑(감은사지 삼층석탑)도 약 10분 거리다.
뻘건 콩나물 벗어던진 순결한 아귀여
아귀수육이 제맛 ②모포
철 지난 모포해수욕장(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모포리)은 여행객의 발길이 끊겨 고요하다. 해가 서둘러 지는 동해의 저녁,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종이컵 하나씩을 손에 들고 집 앞에 앉았다. 뽀얀 눈동자에 비치는 바다 뒤로 '오늘'이 꿀꺽 넘어간다.
포항을 찾은 이들은 모포(牟浦·다른 지역보다 봄에 보리가 일찍 난다고 이런 이름을 얻었다)에 잘 들르지 않는다. 부산 해운대만큼 화려한 북부해수욕장, 일출 명소 호미곶, 과메기로 유명한 구룡포…. 놀고 먹기 좋은 바닷가 휴양지가 지척인데 외지고 작은 해수욕장이 눈에 들어올 리 없는 모양이다. 포항시에서 낸 지도에도 모포는 찾을 길이 없다. 이 작은 해수욕장에 굳이 찾아드는 이들은 사람 많은 데를 억지로 피해 다니는, 호젓한 취향의 소유자들이다.
저녁 마실 나온 할머니들에게 "뭣 하러 왔소?"란 질문을 대여섯 번쯤 받은 후 '해정회식당'에 닿았다. 모포초등학교에서 빨간 등대가 있는 방파제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식당 앞엔 곧 떠날 듯한 배 두 척이 나란히 서 있다. 바닷가 옆, 통나무로 만든 식탁에선 아저씨 네 명이 곰 발바닥만한 굴을 막걸리와 함께 해치우는 중이다.
"아구(아귀)가 한 주 전부터 많이 잡히는데예, 점심때 다 팔아서 없어예. 우리 아저씨가 잠수하면 굴또 따아고 하는데 오늘은 쪼매 늦어서예…. 내일 오실 거면 아저씨한테 굴 따아라카고요."
주인 남경주(45)씨에게 다음날 아귀와 굴을 꼭 남겨두겠다는 다짐을 받고 발걸음을 돌렸다. 이튿날 점심, 시커먼 잠수복을 입은 '아저씨'가 바구니 한가득 굴을 잡아다가 성큼성큼 식당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 옆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남씨는 "아귀는 수육이 맛있다"고 권했다. 포항 사람들은 아귀찜만 찾는 서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맛있고 쫄깃한 아귀를 매운 양념과 콩나물로 범벅해서 먹으면 무슨 맛이냐는 것이다. 이 동네 사람들은 대신 좋은 아귀가 들어오면 일단 수육을 만든다. 한 마리를 대가리에서 꼬리까지 큼직하게 잘라 삶은 다음 올통볼통한 뼈 사이사이를 열심히 발라먹는다.
수박만한 접시에 산산이 분해된 아귀가 흰 속살을 드러내며 하나 가득 담겨 나왔다. 밍밍하게 간한 부추 겉절이와 김 풀풀 나는 데친 부추도 따라왔다. 아귀 한 점을 데친 부추로 돌돌 감싸서 간장 살짝 찍어 입어 넣었다. 쫄깃하고 고소하고 통통한 육질이 입안에 퍼진다. 처음엔 체면 차리느라 젓가락으로 살살 먹었지만, 어느 순간부턴 엄지 검지로 움켜잡고 살 한 점 놓칠세라 열심히 뜯어 먹게 된다.
아귀 수육의 절정은 입에서 참기름 뭉치처럼 녹는 '애'다. 생선 간을 일컫는 '애'는 냉동시키면 금세 녹아버린다(푸석푸석해진다). 서울선 쉽게 먹지 못하는, 귀한 부위다. 8㎝ 남짓한 애를 손톱만한 크기로 잘라 젓가락에 올려 입에 쏙쏙 넣었다.
"아이고, 애도 먹을 줄 알아예? 나는 경북 청송이 고향이거든예.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생선 이름 외우는 것도 힘들어예."
무슨 사연인지 바닷가에 살게 된 산골 아지매가 설(說)을 풀어놓는 사이 '아저씨'는 생굴을 쑥 내밀었다. 해변서 250m쯤 배 타고 나가 바다 아래로 7m 잠수해 방금 따왔단다. "엊그제까지는 산란기라 통통한 게 터질 것 같던데 이제는 '우유'를 다 뿜어버려서 푹 꺼졌다"고 안타까워하며 내민 굴은 씨름 선수 손바닥만큼 컸다. 도시 사람들은 산란기인 5~8월에 독이 있을 수 있다고 피하는데 바닷사람들은 통통하게 오른 굴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아무것도 찍지 말고 그냥 드셔요. 뭐든지 재료 그대로 먹는 게 제일루 맛있다 아입니꺼."
손대지 않을수록 맛이 사는 싱싱한 재료들 덕분에 산골 아주머니가 차려내는 해산물 한 상이 충분히 맛깔지다. 아귀수육 2만5000원, 자연산 생굴(5개) 2만원.
● 해정회식당_ 포항시 남구 장기면 모포1리 18-1 (054)284-4948
하루에 다섯 끼라도 먹고 싶다
바다가 자연적으로 만들어 낸 풍경! 따지고 보면 별 풍경도 아닌 듯 보인다. 바닷가에 단층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단층의 중간 지점에서 내륙으로 향한 틈이 약 4~6m정도 찢어진 듯 갈라져 있었다. 그 틈을 넘실거리는 파도가 쉴 사이 없이 드나들며 바다폭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파도가 덮쳤다가 빠지면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이 영락없는 폭포의 형상이다. 어떻게 보면 그저 평범한 바다같이 보이지만 이런 현상도 극히 드물어 보인다. 또한 무시로 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밀물 때는 볼 수가 없으며 썰물 때만 나타는 현상이다. 이에 사람들은 썰물이 시작되고 6시간쯤을 정점으로 전후하여 모여드는 것이다. 우리가 찾은 일요일의 간조 시간은 오전 10시 50분경으로 6시간 전후 약 2시간이 적기다. 따라서 5시부터 8시 사이가 되는 것이다. 물이 완전히 빠지면 파도가 약해져서 폭포의 감동이 줄어들고 물이 어느 정도 차오르면 모든 것이 묻혀 버리는 것이다.
출처 : 시니어매일(http://www.seniormaeil.com)
물 깊고 맑은 항구 ③양포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 자리 잡은 양포(良浦)의 오전 7시는 이미 '해산' 분위기다. 이 시간이 되면 수산물 공판장은 경매가 벌써 끝나 몇몇 어부들만 남은 생선을 치운다. 일송정식당앞 주황색 플라스틱 대야에 아귀 두 마리가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식당 주인 남희자(66) 할머니가 매일 오전 5시50분 양포 공판장에서 열리는 수산물 경매에 나가 떼어온 녀석들이다. 두세 명 먹을 분량인 2만원짜리 아귀탕(공깃밥 한 개 1000원 별도)을 시켰다.
할머니가 주방으로 들어가고 나서 '텅! 텅! 텅! 텅!' 하는 칼질 소리가 들려왔다. 약 20분 후 바글바글 끓여 나온 아귀탕은 자작한 국물에 무, 파, 콩나물이 넉넉히 들었다. 고춧가루를 풀어 소금으로 간을 했다는 국물은 말갛고 깨끗하다. 국물부터 한술 떠서 입에 넣었다. 혀에서 식도를 지나 위까지 직행하는 국물이 꽉 막힌 속을 뻥 뚫고 남은 잠을 쫓는다. 복어탕과 진검 승부를 펼쳐 볼 만한 맛이다. 고소한 '애'(생선 간)는 입에서 살살 녹는다. 이 자리에서 40년째 식당을 하고 있다는 남 할머니는 "서울선 귀하다고 애를 아무나 안 준다는데, 우리는 흔하니까 싫다고만 안 하면 넣어준다"고 했다. "아침엔 주로 탕을 내고 점심 저녁엔 물메기(곰칫과 생선으로 '물곰'이라고도 한다) 회를 많이 먹지. 문어를 삶아가 쌍그라모(썰어서) 먹어도 맛있다."
아침부터 배를 두드리며 해변으로 나왔다. 경북 포항에서 경주로 넘어가기 직전에 있는 양포는 작은 만(灣)을 끼고 있다. 경주시와의 경계인 감재산(해발 286m)에서 흘러내리는 수성천이 양포만에 모인다. 옛날부터 물이 깊고 맑기로 이름났던 항구, 아직도 바다 바닥이 들여다보인다.
양포에서 동쪽으로 쭉 뻗은 방파제 위엔 걷기 좋은 푹신한 산책로가 깔려 있다. 방파제 끝 빨간 등대를 향해 걸어가는 사이 남쪽 동쪽 서쪽 삼방(三方)으로 펼쳐진 바다 풍경이 제각각 장쾌한 기세를 자랑한다.
방파제가 시작되는 지점에 걸린 '해녀 포장'이란 현수막 뒤를 보면 절벽 아래 할머니 두 명이 부지런히 해삼 멍게 소라(한 접시 각각 약 1만원)를 썰어 파는 작은 포장마차가 보인다. "자연산인가요"라고 물었다. 당연하다는 듯 "응"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일송정식당_ 포항시 남구 장기면 양포공판장 옆 (054)276-2055
주변 가볼 만한 곳
양포에서 929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영일장기읍성에 닿는다. 고려 현종(1011년) 때 왜적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의 둘레는 1.4㎞ 정도. 성 군데군데가 스러져 일주하긴 힘들지만 어느 한 곳에 서더라도 넓은 논 너머 펼쳐지는 구릉과 그 위를 둥그렇게 감싸는 동해 수평선을 감상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929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14번 국도로 갈아타면 오어사(吾魚寺)에 닿는다.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와 혜공(惠空)이 수도를 하다가 '법력'으로 개천의 죽은 물고기를 살리는 시합을 벌였는데 그 중 한 마리가 헤엄을 치자 서로 "내가 살렸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 전설에서 '나 오(吾)'에 '물고기 어(魚)'자를 따서 절 이름을 지었다. 아담한 사찰보다는 진입로부터 따라오는 고요한 연못 오어지(吾魚池)가 볼거리다. 청록색 깊은 물이 엄마가 아기를 안듯 오어사를 꼭 감싸 안는다.
아, 실크 국수… 오, 설탕 찐빵!
역사와 맛이 있는 ④구룡포
구룡포 사람들은 "구룡포의 최전성기는 1930~40년대"라고 말한다. 호(好) 시절은 갔지만, 그때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흔적을 보러 이제 여행객들이 찾는다.
◆일본인가옥거리
횟집이 늘어선 구룡포 큰길에서 골목 하나만 들어가면 딴 세상이 펼쳐진다. 전성기 시절 구룡포 모습이 곱게 늙은 채 박제된 듯한 분위기다. 이곳은 '구룡포 장안동골목'이라고도, '일본인가옥거리'라고도 불린다.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모여 살던 지역이다. 400여m 골목길을 따라 낡은 일본식 집들이 여럿 남아 있다.
골목길 구경은 '하시모토(橋本)가옥'에서 시작하면 좋다. '구룡포6리' 표지판과 버스정거장 맞은편, '은이식당'과 '경포회식당 전용주차장' 표지판이 붙은 건물 사이 골목으로 들어가 오른쪽에 있는 큰 2층 건물이다. 이 골목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복원하고자 포항시에서 전시홍보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주말 오전 10시~오후 5시 연다. 주말에는 포항시 문화해설사가 설명도 해준다. 문의 포항시 문화관광과 (054)270-2243
하시모토가옥에서 만난 문화해설사 이원희씨는 "하시모토는 1930년대 구룡포에서 선어운반업으로 크게 성공한 분"이라고 했다. "1902년 야마구치(山口)현 어부들이 구룡포에 처음 온 일본인 어부들이랍니다. 1916년 일본인 가옥이 78호나 됐대요."
골목을 더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계단이 나온다. 신사(神社) 등이 있던 일본인 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계단 양옆으로 긴 직사각형 기둥이 117개가 늘어서 있다. "원래 이곳에 살던 일본인 이름이 새겨졌었는데, 해방 후 일본이름에 시멘트를 바르고 180도 돌려서 반대편에 공적이 많은 구룡포 분들의 이름을 새겼죠."
좋건 싫건 안고 가야 하는 한·일 과거사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골목이다.
◆ 제일국수공장
이순화(71) 할머니는 자기가 만들다 부러진 국수 자투리를 또각또각 씹어 먹었다. 삶지 않아 딱딱한 생면 그대로. 할머니를 따라 국수를 먹어봤다. 바삭바삭하면서 찝찔한 게 과자 같다. "면은 햇볕에 말려야 쫄깃하고 좋니더. 다른 데는 방에서 열풍기 불어 말리지요. 햇빛에 말리면 일이 많거든."
이순화 할머니는 30년 훨씬 넘게 구룡포에서 국수를 만들어 팔아왔다. 올해 서른여덟인 막내가 '얼라'일 때부터 국수를 만들었다. 만드는 방식은 아직도 옛날 그대로다. 재료는 밀가루와 물, 소금 딱 세 가지.
물에 소금을 적당히 녹여서 밀가루와 섞고 기계에 넣어 가늘게 뽑는다. 이 면을 가게 뒤 마당에 널어 놓는다. 구룡포의 따뜻한 햇살과 간간한 해풍(海風)이 면발을 훑으며 말려준다.
국수를 삶아 봤다. 삶은 물이 뿌옇게 변하지 않는다. 씻지 않아도 표면이 매끄럽다. 표면에 묻은 전분이 바람과 햇볕에 충분히 제거된 탓인 듯하다. 아주 쫄깃하다. 찝찔한 것이 이탈리아 파스타(pasta) 같다. 국수 자체에 간이 배 있어 국물과 더 밀착된 듯한 맛이다.
국수는 '묶음'으로 판다. 1묶음이 750g으로, 5인분쯤 된다. 가격 2000원. '소면'과 이보다 약간 굵은 '중면''우동'이 있다. 진짜 가락국수 굵기는 아니고, 납작한 것이 칼국수와 거의 같다. 20묶음(4만원) 이상 주문하면 전국 어디건 보내준다. 택배비 4000원이 추가된다. 주말에는 할머니가 자식들과 국수 만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국수를 당장 맛보고 싶다면 '할매국시'로 간다. 제일국수공장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 왼쪽 허름한 파란기와지붕집이다. 메뉴는 '국수(2500원)' 딱 하나. 큼직한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붓고 제대로 삶은 국수를 시원한 멸치 국물에 말아 낸다. 고명은 간장 양념장과 채 썬 오이밖에 없는데도 아주 맛나다.
● 제일국수공장_ 포항시 남구 구룡포리 963-24 (054)276-2432
● 할매국시_ 구룡포시장 안
◆ 철규분식
찐빵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쫄깃하다. 속에 든 단팥은 너무 달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심심하지도 않다. 겉과 속이 '찐빵궁합'이다. 구룡포시장 뒤, 구룡포초등학교 맞은편 '철규분식'이다.
기다란 나무 걸상이 놓인 가게 내부는 어렸을 때 분식집 딱 그 모양새다. 가게 안쪽에서 찐빵처럼 통통한 여주인이 쉴 새 없이 찐빵을 빚는다. 주인은 "55년쯤 됐다"고 한다.
1인분(1000원)을 시키면 접시에 찐빵 3개와 설탕이 조금 따라나온다. "예전에는 설탕을 듬뿍 뿌려줄수록 손님들이 좋아했어요. 요즘은 싫어해요. 살찐다꼬…." 국수(2000원)는 제일국수공장에서 만든 소면을 사용한다.
● 철규식당_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리 987-7 (054)276-3215
◆ 전복죽
호미곶에서 구룡포로 들어서는 초입에 '전복 전문'이라고 큼직하게 써 붙인 가게가 네댓 있다.
이곳 터줏대감 중 하나인 '할매전복집' 김정희씨는 "어머니가 하실 때는 자연산 전복이 앞바다에서 많이 났는데, 요즘은 여기 것만으로는 물량이 모자라 동해 전역에서 나는 전복을 쓴다"고 했다. 종패(새끼전복)를 동해안을 따라 뿌려뒀다가, 자라면 채취하는 식이다. 완전 자연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양식산도 아니다. 전복죽을 주문하면 초고추장에 무친 생선회와 도토리묵을 내준다. 죽을 쑤려면 못해도 15분은 걸리니, 먹으며 기다리라는 배려다.
전복 내장을 으깨 넣은 죽은 짙은 초록색이다. 죽 끓이는 솜씨가 궁극(窮極)의 경지는 아니지만, 싱싱한 전복의 강렬한 신선함이 압도적이다. 잘게 썰지 않고 큼직하게 썬 전복살이 다른 지역 전복죽과 다르다. 전복 속에 조개 맛이 들어 있다. 양식이 아니라 자연산이라고 해야 할 성장환경 덕분인 듯하다. 죽도 훌륭하지만 역시 회가 전복의 맛을 완전하게 만끽하는 방법일 듯하다. 가격이 부담스럽긴 하다.
전복죽 1만2000원, 전복회 7만·13만원, 전복회국수 2만5000원.
●할매전복집_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6리 (054)276-3231
골목길에서 도로에서 바다가 반겨요
드라이브 코스 ⑤월포·⑥칠포
지난 여름 민박을 받았을 집들 사이 골목에 들어섰다. 차 한 대 겨우 통과할 골목 모퉁이를 돌자 뜻밖에도 탁 트인 바다였다. 여기는 포항 월포해수욕장. 포항에는 이렇게 골목길에서도 바다를 만날 수 있는 마을이 무수히 많다. 그중에서도 월포에서 칠포를 잇는 20번 국도는 유난히 아름답다. 길이는 약 11㎞에 불과하지만, 동해안의 아름다움과 해안도로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농축해 놓았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으면 바다고, 코너를 돌면 또 다른 바다가 나타난다. 여름 휴가철 전성기를 지난 바닷가에는 사람은커녕 갈매기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고즈넉해서 오리려 더 좋다. 해 뜨는 동해도 아름답지만, 산 너머로 지는 해에 생선 비늘처럼 반짝이는 바다도 볼만하다.
동해안에 이보다 큰 어시장은 없다
건어물 천국 죽도어시장
'물 반 고기 반'이 아니라 '사람 반 고기 반'이다. 포항 죽도시장은 동해안 최대 상설시장이다. 14만8500㎡(4만5000평)에 활어·건어물·농산물·혼수·의류·가구·생필품을 파는 상가 2000여 개가 빡빡하게 들어찼다.
동해안을 따라 포구도 시장도 수두룩하지만, 역시 죽도시장이 가장 크고 풍성하다. 건어물을 구매하기도 역시 죽도시장이 가장 편하고 가격도 싼 편이다.
동빈내항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길을 건너면 바로 죽도시장이다. '회센타골목'을 통과하면 작은 사거리다. 맞은편이 어시장이다. 포항 '아지매'들이 그날 아침에 사들인 미주구리(물가자미)며 우럭, 도미 등 각종 생선을 직접 말린다. 사거리 한 상점 주인은 "하루쯤 말려서 판다"고 했다. "술안주 하는 사람은 이틀 정도 바짝 마른 거 찾고, 엄마들은 조림을 하려고 약간 마른 거 찾고. 자기 입에 맞게끔 골라서 사 먹는 거지."
판매단위는 '채반'이다. 둥그런 플라스틱 채반에 생선을 빙 두르고 두세 마리를 중앙에 고인다. "이게 몇 마리냐"고 물으니 "작다 싶으면 마릿수를 늘리고, 크다 싶으면 마릿수를 줄이는 거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갑갑해한다.
'깍쟁이 서울사람'인지라 정확히 몇 마리인지 궁금해 채반에 놓인 생선을 세어봤다. 손바닥이 기준인 듯한데, 미주구리·참가자미 등은 손바닥보다 작으면 12마리에 1만원이고 손바닥보다 크면 8마리 2만원 받았다. 서너 마리 덤은 기본. "예전에는 생선 취급도 안 했는데, 마이 컸다"는 도루묵은 30마리 정도가 만원짜리 한 채반이다. 머리가 달린 생선도 있고, 없는 생선도 있다. 머리가 없으면 먹기 편하고, 머리 있는 건 제사상에 올리는 것이고. "그걸 몰라요? "
큰 생선 말린 것을 사려면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제수용 고기 전문'이라고 써 붙인 생선가게가 여럿 있다. 팔뚝만 한 민어, 도미, 우럭 등이 줄줄이 걸려 마르고 있다. 큼직하면서 비리지 않은 생선들로 제사상에 올리기 좋은 생선이 많다. 말린 민어조기가 1만원, 인도조기 5000원, 우럭 2만5000원, 도미 1만원 정도 받는다. 택배비 4000원을 내면 전국 어디든지 보내주기도 한다.
입맛대로 물 부어 먹는 물회
물회는 바닷가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흔한 음식이다. 포항사람들은 "포항 물회는 다른 지역과는 다르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아예 '포항물회'라고 따로 이름 붙여 부르기도 한다. 도대체 어떻기에.
죽도시장 '회센타골목'으로 갔다. 복작대는 골목길을 통과해 '수향회식당'에 들어갔다. 물회 잘한다고 포항과 전국적으로 소문난 집이다. 주인 최재순씨는 "어떤 걸로 해 드릴까예"라고 묻는다. "우럭이나 오징어나 광어가 있어예. 우럭이 맛있어예."
우럭물회와 오징어물회를 하나씩 시켰다. 잠시 후 커다란 흰색 사발 두 개가 나왔다. 가늘게 썬 우럭과 오징어가 각각 사발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그 둘레에 역시 가늘게 썬 상추 따위 각종 채소와 김, 참깨, 고추장, 커다란 얼음이 담겼다. 최씨가 냉장고에서 찬물 한 주전자를 가져다준다. "다른 데서는 물 부어서 나오잖아요. 포항물회는 그냥 고추장이 들어가예. 물 부어도 좋고, 그냥 먹기도 하고. 입맛대로 식성대로."
찬물을 사발에 적당히 붓고 양념을 풀고 섞으니 다른 동네 물회와 모양이 비슷하다. 그런데 맛이 영 다르다. 매콤새콤달콤하지 않고 매콤달콤하다. 초고추장이 아닌 고추장을 쓰기 때문이다. 고추장을 사용해서인지 다른 물회보다 훨씬 덜 자극적이다. 약간 옛날 음식 같은 맛이 난다. 자극적인 요즘 음식에 혀가 길들었다면 '밋밋하다'고 덜 좋아할 수도 있겠다.
죽도시장 안 횟집들은 대개 물회와 함께 '회밥'도 판다. 회덮밥이다. 여기는 초고추장이 들어간다. 물회 1만원, 회밥 1만원, 모둠회 3만·4만·5만원.
●수향회식당_ 죽도어시장 안 (054) 241-1589
[자료 - 조선닷컴 김신영 김형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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