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방곡곡/제주시

제주 한라산-관음사 개미목 탐라계곡

by 구석구석 2009. 11. 18.
728x90

 

 

 

겨울에 만나는 山寺풍경 '관음사'

제주시에서 제1횡단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제주대학교를 지나 약 1km 지점에 검문소가 있다. 계속 5백m 정도 더 가면 관음사 도로가 나타난다. 이 곳에서 약 10분 정도 가면 관음사가 위치하고 있다.

 

겨울은 역시 추워야 제 맛이다. 아이들은 겨울방학 동안 춥다며 실내에서만 지내려 하고, 부모 역시 감기에 걸린다며 외출을 삼가하게 한다. 그러나 춥다고 실내에서만 생활하다 보면 나태하고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추운 겨울일수록 자녀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 찬바람을 맞고 대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하려는 각별한 배려가 필요하다.

 

겨울 눈덮인 산사를 찾는 것은 사회생활로 스트레스를 받는 부모나 방학중 무기력해지는 자녀들을 위한 활력소로 다가올 것이다.

 

한라산 중턱에 자리잡은 관음사는 제주의 조계종을 대표하는 절이다. 관음사는 1908년 비구니인 안봉려관스님에 의해 중창된 것으로 전해진다. 관음사의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지난 99년 제주도지정 유형문화재로 지정됐으며, 경내 왕벚나무 자생 군락 역시 같은 해에 지방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제1산록도로 중간 지점에 자리잡은 관음사를 찾았다. 많지는 않았지만 하얀 눈이 쌓여 있어서 절 집의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했다. 부처님이 깨우친 인생과 우주에 대한 진리통달이 오직 마음의 깨달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일주문(一柱門) 안으로 들어서자 세속에 찌든 마음이 한결 상쾌해졌다. 일주문에서 사천왕문까지 길게 뻗은 인도에는 눈을 이고 말없이 앉아있는 석불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부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는 꼭 통과해야 한다는 사천왕문을 지나자 대웅전과 요사체가 보인다.

 

인적없는 겨울 산사에는 호젓함과 적막함이 밀려온다. 파란 이파리가 남김없이 떨어진 앙상한 나무들은 겨울 찬바람에도 꿋꿋이 서 있다. 왕벚나무 역시 올 봄 화사한 꽃을 피우기 위해 이 겨울을 그렇게 인내하고 있는 듯했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풍경소리만이 겨울 산사의 적막감을 달래준다. 대웅전을 찾아 합장하고 잠시 살아온 날들을 회상해 본다. 역시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싯달타는 온갖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출가했고, 깨달음을 얻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합장을 했다. 대웅전을 나와 하얀 눈을 밟으며 산사를 거닐며 대자연을 만끽했다.

 

내려오는 길에 일주문 오른쪽에 있는 전통 찻집 ‘산소리’에 들러 따끈한 차 한잔을 마시는 것도 좋다. 고즈넉한 겨울 산사의 입구에 마련된 조용한 공간에서 가지런한 다기에 정성이 듬뿍 담긴 우리 전통 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것은 이 겨울 새로운 추억으로 다가온다. 한라일보 강동우기자

 

한라산 개미목

관음사 코스는 한라산 등산로 4개 중 해발고도가 가장 낮은(해발 620m) 지점에서부터 시작하며 1.5km 구린굴을 경유하여 20분 정도 오르면 등산로를 가로지르는 탐라계곡에 도착하게 된다.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이 곳에서 휴식을 취한 후 높은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이 지점이 ‘멘주기 촐리’란 곳이다 멘주기란 뜻은 제주어로서 올챙일란 뜻이며 촐리란 말은 꼬리란 제주어이다. 이 곳은 동탐라 계곡과 서탐라 계곡이 합쳐지면서 올챙이 꼬리처럼 길게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20여분 더 오르면 등산로 4.1km지점 오른편에 ‘원점비’란 간판이 있다. 1982년 2월 6일 육군특전사 대원을 태운 공군 수송기가 제주공항으로 향하던 도중 눈보라와 짙은 안개로 한라산 해발 1,100고지에 추락하여 전원이 사망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던 곳에 원점비를 세워 놓았다.

 

당시 전사한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관음사안내소 서쪽에 충혼탑이 세워져 있다. 이 탑이 첫머리에는 검은 베레모레 “안되면 되게 하라!”는 비문을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절로 고개숙여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올리곤 한다.

 

원점비 입구에서 0.9km 올라가면 개미목이란 간판이 있으며 이 지점이 해발 1,200m이다. 여기서부터 개미목도라 하며 여기서 도(道)란 뜻은 들어가는 작은 입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개미목도를 오르면 1km 정도가 긴 능선으로 이루어진 곳이 개미등 또는 개미목밭이라 하여 예로부터 이곳에 여러 사람들이 묘를 쓰는 것을 원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개미목 밭은 옛사람들이 말에 의하면 우마를 방목하는 좋은 조건을 갖춘 장소로서 제주시 정실 부락민들이 우마를 많이 방목하였다 한다. 1년에 한번씩 불을 놓아 잡초를 태우고 나서 다음해 봄에 연한 풀들이 돋아나면 소떼들을 풀어놓아 기르던 곳으로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초원지대였다.

 

또한 이 주변에는 여러 군데 명당자리를 찾아 묘를 조성하였으나 오늘날은 거리가 멀고 또 주변에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나서 묘주들이 다른 장소로 묘를 옮겨가고 있기도 하다. 개미머리 부분이 삼각봉 6.3km 지점이다. 2002년도에 삼각봉 50m 북쪽에 등산객 조난 구조시 이용할 목적으로 헬기장을 시설하였다. 삼각봉 동쪽 등산로 옆으로는 삼각봉에서 낙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안전망이 약 50m정도 시설되었다.

 

이 곳에서 50m를 지나면 옛 용진각 대피소가 있었던 곳이다. 1948년 4·3사건으로 봉쇄되었던 등산로를 1952년도에 현임종씨가 무장 경찰관 2명이 안내를 받으며 용진각에 도착해보니 대피소가 눈사태로 무너져 있었다고 말했다. 구 용진각 대피소에서 30m 지나면 삼각봉 동남쪽 작은 골짜기에서 용진샘이 솟아나온다. 등산객들은 이 샘에서 물을 마시고 또 수통 등에 물을 채워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원형대피소 앞을 지나 100m 더 오르면 1973년도에 건축한 용진각 대피소에 도착하게 되며 이 지점이 6.8km이다. 여기에서 다시 왕관능을 남쪽으로 오르면 해발 1,700m 왕관능 정상에 오르게 된다.

 

한라산 정상쪽을 오르다 보면 등산로 동쪽 옆에 작은 무덤 2기가 있다. 1981년 8월 1일 저녁 서울치대산악부 학생들이 산악훈련도중 기상악화로 정상 북부능선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구상나무 숲 속에서 텐트를 치고 비박하였다. 다음날 아침 7시경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버너를 조립하고 코펠에 쌀을 씻으려는 순간 낙뢰가 떨어져 2명은 사망하고 또 2명은 중상을 당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 때 사망자 2명이 묻혀 있는 묘이다.

 

여기서부터 구상나무 숲속으로 약 40분정도 오르면 백록담 동쪽 통궤 옆으로 지나 한라산 동능 정상에 오르게 된다. 총 8.7km에 해발 1,940m이다.


한라일보-한라산국립공원 양송남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