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의 가지산(1240m), 고헌산(1033m) 등에서 발원한 태화강은 울산만에서 동해로 빠져나간다. 태화강 본·지류의 강물은 울산시의 농업용수와 울산공업단지의 공업용수. 지역발전에 없어서 안될 귀중한 자원이다.
태화강 하구의 방어진, 장생포, 온산항은 구한말부터 어업전진기지로, 무역항으로 해외 문물을 받아들이는 창구역할을 해 왔다.
ㅁ 황성동 668-1 처용암
처용암은 바로 앞에 보이는 바위섬이다. 이 바위에서 처용이 나왔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된 처용랑(處容郞) 설화와 관계 있는 유서 깊은 바위이다.
신라 제49대 헌강왕(憲康王 : 재위 875∼886)이 이곳에 와서 놀다가 돌아가 려고 물가에서 쉬고 있었는데, 낮인데도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짙게 끼어 길을 찾을수 없었다.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동해의 용이 조화를 부리는 것이니 좋은 일을 해주어 풀어야 한다고 했다. 임금이 명령을 내려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세우라고 하자 구름과 안개가 걷혔다.
그 절이 현재 울주군 청량면에 그 터가 남아 있는 망해사(望海寺)이다. 그리고 이곳은 구름이 걷힌 포구라고 해서 개운포 (開雲浦)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동해 용왕이 크게 기뻐하며 왕자 일곱을 거느리고 나와서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그 가운데 한 아들이 임금을 따라 신라의 서울인 경주(慶州)로 왔는데 그가 처용이었다.
왕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처용의 배필을 삼도록 하고 급간이라는 벼슬까지 주어 그를 왕의 곁에 머물러 있게 하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처용의 아내를 흠모한 역신이 사람으로 변하여 밤에 몰래 침입하여 동침했다. 처용은 밖에서 자기 집에 돌아와 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고도 화를 내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물러 나왔다.
그러자 역신이 무릎을 꿇고 처용의 관용에 감격하면서 앞으로 그의 모습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곳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처용이 추었다는 처용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로서 보전되어 있고, 이곳 처용암은 동해용이 일곱 아들을 데리고 나온 개운포 성지의 바위로, 지방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어 처용설화와 함께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ㅁ 개운포 좌수영성
처용암에서 물길을 거슬러 조금 올라가면 강변 구릉지에 옛 성터가 남아 있다. 커다란 바위에 '개운포성지'라 새겨져 있다. 공단이 들어서면서 이주했던 주민들이 세운 것이다. 아름다운 느티나무 두 그루가 옛 성의 주인처럼 서 있다. 이 역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주민들이 심은 것이다.
이곳은 원래 조선시대 경상좌수영에 속한 만호진(萬戶鎭)이 있던 곳이다. 배를 건조하고 수리하는 선소도 있었다. 여말선초 극심했던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바다를 지키기 위해 동해안에는 모두 12개의 크고 작은 수군부대가 창설됐다. 이들을 총괄하는 경상좌수영은 1413년에 부산 지역에 최초 설치되었으나 세조 5년인 1459년 울산 개운포로 옮겨 왔다.
당시 수군진에는 별도의 성곽이 없었다. 바다에서 싸우는 수군에게 육지에 성 짓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다. 이후 육군과 수군의 연합방어체제로 바뀌면서 성종 조부터 수군에게도 성곽 쌓는 일이 허용됐다.
기록에 의하면 중종 5년인 1510년에 이곳 개운포에 성곽이 축조됐다. 울산으로 수영이 옮겨온 지 51년이 지난 일로 경상좌도 최초의 수영성이 만들어진 것이다.
성벽은 남북으로 긴 타원형이고 둘레는 1천264m라 한다. 성문터와 해자와 치성 같은 방어시설과 성문터 등도 확인되었다. 이곳은 남쪽 체성으로 가장 양호한 상태를 볼 수 있는 구간이다. 남문터는 찾지 못했다 한다. 여기부터 저 끝까지 한눈에 보이는 규모다.
경상좌수영은 1544년 해운포로 옮겨 갔다. 이후 개운포성에는 만호진이 해안을 지켰고 조선후기에는 읍 수군의 기지로 사용됐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 성에서 세 차례 정도 전투가 있었다고 한다. 성벽 위를 징검다리 건너듯 성큼성큼 걷는다. 성벽아래 빈 대지에는 선수(선소)제당이 있었다.
해마다 정월 15일에만 제를 올리다가 한국전쟁 때 전장에 나간 자식들이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 옆 빈터에는 구멍가게 두 개가 있었단다. 성벽 길 몇 미터 사이에 몇백 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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