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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울산광역시

울산 남구-황성동 처용암

by 구석구석 2009.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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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의 가지산(1240m), 고헌산(1033m) 등에서 발원한 태화강은 울산만에서 동해로 빠져나간다. 태화강 본·지류의 강물은 울산시의 농업용수와 울산공업단지의 공업용수. 지역발전에 없어서 안될 귀중한 자원이다. 태화강 하구의 방어진, 장생포, 온산항은 구한말부터 어업전진기지로, 무역항으로 해외 문물을 받아들이는 창구역할을 해 왔다.

황성동 668-1 처용암

처용암은 바로 앞에 보이는 바위섬이다.이 바위에서 처용이 나왔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된 처용랑(處容郞) 설화와 관계 있는 유서 깊 은 바위이다. 신라 제49대 헌강왕(憲康王 : 재위 875∼886)이 이곳에 와서 놀다가 돌아가 려고 물가에서 쉬고 있었는데, 낮인데도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짙게 끼어 길을 찾을수 없 었다. 일관(日官) 이 아뢰기를 동해의 용이 조화를 부리는 것이니 좋은 일을 해주어 풀어 야 한다고 했다. 임금이 명령을 내려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세우라고 하자 구름과 안개 가 걷혔다.

울산 하면 생각나는 처용설화. 온산항 한가운데 처용의 전설을 간직한 처용암이 떠 있다.

그 절이 현재 울주군 청량면에 그 터가 남아 있는 망해사(望海寺)이다. 그리 고 이곳은 구름이 걷힌 포구라고 해서 개운포 (開雲浦) 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동해 용왕이 크게 기뻐하며 왕자 일곱을 거느리고 나와서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그 가운 데 한 아들이 임금을 따라 신라의 서울인 경주(慶州)로 왔는데 그가 처용이었다. 임금은 처용에게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하고, 급간 (級干) 이라는 벼슬을 내렸다. 처용이 아내와 동침하는 역신(疫神)에게 불렀던 노래가 유명한 신라향가 [처용가] 인데, 옆에 있 는 비석에 새겨진 것은 그 노랫말이다.


처용암은 울산시 남구 황성동 세죽마을 앞 개운포 한 가운데 떠 있는 바위섬이다. 6평 가량의 아주 작은 바위섬으로, 귀신을 물리치는데 효 력을 발휘한다는 처용부적과 관련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신라 49대 헌강왕이 개운포에서 놀다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운무가 끼어 앞을 볼 수 없었다. 이에 왕은 용의 노여움을 푸 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용을 위하여 근처에 지금의 망해사를 짓도록 명했다. 그러자 곧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용이 아들 일곱을 거느리고 왕의 앞에 나타나 덕을 찬양하며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그 중의 한 아들이 왕을따라 서울인 경주로 들어가 나라의 정사를 도우니 그의 이름을 처 용이라 하였다.

왕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처용의 배필을 삼도록 하고 급간이라는 벼슬까지 주어 그를 왕의 곁에 머물러 있게 하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처용의 아내를 흠모한 역신이 사람으로 변하여 밤에 몰래 침입하여 동침했다. 처용은 밖에서 자기 집에 돌아와 두 사람 이 누워 있는 것을 보고도 화를 내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물러 나왔다. 그러자 역신이 무릎을 꿇고 처용의 관용에 감격하면서 앞으로 그의 모습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곳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처용이 추었다는 처용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 39호로서 보전되어 있고, 이곳 처용암은 동해용이 일곱 아들을 데리고 나온 개운포 성 지의 바위로, 지방기념물 제 4호로 지정되어 처용설화와 함께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동백과 참등나무 등 사철 푸른 나무로 뒤덮여 절경을 자랑하는 목도(천연기념물 제 65호) 가 지척에 있어 볼거리 많은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공업탑 로타리에서 석유화 학공단을 안내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찾아가면 쉽게 갈 수 있다. 공업탑 로타리에서 석유화학공단쪽으로 6㎞ 가면 SK(주)정문이 나오고 울산화력 발전소를 지나 좌회전, 4㎞ 정도 가면 남부실업 앞에 처용암 안내표지판이 있다. 처용암으로 들어가려면 배를 대절해 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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