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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도

안성 38번국도-덕봉마을 덕봉서원 오정방고택 경양사

by 구석구석 2008.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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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 안성IC를 나와 38번 국도를 15분 정도 달리다가 양성면사무소 방향으로 향하면 된다.


 

해주 오(吳)씨 문중의 자부심, 안성 덕봉마을
덕봉리는 어머님의 고향이다. 지금도 외사촌일가가 살고 있으나 나도 고향인 공도를 떠난지가 오래되어 현재 왕래는 적으나 어머니 산소에 들를때마다 양성을 지나기 때문에 이곳은 특별한 곳이다.

 

덕봉마을은 해주 오(吳)씨들의 자부심과 역사가 살아 있는 마을이다. 해주 오씨 가문의 일부가 유세창의 역모에 연류돼 옮겨 온 곳이 덕봉마을이다. 이후 해주 오씨 가문의 정무공(貞武公) 오정방이 경상도 병사절도사를 지내고 후손들이 줄줄이 과거에 급제를 하면서 이 마을의 주역이 됐다.

 

마을 유적으로는 옛 건물의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오정방 고택, 덕봉서원, 경앙사, 오두웅 효자정문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마을에서는 요즘도 종중회와 각종 제례를 열고있다. 스포츠조선 이석우기자


 

유형문화재 제8호(1972. 5. 4) 덕봉서원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인 충정공 오두인(吳斗寅) 선생의 덕망을 추모하기 위해 1695(숙종 21)년 창건된 서원으로, 그 해에 사액되었다. 바리봉을 뒤에 두고 앞에는 넓은 농경지를 내다보는 위치에 외삼문, 정의당, 내삼문, 사우가 일직선상에 놓여 있으며 강당인 정의당의 우측에 정문이 있고 정의당 뒷편 좌우에 동·서무가이 있다.

 

사우(詞宇)는 정면 3칸, 측면 1칸반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1벌의 자대석 기단 위에 원통형의 큰 초석을 놓았는데, 초석의 형상이 특이하여, 높이는 약 1척, 원통의 지름은 약 2척인데 측면이 약간 곡면을 이루고 있다. 기둥은 원형이며 둥머리에 앞면은 이익공(二翼工)을 경구하고 기둥사이는 창방을 걸고 그 위에 화반(化盤)을 올린 평범한 구성을 하고 있다. 반면 뒷면 초익공(初翼工)으로 단순히 처리되고 처마도 홑처마이다.

 

양 측면에는 풍판을 달았다. 벽체는 정면 되간은 개방되고 그 뒤는 빗살 4분합문을 달았으며 양측면과 뒷면은 중방이하는 기와를 3치간격으로 나란히 얹은 화방벽(火防壁)으로 하고 그 위는 회벽으로 마감하였다. 정의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민도리 팔작지붕 건물이다. 좌우 양끝 뒷편 각 1칸에 온돌방을 들이고 나머지는 모두 마루를 깔았으며 초석은 장초석으로 하여 마루는 바닥을 높이었다.

 

덕봉리 246 안성 정무공 오정방고택

 

 

안채와 사랑채를 붙여서 한채로 건립한 것으로 형태는 곱은자형에 1고주 5량집이다. 사랑채 뒤에는 2칸 서당이 있고 본래의 사랑채는 없어졌다고 한다. 건립연대는 약 2백년전까지로 올라갈 수 있으나 그 동안 수차에 걸쳐 전면적인 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안채만이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본래 이 집은 중종 5년(1510)에 처음 세운 이후 정무공 오정방(1588~1634) 천파고오상에서 충정공 오두인(1624~1689)에 이르기까지 해주오씨 명인들을 배출한 유서깊은 곳으로 전해내려온다. 특히 충정공은 이 집에서 성장하여 나라에 크게 공훈을 떨친바있어 우암 송시열이 편액을 써서 보내오기도 했다고 한다.

 

당초에는 덕봉리 252번지에 세워졌던 것이나 효종 1년(1650)에 현 위치로 이전해 왔다고 하며 건물은 1935년에 중수한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대지 224평에 사당 5.62평, 안채 31.12평, 사랑 6.52평 규모의 3동이 자리잡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치목수법, 건물의 배치 및 구성 수법이 우수하여 조선중·후기의 주택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오정방은 1552(명종 7) ~ 1625(인조 3).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영언(英彦), 호는 퇴전당(退全堂)이다. 호군(護軍)을 지낸 오수천(吳壽千)의 아들이며 수군우후(水軍虞侯)를 지낸 숙부 오수억(吳壽億)에게 입양되었다.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안성 출신이다. 선조 16년(1583) 무과에 장원급제하자 이이(李珥)로부터 영재라는 칭찬을 받았다.

 

덕봉리 산47-1 경앙사(景仰祠)

경앙사는 1964년 석농 오진영선생의 문인들이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매년 음력 3월 10일에 춘제를 드리고 있다고 한다.
현재 이 곳에서는 석농 오진영선생과 그의 스승인 간제 최규서선생과 노주 오희상선생 등 세 분을 모시고 있다. 건물의 총 건평은 26㎡(8평)으로 겹처마 맞배 지붕의 한옥이며 홍살문, 삼문, 사당 등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다.

 

특히 현판 액자는 석농의 제자인 월헌 이보림선생이 썼다고 전해지는데 여기서 ‘경앙’은 “(高山仰止 景行行止) 즉, 산은 사람을 우러러 보고 길은 사람이 많이 다니므로 천하 만인에게 존경을 받는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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