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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서울 한강

서울 종로-숭인동 동묘벼룩시장

by 구석구석 2008.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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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인동238-2 동묘공원 02-731-0535

동묘는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를 모신 사당이다. 임진왜란 때 원병으로 온 명나라 병사들 사기를 높이기 위해 1602년 무렵 세워졌다. 한때 동·서·남·북묘가 있었으나 지금은 오로지 동묘만 남아 있다. 동묘는 1920년 박기홍·김용식 등이 관우를 숭배하기 위해 만든 관성교 본부이기도 했다. 지금 동묘는 보물 142호로 지정돼 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6칸이고 지붕은 T자형의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으며, 지붕 무게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새의 날개처럼 뻗어 나오게 장식한 익공계 양식이다. 현재 건물 안에는 관우의 목조상과 그의 친족인 관평, 주창 등 4명의 상을 모시고 있다. 건물 안쪽에는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데,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한국의 다른 건축들과 비교해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붕은 모두 지붕마루를 양성하고 잡상을 장식하는 등, 전형적인 한국 궁궐형식의 수법을 볼 수 있다.

이 특이한 건축물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주말이면 어르신들이 모여 소일을 하는 한가로운 곳일 뿐이다. 또 있다. 동묘 주변은 서울에서 가장 큰 벼룩시장 자리이기도 하다.

청계천변 황학동을 중심으로 노점시장이 번성했던 적이 있다. 사람들은 황학동 '벼룩시장' 또는 '황학동 도깨비시장'이라 불렀다. '탱크 말고는 다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로 없는 게 없는 시장이었다.

매주 주말이 되면 숭인동엔 서울에서 가장 큰 노점 시장이 열린다. 이름하여 동묘 벼룩시장.

 

조선초부터 있었던 마을 이름, 알고보니 비운의 왕비가...

지금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청계천변 노점상은 모두 철거돼 동대문 풍물시장 안으로 들어갔고, 남은 노점상들이 동묘 주변에 몰려 있다.


동묘지하철역 1·6호선과 동묘 사이 아주 긴 골목길을 따라 벼룩시장이 만들어져 있다. 1000원짜리 물건이 수두룩하다. 삶은 오리알도 1000원이고 옷도 1000원이다. 가격은 저렴하고 거리는 활기가 넘친다.
동묘와 동묘 벼룩시장이 있는 곳이 서울 종로구 숭인동이다.

 

숭인동은 1914년 동명 개정 때 조선초부터 있었던 '숭신방'과 '인창방'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동네다. 숭인동은 세조의 조카로 비명에 죽은 단종과 깊은 연관이 있는 동네다. 단종의 왕비인 정순왕후 송씨가 영월에서 죽은 단종의 명복을 빌었다고 하는 동망봉과 왕비가 이용했다는 궁안우물이 이 곳에 있고, 정순왕후에게 야채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여인채소시장이 바로 숭인동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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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인동 청룡사 올라가는 길목 마을이 자줏골 또는 자지동이었던 것도 정순왕후와 관계가 있다. 왕비가 이 곳에 살면서 베에 물감을 들일 때 자주색 물이 들었다 해서 붙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또한 숭인동은 <봄봄> <동백꽃> 등을 지은 김유정이 1923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검정으로 입학학 뒤 이사해 산 곳이기도 하다. 지금 서울에서 제일 큰 축산물시장에 성동구 마장동에 있지만, 그 시장은 1961년 숭인동에서 옮겨간 것이다.

 

30만원짜리가 단돈 만원? '구라'라도 기분좋아

동묘 벼룩시장에선 놀랄 만큼 싼 가격의 물건들이 나온다.

 

"1만5000원인데 3000원에 드려요."
"1만원에 드립니다. 원래 30만원이에요."

 

동묘 벼룩시장에 가면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구라'든 아니든, 일단 귀가 쫑긋하게 마련이다.

 

가격차가 워낙 커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귀여운 구라'라는 생각이다. 싼 물건을 사면 사는 사람조차 괜히 '싼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상인들의 그런 '구라'는 '좋은 물건을 운 좋게 값싸게 샀다'는 위안을 손님에게 준다.


황학동 벼룩시장 때도 그랬다. 장사치 중엔 물건을 팔면서 미우주항공국 나사(NASA)와 하버드대학을 들먹이는 이도 있었다. '뻥'인 줄 알면서 이야기가 재밌어서 괜히 한참 동안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 때 청계천 3가에서부터 9가까지 약 1500여 개 노점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 동묘 벼룩시장엔 몇 개 노점이 있는지 모르겠다. 혹자는 120여개라 하기도 하고, 누구는 150여개라 하기도 한다.

 

황학동 도깨비시장은 6·25전쟁 이후 청계천 주변에 고물상과 미군 물품 중심 노점상과 함께 시작했다. 해방 후 머리 모양이 달라지면서 잘린 머리카락을 이 곳에서 팔던 게 그 기원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어쨌든 황학동 벼룩시장의 역사는 50년 이상 길게 이어졌다. 그 오랜 역사도 이제 동묘 벼룩시장을 통해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다.

 

상인들은 곳곳에 물건을 내걸었다. 가게 셔터·창문·바닥 뿐만 아니라 중장비 몸통까지 틈이 있는 곳엔 어디나 물건을 걸었다.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것은 옷. 티셔츠·바지·양말·군용점퍼·겨울외투 등 종류가 가지가지다. 음악CD·골프채·휴대폰·보온병·바비인형·헌책·자전거·불상 등 나머지 물건도 많았다.

자료 - 오마이뉴스 2008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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