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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강원도

인제 44번국도 한계사지 한계산성 장수대

by 구석구석 2007.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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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번국도는 46번국도에서 한계리-한계령-오색약수-양양으로 이어지는 도로

 

북면 한계3리 도기념물50호 한계사지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져 여러 차례 화재를 당하여 중건을 거듭하다 조선시대에 폐사된 사찰터이다.1984년의 발굴로 확인된 금당지(金堂址)의 규모는 동서 9.5m, 남북 6.8m의 크기로 정면3칸, 측면3칸의 건물이며 이외에도 동서쪽 등지에 부속건물터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이 절터에는 석탑, 석등, 석불 등의 부재가 남아 있는데 모두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다. 이러한 유구를 통해 볼 때 한계사는 산지가람의 일반적인 계단식 배치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유물 및 고려와 조선시대의 명문와가 많이 발견되어, 한계사가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여러 차례 중건을 거듭하며 이어져온 유구한 역사를 지닌 사찰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현재 사지는 초석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다수의 건물지를 비롯하여 삼층석탑2기, 불상, 불상대좌, 광배, 석등, 옥개석, 배례석, 석사자상, 난간석 등 많은 석조물이 남아 있다. 석탑은 금당지앞에 금당지를 중심축으로 할 때 동쪽에 치우쳐서 1기가 있고, 다른 1기는 금당지로부터 서북쪽으로 45m정도 떨어진 구릉 위에 세워져 있다. 2중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일반형 석탑이다.
 
 
북면 한계리 산 1-1 한계산성

한계산성은 신라말 경순왕(927∼935, 재위)의 전설이 전해오는 유서 깊은 산성이다. 언제 처음으로 축성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천연적인 험준함에 의지하여 골짜기를 에워쌓은 포곡식의 산성이다. 성벽은 거의 무너졌으나 옥녀탕 골짜기의 문터와 그 연장부는 견고한 내외겹축의 물매 있는 성벽을 보여주고 있다.
 
쐐기돌을 이용하여 자연할석을 조금씩 다듬어 쌓은 점이나 성벽의 구조에서 현존부분이 고려말기의 산성축조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려시대의 역사기록에 의하면 고종46년(1259)에 함경도지방의 일부 세력이 고려를 배반하고 몽고사람을 끌어들여 이곳을 공격했으나, 산성방호별감 안홍민이 야별초를 거느리고 출격하여 모두 목 베었다고 하였다. 이 전투 이후로 북방 오랑캐와 왜구에 대비하여 인근의 주민들을 농성입보케 하기 위해 수축이 계속되었음을 성내의 비석명문이 밝혀 주고 있다.
조선시대의 기록에는 둘레가 6,278척, 높이 4척이고 성 안에 우물이 있다고 하였다. 설악의 험한 산지에 축조한 한국 특유의 산성 양식으로 유서 깊고 중요한 곳이다.
 

 

 

 

대자연과 호흡하는 인제 장수대 솔밭길 캠핑장
  
캐러밴(Caravan)이 설치된 전용 오토캠핑장이 한두 군데 있기는 하지만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캐러밴을 임대해 전국의 명소를 돌아다니며 유유자적한 삶을 누리는 캠핑카 문화도 우리 현실에는 맞지 않다. 현재까지 애용되는 캠핑장은 국립공원이나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휴양림이다. 그러나 차를 끌고 야영지까지 갈 수 있는 이런 오토캠핑장도 전국에 몇 군데 되지 않아 주말이나 휴가철에는 북새통을 이루기 십상이다. 대개 휴양림의 오토캠핑장은 예약을 받지 않고, 당일 선착순 입장시키므로 일찍 도착하는게 좋다.
 
400여 동의 텐트를 수용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춘 아영장으로 송림과 계곡이 어우러진 설악산의 명소 중 한 곳이다. 야영장은 계곡을 기준으로 양편으로 갈라지는데 다리를 건너기 전에는 오토캠핑장, 건너편은 일반 야영장으로 쓰인다. 그러나 바캉스 성수기(7월 말~8월 초)에는 오토캠핑장이 아예 주차장으로 변하기 때문에 차량 바로 옆에 텐트를 치기는 어렵다. 다만 주차장에서 다리 건너 50m만 이동하면 바로 야영장이라 큰 불편은 없다. 오히려 자동차 배기음 소리가 들리지 않아 더욱 아늑한 공간을 연출한다.
 
Data
▶033-463-3476 ▶입장 시각~다음날 10:00 ▶입장료 1인당 1300원, 캠핑장 사용료 중형 4500원, 소형 3000원, 24시간 기준 ▶수용 텐트 400대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 87-1 ▶선착순 입장        
 
Check Point
식수 다리 건너 야영장에 2곳의 취사장이 갖추어져 있다. 수용 인원에 비해 식수 시설이 풍부한 편. 아영장 바로 옆에 설악산 계곡의 맑은 물이 흐르기 때문에 취사장 외에도 물은 풍부한 편이다.
화장실 캠핑장 안에 수세식 화장실이 있으며, 캠핑장밖 관리사무소 입구에도 화장실이 있다.
대피소 대피 시설이 따로 없지만, 캠핑장에서 200m만 나오면 바로 큰길이다.
매점 캠핑장 입구에 산장을 겸비한 매점과 식당이 있다. 간단한 생필품과 식료품을 살 수 있으며, 식사도 가능하다.

+Leisure
맨발 하이킹
장수대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혜택은 맨발 하이킹이다. 발 밑에 켜켜이 쌓인 보드라운 낙엽길이 운치 가득하다.
 
한계3리 장수대
설악 전투의 대승을 기념하고 인근의 대승폭포, 옥녀탕, 가마탕, 한계산성, 하늘벽을 찾아드는 관광객들의 휴식처로 세워진 한식건물은 규모로 보나 건물의 우수성으로 보아 근래에 보기드문 훌륭한 산장(48평)이다. 더욱이 기암괴석과 낙락장송이 우거진 속에 위치하고 있다.

국립공원 장수대 분소 맞은 편에 6.25때 설악산을 수복한 국군용사들이 지은 장수대라 불리우는 이 한식집은 요즈음 새로 지은 커다란 휴게소와는 대조를 이루며 자연과의 조화가 어떤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제3금강이라 부를 정도로 아름다운 설악산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이 산장은 1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사철을 통하여 이 곳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장수대란 이곳에서 6.25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그 옛날을 회상하며 전몰 장병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뜻에서 명명한 것이며 제3군단장인 오덕준 장군의 후의로 설악산의 개발을 위하여 건립되었다.
 
장수대야영장을 지나 실폭으로...
 
  
장수대야영장에서 개울가는 길, 이곳을 지나면 실폭이다.
 
내설악의 최고 경승지 대승폭포
설악산에서 가장 볼만한 폭포가 어디냐고 묻는이에게 필자는 항시 “장대미련” 이라고 답해준다. “크고 장대하기로는 대승폭포가 으뜸이고 아름답기로는 오련폭포를 따를 자가 없다.”라고 말이다. 오련폭포가 외설악 천불동계곡의 최고 경승지라면 대승폭포는 내설악의 최고 경승지다. 하늘에서 내려 꽂히는 물줄기가 88미터. 우리나라 폭포 중 최고다. 옛부터 금강산의 구룡폭포와 개성의 박연폭포에 이곳 대승폭포를 합해 조선 3대 폭포라 했던 것만 보아도 그 경관이 쉬 짐작된다.
 
실폭에서 바라보는 서북능선과 얼어붙은 대승폭포/홍순종
인제 원통에서 양양으로 가는 길 한계령 바로에서 만나는 장수대. 속초나 양양에서라면 한계령을 넘어 내설악으로 접어들면서 바로 만나는 곳이된다. 장수대매표소 앞으로 난 길을 따라 1km를 올라가면 대승폭포가 항상 그 모습 그대로 뭍 사람들을 반긴다. 그러나 대승폭포는 그리 쉽게 모습을 보이려 하진 않는다. 짧은 거리임에도 오르는 길은 무척 힘들고 고달프다. 가파른 돌길과 철 계단이 계속 이어져서다. 
 
매표소를 지나 울창한 솔숲을 잠시 지나면 등산로 왼쪽에 꽤 웅장한 폭포 하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대승폭포인가 의아해 지지만 이는 대승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기암절벽사이를 타고 흐르는 마지막 모습일 뿐 예서부터 본격적인 험로가 시작된다. 폭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없어 다소 의아하지만, 오로지 위로 오르는 길이 하나뿐이어서 그리 걱정할일은 못된다.
 
세 개의 철 계단과 아래가 까다득한 절벽 옆을 돌아 오르면 어느 순간 절벽 한켠에 숨겨진 듯 아련히 물줄기가 잠깐씩 모습을 드러낸다. 대승폭포가 지척임을 직감하고 나서는 한 구비만 더 오르면 된다. 대승폭포가 바로 건너로 보이는 전망대가 그곳에 있다. 
 
깍아지른 절벽이 한쪽 면이 터진 절구통마냥 둥글게 페어 있고, 한쪽 모서리엔 내가 맞은편 모서리엔 물줄기가 흐른다. 형국이 그렇다 보니 대승폭포는 아래에서 올려다 볼 수는 없다. 쏟아져 내린 물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떨어져 내리는 모습만 보일 뿐 그 아래를 볼 수가 없는 게다. 때문에 더욱 신비롭기도 하다.
 
장수대 북쪽 1㎞지점에 위치한 대승폭포는 88m의 물기둥이 낙하하여 장관을 이룬다. 신라 경순왕의 피서지였던곳으로 전해지며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국내 3대 폭포로 손꼽힌다.
대승폭포 앞 넓은 반석에는 조선 선조때 양봉래가 쓴 구천은하(九天銀河)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금강산 만폭동, 묘향산, 상원암의 글씨도 그의 작품이다. 장수대에서 대승폭포 까지는 30~40분거리. 대승폭포에 오르다 보면 건너편에 한국의 마터호른으로 불리는 가리봉, 주걱봉, 삼형제봉의 아름다운 산세가 눈 앞에 펼쳐진다.
행여 폭포가 없더라도 주변의 깍아지른 절벽만으로도 뛰어난 경승 임에 틀림없을 진데! 천길단애 위에서 물줄기가 웅웅거리며 쏟아져 내리고, 아침나절에는 서광을 받아 무지개까지 영롱하게 피어오르고 보면 그 어떤 찬사도 아깝지 않을 터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승폭포는 제 모습을 보여주는 날이 많지 않다. 워낙 높은 지대에 위치한 탓에 항시 물이 흐르진 않는다. 물 흐르는 날이 아닌 날 보다 적을 정도다. 
 
폭포를 바라볼 수 있는 넓은 전망대에서는 한계령에서 이어지는 점봉산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와 장관을 이룬다. 또한 바위 위에는 거의 다 뭉개진 ‘구천은하(九天銀河)ꡑ라는 글자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명필 양사언(楊士彦)의 쓴 것이라 전해진다. 이와 함께 폭포의 시작점인 장수대 매표소 앞에는 폭포의 유래를 알리는 간판이 걸려있다.
“옛날에 부모를 일찍 여윈 대승이라는 총각이 버섯을 따서 연명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폭포 돌기둥에 동아줄을 매고 버섯을 따고 있었는데,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절벽 위에서 다급히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나서 정신없이 올라가보니, 어머니는 간데 없고 동아줄에는 커다란 지네가 달라붙어 동아줄을 갉아먹고 있었다. 덕분에 대승은 목숨을 건졌는데, 죽어서도 아들의 생명을 구해준 어머니의 외침이 들리는 듯 하다해서 대승폭포라 불리기 시작했다.” 는 얘기다.

폭포를 지나 산행길을 계속 오르면 대승령 고개마루에 오르게 되고 내설악의 또 다른 명소인 십이선녀탕과 대청봉으로 오르는 길이 이어진다. 사진.글 / 엔크리닷컴
  
찾아가는 길
1. 서울에서 양평과 홍천을지나 인제로 가면 된다. 인제에서 원통을 거쳐 양양으로가면 민예단지앞에서 진부령가는 길과 한계령 가는 길이 갈라지는데, 여기서 한계령 방향으로 직진하면 된다. 옥녀탕휴게소를 지나 2분 정도만더 오르면 장수대 주차장에 닿는다.

2.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쪽에서 간다면, 동해안고속도로와 7번국도를 타고 속초방향으로 올라가면 된다. 남애와 하조대를 지나면 바로 양양이다. 양양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양양시내를 지나면 한계령가는 길이다. 오색온천지구에서 시작되는 한계령을 넘어 내려가면 고개 끝자락에 장수대 주차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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