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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인천·섬

강화 선원면-강화대교~월곶리

by 구석구석 2011.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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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3.1일에는 인천초중고등학교 장거리 선수들이 모여 해안도로에서 단축마라톤(57회)을 한다.  

둘째 지원이가 아직은 실력이 안되지만 명단에 올라있어 겸사겸사 관전을 하러 간다. 인삼센터에서 한다고 하여 초지대교를 건너 읍내에 있는 인삼센터에 갔으나 대회를 하는 기미가 안보인다. 몇번 전화연락을 한 후에야 강화대교 끝머리에 있는 인삼센터를 찾아간다.

 

 ▲2011년 3.1절 대회때 인삼센터와 추어탕을 먹었던 음식점

 

종종 강화도를 와봤지만 다리건너 해안도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강화대교를 막 건너면 인삼센터겸 휴게소가 있고 좀더 내려가면 해병대에서 철책을 쳐 놓은 해안도로가 있다.  겨울이 다 간듯하지만 아직은 바닷바람이 차다. 오는 내내 막내 화원이가 구토를 하여 걱정도 된다.

 

 

 

 대회장 주변풍경

 

고등학교는 5키로를 뛰는 관계로 반환점을 돌아오고 초중학교는 반환점에서 출발을 한다. 시간여유가 있어 인삼센터에 들려 인삼을 좀 산다.

날은 춥고 화원이는 계속 구토를 하고 일없이 바다보면서 선수들 들어오길 기다리는 것도 고역이다.

  

우리가 구입한 인삼과 판매장내부

 

 

 

 

 행사를 마치고 단체와 개인시상식풍경

 

순교성지와 통제영학당지

강화쪽에서 바라본 강화대교

 

강화대교밑에서 갑곶리 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순교성지와 우리나라 최초의 해군사관학교터가 자리하고 있다. 혹시나 해서 자갈길을 따라 들어가 보았더니 석비와 안내판만이 있고 황량하기만 하다.

해안을 따라 더 들어가볼까 하다가 바람이 많이 불어 포기한다.

 

강화대교지나 바로 밑에 있는 갑곶순교성지, 뒤로보이는 다리가 구강화대교

 

통제영학당(인천시 기념물제49호)은 1893년 2월 기존의 수군편제(水軍編制)를 해군편제(海軍編制)로 개편하면서 그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자 같은 해 3월 해군사관 및 하사관 양성학교인 통제영학당(統制營學堂) 설치령을 공포하고, 갑곶진 인근에 교사를 신축하여 1893년 10월에 사관생도 50명, 수병 300명을 모집하면서 개교하였다.

 통제영학당지

개교와 함께 W.H Callwell 등 영국장교들이 교관으로 부임하여 교육하였으나 이듬해 발발한 동학농민전쟁(東學農民戰爭)과 청일전쟁(淸日戰爭)등의 영향으로 교육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1896년 5월 영국군 교관들이 귀국함으로써 폐교(閉校)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갑곶나루 선착장 석축로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5호(1995.3.2 지정)

이곳은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와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 사이를 배편으로 연결하던 나루터이다. 세종 때(1419~1450)에 최초로 석축로가 축조되었으며, 정묘호란 때(1627)에는 인조가 이 곳을 건너 강화도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이후 약 500여 년간 사용되다가 교통수단의 변화로 1920년 무렵에 나루터가 폐쇄되었으며, 1970년 강화대교가 개통되면서 완전히 폐쇄되어 현재 선착장 석축로만 남아 있다.

 

현재 강화대교와 신강화대교 사이에 위치하는데 통제영학당지 전면에서 신강화대교측에 위치한다.
그러나 석축의 모습은 철조망 밖 바닷가에 위치하므로 일반인들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찾아가는 길 

행주대교(올림픽대로)에서 김포·강화 방면 48번 국도나 78번 제방도로를 탄다. 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검문소에서 P턴하여 걍화대교밑 굴다리지나 우회전하면 강화 인삼센터가 나오고 해안도로로 갈 수 있다. 

 

강화8경인 월곶리 해안도로변 연미정

행사를 마치고 시간여유가 있어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기로 한다. 철책을 따라 도로가 나 있어 갑곶리쪽 해안도로와는 달리 사람도 없는 한적한 도로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몇번 거듭하니 월곶리에 닿고 오른쪽에 정자같은 것이 하나 보인다.

주차장은 없어 적당히 주차해야 한다. 입구 주변은 배수로공사를 포함하여 정리작업을 하고 있어 상당히 어수선하다. 겨울이어서 그런가 풀한포기 없어 삭막하기만 하다.

 

www.ganghwaro.com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인 연미정은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고려제23대왕 고종이 구재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면학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1976년 강화 중요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고 서남쪽 모서리의 기둥은 6.25전쟁으로 세동강 난 것을 붙여 다시 세운것이다.

 

ganghwaro.com 

 

연미정에서 주변을 보면 사방이 바라다 보이며, 월곶돈대 꼭대기에 세워져 있어 개풍 파주 김포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인지 연미정아래에는 해병대 막사가 있고 주변은 사진촬영금지장소다.

정자 옆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2그루가 서 있다. 옛날 서해에서 서울로 가는 배는 이 정자 아래에서 만조가 될때까지 기다렸다가 한강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썰물때는 물이 빠져 나가는 흐름이 눈에 보일 정도로 물살이 세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여 한줄기는 서해로 한줄기는 강화해협으로 흐르는데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하여 연미정이라 이름 붙였다 한다. 연미정의 달맞이는 강화8경의 하나인데 군사보호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연미정 성곽과 입구

 

 연미정 안쪽에서 보는 입구

성입구 안쪽의 바닥양편에는 문이 있었던 흔적이 있으나 현재 입구는 항시 개방되어 있다.  

 

가는길

강화대교 오른쪽으로 있는 해안도로를 따라 10여분 가면 해병대검문소가 맞은편에 보이고 오른쪽 언덕으로 성벽같이 돌을 쌓아 올린 연미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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