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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안동 송천동 반변천 역동서원

by 구석구석 2022.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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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천동 388 안동대학교 박물관 054-820-5248 7421

안동대학교 박물관은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대표적인 박물관으로 고고학과 민속학, 역사학, 복식사 자료 등 총 7천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3층의 상설전시실에는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대표적인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4층의 특별전시실에는 발굴과 고증 그리고 연구를 거친 유물이나 외부에서 임대된 유물들을 필요에 따라 전시한다.

3층 상설전시실은 학교 역사실과 일반 역사실로 크게 나누어진다. 학교 역사실은 입구 건너편 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안동사범학교로부터 시작한 안동대학교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러나 박물관의 주 전시공간은 역시 일반 역사실이다. 이곳은 시대별로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선사ㆍ고대의 안동, 고려시대의 안동, 조선시대의 안동이 그것이다. 물론 이들 공간 외에 부차적으로 영상실, 역동서원 조망실, 야외전시 조망실이 있다.

덕산리고분 출토품

안동대학교 박물관에는 고고유물이 가장 많다. 경북 북부지방을 발굴하면서 수습된 유물들이 다 이곳에 와있기 때문이다. 안동 임하사 전탑지에서 출토된 은제 사리함과 안동 태화동 고분 출토 금동화살통 장식과 같은 세공품은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안동 임하동 고분군, 울진 덕신리 고분군, 의성 공정리 고분군, 영주 대룡산 유적 등에서 출토된 각종 토기류와 철기류는 고대 우리 조상들의 생활상을 알게 해준다.

고려시대 유물로는 안동 서삼동 고려벽화고분, 안동 정하동 고려묘 등에서 출토된 질박한 청자와 동전 등이 유명하다. 우리가 청자하면 비색을 생각하는데 이곳에 전시된 청자는 모양이나 색깔이 조금은 투박하다. 회갈색 또는 녹청색을 띠고 있으며 생활자기 같은 느낌이 든다.

조선시대 유물은 박물관 전시공간의 55%를 차지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이 1998년 안동 정하동 고성 이씨 출토 미이라 관련 자료와 이 때 출토된 복식자료이다. 여기서 발굴된 ‘원이 엄마의 마지막 편지’는 조선 중기 부부 사랑을 보여주는 만사(輓詞) 자료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31살의 젊은 나이로 죽은 남편 이응태에게 그의 아내인 원이 엄마가 보낸 편지는 그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바 있다.

고성 이씨(固城 李氏) 이응태(李應台·1556~1586). 아이를 뱃속에 둔 젊은 아내(원이 엄마) 와 어린 아들, 부모·형제를 두고 서른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이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이 안동대 박물관 3층에 상설 전시되고 있다.
원이아버님에게 보내는 편지

 

안동대학교 공과대학 뒤편에 있는 역동서원(易東書院)

퇴계라는 걸출한 선비가 있기 전에 이미 역동이라는 유학자가 있었지만 오히려 퇴계라는 큰 인물에 비해 소홀해지는 느낌이다. 역동선생(禹倬, 원종3년∼충혜왕 복위3년:1262∼1342)은 고려 말 정주학수용 초기의 유학자로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천장(天章)이며 흔히 '역동선생(易東先生)'으로 일컬어진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 원나라에서 전해진 정주학에 심취하며 예안에 은거하여 후진양성에 전념하며 역학에 조예가 깊은 학자이며, 동시에 시문에 뛰어난 문인이었다. 저서로는 편년강목, 초학계몽, 도수편, 역설, 가례정편 등이 있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고, 현재「易東先生實記」의 한시 약간 수와 편지, 시조2수 등만 전한다.

1290년 영행사록으로 있을 때 민심을 현혹하는 요신의 사당을 없애고, 감찰규정으로 있을 때는 충선왕의 비행을 간하다가 듣지 않으므로 관직을 물러나 예안에 은거하여 학문을 닦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친 마을을 도학, 예의, 절조의 세가지를 가르친 곳이라고 세상 사람들이 지삼리라고 불렀다. 충숙왕이 등극하여 선생의 충의를 가상히 여겨 누차 불렀으나 거절하고, 글을 벗 삼았다. 후에 성균관 제주직을 맡아 후진을 가르쳤다.

안동대학교에 있는 선생의 서원은 1570년 유림의 뜻을 모아 선생의 학문과 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1683년 ‘역동’으로 사액이 내려 사액서원이 되었으나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조치로 훼철되었다.

원래는 낙동강 상류인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오담에 창건하였으나, 1969년 지금의 송천동에 이전하여 복원하였고 서원의 옛터는 안동댐의 건설로 수몰되었다. 그 후 송천동이 안동대학교 교지로 편입되면서 1992년부터 안동대학교가 위임관리하고 있다.

서원에는 우탁의 위패를 모신 상현사, 명교당, 전사청, 장서각, 동재와 서재, 주소 등이 있었다.

상현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 집으로 맞배지붕이다.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모임이나 강론을 하는 명교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전사청은 향사 때 쓰이는 제수를 마련해 두는 곳이다. 동재와 서재는 원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곳이고 주소는 서원을 관리하는 고자가 거처하는 곳이다.

우탁을 제향하는 또 다른 역동서원은 1696년 안동군 월곡면 미질동에 창건되었으나, 나중에 그 곳의 지명을 따라 구계서원(龜溪書院)이라고 개칭하였다. 이 서원은 안동댐 건설관계로 1974년 8월 영남대학교 구내에 이건되었으며, 2000년 11월 27일에 영남대학교에 기증되었다.

 

안동시 농업기술센터 054-840-5631

시민과 관광객에게 휴식공간을 연중 개방 편의를 제공해 문화유산과 연계한 농업과 자연환경을 한꺼번에 체험 학습하게 될 교육장으로 조성해 농업의 다기능 홍보와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

조류 사육장에도 다양한 종류의 조류가 일상생활에 지친 시민들을 반기며 볼거리를 제공하고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최적의 휴식공간으로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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