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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인천·섬

강화 초지리 나들길 초지진 매화마름군락지 강화나들길 호국돈대길

by 구석구석 2022.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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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는 몽골의 침략을 피해 39년간 고려의 왕궁이 있던 곳이며, 서구 열강의 집요한 공격을 최전방에서 막아냈던 섬이다. 당시 강대 국의 침략을 피해 궁궐을 옮긴 슬픈 역사를 간직한 땅이지만 우리 민족의 빛나는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 목판본을 만든 곳이다. 강화도에는 우리가 아는 아픈 역사와 자랑스러운 문화가 깃들어 있 고, 아름다운 해안선과 뭇 생명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강화도에는 섬의 다양한 풍경을 담은 걷기 좋은 길 ‘강화나들길’이 있다. 모두 19개 코스가 개발되어 있는데 이는 인천의 둘레길 가운 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길상면 해안동로 58 (초지리) / 강화8경 초지진 032-930-7072 

대명항에서 초지대교를 건너면 바로 우측에 있으며 강화도는 한강을 따라 서울로 들어올 수 있는 곳으로 국방상 중요한 위치였다. 이곳에는 구한말 특히 초지진은 개화기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일본군함 운양호 침공 등 외침 때마다 싸워 물리친 격전지이다.

강화도는 군사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삼백리가 넘는 섬 둘레를 따라 십리마다 진을 두었고 진과 진 사이에 보를 두어 방비를 했었다.

 

강화나들길 2코스 : 호국돈대길 / 갑곶돈대 - 초지진 거리 17km / 소요시간 5시간50분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전략적 요충지로써 해안가 철조망은 남북대립의 상징물이며 5진7보53돈대의 옛 군사적 방위시설을 잇는 국방유적인 호국돈대길

강화나들길 2코스 난내도

 

초지돈은 외부에서 상륙하는 적 수군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해안 진지로 만들어진 돈대로 1971년 사적 제225호로 지정되었다. 진은 지금 군대의 대대쯤되며 진에는 여러개의 3~4개의 돈대가 있었는데 초지돈은 초지진 예하의 돈대이다.

초지진 입구
초지진입구의 안내판

강화 초지진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하여 구축한 요새로,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서 초지진 설치에 대한 기사에 따르면 조선 효종 6년(1655)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1870년대에 미국과 일본이 침략하였을 때 이들과 맞서 싸운 곳으로 1871년에 미국 해병이 초지진에 침략해 왔을 때 전력의 열세로 패하여 점령당하였다. 이 때 군기고, 화약창고 등의 군사시설물이 모두 파괴되었다.

일본이 조선을 힘으로 개항시키기 위해서 파견했던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의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으로 이어져 일본침략의 문호가 개방되었다. 그 뒤 허물어져 돈대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으나 1973년 초지돈을 복원하였다.  [문화재청 홈피에서]

초지돈의 성체모습

복원된 초지진은 시멘트로 채워 넣은 현대식 건축물일 뿐, 옛 건축 양식의 초지진이 아니다. 100여개의 총좌 받침은 벽돌로 되어야 하지만, 모두 시멘트로 메워져 있다. 시멘트를 이용한 복원 또는 보수는 70년대 복원 기술 중에 최고, 최후의 기술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랜 기간이 지나면서 금이가고, 갈라져 떨어지고 있다. 100m쯤 되는 타원형 성곽내부의 순찰로는 관광객들로 인하여 안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cpn문화유산 문화재TV]

초지돈의 대포인 홍이포

△ 초지돈의 중앙에 홍이포가 전시되어 있는데 포구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한 다음 뒤쪽 구멍에 점화하여 사격하는 포구장전식화포로 길이 2.15m, 중량 1,800kg, 사정거리 700m이며 조선 영조때부터 주조하여 사용하였다. 화약의 폭발하는 힘으로 포탄은 날아 가나 포탄자체는 폭발하지 않아 위력은 약하다.

이 홍이포는 어떤 일본 고관이 자기 집 별장 창고기둥 받침으로 쓰고 있었는데 해방 직후 우리나라 사람이 그 별장을 매입하게 되었고 1973년 문화재 관리국에 의해 초지진을 복원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창고를 헐고 홍이포를 헌납하여 전시해 놓게 되었다고 전한다.

초지진 야경
초지진의 소나무
초지진 / 인천시 공식블로그
초지진에서 보는 초지대교와 김포의 대명항

용진진은 조선시대 군인 100여 명이 지킨 곳이다. 

1866년 초, 흥선대원군은 천주교 금압령을 내려 프랑스 신부와 천 주교 신자 수천 명을 학살했다. 이때 프랑스 선교사 열두 명 중 아 홉 명이 처형되었는데 그해 10월 “선교사 아홉 명을 살해했으니 조 선인 9,000명을 죽이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하며 프랑스의 대함대가 쳐들어왔다. 현대식 무기로 중무장한 프랑스군은 김포의 문수성을 먼저 점령하고 강화도마저 함락한 후 전등사 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고서적을 강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 때 양헌수 장군이 갑곶돈대를 통과해 프랑스군을 기습 공격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재래식 무기를 가진 조선군이 현대식 무기를 가진 서양 침략자들을 격퇴한 것이다. 결국 프랑스군은 이미 탈취해놓았던 고서적 345권을 약탈해서 물러갔다.

광성보는 강화의 해안 경계 부대인 12진보 가운데 하나다. 1658년(효종 9년)에 처음 설치되었고 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초지진과 덕진진을 거쳐 광성보에 이른 미군은 상륙 전 포격으로 광성보를 초토화시켰다. 이미 병인양요 때 광성보에 근무한 바 있던 어재연 장군은 포격을 피할 안전한 장소에 군사들을 숨겼다가 상륙하는 미군에 맞섰는데, 그만 무기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하고 만다. 그러나 미국이 전투에서 승리하고도 전쟁에서는 패배한 사건이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멸종위기 식물… '시민자연유산 1호'로 지정 / 매화마름군락지 길상면 초지리 560-1

안내판에는 작고 하얀 매화마름 꽃의 사진과 함께 '지름 1㎝, 꽃자루 길이 3~7㎝, 4~5월에 관찰…도시화·농업화로 인한 논·습지의 서식지 파괴와 농약 등 화학물질 과다 사용으로 그 앙증맞은 모습을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적혀 있다.

넓이 3015㎡밖에 안 되고 밑이 불룩한 자루 모양의 이 논에는 지난달 추수 때 오간 콤바인 바퀴 자국들 사이로 벼 밑동들이 바싹 말라 있었다. 논 위를 걷자 메뚜기들이 여기저기서 폴짝 뛰며 달아났다. 보기에는 그냥 작은 논일 뿐이지만 4~5월이면 이곳은 온통 하얀 매화마름 꽃밭이 된다. 논 아래서 겨울잠을 잔 씨앗들이 따뜻한 봄볕과 물기를 받으면 갑작스레 눈을 틔우고 자라고 꽃을 피워 논을 뒤덮는 것이다. 꽃이 질 때가 되면 모내기가 시작된다. 같은 장소에서 매화마름과 벼가 시기를 달리하며 공존하는 것이다.

 

이 논은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청년회가 맡아 관리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 청년회 이준성(40) 회장은 "논을 갈 때나 이앙을 할 때 거추장스러운 풀이긴 하지만 꽃이 하얗게 뒤덮은 모습은 참 예쁘다"고 말했다. 

매화마름은 꽃이 물매화와 비슷하고 잎은 붕어마름같이 생겨 갖게 된 이름으로 미나리아재비과의 야생 식물이다. 환경부에 의해 멸종위기 식물로 지정됐다. 국내 서해안 일부 지역과 일본 등지의 늪이나 논 등에 산다.

매화마름 군락지는 지난 10월 13일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시민 모금이나 기부금 등으로 보존 가치가 큰 자연·문화 유산을 사들여 보전하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시민자연유산 제1호'다.

사진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 단체와 매화마름 군락지와의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흔했던 매화마름은 습지가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져 한때 국내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998년 한 전문가에 의해 강화도에서 발견되면서 보존운동이 시작됐다.

발견 당시 이곳은 강화군의 경지정리사업으로 곧 없어질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에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이곳을 보존 대상 후보지로 선정한 뒤 주민들에게 생태적 중요성을 알리고, 군청을 찾아가 경지정리사업 대상에서 빼 줄 것을 요구했다. 2002년 대상 지구에서 빠지자 내셔널트러스트는 토지 소유자 사재구(68·초지리)씨에게서 일부를 기증받고, 나머지 2400여㎡는 시민 성금으로 사들여 시민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매화마름은 오염이나 농약에 약해 이 논에서는 철저한 친환경농법이 시행되고 있다. 주변 논 32만3400여㎡에서 농사를 짓는 30여 농가도 역시 우렁이 등을 이용한 친환경농법을 쓴다. 매화마름 논에서 나오는 한해 평균 1100㎏의 쌀은 '매화마름쌀'이란 상표가 붙여져 80㎏ 한 가마에 40만원이다. 이 판매수익금은 모두 군락지 보존·관리사업에 쓰인다. 주변 논에서 나는 쌀도 한 가마에 23만7000원이다. 가마당 17만6000원인 일반 쌀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2002년 10월 '강화매화마름위원회'를 만들었다. 위원장인 한국 식물원연구소 박석근 소장을 비롯해 인하대 해양학과 최중기 교수, 사단법인 한국어린이식물연구회 한동욱 소장, 김정택 강화도 환경농업 농민회 회장 등 16명이 참가하고 있다. 일반시민들도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 현물 후원이나 자원봉사, 회원 가입 등을 통해 매화마름 보존에 기여할 수 있다. [조선닷컴 최재용 기자]

 

대선정의 시래기밥과 메밀칼싹둑이

김포에서 초지대교를 건너자마자 오른편에 위치한 통음식전문점인 「대선정」(032-937-1907)이 시래기밥(5천 원)을 전문으로 토속적인 맛을 내고 있다.
시래기란 말 그대로 무청을 말린 것으로 버려질 수 도 있는 식품이지만 고유의 맛이 있다. 재료가 되는 시래기는 가을에 김장할 때 말려뒀던 것으로, 가마솥에 넣고 센 불에 20여분 간 삶아 건져낸 것을 송송 썰어, 강남콩을 섞어지은 밥 위에 얹어 함께 뜸을 들이면 시래기밥이 된다. 밥에 참기름을 뿌려 잘 저어 비빔그릇에 담아 상에 올리면, 준비된 양념장을 한 숟갈 얹어 썩썩 비벼 먹으면 쉽게 먹어볼 수 없는 고소하면서도 풍미로운 맛에 감탄하게 된다.
이외에도 메밀을 손으로 반죽하여 싹둑싹둑 썰어 바지락 국물에 끓인 메밀칼싹둑이(5천 원)도 이 집이 자랑하는 메뉴의 하나다. 

 

초지리 1324-10 마부하이 032-937-9506

초지대교에서 1Km, 차량 1분거리 위치 / 11:00~24:00

레스토랑으로 바닷가재요리, 스테이크 등의 메뉴가 있다. 외국인 모범등록 업소로서 강화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저렴한 가격, 최고의 요리, 아늑한 분위기와 질 높은 서비스로 손님이 아닌 가족을 모시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다.

 

초지리 1251-433 강화해수랜드 032-937-9721

강화해수랜드는 강화초지대교 옆에 위치해 있으며, 1천3백평으로 국내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해수탕의 특징은 해양 암반심층수로 지하 560M에서 용출되고 암반층에 걸러진 물이라 개끗하고 세균이 없는 물이다.

강화해수랜드의 해수는 인체가 생명을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미네랄이 골고루 함유되어 있으며 몸과 해수의 염도 차이를 이용한 삼투압 작용으로 인하여 몸속의 노폐물은 쉽게 배출되고 필요한 광물질은 효과적으로 흡수되어 신진대사, 혈액순환을 도우며 살균, 해독작용으로 인하여 관절염 신경통,아토피성 피부질환 등 피부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또한 해수로 입안을 헹구면 잇몸질환, 충치 등 각종 구강질병까지 예방할 수 있다. 또한 소나무로만 불을 지핀 전통 재래식 불한증막등이 있으며 주변에 유적지등이 있어 같이 즐길 수 있다. 

머드사우나, 습식사우나, 흡연실, 해수안마탕, 해수온탕(해수지하 560m), 이벤트탕, 입식샤워기, 불한증막, 냉방, 황토방, 소금방, 숯방, 남/여성전용 황토토굴방, 남/여성전용 수면실

 

강화나들길 8코스 황산도

초지진에서 황산도를 거쳐 분오리돈대까지 

새벽녘의 황산도에서 보는 그림

초지대교 강화도쪽 남단에는 2층으로 잘 지은 ‘황산도횟집’(032-937-4337)이 성업 중이다. 이 지역에서는 처음 문을 연 집으로 2층 넓은 유리창 밖 염하 건너편 황산도의 어촌과 바다 풍경이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옥호 그대로 신선한 회를 먹을 수 있지만, 이 집을 잘 안다는 사람들은 장어구이(4인분 4만원)와 ‘강화도식 잡어해장국(4인분 40,000원)’을 많이 먹는다고 한다. 특히 잡어해장국은 안주인 정희옥(42)씨가 개발한 ‘회심의 작품’으로, 쉽게 흉내를 낼 수 없는 음식이라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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