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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남도

창녕 창녕읍-술정리 창녕시장 창녕석빙고 창녕향교

by 구석구석 2009.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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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정리 44-1 창녕시장

창녕은 구한말 보부상들의 주요 활동지역으로 영남 지방의 상업활동에 있어 큰 역할을 담당하였는데 창녕장은 경상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장 중 하나로 손꼽혔었다. 읍내장 또는 대평장으로도 불렸는데 지금도 옛 장터의 모습이 비교적 잘 간직되어 있으며, 예전보다 규모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성시를 이루고 있다.  

창녕시장은 달마다 3·8·13·18·23·28일에 장이 선다. 군내에서 생산된 모든 농산물과 수산물 등이 거래되며, 특히 창녕고추가 유명하고, 대도시 상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  창녕장은 예전부터 고추와 마늘 물량이 많은 데다 다른 곳보다 저렴하여 1980년대만 해도 대구·밀양·진주 등지에서 완행 첫 버스를 타고 단체로 오는 손님들이 많았는데 지금도 김장철이 다가오면 더욱 활기를 띤다. 터미널 앞 500m 거리에 위치한 舊공설운동장이 임시 시장으로 활용된다.

 

장날에는 서부 경남 최대 규모의 소시장으로 알려져 있는 창녕우시장도 함께 열린다. 잉어와 가물치, 미꾸라지 등 민물고기를 판매하는 어물전과 창녕 지역에서 생산되는 귀한 약재인 마름(말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뻥튀기기계, 소가죽 안쪽에 붙은 살로 만드는 수구레국밥 등은 창녕장의 명물로 꼽힌다.  

 

양파
창녕군 대지면 석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양파재배지다. 창녕양파는 재배기후 조건과 토질이 좋아 과즙과 당분이 많으며, 특히 토양 속 유황 성분이 다른 지방보다 많아 창녕 양파 고유의 맛과 향을 낸다. 알싸한 매운맛과 단맛이 조화를 이루는 창녕양파는 생으로 먹어도 좋고, 반찬으로도 좋으며, 양파즙을 내도 좋다.

술정리29 중요민속자료 제10호 하병수가옥

창녕읍 명덕초등학교앞 시장거리입구에서 300m 정도 들어오면 하병수씨 가옥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오며 찾기가 조금 어렵기 때문에 시장상인에게 문의하는 것이 좋음  

 

조선시대의 가옥구조와 민가의 건축술을 알 수 있는 남향의 초가로 하씨(河氏)가 수대로 살아온 터이다. 마루판자는 윗면이 평면, 아래면은 원목 그대로이고 지붕은 쇠풀로써 덮었으며 못은 사용하지 않았다. 서까래는 구멍을 뚫어 그대로 이었고 지금 가옥의 부엌위치가 서쪽인 것에 반해 이곳은 동편으로 되어 있다. 서로부터 건넌방, 대청, 안방, 부엌순으로 되어 있고 부엌 뒤로 반문을 내달아 창고를 만들었고 지붕은 양토없이 밀대로 거꾸로 엮어 얹었다.

 

술정리 309-1 보물520호 서삼층석탑

 

 

통일신라 석탑으로 2중기단 위에 세운 3층석탑이다. 상층기단(上層基壇)의 면석(面石) 중앙은 별도의 석재로 문비(門扉)가 새겨져 있으며, 위에는 양 우주(隅柱)가 조각되고 옥개(屋蓋) 받침은 5단인 이 탑은 보물 제520호로 지정되어 있다. 상층기단의 각 면석의 조각은 곡선의 아름다운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고, 상륜부에는 노반(露盤)과 보주(寶珠)가 남아 있다. 기단은 8개의 면석으로 조립되고 탱주(撑柱)는 4매씩 되었으며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은 각각 1매이다. 전체적인 조각기법으로 보아 술정리 동 3층석탑보다 수준이 떨어지며 제작 시대 역시 같은 통일신라시대지만 동 3층석탑보다는 후대로 추정된다.

 

송현리 288  보물310호 창녕석빙고

명덕초등학교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로변에 있다.

 

조선조 시대에 중수하였다고 보는 빙고(氷庫)이다. 이는 구조양식의 측면과 장빙(藏氷)의 풍속이 그 당시에 제도화되어 성행하였던 점을 미루어 보아서이다. 이 빙고는 봉토도 거의 완전하며, 외부의 모양은 마치 거대한 고분처럼 보이고 뒤에 흐르는 개천에 직각되게 남북으로 길게 구축되었다.
빙실(氷室)의 입구는 남쪽에 시설하였는데, 좌우에 장대석(長大石)을 옆으로 건너 지르며 쌓아 올려서 천정을 구성하였으며 사이의 천정에는 외부로 통하는 환기공 (換氣孔)이 두 곳 설치되었다. 벽은 잡석(雜石)으로 쌓았으나 평평한 방벽(房壁)이 되게 표면(表面)을 치석(治石)하였다. 이러한 구조양식은 석빙고의 전형적인 경주나 안동의 석빙고와 동일한데 규모에 있어 이 석빙고가 약간 작을 뿐이다. 빙고 우측에 남아있는 비에 의하면 “崇禎紀元後再壬戌二月初一日女四月初十日畢”이라 새겨져 있으며 조선 영조 18년(1742)에 현감 신서(申曙)등이 축조한 것으로 보물 제310호 지정되어 있다.

 

송현리8 도성암 055-533-2073 

화왕산공원 매표소를 지나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도보로 오르다보면 음식점이 즐비하고 도선암이 나오는데 여기를 지나 곧장 오르면 오른쪽길은 화왕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이며 왼쪽의 다리를 지나면 도성암이 바로 나온다.

 

2003년 9월 당시 한반도를 할퀴고 간 태풍 매미는 수많은 인명, 재산 피해와 함께 우리들의 가슴에도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안겨주고 떠났다. 더구나 수해와 산사태, 강풍으로 인한 각 사찰의 피해도 커 불교계가 합심해 복구에 박차를 가하는 결집된 힘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창녕 화왕산의 도성암은 재산피해와 더불어 흙더미가 요사채를 덮쳐 인명 사망피해까지 생겨 불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불자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 것은 몇 개월 전 대구지하철 참사 사고로 읽은 두 딸의 명복을 빌기 위해 도성암을 찾은 어머니가 산사태로 목숨을 잃게 된 사연이었기 때문이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한동안 도성암은 피해 복구가 어려울 정도로 매우 험한 상황이었으나 태풍에 대비한 수로를 건설하고 새로운 전각을 세워 신라고찰 도성암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도성암은 신라 현덕왕 2년(810)에 창건한 고찰로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한 때 역사가 끊어진 사찰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도성암은 아미타부처님의 위신력에 기대어 창녕의 주산이자 절경으로 잘 알려진 화왕산 중턱에 자리하면서 현묘한 자성을 찾는 염불기도 영험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다.

도성암은 2년 전의 악몽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느 산사와 같은 평온을 되찾았다. 최근에는 보제루 불사를 마치고 단청불사 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또 얼마 전에는 대웅전의 석조여래좌상이 도유형문화재로 지정을 받게 되는 경사를 맞기도 했다. 비온 뒤 땅이 굳는다는‘케케묵은 진리’를 다시금 재확인하는 장면이다. 부디 앞으로의 도성암이 굳은 반석 위에서 튼실하게 정법을 수호하는 도량이 되길 바란다.

 

 

교리440 유형문화재 제212호 창녕향교

창녕읍 명덕초등학교 뒤편에 있는 명덕저수지 뒷편에 위치하고 있다.  

 

창녕현의 유림들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공자의 위패를 봉안하고 유교를 숭상하며 아울러 동양도덕을 가르치기 위한 학교로 건립하였다. 외삼문, 동.서재, 명륜당 동,서무, 대성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그 뒤에 놓이여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외삼문은 솟을 삼문 형태로 높은 석축 기단 위에 세워져 있는데, 석축을 쌓는데 쓰인 석재 가운데는 연화문이 양각된 사찰의 기단 면석 등이 혼용되어 있다. 명륜당은 역시 높은 석축 기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세워져 있으며, 주춧돌이 원주식으로 되어 장대한 외관을 나타내고 있다. 대성전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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