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메산골여행
진부시장에서 차를 몰아 정선 방면으로 1.2km를 가면 진부 공업사 앞 사거리가 나온다. 왼쪽으로는 국도 6번선 오대산 진부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는 국도 6번선 횡성으로 가는 길이다. 이곳에서 직진을 하여 오대천을 깨고 4.2km를 달리다 보면 신기교 삼거리가 나온다. 우리는 왼쪽 신기교 다리를 건너 진부면 신기리에 들어선다. 파프리카등 하우스 농사를 짓는 한적한 농촌 마을, 신기리를 관통하여, 1.9km를 따라가면 포장도로는 끝이 나고, 승용차로 가기 힘든 울퉁불퉁한 비포장 산길이 시작된다.
그래서 앞서 말한대로 산길을 잘 갈수 있는 4륜 구동형 차가 필요하다.
신기리
왼쪽으로 맑은 신기천을 끼고 2.3km를 따라가면 왼쪽 산 밑에 옛날 집이 자리를 잡고, 주위에는 토종벌을 사육하는 벌통들이 있어 산골 분위기를 자아내기 시작한다. 이 곳에서 0.8km를 가면 본격적으로 오르막 길이 시작되면서 길 양 옆으로 숲이 펼쳐 진다. 그에 따라 산바람 맛이 시원하고 마음도 시원해져 도연명의 ‘귀거래사’ 가 절로 나올 것만 같다.
수십 미터나 되는 이깔 나무들이 하늘을 찌르 듯 팔을 벌리고 숲을 이루고 있다. 오르막 길이 시작 한데부터 2.1km 지점에는 오두막집이 산 밑에 자리잡고 있다. 무인지경에 홀로 산다는 게 우리가 볼 때는 힘들어 보이겠지만 두메 산골에서 텃밭을 가꾸며 유유자적 하면서 산과 어울려 산다는 것 그 자체가 무척이나 인성적이다.
새재
그곳에서 0.5km를 오르면 왼쪽으로 꺽인 다리를 건너면 다시 숨이 차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되면서 0.3km 지점에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으로 가도, 오른쪽으로 가도 똑 같은 봉산리로 가는 길이다. 왼쪽은 4km나 되는 옛날 다니던 길이고, 오른쪽은 6km 정도 되는 요즈음 새로 난 길이다. 여기에서 오른쪽, 새로 난 길을 따라 둥글궁글한 산을 끼고 굽이굽이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사람을 품는 것 같은 안온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1.7km를 오르면 고개 정상에 오른다. 이름하여 새도 힘겹게 넘었다는 해발 1000m의 새재이다.
이 새재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두 갈래 길이 나있다. 왼쪽으로 난 길이 봉산리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가는 길이 국유임도로로 박지산,
즉 평창의 명산 두타산 거문골로 가는 길이다. 고개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본면 마치 산봉우리들이 연꽃잎을 펼친 듯 에워 싸고 있다. 왼쪽으로 가다보면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를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간들과 서로에게 기생하면서 사는 기생충일지도 모를 일이다.
고개정상에서 1.7km를 내려왔을 때 오른쪽으로 난 길이 있고 그 안에 외따로 집 한 채가 있다. 그 산 속에 흘러오는 물을 봉산리로 향하고, 자연 그대로 흘려 내려온 터라 맑은 물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봉산리
그곳에서 0.3km를 내려가면 왼쪽구릉에 함석지붕을 한 집이 있는데, 뻘겋다 못해 시커멓케 녹이 슬고, 금방 주저 않을 것만 같이 위태하게 보이지만 무너진 돌담이 주위를 감싸고 있어, 자세히 보면 오랜 세월을 알려주듯 평온하고 멋스럽게 보인다.
도시에선 볼수 없는 평화를 볼 수 있어 길 가는 나그네의 걸음을 한참 동안 이나 묶어둔다. 주위 밭은 잡초로 우거져 있고 누가 땅을 갈며 농사를 짓다가 얼마나 골몰했기에 저렇게 집을 버리고 떠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땐 우리를 측은하게도 한다. 60,70 년대 보릿고개를 견디어 온 우리들 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왼쪽으로 보이는 구릉에 두 집이 보인다. 한 집은 슬레이트 지붕 위에 차광망을 씌웠다. 도시 사람들에게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보일 테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산과 벗하며 살아가는 재미일지 모르겠다.
그 집에서 개울 건너 산 및 에는 토종벌통이 에워싼 푸른 함석지붕의 집이 있는데 여름 한 철 농사를 짓다 가버렸는지 인기척이 없다.
그곳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영동고속도로 나들목에서 20.5km 떨어진 곳에 봉산리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봉산리 마을은 마치 산세가 봉황새의 날개로 에워싸 놓은듯 하다고 하여 봉산리로 부르게 되었다. 우리들은 봉산리 양지마을에서 잠시 짐을 풀어 깊은 산속 자연의 맛과 향이 베어있는 산촌체험을 한다.
온종일 주워 섬긴다 할지라도 자연의 혜택을 말로는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전통 귀틀집에서의 하룻밤 추억! 아궁이에 불 집혀가며 밤 하늘 별보며 고즈넉한 경관과 푸근한 고향 같은 인심을 느껴본다.
이 곳 양지마을은 현지 10여 채 집과 1936년 설립되었다가 4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98년 폐교된 거문초등학교 봉산분교장이 있다. 지금은 임대인을 두어 또 다른 삶을 꾸려가고 있다.
한 때 이 마을은 바깥세상과 담을 쌓은 곳이기도 하였다. 봉산에서 50여 리가 넘은 진부장을 보자면 꼬박 2일이나 걸렸을 태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초롱불로 밤을 새우고, 그 흔하던 라디오도 없어 외지의 소식을 듣자면 이따금 진부장이라도 나가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던 마을이다.
비행기는 구경할 수 있어도 차를 구경 할 수 없었던 봉산리, 산판길이 닦이고‘제무씨 도라꾸’(GMC사가 생산한 트럭)가 다니게 되어서야 자동차를 구경할 수 있었던 곳이니 그야말로 오지 속의 오지 두메산골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텔레비전도 있어 세상 돌아가는 일 훤히 알 수 있는 마을 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다름 없이 진부장을 쉽게 나갈 수 없는 곳입니다.
이런곳이 도시의 묵은 때를 씻을 만한 곳이 아닐까요.
봉산리 양지마을 산골체험
여름에는 직접 옥수수 밭에서 옥수수를 따서 쪄 먹는 맛은, 그 달콤함이란 도시에서 먹는 피자나 햄버거에 비할 수 있을까.
가을에는 햇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먹는 맛이란 일반 시중에서 생산되는 두부 맛보다 담백하고 구수하다. 특히 마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는 전형적이 촌가가 있는데, 아직까지 부엌도 재래식이다. 부뚜막에 옹기종기 걸린 솥이 정겹게 보이고, 이곳에서 군불을 지펴 하룻밤을 자다보면 문 밖에서 들려오는 겨울 바람소리는 때로는 비파가 울리는 것 같고 때로는 삼라만상들의 울부짖음으로 들리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천상에서 울려오는 음악이면서 내면의 세계를 되돌아볼 수 있는 소리이기도 하다.
따끈따끈한 온돌방에서 몸과 마음을 쉬고 나면 그 산뜻한 몸의 가벼움은 어디에 비할까.
요즈음 도시에서 성행하고 있는 찜질방은 아무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양지마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는 집 뿐만 아니라 10여 채의 산촌농가가 있고, 자연관찰체험으로는 봉산천이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데 버들잎 그늘 속에 노니는 버들치의 자연스러운 헤엄을 보고 있노라면 “평화란 저런 것이구나”란 것을 느낄수 있고 돌을 일궈보면 가재가 넙죽이 엎드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Tip
봉산 양지마을에서 두메산골마을의 체험을 소개하자면, 봄이면 산나물 뜯기 체험을 할 수 있다. 해발 700m 이상의 분지에서 나는 산나물을 다른 지역보다 청정지역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영양가가 만점이다. 그래서 감칠맛 나는 입맛에 누구나 감탄을 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산나물로 죽을 쑤어 먹는 맛은 도시인들에게 별미이다.
우리에게 가재도 이제는 흔히 볼 수 없는 멸종위기에 처해 있지만 봉산천에서만은 가재를 관찰할 수 있다.
옛날 가재가 흔할 때는 보리꽃 필 무렵에 수까지에 불 당겨 횃불을 만들어 어스름 저녁에 물가에 나가면 가재가 물가에 나와 놀고 있어 쉽게 잡을 수 있다. 그 가재를 구어 먹거나 삶아 먹으면서 보릿고개를 넘기던 우리네 조상들이 었다. 그렇다고 봉산천에서는 가재를 먹기 위해 잡지말고, 잡아서 관찰해 보고는 도로 방생하는 미덕을 우리 인간들은 보여주어야 한다.
Tip
실제 두메산골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민박을 하면서 손수 그곳에서 재배되는 농산물과 산에서 나는 자연의 산나물, 버섯 등 산골에서 전래되어 오는 산골음식을 만들어 먹는 맛 또한 즐거워진다.
별다른 음식솜씨가 아니어도 단순한 조리를 거쳐 단백한 양념이 가해지면 산골음식이 만들어 진다. 이러한 재미에 번잡한 도시생활을 잠시나마 잊는 것도 정신건강에 많은 도움이 된다.
봉산계곡
봉산 분교장 에서 0.6km를 내려가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 샛길이 발왕골로 가는 길이고 바로 내려가는 길이 정선 구절리로 가는 길이다. 이곳에서 서너 사람이 팔을 벌려 감싸도 모자랄 것 같은 아름드리 전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아 있다. 아랫도리에는 오색천을 휘감고 있는 것을 보아 서낭목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그 옆에는 서낭당이 있다. 이 서낭목을 살펴 짐작 하건데 봉산 마을은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낭당에서 0.5km를 내려가면 띠집이 나온다. 원형 그대로 있다면 좋으련만, 쑥대밭 속에 내려앉았다. 쑥대밭에는 호랑이가 새끼를 칠 만하다. 그렇지만 어수선하게 보이는 풍경은 아니다. 어디선가 많이 본 우리의 풍경이다. 두메산골에서 밭을 일구어 가며 자연과 벗 삼아 살아온 그들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낯설기 보다는 친근감이 간다.
그곳에서 2.5km를 따라 계곡을 내려가면 다리가 나온다. 그 다리에서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다리 밑을 흐르는 맑은 물속을 내려다 보고 있노라면 머리 속이 상쾌해진다. 그리고 좔좔 흐르는 철아한 계곡 물소리는 세상에 찌든 더러운 귓속을 깨끗하게 해준다. 도한 수려한 경관에 넋을 놓게 된다.
그곳에서 0.9km를 내려가면 대웅전 삼성각 요사채를 갖춘 ‘대광사’라는 절이 나온다. 근래에 지은 사찰이다. 그 아래에는 길에서 물 건너 쪽에 산 밑으로 민가 4채가 있는데 주위의 쑥대밭이 사람이 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저 농사철에 한 철 농사를 지으러 들어왔다가 나가는 모양이다.
대광사에서 1.1km를 내려가면 근래 새로 지은 통나무 집이 나오고 그 앞에서 다리를 건너면 정선 땅이다. 도로 상태가 양호하며 폭도 넓어 진다. 봉산리에서 이곳까지 천년림 속에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는 유난히 돌배나무가 많다. 그래서 돌배꽃이 피는 봄이면 이 계곡은 이화우에 꽃놀이도 좋을시고, 그렇다고 돌배꽃만 피는 것은 아니다. 지천으로 흐드러 지게 피는 진달래는 때깔이 좋아 더욱 붉고 산목련또한 더욱 희다. 여름이면 녹음이 우거져 그늘에 앉아 있지만 해도 한기를 느낄 정도로 시원하며, 가을이면 단풍으로 계곡을 울긋불긋 수 놓는다. 겨울의 셜경 또한 어디에 비하랴. 사시사철 아름다운 계곡이다.
자개골
평창 땅과 정선 땅의 경계에서 3.3km를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자개리의 상자개 마을이 나온다. 상자개는 옛 풍경 그대로의 옛 집 들이 몇 채 옹기종기 모여 있어 60, 70년대의 옛날을 그립게 한다. 여름에는 마을 앞을 흐르는 시원한 계곡 물에서 더위를 식힐 수 있고 민박을 하면서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의 총총함을 볼 수 있다. 또한 자연 그래도 키운 토종닭 등 토속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상자개에서 2.2km를 내려가면 하자개가 된다. 이곳에는 여름 피서지로 마을 관리 휴양지가 있다.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서 민박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봉산리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이곳 유천 3교를 지나 0.6km를 내려가면 포장도로로 그 동안 봉산에서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을 덜컹덜컹 달려온 차는 비에 눈 녹듯 스르르 달리게 된다. 포장도로가 시작되고부터 1km 를 지나면 산 왼쪽 비탈에 폐가가 한 채 있는데 그곳에서 0.9km를 가면 자개1교 삼거리가 된다.
자개1교 삼거리는 봉산리에서 발원하여 자개골을 거쳐 내려온 봉산천과 대관령에서 발원하여 내려오는 송천이 만나는 합수 지점이 된다. 합수된 물은 흘러 골지천과 만나 정선 아우라지를 이루어 동강이 되어 영월에서 서강과 만나 남한강이 되어 경기도 양평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한강을 이루어 서울의 젖줄을 이룬다. 출처 - 평창군청 오지마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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