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촌리 궁촌해수욕장 마을운영협의회 033-574-9345
삼척에서 남쪽방향으로 20분정도 울진행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약15km지점에 무한히 펼쳐지는 해안의 백사장과 송림이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궁촌해수욕장이다. 고개밑 궁촌 다리 앞에서 하차하여 해안 쪽으로 200m 정도를 걸어 들어가면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해수욕장에 진입할 수 있으며, 교통편의를 위해 해수욕장내의 백사장까지 차량이 들어갈 수도 있다. 특히 해수와 민물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가족이 함께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개장기간 : 7.10 ∼8.20 (06:00~24:00)
궁촌리 924 영은사 ☎ 033-574-9300
『삼화사사적』에 의하면, "삼화사 숲속에 삼층보탑이 있는데 약사삼불인 백·중·계 삼형제가 서역에서 돌로 만든 배를 타고 유력하다가 동해안에 이르러 제일 맏이는 흑연화(黑蓮花)를 들고 지금의 삼화사로 오니 흑연대(黑蓮臺)라 하고, 둘째는 청연(靑蓮)을 들고 지금의 지상사(지향사)로 오니 청연대(靑蓮臺)라 하고, 막내는 금연(金蓮)을 들고 지금의 영은사로 오니 금연대(金蓮臺)라 하였다."고 하는 창건 설화가 전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신라 진성여왕 5년(891), 혹은 892년에 범일 국사가 궁방산 아래 마전평에 절을 창건하여 궁방사(宮房寺)로 한 것을 영은사의 최초 창건으로 보고 있다. 명종 22년(1567)에 사명대사가 궁방사와 다소 거리가 있는 현위치에 절을 옮겨지어 운망사(雲望寺)라 하였다가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자, 인조 19년(1641) 벽봉 스님이 중건하고 절 이름을 영은사로 바꾸었다.
그 후 순조 5년(1805) 봄에 화재로 인해 대웅보존을 비롯한 10여동의 건물이 전소되어 다음해에 당시 삼척 부사 심공저의 지원을 받아 중건하였다. 순조 10년(1810)에 학송스님이 석가여래삼존불을 봉안하였으며, 철종 6년(1855) 서암스님이 괘불을 조성하였다. 그 뒤 고종 1년(1864)에는 심검당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영은사는 대웅보전을 위시하여 팔상전, 심검당과 설선당, 삼성각, 칠성각, 요사채 등의 건물들과 괘불, 부도 및 비 등의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으며, 산내 암자로는 대원암·삼성암 등이 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6호(1982.11.3지정)인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공포는 다포계 양식의 외 2출목, 내 3출목을 했음이 특이하다. 외부 전면의 살미는 쇠서형인데 비하여 후면은 운공형으로 초각되 었고 내부 살미는 연봉형을 하였다.
건물의 기단은 지형에 따 라 거칠게 가공을 한 화강석 기단인데 근래에 변형된 듯하며 그 위에 놓인 초석은 덤벙주초이고 기둥은 민흘림이다.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를 짜았고 가운데의 2개의 고주가 대들보를 받 치고 후불벽과 불단을 형성하였다. 천정은 가운데로 우물반자를 짜고 주위는 빗천정을 이루었다. 이 건물은 가구수법과 공포형식으로 보아 조선 말기의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7호(1982.11.3지정)인 팔상전은 사기에 의하면 조선 인조 19년(1641년)에 세웠다 하나 건물의 짜임과 두공형식으로 보아 조선 후기의 형식을 보이고 있다. 자연초석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의 간결한 건물이다. 지붕의 전면은 부연을 달고 후면은 부연없이 홑처마로 처리하였다. 연화촉각한 쇠서를 전면으로 돌출시킨 조선 후기 형식이다. 건물 내부 에는 팔상위의 탱화를 모셨는데 그 제작년은 건륭 25년(1760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궁촌리 452 음나무 천연기념물 363호 / 1989년 9월 16일 지정
두릅나무과에 딸린 낙엽활엽교목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 등지에 널리 분포 되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음나무로서는 우리나라 최대 거목으로서 수세가 왕성하고 위 용있는 수형을 갖추고 있으며 현 생태상태도 우수하다. 수령이 천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수고20m, 흉고주위5.2m, 근원부주위6.5m, 수 관폭 남북20m 동서15m이다. 또한 지표면으로부터 2.8m 높이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근덕면의 음나무 (近德面의음나무) / 한국관광공사
마을에서는 이 나무를 해치면 피해를 입는다하여 신성시하고 신목으로 여겨 보호해 왔 으며, 매년 정월에 제사를 지내고 단오 때에는 큭 굿을 올린다고 합니다. 또한 잎이 필 때 동쪽 가지에서 먼저 피면 영동지방이, 서쪽 가지에서 먼저 피면 영서지방이 풍년든 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음나무 인근에는 소나무 고욤나무 뽕나무 향나무가 각각 한그루씩 자리잡고 있어 과거 주거지로 보이는데 마을 노인들의 의하면 음나무가 서 있 는 곳이 고려 공양왕이 유배되어 은거하던 집뜰이었다고 한다.
궁촌리 178번지 공양왕릉 강원도 기념물 제71호 / 1995년 9월 18일 지정
궁촌리 추천(秋川, 갈내) 고돌재(古突峙)에 있는 고분3기, 삼척에서 남으로 약 40리 가면 동막리를 지나 "사래재"라는 나즈막한 고개를 넘어 가면서 바다쪽을 건너다 보면 큰 소나무가 외로이 서 있고, 그 곳에 석축굽을 돌린 큰 무덤과 그 옆과 앞에 작은 무덤이 2기가 보인다. 이 고분들은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 3부자의 능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공양왕릉은 고려왕조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제34대, 재위기간 1389-1392)의 능묘이다. 공양왕은 왕조의 몰락과 함께 폐위되어 왕자 (석)奭, (우)瑀와 함께 원주와 간성을 거쳐 삼척에서 조선조 태조 3년(1394)에 교살되었다고 전한다.
왕릉은 오랜 세월이 흐르는 사이 현종 3년(1837) 정유년 가을에 삼척 부사 이규현이 개축하였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많은 사연을 가슴에 품은 채 그저 천추의 한을 품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 묘소는 1942년 면장 김기덕과 이 지방인사들이 다시 개축하고 1977년6월 면장 최문갑이 봉축하였다. 현재 우리 나라에는 공양왕릉이 두 군데 있는데 이곳과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에 남아있다. 경기도에 있는 공양왕릉은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나 이곳 삼척의 공양왕릉은 민간에 오랫동안 구전되어 왔다. 현재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된 공양왕릉은 가장 규모가 크고 그 옆은 왕자 나머지는 시녀 또는 왕이 타던 말무덤이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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