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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 저런거/이것저것

불가사의 피사의 사탑

by 구석구석 2022.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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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사의 사탑(Tower of Pissa)

이탈리아 중서부에 위치한 피사 대성당(Duomo di Pisa)의 부속건물(대성당, 세례당, 종탑)중 3번째이며 마지막 구조물로써, 중세 도시국가 피사가 팔레르모 해전에서 사라센 함대에 대승한 것을 기념하기위해 세워진 종탑이다.

흰대리석으로 지어졌으며, 꼭대기 종루를 포함해 8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높이는 55.8m, 무게는 14,500t 이나 된다.
탑내부는 나선형으로 된 294개의 계단을 통해 종루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종루에는 각각 다른 음계를 가진 7개의 종이 걸려있다.

1174년에 착공된 피사의 사탑은 이탈리아 천재건축가 보라노 피사논의 설계도에따라 탑을 만들어가던 중, 3층까지 쌓아올렸을 때 공사관계자들은 지반 한쪽이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책임 기술자였던 보나노 피사노는 기울어진 모양을 보정하기 위해 새로 층을 올릴 때 기울어져 짧아진 쪽을 더 높게 만들었으나, 추가된 석재의 무게로 건물은 더욱 가라앉게 되었다.

기술자들이 해결방안을 찾으려고 몇 번씩 공사를 중단했으나 결국 1350년에 맨 꼭대기층이 기울어진 채 완성되었다.
물론 건축당시부터 의도적으로 기울어진 탑을 세운것은 아니다.

1년에 1mm정도 기울어지는 미세한 자연 현상이 누적되다보니 오늘날과 같이 탑의 꼭대기가 수직선에서 무려 5m나 기울어졌다.

현재는 탑의 기울기가 멈춘 상태다. 최근 영국 런던대학의 토질 기계학과 존 부를랜드 교수는 "피사의 사탑은 이제 기우는 것은 멈췄다. 이는 지난 7세기만에 이룩한 개가"라고 말했다.

사탑이 이처럼 위태로운 상태에서도 수천년 동안 용케도 무너지지 않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1971년 8월2일, 아폴로 15호에 승선한 우주인 스콧은 갈릴레이가 한 것과 똑같은 실험을 달에서 했다. 그 장면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됐다. 지구의 시청자들은 공기가 없는 달에서 가벼운 깃털과 무거운 망치가 동시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스콧은 “이것은 갈릴레이가 옳았음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피사의 대성당

갈릴레이는 미켈란젤로가 사망하고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1564년 이탈리아의 피사에서 태어났다. 피사는 이탈리아반도 북서부 해안 가까이 있는 도시로, 중세시대 제노바, 베네치아 등과 같이 해상 무역을 통해 번성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곳에는 흔히 ‘피사의 사탑’이라고 부르는 종탑이 있다. 이 탑은 신기하게도 비스듬히 기울어져 금세 무너질 듯하면서도 그 오랜 세월 무너지지 않고 있다. 또 갈릴레이가 이곳에서 ‘물체는 질량과 관계없이 동시에 떨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갈릴레이의 이 실험은 얼마 전 미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실험 10가지’ 가운데 하나로 뽑혔다.

갈릴레이 이야기의 한 토막이다. 어느 날 갈릴레이가 종탑에 올라갔다. 종탑 밑에는 곧 있을 흥미로운 실험을 구경하려고 모인 사람들의 환호성으로 시끄러웠다. 갈릴레이는 자신의 주장에 반대하는 교수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그들 앞으로 질량이 다른 두 개의 쇠 구슬을 떨어뜨렸다. 두 개의 쇠 구슬은 동시에 땅에 떨어졌다. 갈릴레이는 그렇게 낙하하는 물체는 질량과 상관없이 등가속도 운동을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했다.

갈릴레이가 살던 시대에는 낙하하는 물체의 속도가 물체의 질량에 비례한다는 게 상식이었다. 사람들은 10배 무거운 물체가 10배 빨리 떨어진다고 믿었던 것이다. 갈릴레이는 그 상식을 깨뜨려버렸다.

중세 도시국가 피사는 팔레르모 해전에서 사라센 함대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아르노 강변의 ‘캄포 데이 미라콜라(기적의 언덕)’에 3개의 건축물을 짓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지금의 두오모 광장이 조성됐고 광장에는 대성당과 세례당, 종탑이 차례로 들어섰다.

Duomo di Pissa

두오모 광장의 주인공인 대성당이 완공된 것은 1118년이다. 이어 1153년에는 원통형 건물에 돔 구조의 지붕을 이고 있는 세례당이 지어졌고, 종탑은 제일 마지막에 세워졌고 탑내부는 나선형으로 된 294개의 계단을 통해 종루까지 올라갈 수 있다. 세례당과 종탑은 피사 대성당의 부속 건물이다. 종탑 안에는 음계가 서로 다른 7개의 종이 매달려 있다.

종탑의 재료는 최고급 대리석. 대리석 산지로 유명한 이탈리아지만 여기에 쓰인 것은 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들려온 것으로 세계 최고의 질을 자랑한다. 이것만 보아도 얼마나 지극한 정성으로 시작한 공사인지 알 수 있다.

지상 8층 구조로 계획된 종탑 공사를 위해 먼저 모래와 진흙 그리고 조개껍데기로 바닥을 다졌다. 공사 착수 5년째로 접어들 무렵이다. 아직 3층밖에 쌓지 않았는데 탑이 기울기 시작했다. 남쪽 지반이 북쪽보다 훨씬 물렀기 때문이다. 공사는 일단 중단됐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쪽과 북쪽의 대리석 기둥 두께를 다르게 해서 공사를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게 늘어난 무게 때문에 종탑이 반대쪽으로 기울었다. 공사가 또다시 중단됐다. 이렇게 공사는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1278년에 7층까지 쌓아올렸을 때의 경사도는 약 1。였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공사는 계속됐다. 1360년 꼭대기의 종탑을 완성해, 무려 200년 가까이 계속된 대공사가 마무리됐다. 그러나 탑은 이미 남쪽으로 상당히 기울어진 뒤였다. 탑은 그후로도 매년 1mm씩 기울었다.

이상태로 계속 가게 된다면 , 앞으로 175년후에는 무너진다

그동안 탑이 기울어져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838년에 한 차례 대대적인 공사를 했다.  1990년 1월, 탑의 수직 기울기가 4.5m에 이르고 93년 사탑의 수직기울기가 5m나 되는 것을 감안할 때 2050년경이면 붕괴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오자 부를랜드 교수에게 매달렸으며 일반인의 출입을 막고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1993년에는 남쪽으로 기울어진 탑을 바로세우기 위해 북쪽 면에 600t의 납덩이를 묻었다. 다시 1995년에는 철선으로 탑과 바닥을 묶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탑을 더욱 기울게 만들 뿐이었다. 그래서 모두 걷어내고 다시 960t의 납덩이를 묻었다. 남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남쪽 땅에서도 흙을 파내고 지름 21cm의 빈 관을 묻었다.

당시 공사를 맡은 부를랜드 교수는 “피사의 사탑은 이제 기우는 것을 멈췄다. 이는 지난 7세기 만에 이룩한 개가다. 1년이 안되는 사이에 탑꼭대기가 약 5cm 정도 되돌아섰다.

탑은 앞으로 300년 동안은 끄떡없이 버틸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처럼 위태로운 상태에서도 수백년 동안 용케 무너지지 않고 버텨온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기 힘들다”고 했다.

/ 2000.06.18 [피사=AF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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