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런거 저런거/군대이야기

특전사 / 66특전대 606특공 27특공

by 구석구석 2021. 2. 19.
728x90

66특전대 / 5031부대

문세광 저격사건이후로 차지철주도하에 대통령 경호실이 만들어지고 경호부대가 창설되었는데 22 33 55 66이라고 직접 부대명칭도 정했었다. 66은 1특전단 6대대의 특전사병력인데 6대대는 특전단의 특임대로 미국과 독일에서 대테러교리를 인수받은 당시에 대테러 최정예부대로 부대원은 100여명이었다. 

1968년 김신조 청와대습격사건이후 청와대 경비강화를 위해 각여단에서 차출하였으며 200여명까지 증원되었는데 말이 대테러지 대통령 군사경호부대로 경호실장의 지휘를 받았다. 김신조 청와대루트를 66특전대가 경계근무를 했는데 이로 인해서 66이 외곽경비를 했다고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차지철은 1공수 대위출신으로 경호실장을 하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차지철은 몇명이 죽어도 좋으니 강하게 훈련을 시키라는 지시를 내려 대원들은 8주의 혹독한 훈련을 받았는데 10km를 30분대 주파하고, 각종화기를 어떠한 자세에서도 90%명중을 시켰단다.

이후 1977년 10월 루프트한자 여객기 납치사건을 계기로 박정희의 지시로 비자금을 운영하여 차지철경호실장과 전두환이 비밀리에 66특전대와 별도의 항공기 대테러팀을 만들게 되는데 20여명이 처음에 만들어졌다가 100여명까지 늘었다고 한다.  이무렵 1977년 12월에 66특전대는 666특공대에 잠시편입된다.

66특전대는 독립부대로 10.26사건으로 최규하가 과도기에 대통령을 하면서 군인들이 청와대에 있는게 보기 싫어서 1979년 11월경에 부대는 해체되고 대원들은 특전사로 전출되어 각 여단으로 복귀하였다.

 

606특공

쿠테타로 신군부가 정권을 잡으면서 쿠테타가 두려워서 신변안전을 위해 김택수중령을 대장으로 비밀경호와 대테러를 담당하는 606특공대를 항공기대테러임무수행과 항공기 이용을 위해 김포공항 인근에서 1978년 6월 1일 65명으로 창설하게 되는데 막사는 현대에서 지었다고 한다. 이때 한국군 최초로 흑복을 착용하였으며 한달후인 7월에 경호실로 배속된다.

창설당시에는 1개 특공대였으나 1년후 증편되어 2개의 특공대로 운용되었다. 1개의 특공대에는 소령을 대장으로 위관장교3명과 44명의 하사관으로 구성되었고 중사급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충원은 전부 특전여단에서 선발했으며 경호업무를 담당하기에 신원조회가 무척 까다로웠고 소속은 특전사였지만 지휘는 경호실에서 했다. 

이들은 매일 섬광탄을 터트리며 항공기 진입훈련을 했으며 특전사 대원들보다 훨씬 센 훈련을 받았다. 무술훈련, 사격훈련, 낙하훈련, 항공기 침투 훈련이 대종을 이뤘는데, 골절환자가 속출할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이었다.

사격훈련은 장거리 소총사격과 권총 속사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는데 직경 20m의 콘크리트 원통형인 공군부대의 유류저장고 자리를 속사 훈련장소로 활용했다. 청와대 경호실 요원들이 훈련하는 경기도 송추의 자동화 사격장도 이용했다.

레펠을 매일 했는데  낙하 고도는 400m. 행주대교 주변에 있는 공터와 개화산이 강하 훈련장이었다. 종종 야간에 비행기에서 낙하해 기습 침투하는 훈련도 실시했다.

특전사에서 선발하기에 작전팀은 하사관들이 주였고 지원부대에는 병들이 많았는데 병들도 우수한 자원들로 구성되었다. 정보팀에는 외국어능력이 우수한 병들이 많았다고 한다. 장교의 경우는 청와대경호를 하기에 진급에 유리하여 경쟁이 치열했는데 대장들은 다 별을 달았다.

특공무술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곳이 606특공이라고 하는데 태권도와 유도를 기반으로 특전무술이 만들어졌고 차후 합기도를 비롯한 여러가지를 합쳐 공격을 위주로 하는 특공무술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를 27특공이 이어 받아 5특전여단에는 살상보다는 특수전에 맞게 보완하여 전수하고 여단에 시범팀이 만들어져 육군에 전파된다. 특공무술은 전파되면서 변화를 갖게 되어 서로 창시자라 하는지 합기도처럼 시끄럽기도 하고 단체도 몇개가 있다.

1979년 10.26 김재규중정부장의 박통저격사건이 발생하여 전두환은 606의 절반병력을 경호실로 배정하고 일부는 보안사 서빙고분실에 대기시키며 합수부요원들 비밀경호도 수행하며 보안사요원으로 활동을 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606특공이 경호업무를 하게 되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때 한남동 공관진입하며 해병대 경비병력과 총격전을 벌였다. 일설에는 30경비단 병력으로 위장하여 활동했다고 한다. 

728x90

27특공

27특공

27특공대는 606부대의 후신으로 전두환이 반란에 대비하고자 1980년 5월 오형근을 부대장으로 160여명을 선발하여 27특공대로 개편하여 근접무장경호를 하게 되었고 아웅산참사때 몸을 던져 전두환을 덮어서 구했다고 하는데 그당시 폭발은 전두환이 행사장에 도착하기 전에 일어났다.

충원은 특전여단에서 4~50명을 선발해서 27교장에서 하루 종일 장애물훈련을 하는데 훈련중에 탈락을 시키는게 아니라 교육생중에 몇몇만 데리고 가고 나머지는 복귀시켰단다. 

1981년 4월 88올림픽을 계기로 707특임대가 창설되면서 606의 대테러임무가 707에 이관되어 606은 대통령 비밀경호업무만 수행하게 된다.

27부대의 유래는 김택수부대장이 육사시절 럭비부 등번호 27에서 가져왔다고 하는데 보통 창설일을 부대명으로 하기에 맞는지는 알수없으며 김택수는 606부대장이었다. 

27 장애물훈련장

1993년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고 대통령경호를 군인이 하는 곳은 아프리카의 몇나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경찰특공대에 임무를 인계하고 1994년 해체되었는데 경찰특공대의 인원들은 27특공대원들이 전역을 하고 대원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특전사 전역하고 경특으로 들어갔는데 군인이 민간인으로 신분만 바뀌어 계속 경호를 한 것이다.

경호실에서 나온 27대원들은 707이나 특전사로 원대복귀하거나 정보부대로 빠지기도 했다. 27이 소속은 경호실이었으나 군인 신분이라 경호실과는 거리가 있었으며 같이 어울리지를 못했다고 한다.  

27특공이 루프트한자 항공기납치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부대라 항공기대테러에 관하여는 최고였고 영내에 훈련용 폐항공기가 있었는데 지금도 김포의 훈련장은 보존되어 있으며 부대의 건물 현관에는 "이곳은 70년대에 창설된 육군 특전사의 비밀경호부대의 훈련장으로 그들의 피와 땀과 정열을 바친곳" 이란 글이 걸려있다.

ㅇ해체 29년만에 청와대 특공부대 기념비제막

‘606·27 전우회’는 금년 3월 임원회의를 개최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대테러 임무와 대통령 근접경호의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 부대원으로서, 부대해체의 아픔을 극복하고 자랑스러운 606·27특공부대를 대한민국 특전사의 역사에 기록하는 기념비 건립

초대 특공대장 김종헌 장군과 전 육군참모총장 장준규 장군, 현 특전사령관 소영민 중장 등 606·27특공부대 출신 전우회원들이 감격의 회한에 잠겨 ‘606·27특공부대 기념비’를 바라보는 모습[사진=김희철]

특수전학교(SWS)를 거쳐가는 모든 특전요원들에게 대한민국 최초의 대테러부대이며 특공무술을 창시한 606·27특공부대의 발자취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하에 특수전학교 백마대공원내로 건립위치를 선정했다.

특히 초대 특공대장인 김종헌(육사24기) 장군은 1976년 8월18일 판문점에서 도끼만행 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응징하기 위해 투입된 1특전여단의 결사대 64명을 지휘하는 특공대장으로 12미터 높이의 거대한 미루나무를 제거하고 북한측 5초소와 8초소를 때려부수었다.

최초 대테러부대인 606특공부대는 국제적으로 항공기납치, 요인암살 등이 빈번했던 1970년대에 테러 전담부대의 필요성을 느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의거 1977년 10월부터 특전사 요원 중 체력 특급 및 무도유단자, 특등사수 등인 장교 2명, 부사관 18명을 선발하며 태동했다.

1978년 3월에는 장교 8명, 사병 57명으로 부대를 증편하여 개인 및 팀단위 훈련, 대테러 전술전기 개발, 신형장비 전술적 운영을 숙달했고, 드디어 1978년 6월1일 육군 일반명령 30호에 의거 고유명칭 6178부대, 통상명칭 606부대로 창설 되었다. 

이때 606부대의 부여된 임무는 항공기와 건물에 대한 대테러특공작전, 테러 첩보수집 및 분석 연구 및 요인경호 및 공중·육상의 기동타격대 역할 수행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대테러 부대로써 역사에 이름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각종 장비와 훈련장을 갖추고 개인 및 팀단위 훈련으로 대테러 부대의 위용을 갖추던 부대는 1979년 10·26 사태가 발생하자 세계 최고의 대테러부대 육성의 목표가 백지화 되었으며, 같은해 10월30일 대통령경호실에서 특수전사령부로 원대복귀하게 되었다.

동년 12월 12·12사태 발생했고 다음해인 1980년 8월27일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의 대통령 취임에 따라 606특공부대는 다시 대통령 경호실로 배속 전환되어 대통령 근접경호 임무, 청와대 주요접근로 강습 거부, 기동타격대 임무, 의명 특공작전 수행의 임무를 부여 받았다. 

또한 부대는 대테러 임무 및 경호임무등 새로운 임무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게 5개팀 1개 특공대에서, 6개팀 2개 특공대로 증편하면서 부대 통상명칭을 27특공부대로 변경했다.  

이후 1980년 8월부터 14년 동안 대테러부대 창설요원 수탁교육, 3회의 외국 대테러부대원교육, 6회의 특공무술 시범, 경호기술 및 장비 개발, 근접경호방법 개선 및 발전, 경호요원 보수교육 등을 담당하면서 대한민국의 대테러작전 및 경호임무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허나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후 27특공부대는 1993년 3월14일부로 공식적으로 해체하게 되었으며, 이때 부대원들은 경호실, 경찰특공대, 국가정보원, 특전사 등으로 진출하여 경호 및 대테러 임무의 최일선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해왔다. / 출처 한국안보협업연구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