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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 저런거/군대이야기

필리핀 태풍피해복구 파병 아라우부대

by 구석구석 2024.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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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학교 38개·관공서 22개 재건
도로 정상화·급수 지원·배수로 정비
의료지원도 병행 4만2000여 명 진료
임무 종료 후 부대원 중심 전우회 결성
장학금 전달하고 참전용사 방한 추진

2013년 11월 4일 태평양 북서부에서 태풍 ‘하이옌(Haiyan)’이 발생했다. 순간 최대 풍속이 시속 380㎞에 달하는 ‘슈퍼 태풍’이었다. 하이옌은 같은 달 8일 필리핀 중부 사마르·레이테 지역 등을 강타해 순식간에 도시를 파괴했고, 1만200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에 국제연합(유엔)과 세계 각국은 긴급구호·지원 활동을 전개했다.

필리핀합동지원단(아라우부대)은 인도적 지원 임무를 완벽히 수행했다.사진은 2013년 12월 21일 부산작전기지에서 아라우부대 인원·물자·장비를 실은 해군 상륙함 성인봉함이 출항하는 모습. 국방일보 DB

긴급구호·지원 활동
우리나라 역시 필리핀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약 500만 달러의 인도적 지원과 2000만 달러 규모의 재해복구 무상원조 지원을 결정했다. 또 필리핀 정부의 “재해복구 지원부대를 파병해 달라”는 요청을 수용해 국회 동의를 거친 후 파병을 최종 결정했다.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이나 다국적군 활동이 아닌 재해 당사국 요청에 의한 최초의 부대 파병이었다.

부대명은 필리핀 합동지원단, 통상명칭은 ‘아라우(Araw)’였다. 아라우는 필리핀 현지어로 ‘어둠 뒤에 오는 태양’ ‘희망’ 등을 의미한다. 필리핀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자 하는 마음이 담겼다. 부대 창설은 2013년 12월 9일이었다. 육·해·공군과 해병대 장병 520여 명으로 구성했고, 각 군이 참여하는 만큼 합동성을 강조해 부대명을 합동지원단으로 정했다.

아라우부대의 임무 지역은 가장 심각한 피해를 본 레이테(Leyte)주 타클로반(Tacloban)시 일대였다. 당시 이곳의 피해 정도는 사망·실종 7000여 명, 이재민 약 110만 명, 가옥 파손은 95%였다. 부대는 같은 달 19일 환송식을 거친 뒤 21일 1제대가 해군 상륙함(LST)에 물자·장비를 싣고 출발했다. 27일에는 2제대가 전세기편으로 출국했다. 필리핀에서 파병지원 요청을 받은 지 약 한 달 만이었다.

1제대로 출발한 해군상륙함단대는 2600톤급 성인봉함·비로봉함과 승조원·지원병력 260여 명으로 편성했다. 굴삭기·크레인·로우더·덤프트럭 등 장비 19종 30대와 전투식량·부식·수리부품 등 물자·장비 약 310톤을 운반했다. 같은 달 27일 필리핀 세부항에 도착해 전세기편으로 이동한 병력을 탑승시켜 28일 타클로반에 도착했다. 특히 상륙함은 파병 초기 주둔지가 건설되기까지 약 한 달간 임시 숙소로 활용되며, 부대 활동에 든든한 보탬이 됐다.

아라우부대 해군상륙함단대 장병들이 파병 출항에 앞서 함정에 결박된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국방일보 DB

부대는 이후 약 1년간 기반시설·공공시설 복구, 의료·방역 지원, 민사작전으로 구분해 재건복구·지원 활동을 펼쳤다. 지역 학교 38개와 관공서·기관 22개를 재건했고, 도로 위에 쓰러진 전신주 257개를 비롯해 1만9600톤의 잔해물을 제거해 도로 기능을 정상화했다. 또 난민촌과 오지 마을에 1500만ℓ의 급수를 지원하고 배수로를 정비했다.

이와 함께 의료지원을 병행해 4만2000여 명의 지역주민을 진료했다. 주둔지 진료를 중심으로 부대를 찾기 어려운 주민을 위해 주 3회에 걸쳐 순회 진료도 했다. 또 방역지원도 지속해 혹시 모를 전염병의 발병을 예방했다. 아울러 6·25전쟁 참전용사 가옥 4곳을 보수해 의미를 더했다.

보은(報恩)의 파병
아라우부대 파병 결정에는 우리나라와 필리핀의 깊은 우호 관계도 한몫했다. 필리핀은 6·25전쟁 때 우리를 도운 참전국이다. 필리핀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독립 4년밖에 되지 않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유엔에서 세 번째, 아시아에서는 첫 번째로 지상군 1개 대대 규모의 전투부대를 파병했다.

필리핀군은 1950년 9월 부산에 도착해 전열을 갖추자마자 낙동강 일대 전선에 투입됐다. 이듬해 4월에는 미군 3사단에 배속돼 경기 연천에서 율동리전투를 치렀다. 1952년 5월에는 이리고지 전초전에 참여해 백병전을 치르는 혈투 끝에 큰 전과를 올렸다. 또 정전을 앞두고 치열하게 펼쳐진 고지 쟁탈전에서는 백석산 고지와 1090고지(크리스마스 고지) 등을 사수했다. 정전 이후에도 경계지원 임무와 민사작전을 수행한 뒤 1955년 5월 철수했다.

필리핀은 약 4년 8개월에 걸쳐 5개 대대 7420명의 전투병을 보냈다. 이중 전사자 112명, 부상자 299명, 실종·포로 57명이다. 숭고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필리핀군의 정신은 우리나라의 평화와 자유를 지켜내는 힘이 됐다.

이 같은 배경에서 아라우부대의 재건지원은 필리핀에 진 혈맹의 빚을 갚고, 나아가 양국의 우호를 증진하는 계기가 됐다. 2014년 12월 16일 열린 아라우부대 임무 종결 행사에서 당시 볼테르 가즈민 필리핀 국방부 장관은 “한국 국민이 6·25전쟁 당시 필리핀의 도움을 잊지 않고 아라우부대를 보내줬다”며 “이제 아라우부대는 떠나지만 필리핀 국민 마음에 영원히 남아 양국의 우호증진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라우부대는 임무를 완수하고 2014년 12월 22일 귀국했다. 단 한 건의 사건·사고 없는 완벽한 활동이었다. 부대는 임무 종료 이후에도 당시 부대원들 중심으로 전우회를 결성해 현지 주민과 교류를 이어갔다. 부대가 복구한 학교를 다시 찾아 장학금을 전달하거나 6·25전쟁 필리핀군 참전용사 한국 방문을 추진하기도 했다. 아라우부대는 한국과 필리핀 우호의 상징으로 양국 국민에게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부대 구호 ‘피의 희생 땀으로 보답’
어려움 처한 주민 자존감 지켜주고
부대원 임무 수행 태도 바로 세워

상륙함 도착 즉시 중장비 하역
현지 상황 주둔지 건설 힘들 정도
파병 초기 한 달간 상륙함서 생활

복구지역 중 가장 멀었던 초등학교
초토화된 상태서 4주 만에 첫 완공
빠른 복구에 놀라고 교사들 감격하기도
당시 아라우부대 현장 복구 활동 모습. 부대는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작전을 펼쳐 신속하게 잔해물을 제거하고 시설·건물을 재건했다. 국방일보 DB

아라우부대의 구호는 세 가지였다. ‘인류를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하나 되어 임무완수’ ‘우리의 사랑과 열정이 필리핀에 희망을’ ‘피의 희생을 땀으로 보답한다’가 그것.

6·25전쟁에 참전해 우리를 도운 필리핀군의 희생을 기억하고, 이제는 우리가 어려움에 직면한 필리핀을 돕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단지 인도주의적 지원이 아닌 6·25전쟁에서 헌신한 필리핀에 보답하고자 왔다”는 부대의 소개말은 도움받을 처지에 놓인 현지 주민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동시에 큰 감동을 자아냈다. 또 부대원들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임무 수행 태도를 바르게 하는 자양분이 됐다.

엄영환 예비역 해군중령(당시 중령)은 아라우부대 1진 부단장이었다.앞서 부대가 창설된 직후에는 선발대원들과 함께 파병지 정보와 물자·장비 수집 등 부대 파병을 위한 실무를 담당했다. 부대는 2013년 11월 21일 필리핀의 파병 요청을 받고 창설 과정을 진행해 약 한 달 만에 현지로 떠났는데, 준비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특히 육·해·공군과 해병대가 함께하는 합동부대였기에 각 군의 근무문화 차이를 극복하는 일도 필요했다.

“준비 기간이 부족했던 점은 사실입니다. 그해 12월 9일 창설해 선발대가 18일 출국했으니 매우 짧은 시간에 차질 없도록 준비해야 했어요. 합동부대였던 만큼 각 군의 이질성을 극복하고 부대원들이 원팀으로 뭉쳐 전우애를 형성하도록 힘썼습니다.”

부대원들 역시 위급한 현지 사정을 잘 알았기에 주어진 임무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부대는 빠르게 단결했고 준비는 차질 없이 진행됐다. 파병 준비가 끝나자 부대는 곧장 출국 길에 올라 같은 달 28일 작전지역인 필리핀 타클로반에 도착했다. 현지에 전개해서는 곧장 재건·복구 작전에 나섰다.

아라우부대는 시설복구를 마친 뒤 건물 외벽에 안내 문구를 새겨 양국의 우호·협력이 기억되도록 했다. 당시 엄영환(둘째줄 오른쪽 다섯째) 부단장을 비롯한 한국·필리핀군 장병, 학교 관계자들이 완공을 기념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 제공=엄영환 예비역 해군중령

“상륙함(LST) 두 척이 타클로반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지휘부는 피해복구 대상 지역을 정찰하고 현지 관·군 관계자들과의 협조체계부터 구축했어요. 그 후 일주일여 만에 중장비를 이용한 태풍피해 잔해물 제거, 공공시설물 복구 공사, 오지 주민에 대한 의료 지원, 무료급식 등의 민사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이와 함께 부대는 주둔지 공사도 병행했다. 완공까지는 약 한 달이 걸릴 것이었다. 이 때문에 부대는 타클로반 항구에 정박한 상륙함에서 파병작전 지휘관리, 행정업무, 숙식, 정비, 체력단련 등을 해결했다. 또 상륙함에서는 현지 민관군 대표들과의 협조 회의와 주요 인사 초청행사 같은 군사외교 활동도 진행됐다. 또 임무 수행 역시 첫인상이 중요한데, 주민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처음부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현장 활동에는 필수 근무 인력을 제외한 부대원 모두가 참여했다. 군별, 계급, 보직을 가리지 않았다. 부대원들은 하나가 돼 헌신했다. 주둔지 공사는 민간업체에 맡기면서 부대는 재건·복구 작전에 집중했다.

“이 때문에 파병 초기 한 달 정도를 상륙함에서 생활했습니다. 우리 성인봉함과 비로봉함이 베이스캠프였던 셈이지요. 물론 불편함도 있었지만, 주민들의 상처와 아픔을 생각하면 이마저도 미안했습니다. 부대원들은 내 일처럼 여겨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도 작전을 멈추지 않았어요. 그런 모습은 주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모든 일이 수월하지는 않았다. 초기 작전 대부분은 잔해를 제거하는 공병 임무였기에 수행 과정에서 부상 위험이 있었다. 또 자연재해와 불안한 위생 상태로 전염병 발병 위협도 존재했다. 아울러 임무 수행지역 내 각 도시와 마을이 공평하게 지원받도록 하는 일도 신경 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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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상황도 있었다. 앞서 현지에 막 도착한 때였다. 사전 정찰을 진행해 우리 상륙함의 입항 항로, 수심, 입항 지원선(터그보트) 등을 충분히 파악했는데, 실제 입항 과정에서 위험요소가 발견된 것이다.

“입항 예정인 부두에 상륙함이 들어가기에는 수로 접근 공간이 좁고 터그보트도 작아서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긴급 대책회의를 한 후 일반 상선용 부두에 입항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장비를 하역하기 위해 상륙함 함수문을 여는데 램프 끝단이 부두 윗부분보다 낮아서 물자·장비를 내릴 수 없었습니다. 난감했지요. 다행히 경험 많은 부대원들의 아이디어 덕분에 해수면이 높아진 때 램프와 부두 높이의 각도를 완만하게 하여 하역할 수 있었습니다.”

해외 임무는 어려움 극복의 연속이다. 그와 부대원들은 힘을 모아 여러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냈다. 부대 임무는 크게 기반시설·공공시설 복구, 의료·방역 지원, 친한(親韓) 활동으로 분류됐다. 부대가 최초 복구한 시설은 오퐁초등학교였다. 이 학교는 부대가 맡은 복구 지역 중 가장 먼 곳에 있었다. 학교장은 완공식이 진행되자 눈물을 흘렸다. 도심에서 워낙 멀리 떨어진 탓에 혜택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 학교를 봤을 때 완전히 초토화된 상태였습니다. 약 4주 만에 완공했어요. 빠른 복구능력에 모두 놀랐어요.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걱정하며 안타까워했는데 학교가 재건되자 크게 감격했습니다.”

부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선생님과 학생들을 함정으로 초청해 견학 행사를 열고 기념품도 나눠줬다. 단순한 재건복구가 아닌 마음을 주고받으려는 노력이었다.

“부대의 진심이 전달됐는지 얼마 뒤 선생님들이 코코넛으로 만든 요리를 장만해 찾아 왔습니다. 깜짝 놀랐어요. 그 먼 거리를 온 것이었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부대는 늘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주민들에게 다가갔고, 주민들의 신뢰를 얻었다. 모든 주민을 차별 없이 대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로 지원을 이어간 성과였다. 작전지역 내 3개 도시를 동시에 진행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각 지역 주민들이 공평하게 느끼도록 한 처사였다.

“부대원들 노력이 더 컸습니다. 그만큼 부대의 힘을 분산해야 했으니까요. 그렇다고 복구작업을 늦출 수도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부대원들은 몇 배 더 열심히 임무를 수행했고, 빠르게 정비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부대는 재건복구 작전을 필리핀군 장병과 함께 진행했다. 그들이 직접 참여토록 해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와 희망을 주고자 했다. 중장비와 최신 공구로 무장한 우리 군과 미장·목수 같은 건축공사에 능한 필리핀군은 서로를 보완하며 상승효과를 냈다. 재건복구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양국 군의 우호는 더욱 깊어졌다. 

용사·가족 초청 생활필수품 제공
손자·손녀들에게는 장학금 지급
건물 67개 복구·4만200명 진료
기념공원 조성 기념비·동상 설치

아라우부대원(왼쪽)과 필리핀군 장병이 힘을 모아 건물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아라우부대는 재건복구 활동에 필리핀군이 동참토록 했다. 그들이 직접 참여해 재기의 희망과 의지를 스스로 느끼고, 서로를 보완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자 했다. 국방일보 DB

 아라우부대의 재건·복구와 의료지원 활동은 단지 도움을 주는 행위에 그치지 않았다. 주민들에게 진심 어린 마음으로 다가가 진정한 우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6·25전쟁을 함께 겪은 혈맹으로서 ‘보은’의 파병 활동이었다. 필리핀 주민들이 부끄럽지 않게 도움받도록 했으며, 우리 국민 역시 자부심을 느끼도록 했다. 양국 모두의 자존심을 높이는 시간이었다.


아라우부대는 여러 민사작전을 수행하면서 임무 지역에 거주하는 6·25전쟁 참전용사를 찾는 일에도 신경 썼다. 그들을 만나 감사 인사를 건네며 직접적 도움을 주고자 했다. 부대는 참전용사 지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수소문하기도 했다. 엄영환 예비역 해군중령(당시 중령)을 비롯한 부대원들은 단 한 분이라도 찾아내기를 바랐다.

“어렵게 레이테주(州)에 거주하는 다섯 분의 6·25전쟁 참전용사를 찾았습니다. 안타깝게도 한 분은 저희가 도착하기 얼마 전 돌아가셨더라고요. 부대원들이 나서 정성껏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저희가 실제 만났던 네 분 중 당시 86세의 세군디노 그레솔라 옹이 먼저 기억에 떠오릅니다.”

고령의 그레솔라 옹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대원들이 찾아와 마주하자 소중한 친구를 오랜 세월 지나 다시 만난 듯 크게 반가워했다.

“우리가 댁에 도착하자 거동이 불편함에도 대문까지 나와 환영해줬습니다. 나직한 목소리로 한국에서 겪은 경험을 이야기할 때는 감격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어요.”

부대는 이들 참전용사의 집을 정성스럽게 복구했다. 이후에는 참전용사와 가족을 부대로 초청해 행사를 열었다. 참전용사들에게는 명예의 메달을 수여했다. 가족에게는 생활필수품을 제공하고, 손자·손녀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또 부대 철수 이후에도 참전용사들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엄 예비역 중령은 반기문 당시 유엔사무총장을 만나기도 했다. 2013년 12월 선발대장으로서 먼저 현지에 도착해 임무를 수행하던 때였다. 반 전 총장이 타클로반 공항 인근의 이재민 캠프를 방문한 자리에서 엄 예비역 중령과 일행을 발견하고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한걸음에 달려와 우리를 진심으로 격려해 주셨습니다. 감동이었어요. 이어 폐허가 된 마을을 찾아 주민들에게 ‘희망을 잃지 마세요. 여러분 뒤에 유엔이 있습니다’라는 말을 건넸는데, 한국인으로서 큰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한국인의 방문은 부대원들에게 큰 힘이 됐다. 당시 현지에서 재건·복구 활동을 했던 수많은 타국 군 장병들, 구호단체 요원들, 필리핀 주민들은 우리나라의 높은 위상을 실감했음이 분명하다.

부대는 약 1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해외 임무를 마치고 귀국했다. 그 기간 총 67개의 건물을 복구했다. 매주 하나 이상의 시설을 완공한 것. 또 4만200여 명의 주민을 진료하는 놀라운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작전지역 내 모든 마을·주민이 혜택을 고루 받을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주민들과 인간적 유대감을 쌓고자 했습니다. 부대원들은 진실한 마음을 전하는 자세로 작전에 임했어요.”

부대원들의 헌신적이고 진정성 있는 활동은 현지 주민들의 찬사로 이어졌다. 또 부대가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는 바탕이 됐다.

“특히 한국과 필리핀 간 군사외교 협력·증진 차원에서 크게 기여했다고 자부합니다. 아라우부대를 계기로 철수 이후에도 우리나라와 필리핀의 우정이 더욱 깊어지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부대의 희망은 한국군 파병 기념공원 조성으로 이어졌다. 현지 정부의 도움으로 주둔지 인근 공터를 기념공원으로 조성할 수 있었던 것. 약 1년의 아라우부대 기록을 담은 기념비와 6·25전쟁 참전용사 동상을 설치했고, 한국·필리핀군의 공동 복구작업을 형상화한 동상도 세웠다. 기념공원은 양국의 우정을 되새기고 아라우부대를 오래 기억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시설 복구·기술교육·장비 제공 등 헌신
임무 종료식 때 필리핀 정부서 유공훈장

2019년 파병 5주년 현지 행사 참석
직접 복구한 초등학교에 장학금 전달
6·25전쟁 참전용사 한국 방문도 성사

2014년 12월 23일 육군특수전사령부에서 열린 아라우부대 해단식에서 부대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국방일보 DB

아라우부대 임무 종료식은 2014년 12월 16일 현지 한국군 파병 기념공원에서 열렸다. 행사에서는 파병 기념공원 제막식과 물자·장비 공여식이 병행됐다. 또 필리핀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현지 정부 주요 직위자와 양국 군 장병들이 참석했다. 필리핀 정부는 아라우부대에 민사작전 유공훈장을 수여하며, 부대원들의 헌신적인 재해복구 활동에 감사를 전했다.

부대는 같은 달 22일 귀국과 함께 해단식으로 모든 임무를 종료했다. 약 1년의 활동 기간 필리핀 레이테주(州) 일대 67개소의 시설을 복구하고, 4만2000여 명의 주민을 진료했다. 또 ‘아라우 중장비 직업학교’ ‘아라우 농업지도자 양성학교’ ‘아라우 한국어교실’과 같이 기술교육 체계를 제공해 주민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이뿐만 아니다. 부대가 현지에서 사용한 중장비와 발전기 등 62억 원 규모의 물자 8000점을 필리핀군과 지역 정부에 기증했다.

아라우부대는 철수·해단 이후에도 필리핀 지원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당시 부대원으로 구성된 아라우전우회가 그 중심이다. 지난 2019년 3월에는 한국·필리핀 수교 70주년과 아라우부대 파병 5주년을 맞아 필리핀 레이테 현지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전우회원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또 당시 부대원들이 복구한 초등학교를 다시 찾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아라우부대 철수를 앞둔 2014년 12월 16일 필리핀 타클로반 한국군 파병 기념공원에서 볼테어 가즈민(가운데) 당시 필리핀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양국 군 및 지역 정부 관계자들이 제막식을 하고 있다. 행사는 부대 임무 종료식의 하나로 진행됐다. 국방일보 DB

같은 해 7월에는 유엔군 참전의 날을 기념해 6·25전쟁 참전용사인 세군디노 그레솔라 옹의 한국 방문을 추진했다. 그레솔라 옹의 한국 방문은 여러 언론에 보도되며 감동을 선사했다. 엄영환 예비역 해군중령은 아라우전우회 회원으로서 그 일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레솔라 옹이 국가보훈처 주관 6·25전쟁 참전용사 초청행사 때 가족과 함께 우리나라를 방문했습니다. 아라우부대 철수 5년쯤 지난 뒤였어요.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아라우전우회 회원들과 함께 재회했을 때 정말이지 감격스러웠습니다.”

아라우부대는 재건복구 활동 당시 ‘참전용사 지원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그레솔라 옹을 비롯한 6·25전쟁 필리핀 참전용사들의 주택 복구, 진료 지원 사업 등을 전개했다. 부대원들은 그 인연으로 이후에도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또 ‘죽기 전에 꼭 한번 한국에 가보고 싶다’는 그레솔라 옹의 희망에 따라 아라우부대장을 지낸 이철원 당시 외교부 국제협력관과 국제안보교류협회 김봉환 사무총장이 국가보훈처에 그레솔라 옹의 초청을 요청하면서 방문이 성사됐다. 그레솔라 옹은 발전된 한국의 모습에 감동했고, 전사한 전우들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을 쓰다듬으며 붉어진 눈가를 어루만졌다.

아라우부대원들이 흘린 땀방울의 흔적은 타클로반 한국군 파병 기념공원에 남아 주민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또 부대원들과 주민·필리핀군 간 우호의 꽃은 아라우전우회로 피어나고 있다.

“아라우부대 파병 성과는 이철원 부대장의 풍부한 파병 경험에서 나온 탁월한 지휘능력도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협조반장의 유창한 외국어 실력, 공병대장의 공사 지휘 역량, 병사들과 현장에서 동고동락한 경비복구대장의 헌신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지휘관부터 병사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전 부대원의 단결된 노력이 만든 것입니다.”

아라우부대 민사작전은 어려움에 직면한 주민들을 돕는 일에서 나아가 양국의 우호를 더욱 높이는 역할을 했다. 당시 타클로반 항에 정박 중인 해군 상륙함. 사진 제공=엄영환 예비역 해군중령

부대의 성공적인 파병 활동은 국격 향상과 양국 우호 증진에도 힘을 보탰다. 실제 부대 파병 이후 경공격기(TA-50) 12대, 상륙돌격장갑차(KAAV) 8대, 초계함(FFX-1급) 2척이 수출됐다.

이 예비역 중령은 현재 해군본부 전력분석시험평가단에서 전쟁연습지원관으로 근무하며, 작전부대 임무 수행능력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정치학 박사로서 상담학과 리더십을 연구하며 관련 강의도 추진하고 있다. 더불어 아라우전우회 일원으로 필리핀을 돕는 일에도 참여 중이다.

“아라우부대에서 얻은 성취와 보람은 지난 35년여 군 생활 동안 쌓은 명예와 자부심에 버금갈 만큼 제게 중요한 의미를 줬습니다. 필리핀 주민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심었다는 보람과 긍지였습니다. 파병 활동을 계기로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필리핀 주민을 돕는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 국방일보 엄영환 예비역중령(아우라 1진 부단장), 서현우 기자 < lgiant61@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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