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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드라이브 뚜벅이

고창 서해랑길 43코스

by 구석구석 2023.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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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가을은 가을인데 수상한 가을이다. 하늘이 분명 높아졌는데 한낮의 햇살은 여전히 맵다. 여름 끝자락이라고 하기엔 추석이 지척이고, 가을 들머리라고 하기엔 산야가 아직 푸르다. 9월 7, 8일의 전북 고창도 그러했다.

초록으로 반짝이는 선운사 동백 숲에서 막 봉우리 터뜨린 꽃무릇 한 송이를 만났다. 붉디붉은 가을꽃을 들여다보다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 계절에 들어서고 있음을 새삼 알았다. 고창에 내려가 긴 길을 걸었다. 길모퉁이마다 밴 이야기가 절절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고창 안현 마을. 멀리 줄포만 갯벌과 부안 변산이 내다보인다.

고창은 서해와 맞닿은 고장이다. 하여 서해안 종주 트레일 서해랑길이 지난다. 전남 해남에서 시작한 서해랑길이 인천 강화도까지 장장 1800㎞가 이어지는데, 전체 109개 코스 중에서 3개 코스(41~43코스)가 고창을 거친다.


구시포 해변에서 고창 갯벌을 따라 북쪽으로 나아가다가 방향을 틀어 선운산 자락에 들었다가 나온 뒤 다시 갯벌을 옆구리에 끼고 북진해 부안 땅으로 접어든다. 고창 구간의 길이는 49.9㎞. 선운산을 넘어야 해서 사흘은 잡는 게 적당하다.

고창 갯벌의 황금빛 석양.
고창의 서해랑 쉼터.

서해랑길이 지나는 고창 갯벌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자연유산이다.
고창 갯벌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다. 2021년에는 부안 땅과 마주 보는 줄포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지정됐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고창 갯벌의 면적은 55.31㎢. 서해랑길 구간으로 보면 고창갯벌센터가 있는 만돌 해변에서 시작해 부안 땅 앞까지다. 고창갯벌센터 앞에 서해랑 쉼터가 있다.

해거름 갯벌로 나갔다. 물이 들어오는 시간이었지만, 모래 갯벌이 워낙 넓어 한없이 거닐 수 있었다. 일행을 안내한 ‘주민공정여행사 팜팜’의 김수남(56) 대표가 해지는 대죽도 너머를 가리켰다.
“저기 대죽도 넘어 희미하게 보이는 실루엣이 위도입니다. 갯벌 건너편 벽처럼 서 있는 산이 변산이고요. 다 부안 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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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보면 행정구역이 무의미해진다. 편 가르고 살았던 날도 지나고 보면 부질없는 일이었다. 눈이 부시게 푸르렀던 가을 하늘이 금세 새빨개졌다.

선운산(334.7m)은 낮은 산이지만, 이름난 산이다. 선운산이 품은 선운사 덕분이다. 봄에는 동백꽃으로, 가을에는 꽃무릇과 단풍으로 선운사는 붉은 물이 든다.
선운사는 시로도 유명한 절집이다. ‘선운사 고랑으로/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읍디다(‘선운사 동구’ 부분)는 선운사 건너편 질마재 마을에서 태어난 미당 서정주(1915~2000)의 것이고, ‘꽃이/피는 건 힘들어도/지는 건 잠깐이더군(‘선운사에서’ 부분)이라고 노래한 시인은 최영미다.

선운사 진흥굴.

미당은 선운사를 자주 들렀었다. 미당이 선운사에 들르면 늘 묵던 숙소가 남아있다. 옛날에 ‘동백장’으로 불렸던 동백호텔이다. 미당은 동백장에서도 201호에서만 묵었다. 생전의 미당이 “소쩍새 소리 잘 들리는 방을 달라”고 해서 내준 방이란다. 오랜만에 들른 동백호텔은 아쉽게도 문이 잠겨 있었다.

선운사와 도솔암을 잇는 숲길에서 막 피어난 꽃무릇 한 송이를 발견했다. 아직 철이 이른데, 용케도 활짝 꽃망울을 터뜨렸다. 선운사 경내가 꽃무릇으로 붉게 물드는 시기는 9월 하순이다. 꽃무릇이 지고 나면 선운사 주변은 다시 단풍으로 붉어진다.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다
선운사에서 나와 질마재를 넘었다. 질마재는 소요산(445m) 자락에 걸친 고개 이름이다. 질마재 아래가 질마재 마을이다.
“소요산 자락에서 큰 인물이 여럿 나왔지요. 신흥종교 보천교를 만들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차경석, ‘동아일보’를 창간한 인촌 김성수, 미당 서정주가 다 근방에서 태어났지요. 녹두장군 전봉준의 아버지가 소요산을 한입에 삼키는 태몽을 꾸고 전봉준을 낳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요.”

서해랑길 고창 구간을 함께 걸은 ㈔우리땅걷기 신정일 이사장과 주민공정여행사 팜팜의 김수남 대표(왼쪽).

이틀 내내 함께 걸었던 ㈔우리땅걷기 신정일(69) 이사장의 설명이다. 『신택리지』를 쓴 신정일 이사장은 “산 좋고 물 좋고 땅 좋은 고창은 예부터 사람 살기에 좋은 고장이었다”고 말했다.

미당시문학관에 들어서는 도보여행자들.

질마재 마을에 내려왔다. 미당이 살았던 생가가 말끔하게 복원돼 있다. 미당이 환갑에 펴낸 시집 『질마재 신화』는 사실 마을에 내려오는 이야기를 미당 특유의 언어로 되살린 것이었다.

『질마재 신화』의 등장인물 대부분이 실제 마을 주민이다. 시집에 나오는 외가 터는 물론이고 서당·빨래터·우물도 남아있다.

미당시문학관에 들어섰다. 시성(詩聖)으로까지 추앙받던 시인이 친일파로 낙인 찍힌 뒤 문학관을 찾는 발길이 크게 줄었다. 전망대 옥상에 올라 건너편 안현 마을을 내다봤다. 국화꽃 벽화 마을로 유명한 곳이다. 안현 마을 뒷산에 미당이 누워 있다. 눈이 부시게 푸른 가을날이어서 미당이 누운 산 너머 줄포 갯벌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인의 노래처럼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다가 내려왔다.

/ 중앙일보 2023. 8 고창=글·사진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ㅁ 고창서해랑길 43코스 / 인걸은 가고 길만 호젓하게 남았네, 고창 서해랑길 43코스

 

 

[코리아둘레길을 걷다] 인걸은 가고 길만 호젓하게 남았네, 고창 서해랑길 43코스 - 여행스케치

[여행스케치=고창] 제주도에 올레길이 있다면 육지에는 코리아둘레길이 있다. 코리아둘레길은 동해, 서해, 남해를 한 바퀴 돈 후 DMZ 접경지역까지 관통한다. 한반도를 한 바퀴 도는 4,500km 장거리

www.ktsketch.co.kr

[여행스케치=고창 김수남여행작가] 제주도에 올레길이 있다면 육지에는 코리아둘레길이 있다. 코리아둘레길은 동해, 서해, 남해를 한 바퀴 돈 후 DMZ 접경지역까지 관통한다. 한반도를 한 바퀴 도는 4,500km 장거리 노선으로 세계적인 글로벌 트레일로의 성장을 꿈꾸고 있다. 서해안의 고창군에도 코리아둘레길 서해안 노선인 서해랑길이 지나고 있다.

연기제에서 바라본 연기동. 멀리 보이는 마을이 차경석이 태어난 마을이다. 사진 / 김수남 여행작가

고창은 세계유산의 도시다. 전 지역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등재된 것을 비롯하여 모두 7가지 세계적 보물을 지녔다. 그 세계유산들을 코리아둘레길 위에서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고창의 서해랑길은 ‘헤리티지로드(문화유산의 길)’라 부를 만하다.

인물열전, 서해랑길 43코스
고창군의 3개 서해랑길 코스는 각기 색깔이 뚜렷하다.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고창갯벌과 칠산바다를 벗하며 걷는 41코스는 바닷길이고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선운산을 넘어가는 42코스는 산길이다.

43코스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고창의 인물들을 만나보는, 문화가 있는 길이다. 그 길에서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판소리의 큰 어른이 나오기도 했다.

43코스 시작점은 선운산 주차장이다. 주차장을 벗어나면 가장 먼저 만나는 마을이 연기동인데 시골마을 이름치곤 범상치 않음이 풍긴다.

구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이곳에 들어와 수행하면서 세운 절이 연기사다.

연기사는 대가람이었는데 터만 남았다가 그마저 연기제가 들어서면서 많은 부분이 수몰되고 만다. 유일하게 남은 게 영광 불갑사로 자리를 옮긴 사천왕상인데 크기가 4m가 넘을 정도로 대형이다.

연기동에선 차경석(1880~1936)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독립운동가이자 종교지도자인 차경석은 민족종교인 보천교를 만들었다. 보천교는 오늘날 증산교와 뿌리가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차경석은 스승 강증산이 세상을 떠나면서 대를 이은 인물이다.

보천교의 출발을 1921년으로 보는데 차경석은 ‘시국’이라는 국호를 선포하며 새로운 나라를 열었다. 사람들은 그를 ‘천자(天子)’라 불렀고 당시 경성일보에 ‘700만 신도’라는 언급이 있었을 정도로 교세가 커져 나갔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차경석은 상해임시정부에 막대한 독립자금을 댔고 만주의 김좌진과 같은 독립투사들에게도 독립운동 자금을 건넸다. 출판사와 언론사를 운영하며 국권회복운동과 민족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소요사 종각에서 내려다본 풍경. 사진 / 김수남 여행작가

그는 새로운 나라의 궁궐로 정읍에 거대한 규모의 십일전을 지었다. 나라 안에서 규모가 가장 컸다는 건물이다. 차경석 사후 십일전의 본전은 해체되어 조계사 대웅전으로 쓰였고, 일부 건물은 내장사 대웅전으로, 청기와는 조선총독부 관저 건물의 기와로 쓰여 오늘날 청와대의 유래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마을의 정자나무 옆을 지나는 여행객들. 사진 / 김수남 여행작가

풍운아 차경석의 이야기를 뒤로 하고 연기제를 따라 임도로 들어서면 호젓한 산길이 마음을 평화롭게 해준다. 봄에는 동백꽃이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적당하게 어우러지는 길이다. 서해랑길 코스에서 살짝 1km 정도 벗어나면 소요산 소요사가 나온다. 작은 암자이지만 일대 조망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이 역시 연기조사가 수행을 했다는 곳이다.

시대를 풍미한 시인과 판소리 명창을 만나다

서해랑길 코스는 소요사 입구에서 한 줄로 들어가야 하는 좁은 산길로 이어진다. 질마재 안내판이 서 있는 그곳은 짧지만 43코스에선 가장 깊숙한 산길이다. 미당 서정주(1915~2000)의 시집 <질마재 신화>로 유명해진 질마재는 소나 말의 안장 역할을 하는 ‘길마’의 사투리에서 유래되었다. 옛사람들은 이 고개를 넘어 지금의 부안면 소재지인 알뫼장터를 오갔다.

연기제 임도

서정주는 한국적 정서와 토속적 시어를 바탕으로 <국화 옆에서>, <귀촉도>, <자화상> 등 1,0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제는 물론 해방 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질마재 안내판에서 발걸음을 멈춘 걷기 여행객들. 사진 / 김수남 여행작가

질마재를 내려오면 서정주가 태어난 진마마을인데 생가보다는 미당시문학관이 더 볼만하다. 옛 폐교를 활용한 미당시문학관에 들어서면 그의 뛰어난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위층 구석진 곳에는 친일 작품과 군사정권의 입맛에 맞춘 작품들까지 감춤 없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옥상에 올라서면 일대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곳에 서서 ‘자신을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라는 그가 남긴 먹먹한 노래를 되새겨 본다.

서정주 시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미당시문학관. 사진 / 김수남 여행작가

43코스는 바닷가 양식장들과 갯벌을 따라 곰소만까지 깊숙하게 들어간다. 서해랑길 리본이 매달린 둑길에는 관리되지 않는 산딸기와 오디가 종종 자라고 있다. 야생 열매는 여행자의 피로를 풀어주기도 한다. 그 길 끝에는 국창이라 불리는 판소리 명창 김소희 생가가 있다.

김소희(1917~1995)는 안향련, 한농선, 박송희, 오정숙, 성창순은 물론 오늘날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안숙선, 신영희, 박양덕의 스승이다. 그의 문하생들만 봐도 판소리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다.

서해랑길 43코스에서 만난 곰소만 갯벌. 사진 / 김수남 여행작가

갈채 받은 생애에 비해 생가는 소박하기만 하다. 판소리 한 대목이라도 흘러나왔으면, 그의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 작은 기념관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초가집 툇마루에 앉아 그녀가 무대 노래로 완성 시킨 <상주아리랑>을 검색해 들어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삼켜 본다.

김소희 생가에서 판소리 체험을 즐기는 걷기 여행객들. 사진 / 김수남 여행작가

다양한 테마가 있는 걷기 프로그램

걷기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걸으며 자연과 눈을 맞추고 길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지역과 소통하고 있다. 몸과 마음, 그리고 지역이 함께 건강해지는 여행이다.

고창 서해랑길 걷기 프로그램에 참석한 여행자들. 사진 / 김수남 여행작가

낯선 길을 혼자 걷기에 부담스러운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땐 지역의 걷기 프로그램에 동참하는 게 요령이다. 고창에서는 매월 둘째, 넷째 주마다 주민여행사 주도로 걷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둘째 주 토요일에는 사회 각계 명사들을 초청하여 함께 걷고, 넷째 주 토요일에는 걷기 후 체험 프로그램을 즐기는 재미가 더해진다. 걷기 후 즐긴 도예 체험, 사군자 합죽선 만들기, 김소희 생가에서의 판소리체험 등 체험 프로그램들은 참가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걷기를 마치고 코리아둘레길 쉼터에서 체험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다. 사진 / 김수남 여행작가

혼자 걷든 여럿이 걷든 걷기에서 가장 불편한 부분은 교통편이다. 고창 프로그램의 경우, 고창터미널에서 전용버스로 출발지까지 태워준다. 그리고 걷기가 끝나면 다시 고창터미널로 태워준다. 걷는 시간도 오후 1시부터라 서울을 포함한 외지에서 아침에 출발해도 충분히 합류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어느 단골 참가자의 배낭. 사진 / 김수남 여행작가

여행쪽지
•미당시문학관 - 063-560-8058
•주민공정여행사 팜팜에서 운영하는 고창 서해랑길 걷기 프로그램은 참가비가 10,000원이다. 교통비와 체험비, 여행자보험, 기념품 포함. 네이버 카페 ‘고창 서해랑길 걷기’에서 접수.
•코리아둘레길 공식 사이트 두루누비에서 더 많은 여행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여행스케치 2024.6.22 김수남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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