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방곡곡/인천·섬

강화 교동도여행

by 구석구석 2022. 12. 9.
728x90

 

인천 강화군 교동도의 간척은 조선시대부터 시작돼 일제강점기와 현대에도 지속됐다. 평야가 넓고, 경지정리가 잘 돼있으며 수리시설이 완비된 덕에 쌀이 많이 생산됐다. 이곳의 쌀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며, 자급자족을 넘어 다른 지방으로 나간다. 섬 면적의 반 이상이 논으로 이뤄진 교동도에서는 황금빛 들판이 바다와 수평을 이루는 풍요로운 가을을 만난다. 

농사를 지으려면 물이 필요하다. 교동도 평야에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서 만들어진 인공저수지는 한강의 물을 끌어 부족한 저수지의 물을 채웠다. 그래서 교동도에는 제법 큰 저수지가 두 개나 보인다. 고구저수지와 난정저수지다. 교동도에서 먼저 만나는 고구리의 저수지에는 연꽃이 아직 여름을 품고 난정리의 저수지는 가을빛 노란 물결로 일렁인다.

난정저수지의 십만 송이 해바라기 정원 출처 : 한국아파트신문(http://www.hapt.co.kr)

교동 대룡시장 맞은편으로 곧게 뻗은 황금빛 논을 달리다 보면 난정리가 나온다. 난정저수지는 철책과 둑길 하나 사이로 바다다. 저수지는 낚시꾼들이 손맛만 보고 잡은 물고기를 다시 놓아주는 레저낚시터로 알려져 있다. 

주변에는 유채꽃과 청보리가 피어 민통선의 봄을 알리고 가을이면 태양처럼 뜨거운 영혼의 꽃 해바라기의 노란 정원이 가을의 길목을 서성이는 사람들에게 환한 미소를 준다. 

뜨거운 햇빛이 곡식을 익게 만드는 계절, 해바라기는 그렇게 해를 바라보며 익어간다. 예전 시골에서는 소 외양간이나 혹은 담장 옆에서 탐스럽게 크던 노란 해바라기꽃 몇 포기로 쓰러져 가던 집도 환하게 만들었다. 

가을 하늘은 쪽빛이다. 흰 구름이 몽글거리며 물감처럼 퍼져나간다. 바람은 한낮의 더위를 감추고 초가을 길을 걷는 걸음은 가볍고 기분이 좋다. 한여름 태양이 꽃을 키우고 태풍이 오는 가을이면 태풍의 눈가를 바람개비처럼 도는 구름처럼 노란 꽃잎은 까만 씨앗을 품었다. 

이탈리아의 수학자 피보나치는 해바라기 씨앗의 배열에서 자연을 닮은 수 ‘피보나치 수열’을 정립했다. 우리가 말하는 보기 좋은 황금비율이다. 가장 좁은 공간에서 최대한 많은 양의 씨를 품으려는 해바라기의 전략은 원의 중심으로부터 나선형으로 휘어져 나가는 패턴이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으로 피보나치의 수열을 따른다. 

난정저수지

난정저수지 주변은 9월이면 노란 물결로 해바라기 정원을 이룬다. 정원은 3만3000m² 부지에 조성돼 있다. 난정리 100여 명의 주민이 마을공동체를 만들어 농사를 짓지 못하는 공유수면에 약 10만 그루나 되는 해바라기 밭을 조성한 것이다. 

난정저수지와 수정산과 어우러진 해바라기들이 장관을 이룬다. 푸른 하늘과 저수지, 바다의 푸른 물결 속에 잔잔하게 일렁이는 노란 해바라기의 뜨거운 영혼은 숨죽였던 마음을 다독이며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

728x90

화개산(259m)은 교동도의 최고봉이다. 정상에서는 강처럼 흐르는 강화만의 풍경과 황해도 땅을 쉽게 바라볼 수 있다.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교동도의 넓은 논과 햇빛으로 반짝이는 강처럼 흐르는 강화만을 사이로 우측으로 개성의 송악산과 정면으로 황해도 연백의 넓은 뜰이 지척이다. 좌측으로는 황해도 예성강이 강화만과 만나는 풍경이 바로 눈앞이다. 

철망없는 휴전선이 지나가는 강화만에는 강화 교동의 가을과 황해도 함백의 뜰이 있다. 출처 : 한국아파트신문(http://www.hapt.co.kr)

남쪽으로는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 상주산이 갯벌과 뒤엉켜 햇빛으로 반짝이니 사방으로 탁 트인 풍광이 일품이다. 고려 시대 문인 ‘이색’이 전국 8대 명산으로 꼽았을 정도다. 이런 풍경들을 볼 수 있었음이 아니었을까. 

좁게 띠 형태로 이어진 강화만은 물이 빠지면 헤엄쳐 북쪽으로 건널 정도니 철조망 없는 휴전선이다. 그래서 실향민들이 화개산 산정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망향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화개산은 강화 교동도 다을새길 구간으로 교동향교, 화개사, 연산군유배지 등 역사적·문화적 유산들이 남아있다. 화개산 정상 산책로에는 청동기시대 후기로 추정되는 암각화가 두 군데 있다. 바위에 지그재그형 선각과 12개의 바위구멍으로 구성된 작은 암각 등 그 시절의 신앙과 생활 등 주술적 표현들이 남아있다. 

 

교동 화개산 연산군유배지 화개정원

교동면 고구리 산 233 / 관광힐링명소 화개정원 032-932-2336 '화개정원'은 강화군이 교동도 화개산 213,251㎡에 사업비 382억 원을 투입해 추진한 최대 역점사업으로, 수려한 자연환경과 빼어난 조망을

choogal.tistory.com

이제는 화개산 정상까지 누구나 손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모노레일이 완공돼 시범 운행 중이다. 전망대와 강화 유리로 만든 스카이워크는 막바지 공사로 올 11월 중 개장할 예정이다. 스카이워크에서 발밑으로 흐르는 강화만과 황해도 연백의 넓은 뜰을 가슴으로 만난다.

대룡시장은 교동도를 많은 사람에게 알린 곳이다. 한국전쟁 때 피란 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황해도 주민들이 터를 잡은 곳으로 고향을 지척에 둔 실향민들이 고향의 연백장을 본떠 만든 골목시장이다.

세월이 흘렀지만 수십 년 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교동이발관, 동산약방, 대성양복점, 교동스튜디오 등은 60~70년대 우리들의 동네·골목길을 기억하게 한다. 

파머스마켓

대룡시장의 벽면은 그 시절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벽화로 재현했다.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가족계획 포스터는 지나가 버린 짧은 시간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만든다. 

찹쌀꽈배기, 강아지떡, 뻥튀기 등 옛날의 간식거리를 맛보며 여기저기 눈요기할 게 많다. 10여 분 남짓이면 돌아볼 작은 시장이지만 다방에서 쌍화차 한잔이면 마치 오래된 공간 속을 여행하는 듯 시간은 그만 멈춰 버린다. 



대룡시장은 마치 영화의 세트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주민들이 생활하고 물건을 거래하는 시장이어서 더 정감이 있다.

이곳의 대표 별미는 젓국갈비다. 소금 대신 새우젓으로 간을 해 돼지고기를 넣고 끓여낸다. 대륭시장내의 삼호정, 초원식당, 풍년식당들이 젓국갈비로 알려져 있다. 

시장 내 대풍식당은 황해도식 냉면과 돼지국밥으로 유명하다. 냉면 육수를 고기가 아닌 채소와 과일로 낸다. 대룡시장 건너편 파머스마켓에는 공방이나 강화도 로컬 식품들과 상품들이 무인판매로 운영되며 주차장이 무료다.

 

강화 교동도 대룡리 대룡시장

옛날 70년대 재래시장모습의 대룡시장 대룡시장은 한국전쟁때 연백에서 교동으로 잠시 피난 온 주민들이 한강 하구가 분단선이되어 고향에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

choogal.tistory.com

교동도는 육지와 격리된 섬인 까닭에 고려 중엽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유배지로 이용됐다. 지리적 위치상 외세의 침범이 빈번했던 관계로 섬에는 많은 고적이 남아있다. 

봉분 형태의 조선시대 찜질방격인 한증막 터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져 1970년대까지 이용됐다. 교동읍성은 1629년(인조 7년)에 경기수영을 설치하면서 같이 만든 둘레 870m 성곽으로 지금은 남문(홍예문)만 남아있다. 소달구지를 타고 유배 온 연산군이 최후를 맞은 유배지는 모노레일을 타는 화개산 정원에 있다.

교동향교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인 교동향교와 고려때 이색이 묵었다는 화개사와 같은 역사 유적지도 있다.

교동향교는 고려 인종(仁宗) 5년(1127년)에 창건된 것으로 한국에서는 가장 오래된 향교이다. 고려 충렬왕 12년(1286)에 안향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자상을 들여와 모셨다고 전하며, 이후 지방의 각 군현에 성현의 위패를 모시는 문묘를 설치했다.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다.

근대에는 1912년 개교한 교동초등학교와 1933년에 지어진 교동교회가 있고 색색의 양철지붕은 흘러간 세월을 그대로 담아 시간의 초침 위에 흔적으로 새겨진다.


출처 : 한국아파트신문 2022.9 이성영기자

 

교동면 상용리 518번지에는 송암 박두성 선생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생가가 있다. 강화군은 ‘송암 박두성 생가복원사업’으로 사업비 13억8천만 원을 투입해 부지면적 2,244㎡에 생가(86.4㎡)를 복원하고, 생가와 녹지공간이 조화를 이룬 기념공원을 조성했다.

박두성 선생은 일제치하에서 일본식 점자로만 교육을 해야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1923년 제자들과 비밀리에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하고 한글점자 연구에 매진해, 1926년 우리나라 최초의 6점식 한글점자인 ‘훈맹정음’을 발표했다.

박두성 선생은 “모든 장애에서 이들을 회복시키는 길은 오직 글을 가르쳐 정서를 순화시키는 길밖에 없다”며 엄혹한 시기에 한글점자 보급에 힘써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으로 불리고 있다.

출처 : 투어코리아 - No.1 여행·축제 뉴스(http://www.tournews21.com)



 

교동도 창후리 교동읍성 화개사 교동향교 대룡시장

왕성 바다관문으로 ‘평양보다 더 짜임새 있는 곳’ 교동도 고려 때부터 왕족 전용 유배지…왜구 침탈 극심 강화도 창후리에서 교동도의 월선포 간․직선 항로는 느린 배로 건너도 20분 거리다.

choogal.tistory.com

 

 

교동도 상용리 송암박두성

한글 점자 '훈맹정음(訓盲正音)'을 창시한 송암 박두성(1888~1963) 선생의 생가가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 복원됐다. 인천 강화군은 22일 교동면 상용리 2천244㎡ 부지에 13억8천만원을 투입한 송암 박

choogal.tistory.com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