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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북도

보은 적암리 구병산 풍혈 삼년산성

by 구석구석 202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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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산은 산악탐방 코스로 연계된 관광자원으로 10키로미터정도 거리에 아름다운 자연과 시설물이 조화를 이룬 서당골관광농원과 서원, 만수계곡, 삼가호수등이 있고 계곡위주로 자리잡고 있는 99칸의 선병국 고가를 비롯하여 역사의 산교육장인 삼년산성, 우리나라 8경의 하나인 속리산등이 자리잡고 있다. 

2022.4 구병산

보은과 상주를 잇는 25번 국도를 오갈 때 인공위성지구국이 있는 적암리(보은군 미로면)를 지나면서 동쪽으로 병풍처럼 솟아있는 기암괴봉의 산을 올려다보게 된다. 아름답고 웅장한 산이어서 산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먼저 그 산의 이름을 궁금해 하고 다음에는 그 산에 올라보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된다. 

기암괴봉의 그 아름다운 산이 구병산이다. 구병산(九屛山)이란 아홉 폭 병풍의 산이란 뜻이다. 흔히 병풍에는 경치 좋은 그림이 그려져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경관을 병풍의 그림에 빗대어 찬미하는 경우가 많다. 봉우리가 아홉 개여서 옛날에는 구봉산이라 하기도 했다.

 구병산은 그야말로 기암괴봉으로 이루어진 바위등성이 1.5km가 아름답고 아기자기하며 아찔하고 시원하고 멋이 있다. 이러한 꾸밈말로도 그 멋과 아름다움을 모두 나타낼 수 없다. 잇달아 펼쳐지는 바위봉우리들이 소나무들과 어울려 그 모두가 그림이며 선경 같다. 가을에 기암괴봉들이 단풍과 어울리면 구병산은 더욱 아름답다.

구병산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신비스러운 풍혈도 있고, 쌀이 나왔다는 쌀난바위도 있다. 정수암 옹달샘의 전설은 참으로 재미있다. 적암리 휴게소에 있는 풍혈 안내판 설명에 의하면, 이 풍혈이 고스락에서 구병마을쪽으로 30m 아래에 있으며, 여름에는 찬 바람,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는 것이다. 지름 1m 풍혈이 1개, 지름 30cm 풍혈이 3개이며, 진안의 대두산 풍혈, 울릉도 도동 풍혈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풍혈이라 한다. 

구병산의 조망 / 임종오

스무골에서 문바위 일대는 비경이다. 이곳은 바위협곡을 이루고 있고 낭떠러지여서 쇠사다리가 걸쳐져있다. 쌀난바위는 문바위 아래에 있는 것으로 사람이 들어설 수 있는 크기의 얕은 바위굴 안에 큰 목침이 드나들 만큼 꽤 깊은 작은 구멍이 있다. 이 구멍에서 나오는 쌀로 밥을 지어먹으며 도인들이 수도했다 한다. 쌀이 나왔다는 굴 위쪽에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더 큰 굴이 있고, 이들 굴 앞에는 사람들이 머문 것 같은 몇 간의 흙담이 있다.

절골의 정수암 옹달샘에는 잘 다듬은 꽤 넓은 돌판(사방 50cm)에 재미있는 전설이 적혀있다.

여기 옹달샘의 물을 마신 정수암 스님들은 정욕을 주체할 수 없어 여섯 달을 넘기지 못하고 암자를 떠났으며, 이 옹달샘의 물을 한 모금 마시면 수명이 7일씩 늘어난다는 것이다. 물론 허황된 이야기지만 재미있는 내용이다.

구병산은 호서의 소금강인 속리산에서 뻗어나와 보은(충북)과 상주(경북) 경계 근처에 솟아있다. 옛날부터 구병산은 보은현 삼산(三山)의 하나로 불렀다. 속리산의 천황봉을 지아비산(父山), 구병산을 지어미산(婦山), 삼승면의 금적산(金積山)을 아들산(子山)이라 했다. 구병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 끝에 유난히 뾰족하게 솟아 오른 시루봉(421m)도 명물이다. 이 시루봉은 적암 마을 바로 옆 길가에 있다.

구병산 / 임종오

보은 고을은 풍수지리설과 관련해 사증(四甑·네 시루봉)과 팔항(八項·여덟 목)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충북과 경북 경계, 큰길가에 있는 적암리 시루봉도 보은의 네 시루봉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또 산행 들머리 끝자리가 되는 국도변의 적암리 마을은 일명 사기막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중봉 조헌의 문인인 포제 이명백이 의병을 일으켜 사기(士氣)를 크게 높인 데서 유래한 마을 이름이라 한다.

보은 고을은 풍수지리설과 관련해 사증(四甑·네 시루봉)과 팔항(八項·여덟 목)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충북과 경북 경계, 큰길가에 있는 적암리 시루봉도 보은의 네 시루봉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또 산행 들머리 끝자리가 되는 국도변의 적암리 마을은 일명 사기막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중봉 조헌의 문인인 포제 이명백이 의병을 일으켜 사기(士氣)를 크게 높인 데서 유래한 마을 이름이라 한다.
속리산 상학봉에서 천황봉을 거쳐 형제봉 구병산을 잇는 산줄기 43.9km를 충북 알프스라 부른다. 요사이 산줄기를 종주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산행을 시작하여 15분쯤 되어 길은 개울을 떠나 왼편 산속으로 파고들었다. 그저 위로 오르기만 하기를 30분쯤 되어 정수암터에 닿았다. 석축 아래 색색의 바가지가 매달려 있는 옹달샘이 있고, 왼편에는 전설을 소개한 석판이 있다. 

절터에서 갈라져나간 왼편 길로 들어서면 853m봉을 거치지 않고 주능선에 올라서며 20분 정도 시간이 준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오른편 길로 들어섰다. 절터에서부터 비탈은 더욱 가팔라져 밧줄이 매인 곳도 있다. 

절터에서 45분 걸려 주능선에 올라섰다. 여기는 충북알프스 마루금의 한 지점이기도 하고, 북쪽 주봉으로 이어진 약 1.5km의 아름다우나 험한 바위등성이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기암괴봉이 소나무 또는 단풍과 어우러져 있고, 깎아지른 벼랑을 이루고 있어 무척 아름답고 조망도 좋다. 그러나 이 바위등성이를 타기는 쉽지 않다. 주봉까지 853m봉 등 3개의 까다로운 바위봉우리와 바위등성이를 타고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853m봉에는 아예 위험하니 돌아가라는 경고문이 세워져 있다. 일행 대부분은 아래로 도는 쉬운 길을 택했다. 그러나 853m봉의 동쪽 아래를 도는 이 길도 꽤 어렵다. 853m봉처럼 바윗길이 어려워 동쪽 아래로 돌아가는 봉우리가 하나 더 있다.

스무골 하산길은 주봉의 바로 아래 잘록이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고스락에 올라 사진을 찍는 등 잠시 머물렀다. 이 날 조망은 좋지 않았다. 적암휴게소에서 고스락까지 3시간이 걸렸다.

 스무골은 매우 가파르다. 더구나 자갈길이어서 조심해야한다. 너무 가팔라서 길은 ㄹ자로 되어 있다. 이 스무골에서 가장 좋은 명소인 문바위 일대까지 잘록이에서 30분이 걸렸다. 문바위는 대문처럼 바위협곡으로 되어 있고, 오른편 바위는 매우 우람하며 엄청난 벼랑을 이루고 있다.

이 바위가 쌀난바위고, 그 아래에 쌀이 나왔다는 굴과 구멍이 있다. 크고 작은 두 굴 앞에는 황토에 돌을 섞어 쌓은 토담이 서너 칸으로 있다. 도인이 수도한 흔적이 아닌가 싶었다.

스무골 골짜기를 벗어나 왼편으로 산자락을 돌아가면 통신위성지구국 울타리를 돌아 사기막 마을의 개울가에 내려선다. 마을 삼거리 정자에 감식초와 오디술 등을 파는 할머니들이 있었다. 시루봉의 우뚝한 모습을 보다 뒤돌아보면 구병산의 멋있는 기암괴봉들이 올려다 보인다. 하산하는 데 1시간30분이 걸렸다. 그래서 총 산행시간은 4시간30분이 된 셈이다.

/ 글 월간산 김홍주 소산산행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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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은 시작과 끝이 모두 25번 국도(상주-보은)변에 있는 적암리의 휴게소가 된다. 휴게소로 되돌아오는 산길 도중에 갈림길이 두 군데 있으나 두 길 모두 출발점으로 돌아오기 전에 다시 합친다. 


○절골(소골)길 가) 적암휴게소~개울가 삼거리~(오른편)~정수암 약수터(절터)~(오른편)~주능선 853m봉 남쪽 잘록이~853m봉~853m봉 북쪽 삼거리(잘록이)~고스락 삼거리(잘록이)~고스락 <약 3시간 소요>

○절골(소골)길 나)정수암 약수터~(왼편)~853m봉 북쪽 삼거리(잘록이) <절터에서 삼거리까지 약 50분 소요>

○스무골(위성지구국)길 가) 적암휴게소~개울가 삼거리~(왼편)~위성지국~스무골(문바위 안) 삼거리~(오른편)~쌀난바위~고스락 삼거리~고스락 <약 2시간 소요>

○스무골길 나)스무골 삼거리~(왼편 등성이)~고스락. 길이 애매하고 험해 이용자가 거의 없다. <약 2시간 소요>
보통 절골길 가)로 올라 스무골길 가)로 하산하는 것이 좋다. 스무골길 나)는 애매하고 험하다. 절골길 가)로 올라 스무골길 가)로 내려올 경우 약 4시간에서 4시간30분 소요되고, 절골길 나)로 오를 경우 약 4시간10분 정도 걸린다.

 

한겨울 더운 바람 보은 구병산 풍혈 눈길

보은의 구병산(해발 876m) 자락서 발견된 풍혈(風穴 · 더운 바람 나오는 곳)이 겨울 등산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2005년 1월 등산로 정비를 위해 이 산에 올랐던 보은군청 공무원들은 정상에서 30여m 떨어진 곳에서 풍혈 4곳을 발견, 주변에 등산객이 앉아 쉴 수 있게 돌을 쌓고 안내판도 세웠다. 

풍혈을 발견했던 보은군청 김인복(51.문화관광과) 담당은 "직원들과 발목까지 쌓인 눈길을 뚫고 올라가면서 등산로를 정비한 뒤 정상부근서 휴식하는 데 군데군데 눈이 녹아 있는 구멍을 발견해 손을 대 보니 온기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김 담당은 "당시 산 정상 온도가 영하 10도를 밑돌았지만 구멍 입구 온도는 영상 10도나 됐다"며 "이 곳 풍혈은 1년 내내 영상 10~14도의 바람이 나와 여름에는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군이 정비사업을 한 뒤 이 곳 풍혈은 등산객들의 휴식장소로 각광 받고 있다. 

겨울철에는 풍혈 주변에 둘러앉아 꽁꽁 언 손을 녹이거나 간식을 먹고 여름에는 찬바람에 땀을 식히는 등산객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에는 혹한 속 풍혈의 신비스러움을 체험하려는 등산객들이 줄을 이어 주말과 휴일 등에는 300여명이 찾을 정도다. 등산객 하성용(47·대전시 서구)씨는 "한 겨울 온기를 내뿜는 신비스런 풍혈 앞에 앉아있으면 산행의 피로가 말끔히 풀린다"며 "기온이 많이 떨어지면 구멍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도 눈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마을 임희순 이장(67)은 "마을 어르신들의 입을 통해 구병산 정상에 온천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왔고 20여년 전에는 동네 젊은이들이 삽과 괭이를 들고 훈기가 느껴지는 풍혈 주변을 직접 파기도 했다."며 "군에서 이 곳에 간판을 세우고 돌을 쌓아 정비한 뒤 풍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마을에서 멀지 않은 야산 기슭에도 겨울이면 얼음이 얼지 않고 여름에는 냉기가 느껴지는 동굴이 있다."며 "이 곳과 구병산 정상 풍혈이 지질학적으로 서로 관계가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군은 이 지역서 잇달아 발견된 풍혈이 온천의 징후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정확한 지질조사를 위한 용역을 검토하고 있다. 

/ 충북일보2008 손근방기자

 

우리나라 대표적인 석축산성 보은읍 어암리 삼년산성

오래 전 이땅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솥발처럼 버티며 한강 유역을 둘러싸고 수많은 전쟁을 하였다. 백제가 국력을 키워 평양성을 공격할 때가 있었고, 다시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공격하여 백제를 공주로 매몬 적도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소백산맥을 넘어 한강 유역을 장악한 신라가 최종 승자가 되어 한반도를 통일할 수 있었다.  

신라는 어떻게 험준한 소백산맥을 넘어 한강 유역으로 진출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의 하나가 바로 보은에 있는 삼년산성이다. 보은읍에서 법주사로 향하는 길. 도심을 벗어나자 곧바로 길가에 삼년산성을 알리는 푯말이 마중나온 듯 서 있다. 보은군청 앞 주차장에서 보면 건너편 능선에 산성이 또렷이 보인다. 능선에 띠를 쌓은 포곡식이다. 

오래도록 낙동강 유역을 벗어나지 못한 신라가 자비왕 때(서기 470년)에 이르러서야 험준한 소백산맥을 넘어서 성을 쌓았는데, 성쌓기에 3년이 걸렸다고 해서 삼년산성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후 보은군은 삼년산군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신라는 백제를 압박하여 옥천과 영동지역을 세력권에 넣었고, 북족으로는 남한강변으로 진출하여 단양의 적성을 차지하였다. 진흥왕 15년, 백제의 성왕이 옥천을 공격했을 때도 삼년산성에 있던 신라군이 출진하여 백제군에 맞서 싸웠다.

 이 전투에서 신라군은 성왕의 목을 베었고 백제는 그후 국력이 쇠퇴하였으니, 삼년산성이야말로 신라의 삼국통일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 보루였던 셈이다. 뒤에 신라의 왕족 김헌창이 이곳을 근거지로 난을 일으키기도 하였고, 고려 태조 왕건은 이곳에서 후백제의 견훤을 공격하였다가 실패하기도 하였다. 

 성은 납작한 자연석으로 한 켜씩 가로쌓기와 세로쌓기를 바꿔가며 쌓았다. 이러한 방법은 신라의 대표적인 성쌓기 방식으로 단양의 적성이나 온달산성, 상주의 견훤산성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성문터는 동서남북의 네 곳에 있는데, 지형상 동문과 서문이 주출입구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은 서문이 출입구로 이용된다. 계곡부에 있는 서문터에서는 1980년 여름, 보은지방을 휩슨 대홍수 때 문을 끼웠던 석재들이 드러났다. 

성안에 있던 연못터에는 갈대가 무성한 데, 바위에는 명필 김생이 썼다는 '蛾眉池(아미지)'라는 글자가 새겨져있다. 성은 30여분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인데, 성벽을 따라 돌면 속리산 능선과 보은 읍내를 두루 볼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옥천IC-옥천(보은방향)-석호-정방삼거리(좌)-발산- 보은-37번국도이용

보은에서 북쪽으로 4km 떨어진 보은군 보은읍 산성리 2구의 잣미부락 뒷산에 쌓은 노고산성은 그 밑을 보청천 상류가 감돌아 흐르고 있다.

잣미산은 함림산.학림산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마을 사람들은 이 산성을 백제의 성이라 부르며 5km 떨어진 삼년산성에 주둔한 신라군과 싸웠다고 전하고 있다.그러나 서북쪽을 방위한 지세나 성내에서 발견되는 유물로 보아 신라의 축성으로 보아야 하겠다.

청주-보은 사이의 길목을 내려다 보면서 이곳을 막아 지킬 수 있는 중요한 길목을 지키면서 험준한 지세를 이용하여 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차단 분쇄할 수 있는 요충이라 하겠다. 더욱이 성밑을 흐르는 보청천 상류는 보은분지로 흘러가면서 평상시에는 산을 내려가 농사짓다가 적이 이르면 성에 올라가 지키는 편의가 있었을 것이다.

 

임곡리산 14-2 서당골관광농원 542-0981 www.seodanggol.co.kr

교육시설 - 천문대, 자연학습장, 바닷물 돌출공원, 팔각정, 양어장
체육.놀이시설 - 탁구장, 당구장, 수영장, 민속공연장, 야영장, 사철썰매장, 골프연습장, 운동장, 야외음악당, 극기훈련장, 등산로, 산림욕장, 산악싸이클코스 
숙박시설 - 생활관, 교육관, 천문관
편의시설 - 식당, 강당

* 교육관 38실 10,000원/천문관 16개실 10,000원/생활관 15개동 30실 15,000원 (1동 전체 10명 기준 150,000원)/식당 5,500원/농원가든 7,000~25,000원/강당 150,000~20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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