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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경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석굴암

by 구석구석 2022.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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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석굴암 석굴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부속암자이며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토함산에서 흘러내리는 석굴암 감로수는 최고의 인기였다. 티 없이 맑은 '명경지수' 같은 감로수, 멈추지 않고 흐르는 감로수를 두고 '하늘이 상서로 내린다는 이슬'로 표현하기도 했다. 사찰에서의 마시는 감로수는 늘 간장이 서늘하다.

'산이 바다 쪽으로 밀려오는 안개를 들이 마시고 토해내는 모습 같다'던 토함산의 정기를 받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종각 앞에서 석굴암까지는 걸어서 7분 정도. 소나무와 참나무가 우거진 토함산 자락은 연분홍 치마를 둘러 입은 진달래가 봄바람 난 처녀처럼 한들거렸다.

석굴암은 서기 751년 신라 경덕왕 때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하기 시작하여 서기 774년인 신라 혜공왕 때 완공하였으며, 건립 당시의 명칭은 석불사로 칭하였다.

석굴암 주실입구

***가치

석굴암은 신라시대 전성기의 최고 걸작으로 그 조영계획에 있어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이 총체적으로 실현된 유산이며, 불국사는 불교교리가 사찰 건축물을 통해 잘 형상화된 대표적인 사례로 아시아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건축미를 지니고 있다경주 토함산 정상에 못 미친 깊숙한 곳에 동해를 향해 앉아 있는 석굴암은 완벽하고 빼어난 조각과 독창적 건축으로 전세계에 이름이 높다.

석굴암 석실 종단 북벽도

인공으로 석굴을 축조하고 그 내부공간에도 본존불을 중심으로 총 39체의 불상을 조각하였다. 석굴암은 전실, 통로, 주실로 이루어졌다. 방형 공간인 전실에는 팔부중상과 금강역사상이 있고,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있는 좁은 통로를 지나면 궁륭(Dome)천정으로 짜여진 원형공간의 주실이 나온다. 주실의 중앙에는 석가모니대불이 있고,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범천상(梵天像)과 제석천상(帝釋天像), 보현(普賢)·문수(文殊)보살상, 그리고 십대제자상(十大弟子像)이 대칭을 이루도록 조각돼 있다.

석굴암 석실 평면도

석굴암의 석굴은 백색의 화강암재를 사용하여 토함산 중턱에 인공으로 석굴을 축조하고 그 내부 공간에는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벽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39체의 불상을 조각하였으며, 석굴암의 석굴은 장방형의 전실과 원형의 주실이 통로로 연결되어 있는데 360여 개의 판석으로 원형주실의 궁륭천장 등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것이며, 석굴암의 입구쪽에 위치하고 있는 평면방형의 전실에는 좌우로 4구씩 8부신장을 두고 있으며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는 2구씩의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 석주를 세웠고 이곳을 지나면 평면원형의 주실로 본존은 중심에서 약간 뒤로 안치되어 있으며 입구 좌우로부터 천부상 이구, 보살상 이구, 나한상 십구로 주벽을 채우고 본존 정후면에는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있다.

석굴암 전각 / 김유림의 여행편지

조각에 있어서 원숙한 조법과 사실적인 표현에서 완벽에 가까운 석가여래상, 10구의 얼굴과 전신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인왕상의 용맹, 사천왕상의 위엄, 주실내의 보살들의 유연 우아한 모습, 나한상들의 개성있는 표현 등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의 최고의 걸작품이라 할 것이다.

특히, 주실내에 봉안되어 있는 굽타양식의 본존불 석가여래불은 고요하고 결가부좌한 모습, 가늘게 뜬 눈, 온화한 눈썹, 미간에 서려있는 슬기로움, 금방이라도 말할 듯한 입과, 코, 길게 늘어진 귀 등 그 모든 것이 내면에 깊은 숭고한 마음을 간직하도록 조성된 것으로서 세계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미를 대표하고 있다.

이 석굴은 신라시대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며, 그 조영계획에 있어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이 총체적으로 실현된 것이다.

보살입상 : 좌는 제석천으로 도리천의 주인이며 수미산 위의 희견성이 그의 거처로 우는 범천으로 원래 인도의 바라문교에서 매우 숭상하던 신

일찍이 당나라의 현장(A.D602~664)이 17년간 중앙아시아와 인도의 성지를 순례하고 풍물지리지 성격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썼는데, "석가모니가 정각을 이룬 바로 그 자리에 대각사(大覺寺)가 세워져 있고, 거기에 정각을 이룬 모습의 불상이 발을 괴어 오른발 위에 얹고, 왼손은 샅 위에 뉘었으며 오른손을 늘어뜨리고 동쪽을 향해 앉아 있었다. 대좌의 높이는 당척 4척2촌이고 넓이는 1장2척5촌이며 상의 높이는 1장1척5촌, 양 무릎폭이 8척8촌, 어깨폭이 6척2촌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석굴암의 본존불 크기와 이 기록이 일치하고 있는데, 현장이 보았던 대각사의 그 불상은 현존하지 않고 있어 석굴암에 역사적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십일면관음상 좌측의 나한상이며 좌우로 5구씩 10개의 나한상을 배치되어 있으고 본존불이 아미타불이냐 석가여래냐가 확실하게 규명되지 않아 석가여래의 10대제자에는 의문이 있다.

천체를 상징하는 둥근 공간에 이르면 한가운데에 높이 350cm의 당당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지닌 석가모니 대불이 동해를 향해 앉아 있다.

얼굴과 어깨를 드러낸 옷의 주름에 생동감이 있어 불상 전체에 생명감이 넘친다. 깊은 명상에 잠긴 듯 가늘게 뜬 눈과, 엷은 미소를 띤 붉은 입술, 풍만한 얼굴은 근엄하면서도 자비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손모양은 항마촉지인(降摩觸址印)으로 왼손은 선정인(禪定印)을 하고 오른손은 무릎에 걸친 채 검지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다.

석가모니가 큰 깨달음을 얻어 모든 악마의 방해와 유혹을 물리친 승리의 순간, 즉 깨달음을 얻은 모습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성도상(成道像)이라고 한다.

감실은 주실에서의 위치로 보아 지상계와 천상계의 중간을 뜻한다. 이는 교리적인 면에서 보면 보살이 각자(覺者)인 여래와 무명(無明)중생의 중자적인 존재라는 점과 잘 어울린다. 미륵보살상의 오른쪽 어깨, 손목, 오른쪽 무릎으로 이어지는 직삼각형이 안정감을 주는 반면 세운 무릎, 비스듬히 얹은 팔, 숙인 얼굴이 그리는 곡선은 변화와 운동감을 주고 있다.

전실 벽면에 있는 8구의 팔부중상은 무사의 성격을 띠고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여러가지 모습의 신들이며, 치마를 입은 금강역사상 또한 불법을 수호하는 한쌍의 수문장으로서 상체의 근육이 발달한 용맹스런 모습을 하고 있는데 금강으로 만든 방망이를 들고 있다하여 금강역사라 칭했다.

감실의 제1-2상으로 좌상2개를 일본이 훔쳐감

전실 벽면에 있는 8구의 팔부중상은 무사의 성격을 띠고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여러가지 모습의 신들이며, 치마를 입은 금강역사상 또한 불법을 수호하는 한쌍의 수문장으로서 상체의 근육이 발달한 용맹스런 모습을 하고 있는데 금강으로 만든 방망이를 들고 있다하여 금강역사라 칭했다.

사천왕상으로 좌로부터 지국천, 다문천, 증장천, 광목천

석가모니 대불이 앉아 있는 곳인 둥근 주실 뒷벽 가운데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다 나타나는 십일면관음보살상 (十一面觀音普薩像)의 아름다운 자태는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머리둘레에 열구의 얼굴이 화려하고 섬세하게 조각되어 눈길을 끄는데,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표정, 화려하게 전면을 장식한 영락(瓔珞:구슬이나 귀금속을 꿰어 만든 장신구) 장식, 유려하게 흘러내린 천의(天衣), 손가락 발가락의 미묘한 움직임, 왼손은 한송이 연꽃이 꽂혀있는 병을 들고 오른손은 내려서 영락을 잡고 정면관의 자세로 서 있는 모습에서 화려함과 원숙함을 느끼게 한다.

8세기 중엽 통일신라 문화의 황금기에 건립된 석굴암은 불교사상과 매우 발달한 수리적 원리를 바탕으로 한 고도의 건축 기술, 뛰어난 조형감각으로 완성되었다. 우리가 석굴암에서 느끼는 장엄미와 숭고미는 이러한 바탕과 그 속에 내재하는 조화율에 있다 하겠다.

석굴암은 석가모니가 정각 즉,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가시적인 건축과 조각으로 재현한 것이며, 조각에 있어서도 인위적인 기교나 부자연스러움없이 생명력이 넘치며 원숙한 조법과 탁월한 예술성이 돋보인다. 절대적인 경지인 정각을 통해 인간 석가모니는 형이상학적 존재인 석가여래가 되고, 속세는 법계라는 이상향이 된다.

 

***보존

불국사고금창기 佛國寺古今創記〉에 의하면 1703년(숙종 29)에는 종열(從悅)이, 1758년(영조 34)에는 대겸(大謙)이 석굴암을 중수했다고 한다. 조선 말기에 울산병사 조예상(趙禮相)에 의해서 크게 중수되었으며 그뒤 일제강점기에 1913~15, 1917, 1920~23년 3차에 걸쳐 보수되면서 원래의 모습이 많이 손상되었다. 일본인들의 잘못된 보수(사전연구 부족과 건축원리를 이해하지 못해 외면상 수리는 되었으나 오히려 파괴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본존불 아래 석굴내 지하수가 모여 밖으로 배출되는 수로장치를 이해하지 못한 일본인들은 이것을 막아 버렸다. 지하수로 차가워진 돌들에 실내 수분이 물방울로 맺혀 밖으로 자연배출 되게 한 신라인들의 과학적인 구조를 어찌 일본인들이 이해하였으랴)는 1962~64년에 정부지원 아래 대대적으로 수리(목조에 기와를 덮은 전실이 설치되고 다시 돔 위에 공간을 두고 이중 시멘트로 발라놓고 습기제거장치를 하고 외부 습기를 차단하기위해 유리벽으로 막은후 자정능력을 잃어 버렸다.)되어 석굴의 구조 및 불상들의 위치가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건축학적인 면에서는 앞으로 문헌자료와 함께 중수과정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만 창건 당시의 석굴암 모습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사학자 성낙주 씨는 일제강점기 당시 경주 관련 엽서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던 ‘조선경주동양헌(게이슈 도요겐)’에서 1912년 경 석굴암 내·외부 모습을 촬영한 사진첩『신라고적석굴암석불』을 입수, 디시인싸이드에 2005. 1. 15 공개했다.  경향신문기사 :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송태호 교수는 석굴암이 1,000년 이상 원형을 보존하게 된 비밀을 과학적으로 추적해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원형 석굴암 상부구조의 장마철 결로 및 열전달 현상의 실험적 연구를 발표해 최근 열린 공기조화냉동공학 학술대회에서 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석굴암은 원래 출입구가 개방돼 외부 공기가 쉽게 드나드는 열린 구조였다. 본실 지붕인 천개석 위에는 직경 수십cm의 돌들이 1m 정도 쌓여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송교수는 석굴암의 독특한 덮개 구조에 주목했다. 그는 돌이 얼기설기 얽혀있는 다공성 구조물은 곳곳에 공기층을 함유하고 있어 외부 공기가 안으로 쉽게 드나들면서 열전달이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토함산

토함산(745m)은 신라인의 얼이 깃든 영산으로 일명 동악(東岳)이라고도 불리며,  신라  5명산(名山)중의 하나로 예부터 불교의 성지로 자리잡아 산 전체가 마치 하나의 유적지로 보일만큼 유물과 유적이 많다.  또한 소나무, 참나무 숲으로 덮여 녹음이 짙다.  불국사에서 동쪽으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석굴암이 나타나는데 이 산길은 산허리를  따라 돌아가는 도로가 개통되기 이전에 관광객들이 이용한 길이다. 60년대이전에는 이 산길을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오르내렸다. 토함산이라는 명칭의 의미는 이 산이 바다 가까이에 위치하기 때문에 안개가 자주 끼는데,  산이 바닷쪽에서 밀려오는 안개를 들이 마시고 토해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기존의 삼층석탑의 형태에서 다소 형태가 다른 석탑들을 이형 석탑이라 한다. 불국사 대웅전 앞에 서 있는 다보탑은 대표적이라 하겠다. 그리고 원형의 지대석과 팔각 원당형으로 된 이중 기단 위에 있는 석굴암 삼층석탑과 안강 정혜사지 십삼층석탑도 볼 만하다.

석굴암에서 동북쪽으로 약 150m지점 언덕에 있는 보물  제911호인 석굴암삼층석탑(石窟庵三層石塔)으로 기단의 모습은 매우 독특하고 유래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 자료 : 유네스코세계유산 '석굴암' / 한국관광공사 여행정보싸이트 / 한국 브리테니커회사 / MBC <느낌표> '위대한 유산' 공식 카페  / 다음 신지식 / 디시인싸이드 '역사겔러리' / '석굴암의 보존비밀' - 네이버 지식iN / 문화재 지식정보센터 / 해인석재 '석굴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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