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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인천·섬

연평도 조기파시 구리동해변 빠삐용절벽 소연평도

by 구석구석 2007.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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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시간은 느리다. 더러 정조(停潮)시의 물결처럼 정지하기도 한다. 시간이 정지해 있는데 몸과 마음이 바쁘다 해서 섬을 벗어날 방도는 없다. 정지된 시간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섬의 주재자는 오로지 자연이다.

 

'연평도' 

기차가 달리는 것 같은 그리움의 섬. 연평도 구리동 해변에 서섯 바다를 바라본다. 그러면 북녘땅이 바로 앞에 있는 것 같다. 북한의 옹진반도다. 그곳을 향해 바다 위로 기차가 달리는 것처럼 섬은 평평하게 뻗쳐져 있다. 그래서 연평도라나. 또한 과거 조기로 유명한 파시가 열려 많은 인기를 누리던 곳이기도 하다. 육지에서 먼만큼 사람때가 묻지 않은 연평도는 '자연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우리에게 항변하는 것 같다. 아주 오래된 사찰 충민사에서 내려다보면 더 그렇다. 누구도 손을 대지 않은 그대로의 아름다움은 천연덕스럽기조차 하다. 구리동 해변에 깔려 있는 흰 빛깔의 자갈을 대면 다소 묘한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 연평도 바로 옆엔 작은 섬이 또 하나 있다. 소연평도다. 그 섬의 명물 얼굴바위에 얼굴을 가만히 들이대보자. 그러면 듣게되리라. 기차가 달리는 소리를.

 

 

 

오랜 세월 연평도는 조기의 섬이었다. 영광의 칠산 바다와 함께 연평도 근해는 황해 최대의 조기 어장이었다. 그때는 동해의 명태만큼이나 황해에도 조기가 지천이었다. 해마다 봄이면 연평도는 조기떼 우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 바다에는 조기가 ‘버걱버걱’ 했다. ‘조기 한 바가지, 물 한 바가지’는 은유나 과장이 아니었다. 1960년대 후반까지 연평 바다는 수천 척의 배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어선들이 몰려오면 연평도에는 파시가 섰다. 조기떼의 이동을 따라 임시로 형성되는 바다의 시장이 파시(波市)다. 파시 때면 선구와 생필품을 파는 상점들이 들어서고 어선을 쫓아온 ‘물새떼’가 어부들을 유혹했다. 한창 때는 색주가만 100여 곳이 생겼고 ‘물새’라 부르는 작부들이 500명도 넘었다.

 

파시 동안 작은 섬 연평도는 수 만 명의 사람들로 밤낮없이 흥청거렸다. 10톤 남짓 되는 중선(안강망 어선) 한 척이 한 번 조업에 참조기를 100동(10만 마리)씩 잡는 것도 예사였다. 1910년에 벌써 황해, 경기, 평안도 등지에서 300여척 이상의 중선 배들이 몰렸다. 당시 <매일신보>는 파시가 절정에 달한 1943년 4월 말, 연평도에 어선 2000척과 운반선, 상선 등을 합해 무려 5000여척의 배들이 몰려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44년에도 연평도의 조기 어획량은 97억 마리나 됐다. <동아일보>는 1946년 봄, 연평 바다에서 무려 2백97억 마리의 조기가 잡힐 것 같다는 예상 기사를 내보냈다. 1947년 파시 때 연평도 어장에 동원된 어부들은 연인원 9만 명에 달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많던 조기떼가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연평 바다에서 조기떼가 사라진 것은 1970년 무렵이다. 비슷한 시기 칠산 어장에도 조기가 나타나지 않았다. 오랜 세월 대규모 선단이 어린 새끼들까지 잡아들인 남획의 결과였다. 무차별 포획이 계속되자 어느 순간 멸종의 위험을 감지한 조기떼는 더 이상 사지를 찾아 들지 않고 바다 깊숙이 숨어버렸다. 혹시나 돌아올까 기다리는 어부들도 있었지만 몇 해가 지나도 조기떼는 소식도 없었다. 조기가 떠나자 배도 사람도 더 이상 연평도를 찾아오지 않았다. 조기떼의 소멸과 함께 구한말 시작된 연평도 조기파시도 끝났다. 조기들은 모두 어디로 떠나간 것일까. 4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여전히 연평도 어장에는 조기떼가 돌아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구리동해변

 

연평 북서쪽으로 위치한 천혜의 자연 해수욕장으로 북녘해안이 보이는데 위치한 은빛백사장으로 모래사장이 1km 길이에 200m 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암괴석, 흰 자갈, 모래가 나란히 펼쳐진 곳으로, 모래가 아주 부드럽고 해송이 어우러져 한여름 해수욕을 즐기기에 아주 그만이다.

 

남까리봉
노송들이 주변에 식생하고 있어 산림욕 및 산책로로 많은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이용하고 있다.

 

 

빠삐용절벽

 

빠삐용이 탈출한 절벽과 비슷하다하여 붙여진 빠삐용 절벽은 낙조사진 대회가 열릴 만큼 빠삐용 절벽에서 바라보는 일몰 관경은 주홍빛 바다와 하늘이 만들어 내는 황홀경을 연출해 내게 된다.

 

아이스크림바위

 

추운 겨울 눈과 바닷물이 얼어붙으면 마치 아이스크림 모양과 같다 하여 일명 “아이스크림 바위” 라 부르며 송곳과 같이 뾰족하게 생겼다하여 “송곳 바위” 라 부르기도 한다. 아이스크림 바위 바로 뒤로는 연평도 주민이 십장생에 속하는 장수의 동물 형상이라 하여 신성시 하고 있는 거북 모양의 거북 바위가 있다.

 

등대공원은 조선 16대 인조대왕 14년에 (1636년) 임경업 장군에 의해 연평도에서 조기를 처음 발견한 후 해방 전후부터 1968년 전까지 황금의 조기파시어장을 이루었다. 각 지역의 어선들이 연평도 앞바다를 메우던 시절 연평도 등대를 이들의 길잡이로 1960년 3월 첫 점등을 시작하여 찬란한 황금어장을 굽어 비치어 왔으나 1974년 7월 국가안보의 목적으로 일시소등하게 되었고 1987년 4월 등대로서의 용도가 폐지되면서 현재는 빛도 소리도 없이 침묵으로 흥청거리던 지난 과거를 기억하며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연평도 역사와 함께하는 조기잡이 풍물을 재조명하며 자라나는 2세들의 교육장소로 활용하고자 건립한 관광전망대. 관광전망대에 오르면 북서쪽으로 병풍바위를 비롯 옹돌 갱변의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북녘하늘로 지는 석양이 아름답기 그지없어 고향을 잃은 실향인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며 1999년 6월 15일에 발생되었던 서해 교전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조선중기의 명장 임경업 장군이 병자호란의 치욕을 당하고 청나라를 치기 위해 명나라로 가던 중 연평도에 들러 가시나무로 조기를 잡은 것이 유래가 되어 그의 전설적인 지혜를 숭모, 임경업 장군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충민사를 지어 해마다 봄에 전 주민이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연평도 동북쪽 언덕 위의 망향공원에 있으며, 두고 온 고향땅을 그리는 간절한 마음을 모아 북녘이 바라다 보이는 언덕위에 세운 것이다. 북한이 지척지간인 이곳은 지형적으로 옹진반도가 눈앞에 있어 날씨가 좋은 날에는 북한의 해주 시멘트 공장의 연기까지 보인다고 한다.

 

오석해안에는 마치 병풍을 쳐놓은 것 같아 보인다 하여 병풍바위라 불린다. 주변에는 티타늄 광산이 있어 티타늄 조각이 마모되어 해안가에 둥근돌(오석)이 모이게 된, 일명 '오석해안'이 펼쳐져 있는데, 썰물 때 드러나는 아름다운 검은 돌들은 가히 수석 수집가들도 탐낼 만한 명물이다. 잔 자갈밭을 맨발로 걸으면 지압효과와 찜질효과까지 동시에 맛볼 수 있다.

 

* 낚시정보
1) 바다낚시 - 해안주변으로 이루어진 바다낚시터는 6월부터 10월까지 인근연안에 농어, 준치, 광어, 우럭, 놀래미 등으로 낚시터가 형성되며, 농어, 광어, 우럭, 놀래미는 6월부터 10월까지, 준치는 7월에서 9월 사이에 떼를 지어 회유하기 때문에 물떼를 잘 맞추면 물반, 고기반 소리가 절로 나온다.
2) 갯바위낚시 - 해안가 주변으로 선착장 부근, 갯바위 부근으로 이루어지는 갯가 낚시의 주 낚시철은 5월부터 11월 중순까지이며, 3물 일때에서 6물 때까지 (음력 12∼15일, 27일∼30일)가 아주 좋다. 간조시 갯바위에서 낚시를 드리우면 우럭, 놀래미, 숭어 등 씨알이 굵은 놈 이 손맛을 즐겁게 한다.

 

연평리 521번지 갈가마펜션 032-831-5589, 011-9875-5559

갈가마펜션은 뒤로는 연평도 최고라 일컽는 관광전망대를 등지고 정면으로 연평도의 바다와 해안선이 한눈에 들어와 휴식을 취하기에 너무나 아름답고 조용한 곳이다. 항시 봉고차가 대기하고 있으며 도착하면 선창장까지 픽업가능하다. 또한 주변광광지를 무료로 봉고차로 안내해 주고 있다.
일반실 2인용 40,000원 ~ 특실 100,000원

 

연평리 292  둘리민박 032-831-8902, 016-839-8902

둘리민박은 서해 최북단에 있는 구리동해수욕장 인근에 위치한 2층 가정집 민박시설이다. 객실은 원룸형 한실로 모두 7실을 갖추고 있다. 편의시설로는 TV, 냉장고, 에어컨, 드라이기, 세면도구 등을 갖추고 있다. 주변관광지로는 자랑바위, 삼형제바위 등의 온갖 형태의 바위와 기암절벽, 그리고 오래된 사당인 충민사가 있다.

40,000원 ~ 50,000원  

소연평도

 

면적 0.236㎢로 연평도에 딸린 작은 섬이다. 대연평도에서 남쪽으로 6.4km 떨어져 있으며 해안선 4.7km를 따라 얼굴바위 등 기암괴석과 충식석회암이 절경을 이룬다. 주변 바다에서 농어·민어·준치·우럭 등이 많이 잡히고 굴·소라 등 패류도 많아 2000년 말 현재 37세대 97여 명의 주민은 어업을 생업으로 한다.

섬의 경작지에서는 감자·옥수수·고구마 등을 재배하는데, 특히 이곳에서 나는 고구마는 맛이 좋다. 억새풀이 많이 자라 옛날에는 지붕이나 가축먹이·연료 등으로 사용했으며, 쇠의 대용으로 쓸 만큼 단단한 티탄이 난다. 티탄광이 있는 오석해안에는 마모된 티탄 자갈밭이 있어 찜질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에 톱섬과 끼미해수욕장·얼굴바위·홍보부리 등의 관광지가 있다. 찾아가려면 인천연안부두에서 매일 왕복 운항하는 소연평도행 여객선을 탄다.

소연평 동남쪽에 위치한 바위로 사람의 옆얼굴과 쪽같이 생겨 “

얼굴바위

” 라 부르며 연평도의 대표적인 바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객선을 타고 소연평도에 이르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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