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旗) 이야기
해병대기(旗)가 정식 군기(軍旗)로서 법적 지위를 부여받는다. 국방부는 14일 군기 종류에 해병대기를 추가하는 내용의 ‘군기령’ 일부 개정령(안)을 지난 11일 입법예고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국군조직법 개정 등으로 3군 체제 하에서 해군에 속한 해병대의 위상은 강화됐으나, 해병대 조직을 상징하는 군기는 법적으로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해병대 법적 위상, 임무 특수성, 해병대사령관에게 위임된 권한 등을 고려해 법규 정비로 해병대기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게 됐다.
입법 예고된 군기령 개정령(안)에 따르면 군기 종류에 해병대기를 추가해 군기를 합참기, 각군기, 해병대기, 부대기, 병과기, 소부대기로 분류했다. 아울러 군기 제작 절차와 수여 기준에도 해병대기를 추가했다.
국방부는 다음 달 21일까지 관련 후속 절차를 진행하고, 내년 초 개정 군기령을 시행할 계획이다. 서현우 기자
국방일보 2022.11 서현우 기자 < lgiant61@dema.mil.kr >


해병대기, 해병대1·2사단 부대 마크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색’은 해병대기(旗)에도 활용된다. 육군기의 흰·청색 배경이 백의민족과 민족의 자유·평화를, 해군기의 진남색이 삼면의 바다를, 공군기의 청색이 창공을 뜻한다면 해병대기의 강렬한 붉은색은 대한민국 해병대만의 ‘정열과 패기’를 표현한다.
가슴에 붙인 ‘빨간 명찰’이 그렇듯 해병대원에게 붉은 해병대기는 특별한 존재다. 해병대기에는 해병의 자긍심이 그대로 담겨 있다.

해병대기
붉은 배경색에 리본·독수리·별·닻… 해병대 기상·사명 담아
해병대를 대표하는 상징이자 정체성의 표상인 해병대기를 살펴보기 전에 우리 해병대 역사를 알아보자.
해병대는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지리적 여건과 여순사건 전훈에 따라 상륙작전을 수행할 부대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1949년 4월 15일 창설됐다. 당시 해군에서 편입한 장교 26명과 부사관 54명, 병 300명은 신현준 초대 사령관의 지휘 아래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며 해병대의 굳건한 초석을 다졌다.
이듬해 6·25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는 곧바로 전장에 투입돼 승전고를 울렸다. 1950년 7월 장항·군산·이리지구전투에 투입돼 북한의 남진을 지연했고, 8월엔 진동리지구전투에서 승리하며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이바지했다. 최초의 국군 단독 상륙작전인 통영상륙작전, 불리한 전황을 단숨에 뒤집은 인천상륙작전 및 서울탈환작전은 해병대 위상을 떨친 대표적인 작전이다.
해병대기는 이렇게 6·25전쟁에서 해병대가 거둔 눈부신 전과(戰果)를 배경으로 탄생했다. 정확히 말하면 해병대기에 있는 해병대 심벌마크는 전쟁시기 만들어졌다. 1951년 4월 해병학교(해병대교육훈련단 전신)에서 해병대 최초의 마크를 제작했다.
해병대기의 심벌마크를 자세히 보자. 크게 리본, 독수리, 별, 닻 등 4개로 구성돼 있다. 상단 리본에 있는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는 해병대 상징 표어다. 여기엔 ‘내 한목숨, 해병대와 조국에 바친다’는 거룩한 의미가 담겨 있다. 독수리는 충성·용맹·승리의 상징으로 ‘민족과 조국의 수호신이면서 전장에서 승리의 불사신이기를 갈망하는 해병대 기상’을 뜻한다.
그 아래 별은 조국과 민족의 생존을 위한 국방의무의 상징이다. 높은 곳에서 고고히 빛나는 별처럼 조국과 민족을 지키는 해병대의 신성한 사명을 나타낸다. 마지막 기울어져 있는 닻은 해병대 고유 임무인 상륙작전 개시를 의미한다.
해병대기는 모든 해병대 부대에서 해병대기를 활용한다는 특별한 점이 있다. 반대로 말하면 해병대에는 부대기가 따로 있지 않다. 군기령에 따르면 육군의 여단·연대급(독립대대급 부대를 포함) 이상의 부대, 해군의 전대급 이상의 부대, 공군의 전대급(전투비행대대급 부대를 포함) 이상의 부대 및 국방부 직할부대는 부대기를 가질 수 있는데, 해병대에는 사단급 부대도 별도 부대기가 없다. 부대기 종류에 해병대 각급 부대를 직접적으로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대신 해병대기 하단 리본에 부대명을 기재하는 형태로 활용한다. 가령 ‘해병대’ 글자 자리에 ‘해병대1사단’ ‘해병대6여단’ 등 부대명을 넣는 방식이다.
해병대1·2사단 부대 마크
황색은 해병대의 땀과 인내
청룡의 질주 숫자 2로 표현
해병대 각급 부대에 부대기는 없지만, 타 군보다 강렬한 부대 마크가 있다. 한반도를 품은 해병대1사단 부대 마크, 청룡이 용솟음하는 해병대2사단 부대 마크가 대표적이다.

부대 마크는 각 사단과 그 예하 부대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먼저 ‘황룡부대’ 해병대1사단 부대 마크를 보면 황색 한반도와 숫자 1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황색은 해병대의 땀과 인내를,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1은 해병대1사단을 가리킨다. 한반도를 품고 있는 원은 ‘조국 수호’를 상징한다. 전체적으로 ‘한반도 어느 곳에서나 조국을 수호한다’는 해병대1사단 구성원의 굳은 결의를 느낄 수 있다.
‘청룡부대’ 해병대2사단 부대 마크에는 청룡이 담겨 있다. 용은 승리를 상징하는 수호신이다. 청룡을 자세히 보면 숫자 2 모양으로 질주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청룡을 품고 있는 청색 배경은 해병대 터전인 바다를 상징한다. 해병을 붉은 글씨로 쓴 이유는 피와 정열로 국가를 수호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국방일보 2024.3 이원준 기자/사진=해병대 제공
ㅇ해병대 전투모의분석센터

ㅁ 해병대 창설 76주년
1949년 창설돼 필승의 전통을 이어온 해병대가 15일 76번째 생일을 맞았다. 이날 해병대사령부를 비롯한 각급 부대는 화성, 서북도서, 김포·강화, 포항, 제주 등에서 각각 기념식을 열고 해병대 깃발 아래 창설 의의를 되새겼다. 국방일보 2025.4 글=조수연 기자/사진=해병대 제공
“선배 해병의 희생·헌신 계승”
15일 경기 화성시 해병대사령부에서 거행된 ‘해병대 창설 76주년 기념식’에는 국회 국방위원회 성일종 위원장과 안규백 의원, 역대 사령관, 자매결연 단체 및 관계기관 관계자, 현역·예비역 장병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군악의장대의 의장시범으로 문을 열었다.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국방부 장관 직무대행·해군참모총장 축하 전문 낭독, 해병대사령관 기념사, 표창 수여, 명예해병 임명식, 해병대가 제창 순으로 진행됐다.
주일석 사령관은 기념사에서 “오늘의 해병대는 오직 국가를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친 선배 해병들의 희생·헌신, 그리고 이를 이어가려는 현 구성원 모두의 땀과 열정이 있었기에 존재한다”며 “앞으로도 해병대 깃발 아래 단결하고 화합해 국민에게 신뢰받는 국민의 군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사에서는 ‘해병대 핵심 가치상’도 시상했다. 해병대는 핵심 가치인 ‘충성·명예·도전’을 테마로 모범 장병·군무원을 선정·포상하고 있다.
올해는 청해부대 파병 중 우리 국민 구출작전을 펼치고 태풍 피해 현장에서 민간인을 구조한 특수수색대대 이주원 상사(충성 분야), 정기 후원으로 ‘국민의 군대’를 실천하고 심정지 시민을 구조한 해병대2사단 박민욱 대위(명예 분야), 우수·혁신 제품을 도입해 병영생활 여건을 개선하고 ‘첨단 과학기술 해병대’ 구현에 이바지한 해병대사령부 한경섭 군무사무관(도전 분야)이 영예를 차지했다.
이 밖에 3대가 해병으로 군 복무한 여섯 가문에 해병대 병역명문가 인증패를 전달하고, 이들의 희생과 헌신에 존경을 표했다.
이세민 병장은 6·25전쟁 참전용사인 할아버지와 해병대 부사관 출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해병 1302기로 복무하고 있다. 이 병장은 “내가 선택한 해병대에게 사랑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헌신이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해병대 역사와 발전
해병대는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 당시 수륙양면작전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1949년 4월 15일 초대사령관 신현준 중령을 비롯한 380명의 소수 병력과 장비로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탄생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군산·장항·이리지구전투를 시작으로 진동리지구전투, 통영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과 수도서울 탈환작전, 장단지구전투, 도솔산전투 등 수많은 전투에서 용전분투해 ‘무적해병’의 이정표를 세웠다.
1965년 9월 20일 해병대2여단(청룡부대)을 창설해 한국군 최초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했고, 160회 이상의 전투에서 탁월한 전과를 올렸다. 특히 1개 중대로 적 2개 연대급 공세를 분쇄한 짜빈동전투는 ‘신화를 남긴 해병대’의 명성을 이뤄냈다.
그러던 중 1973년 10월 10일 국방부 훈령 제157호에 의거 ‘군의 경제적 운용’ 등의 이유로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됐다. 이후 1974년 3월 11일 연평부대 창설, 1977년 1월 1일 6여단과 2훈련단 창설, 1981년 4월 16일 2해병사단 창설 등 발전을 거듭했다. 그리고 해체 14년 만인 1987년 11월 1일 해병대사령부가 재창설됐다.
1990년 8월 31일 국군조직법에 해병대 설치 근거를 명시하면서 각 군 본부와 같은 직제부대로서 법적 지위를 보장받았다. 1994년 4월 6일 ‘교외 이전계획’에 따라 해병대사령부를 서울에서 현 위치인 경기 화성시 발안으로 옮겨 ‘제2의 덕산시대’를 열었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기습 도발에 맞서 승리한 ‘연평도 포격전’을 계기로 서북도서 방위의 중요성이 드러났다. 이에 2011년 6월 15일 서북도서방위사령부가 창설돼 전·평시 서북 해역의 합동작전을 주도하는 작전사령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2011년 10월 15일 해병대 지휘관리 개선을 담은 국군조직법이 개정돼 해군 내 해병대의 독자적인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2015년 12월 1일 제주에 9여단을 창설해 전략도서 방위체계 구축을 위한 기반을 조성했다. 2018년 1월 10일 상륙기동헬기 마린온(MUH-1) 작전 배치를 신호탄으로 ‘공지기동해병대’ 건설 기반을 마련했다. 2019년 12월 1일 해병연대를 해병여단으로 개편해 입체고속상륙작전, 신속대응작전, 전략도서방어 등 다양한 작전환경에서 임무 수행이 가능한 부대 구조로 환골탈태했다.
2021년 12월 1일에는 기동헬기대대로 편성된 항공단을 창설해 독자적인 항공작전 능력을 확보했다.
2023년 3월 21일 군기령 개정을 통해 군기 종류에 해병대기(旗)를 추가했다. 지난해 4월 15일 밀리토피아호텔을 해병대 호텔로 정식 인수해 국가를 위해 헌신해 온 해병대 장병과 군 가족의 사기·복지 증진을 도모했다.
해병대 관계자는 “창설 76주년을 맞은 해병대는 과거의 찬란한 역사·전통을 계승하고, 미래 전장환경에 적합한 ‘다목적 신속대응군’으로 거듭나기 위해 전력투구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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