큼지막한 키조개 속에 숨은 말랑말랑 관자에 반해봐~
◁ 키조개를 싣고 오천항으로 들어오고 있는 잠수기어선. 사진 / 노규엽 기자
[여행스케치=보령 노규엽기자] 서해에 있는 해수욕장을 가면 십중팔구는 선택하는 먹을거리 메뉴인 조개구이. 외관을 봐서는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조개들이 제공되는 와중에 이름을 모를 수 없는 존재가 하나 있다.
크고 검은 껍질 속에 쫀득한 속살을 담고 있는 키조개다. 키조개는 반으로 가른 껍데기가 우리나라 전통 농기구인 ‘키’를 닮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조개류다.
큼지막한 껍질 속에 진주처럼 품고 있는 하얀 관자는 고급 식재료로 여겨져 관자를 이용한 음식은 비싼 값을 부르지만, 주 생산지인 충남 보령을 가보면 너무나도 합리적인 가격에 놀랄지도 모른다.
충남 보령에서 가장 유명한 키조개
둥글둥글 캐스터네츠처럼 생긴 대다수 조개류들과 다르게 길쭉한 형태로 자라나는 키조개.
조개구이 식당에서는 껍질 안에 붙은 하얀 관자만 보아왔지만, 갓 바다에서 올라온 키조개를 반으로 가르면 빈틈이 안보일 정도로 내용물이 꽉 차있는 생경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충남과 경남에서는 TAC 어종으로 관리되는 키조개를 총괄 담당하고 있는 장동길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조사원은 일반인들은 모르는 키조개의 생태를 이야기해준다.
“키조개는 태어나면 10~15일 정도 물속을 떠다니는 생활을 하다가 어느 정도 크고 나면 뾰족한 모서리를 아래로 하여 바닥에 박혀요. 키조개 어업을 위해 물 속에 들어간 잠수부들은 넓은 부리 부분이 겉에 드러나 보이면 갈고리로 찍어서 뽑아낸답니다.”
여타 조개류들과 마찬가지로 키조개도 일명 ‘머구리’라 불리는 잠수부들이 활약하는 잠수기어업으로 어획한다. 키조개가 서식하는 평균 수심은 10~20m. 장 조사원은 “수심 30m까지도 분포한다지만, 위험하니 20m 정도까지에서 채취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서해뿐 아니라 남해에도 분포해 충남권을 비롯해 전라ㆍ경상권에서도 어획되는데, 충청도에서는 다른 조개류보다도 키조개를 주 어업으로 삼고 있다.
“경상권에서는 18cm 이하는 잡지 못하도록 금지체장이 있지만 충남에는 금지체장이 없어요. 크기가 작은 키조개는 상품 가치가 떨어지니 굳이 잡을 이유가 없기도 합니다.”
키조개는 겉모습이 크다고 해서 내용물도 크다는 보장은 없지만, 아무래도 크기는 비례할 확률이 높으니 충청권 키조개가 다른 지역보다 관자 크기도 큰 편이다. 아주 큰 경우에는 껍데기 길이가 30cm도 넘어선다니 ‘키조개’하면 서해를 떠올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오천항의 키조개 위판은 남다르다
오천항은 보령항의 북쪽으로 천수만 바닷물이 내륙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령방조제로 막아놓은 물길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항구다. 맞은편으로는 보령시 천북면의 낮은 산들이 보여 마치 넓은 강을 보는듯한 바다에 있어 조용하기 그지없는 동네다.
어획량도 많지 않아 새벽부터 어선이 들어오는 족족 위판을 진행하는데, 오전 11시경부터는 키조개 위판이 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오천항의 키조개 위판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을 연출한다. 키조개가 위판장으로 옮겨지지 않는 것이다.
“부둣가에 배를 정박하자마자 샘플을 보여주고 위판을 진행해요. 낙찰자가 정해지면 트럭을 배 옆에 대고 키조개들을 옮겨 실은 후 각자 갈 곳으로 이동하죠.”
키조개를 배에서 하역하고 정렬시킨 후 들어온 순서대로 위판을 진행하는 다른 항구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 그 빠른 일처리 덕분에 어선 1~2척이 잠시 정박했다가 위판이 끝나면 곧장 빠져나가고, 다시 새로운 어선이 그 자리에 정박하기를 반복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어떤 어선에서는 키조개가 담긴 그물망을 모두 내리는 한편, 어떤 어선에서는 그물망을 조금만 내려놓고 수십개는 그대로 실은 채 떠나가는 것이다.
“키조개를 육지에 올리면 금방 말라서 죽거든요. 그러니 낙찰을 받은 중매인들이 당일 필요한 만큼만 옮기고, 나머지는 인근 어장에 저장시키는 겁니다.”
수산물은 신선도가 생명인 만큼 관리에 엄격한 모습. 충청ㆍ경남권에서만 TAC 어종으로 관리되는 키조개가 서해를 대표하는 조개류인 점에 이런 모습도 한 몫 할 것이다.
산란기 전인 3~5월이 제철?
키조개는 산란기인 7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를 금어기로 지정하고 있다. 이 시기를 제외하고는 계절에 관계없이 어획을 하는데, 유독 제철로 치는 시기는 3월부터 5월까지이다. 이에 관해서는 장동길 조사원도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제철이 있다고는 하지만 딱히 다른 계절에 비해 맛 차이가 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다른 어종과 마찬가지로 산란기 직전을 제철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 수산집에 들러 박스에 포장된 관자를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키조개는 큼지막한 껍질 안에 속이 가득 차있지만, 정작 먹는 부위는 꼭지와 외투막(날개), 관자만 먹는다.
그 중 가장 인기 있는 부위는 당연히 관자. 둥글고 넓적한 원기둥처럼 생긴 하얀 관자는 은은한 바다향을 담고 있고 쫀득하게 씹히는 맛에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한다.
신선한 관자는 회로 먹기도 하고, 고추장 양념으로 볶아낸 두루치기, 버터구이, 샤브샤브, 회무침 등 먹는 방법도 다양하다.
장동길 조사원은 “오천항뿐 아니라 보령 어느 항구에서나 키조개 요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식당에서는 관자 원가에 비해 음식 가격이 지나치게 높은 경향이 있어 직접 사서 드시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오천항에는 딱히 어시장이 형성되어 있지는 않다. 키조개를 구입하려면 위판장 옆으로 식당을 겸업하는 수산집들을 이용하거나, 항구 뒤편 골목에 있는 수산집들을 찾아가면 된다.
위판이 끝난 직후라면 막 육지로 올린 키조개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해체작업을 하는 장면도 볼 수 있고, 박스 가득 담긴 키조개 관자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도 있다. 키조개 요리들은 조리방법이 어렵지 않으니 넉넉히 구입하여 다양한 조리법으로 즐기기도 좋다.
여기서 또 하나, 꼭 알아두어야 할 키조개 관자에 관한 성질이 있다. 장 조사원은 “키조개 관자는 결이 있어서 동그란 원형이 유지되는 방향으로 칼을 넣어 잘라야 부드럽고, 다른 방향으로 자르면 질겨진다”며 “식당 메뉴를 흉내 내서 먹는 것도 좋지만 외투막과 꼭지를 함께 넣고 된장을 끓여도 시원한 맛이 별미”라고 팁을 건넨다.
조개구이를 먹을 때 비싼 돈을 내고도 키조개 관자는 1~2개 밖에 먹지 못해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면, 보령을 여행 목적지로 삼아 쫀득한 키조개 관자를 만나보기를 추천한다.
출처 : 여행스케치(http://www.ktske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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